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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으면 살게 됩니다. (갈 2: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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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죽으면 살게 됩니다. 
본문 : 갈라디아서 2장 19~20절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19~20절 말씀

  오늘도 크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믿음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건강한 믿음이냐? 역사를 일으킬만한 믿음이냐? 스스로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몸이 아프면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맛이 없는 거예요. 믿음도 병이 들거나 침체되면 맨 처음 일어나는 현상이 말씀의 맛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말씀을 읽을 때, 들을 때 고개가 끄덕여 지고, 그렇게 살아야지 마음에 다짐이 되어지고, 아멘이 되어지고, 간절하게 느껴집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이 건강한 것입니다. 믿음에 가난한 자가 되지 아니하고, 영적으로 건강하고 부요하게 사시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잘 깨달으면 세상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현대인에게 불행의 원인이 있다면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의미를 잃어버렸어요. 집이 없는 것도,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에요.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욕심부리고, 더 가져보지마는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아요.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리니까 풍요로움 속에서도 허덕이며 갈등하며 사는 것이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출세를 해도 그 가정에 행복이 오지 아니하고,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 가정이 행복하지 않더라는 거예요. 돈 벌어 놓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 거예요. 갖고 싶은 것 다 손에 넣어 보아도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더라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관계가 해결되지 않고는 진정한 행복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죄 문제 깨끗이 해결하고,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는 복된 성도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죤 뉴톤(John Newton)은 본래 노예상인이었는데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된 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은혜에 감격하여 평생 복음을 전하면서 삽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찬양한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 찬송이 뉴톤이 지은 것이에요. 여러분 성공이 무엇이고, 행복이 무엇입니까? 그 심령에 벅찬 감격이 있고, 만족이 있고, 감사가 있으면 바로 그가 행복한 자요 성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길지 않은 인생살이,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공자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19절에는 율법을 향하여는 이미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동안에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분명한 삶의 목적이 있는 사람, 흔들리지 않고, 결국은 후회하지 아니하는 승리의 삶, 풍성하고 복된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비록 지금은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날마다 시간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심령에 주님이 승리의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당장 안 이루어져도 낙심하지 아니하면 열매를 거둘 때가 옵니다. 

  1889년 같은 해에 히틀러와 아이젠하워가 태어납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는데, 아내가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가는 환경에서 자란 히틀러는 중학교에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불량배들과 어울리게 되고, 군대에서도 적응을 못하고 제대합니다. 정치한다고 날뛰면서 감옥에 드나들다가 나중에는 정권을 잡았지만 세계 전쟁을 일으키는 전쟁 미치광이가 되고, 유대인 600만을 학살하고는 결국 자신도 자살하고 맙니다. 세상 사람들이 "잘 죽었다" 생각한 거예요. 같은 해에 출생한 아이젠하워는 텍사스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부모의 믿음을 이어 받았습니다.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간 이후 진급을 거듭하다가 히틀러가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킬 때 유럽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총지휘관이 되었습니다. 결국은 아이젠하워가 히틀러를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제대 후 미국의 대통령이 됩니다. 그는 전쟁 중에서도 주일을 지켜 예배했고, 대통령이 되고 세계 정상들과 만날 때에도 주일을 꼭 지켰습니다. 그가 나이 80살에 죽을 때 온 세계가 눈물을 흘리며 애도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후르시초프가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할 때에도 주일에는 일정을 비워 둘 정도로 철저하게 믿음으로 산 사람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은 순종이 씨앗이 되어서 귀한 열매를 맺고, 불순종과 거역도 씨앗이 되어서 멸망의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곳에 당장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주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늘 기도하기를, 아침에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바르게 살고 싶어도 그렇게 살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백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거예요. 특별한 일들만 시험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이지요. 어려움이나 환난만이 시험이 아니라 평안함도 시험이 될 수 있고, 가난해서만이 시험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 된 것도 시험이 될 수 있고, 실패해서만이 아니라 성공했기에 시험되는 경우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에게, 기도 안 하는 사람에게만 시험거리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여 40일을 금식기도 하신 예수님에게도 마귀는 당당하게 찾아와 시험하였고, 믿음으로 살려는 우리에게도 찾아와 시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험을 당할 때마다 물리치고 승리하셔서 주님께 인정받는 복된 체험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 인정받을 뿐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을 때 힘이 나는 거예요. 아내가 가정을 위하여, 남편을 위하여, 자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삽니다. 먹고 싶은 것 다 못 먹어요. 쓰고 싶은 곳에 다 못써요. 집안 일은 종일 해 놓아도 해도 표가 잘 안 나잖아요? 정성을 다해 식탁을 준비해 놓으면 "왜 이렇게 솜씨가 없느냐? 반찬이 왜 이러냐" 그러면 맥이 빠져요. 일할 재미가 안 생기는 거예요. 아내는 남편에게 좀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별로 아프지도 않는데 "여보! 나 아파요" 그럴 때 "왜? 당신은 밤낮 아파" 그러면 살맛 안 나는 거예요. 말 한 마디!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삶에 새 힘이 납니다. 남편들 직장 생활에나 사업에도 어려운 때가 있어요. 그럴 때라도 "당신은 능력이 있지 않아요. 난 당신을 믿어요." 이 말 한 마디면 새 힘 얻게 되고, 살맛 나는 거예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다는 것, 귀한 일입니다. 사람에게도 그렇거니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고 칭찬 듣는 사람된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신앙의 철학이 분명해야 합니다. 사탄은 여러모로 역사합니다. 모든 질병의 원인이 사탄은 아니에요. 그러나 많은 경우에 마음을 병들게도 하고, 육체를 병들게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도 하고, 스스로 갈등과 괴로움과 번민을 가져오게도 합니다. 또 미혹의 영으로 역사해서 타락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격분시켜서 노를 발하게도 하고, 거짓 영으로 역사해서 거짓말을 하게도 합니다. 악한 영의 역사는 우리를 범죄 하게 할 뿐 아니라, 밭에 가라지를 뿌리듯이 우리의 마음에 불안함을 주기도 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합니다. 양옆에 염소가 있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있는 곳에 마귀 자녀들도 있는 거예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벧전 5:9) 사탄에게는 틈을 주지 말아야 되요. 믿음으로 물리칠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말씀을 향하여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확인하셨습니까?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그러합니다. 단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보다 더 큰 충성은 없습니다. 순종이 축복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순종하면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불순종하면 반대로 나가도 저주요, 들어와도 저주라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다가 왕위를 빼앗기고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순종하는 곳에 축복이 있고, 순종하면 능력이 생깁니다. 어려운 시대 속에서라도 우리의 사업과 하는 일을 능력 있게 하려면 겸손히 순종하면 됩니다. 순종하고 인내하는 곳에는 약속대로 지체되지 아니하고 반드시 열매가 맺혀 질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시험을 잘 이기고 나면 더 나은 신앙의 인격자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고 준비하신 축복을 받게 됩니다. 큰 믿음으로 이런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20절에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이제는 믿음 안에서 산다고 했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다가 고민하던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는 발가벗은 채로 "나는 발견했다" 소리쳤다고합니다. 너무 좋아서, 바울의 고백이 그것입니다. 자기의 옛 사람이 주님과 함께 이미 저 십자가 위에 못 박혀있고, 지금도 자기의 옛 사람이 주님과 함께 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0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 말씀을 직역해 보면 "나는 산다. 그러나 내가 아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삶, 거듭난 사람이요 새 사람입니다. 고후 13:5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주님이 내 마음을 사로잡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의 중심에, 우리 마음에 주님이 계신다는 거에요. 주님이 내 속에 계시니까 생각과 생활 속에서 주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술 먹는 사람들은 술기운을 느낍니다. 소심한 사람이 큰 소리를 친다든지, 평소에는 하지 못하던 말, 행동들을 술 기운으로 하게 되더라는 거예요. 술의 힘이에요. 주님이 그 속에 계시면 주님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체험한 사람들은 이 약속이 내게 이루어짐을 느끼고 체험하게 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절 후반절에 보면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 맡기며 사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무거운 짐들이 많습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도 모두에게 인생의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짐을 나 혼자서 지고 가려고 하는 것은 교만이고, 불신입니다. 주님께 맡기며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 의지하며 사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실수, 우리의 허물을 탓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의 실수를 복으로 바꿔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살아가는 것이 부분부분에서 마치 전쟁을 하는 것처럼 힘들게 살아갑니다. 내가 하려고 하면 너무 힘이 들어요. 나의 생각으로 계산하지 아니하고, 내 경험으로 판단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면 주께서 좋은 결말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캥거루는 새끼를 배에 넣고 뜁니다. 새끼가 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미가 뛰는 거예요. 새끼는 그냥 어미 품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어디든지 어미가 가는 곳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옛 사람은 죽고, 내 속에 거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거예요. 이 믿음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환경은 말할 수없이 어려워요.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지요. 불안한 시대입니다. 혼란의 시대입니다. 이래저래 힘든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세상사는 것이 힘든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닐 것입니다. 여유가 있으면 있는 대로 문제가 있고, 없으면 없는 대로 어려움이 많게 마련입니다. 근심 없는 사람 찾아보기 힘들고, 걱정 없이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절망을 말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만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눈에 안 보여도 하나님이 말씀 하셨고, 약속하셨으므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위를 쳐다 볼 수 없는 인생은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님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계산이 아니라, 절대 믿음을 갖는 일이다. 계산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들에게 내일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소망이 없으면 쉽게 흔들리고, 주저앉고, 포기합니다. 분명한 소망이 있고, 꿈이 있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주님 손을 대시는 곳에 바꾸어지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야이로의 딸은 "죽었다"고 말할 때, 예수님은 그녀가 "잔다"고 하셨습니다(마 9:24). 또한 사람들이 십자가를 보고 "다 끝났다"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9:30) 

  오늘날 병의 70-80%는 스트레스에서 오는데, 스트레스는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킵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언론인의 평균 수명이 짧다고합니다. 마감시간에 따른 압박과 낙종에 대한 불안등 직업 특성상 언론인이 다른 직종의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도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았던 이삭은 180세를 살았어요. 175세를 살았던 아버지 아브라함과 비슷하게 살았지요. 그런데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객지 생활을 하며 피곤한 인생을 살았던 야곱은 147세밖에 못 살았어요. 그 아들 요셉도 형들에게 팔려 어린 나이에 타국에 팔려가 힘겨운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기에 110세 라는 짧은 수명밖에 누리지 못한 거예요.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 수는 없는 세상이지만 보는 눈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세상을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나를 먼저 움직이십시오. 남편이나 아내를 움직이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을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남편 때문에 못살겠다는 분있습니까? 나를 먼저 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많은 부분에 나의 책임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100% 불행한 사람도 없고, 100% 행복한 사람도 없습니다. 영적 어려움이든지, 정신적인 문제든지, 육신의 문제이든지, 주님의 은혜받고 내가 달라지면 가정도, 일터도 교회도 달라지고 변화 될 줄로 믿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으로 섬기고, 원수에게는 복수하며 사십시오. 복수하되 사랑으로 복수하십시오. 같이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섬기고 원수에게는 사랑으로 복수합시다" 부메랑은 던지고 나면 다시 돌아 오잖아요? 우리의 앞날에 사랑으로 돌아오는 것이 많아지기를 축원합니다.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주안에서 즐겁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17:22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아니하고, 문제를 통해서 축복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중국 고사에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중국 북방 근처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암말이 오랑캐 땅으로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참 안됐습니다"라고 노인을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누가 아오. 오히려 이것이 복이 될지"라고 대답했는데 얼마 후 도망을 쳤던 암말이 숫말 여러 마리를 데리고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그 노인에게 축하를 했습니다. 그때 그 노인은 "누가 아오. 이것이 화가 될지"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얼마 후 노인의 아들이 암말이 데리고 온 숫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은 노인에게 불행이 닥친 것을 위로하자 노인은 "누가 아오. 또 좋은 일이 올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 후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고 전쟁에 수많은 장정들을 동원할 때 그 동네에 있던 장정들은 모두 동원이 되어 죽었으나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져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주를 믿고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살면 주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역사하여서 악한 것도 선한 결과로 바꾸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5)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복된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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