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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전건축자의 마음 - 학개 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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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전 건축자의 마음 
본문 : 학개 1:12~15 (구1310) 

다음 주일이면 기공예배를 드리고 성전 건축이 시작된다. 부족한 종에게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나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는다. 다윗도 그렇게 성전 짓기를 원했지만 전쟁에서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이유로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다. 솔로몬에게 기회를 주셔서 솔로몬이 정성껏 성전 짓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지난 주에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어떤 결과가 있는가? 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다. 성전을 건축하면 우리의 삶에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귀한 일을 감당하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한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라고 기록되고 있다. 성전을 짓는 자의 마음이 흥분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개역 개정판에 의하면 이 구절을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성전 건축자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먼저 감동의 역사 일어나야 한다. 감동은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뭔가 깊이 느껴서 마음이 움직이는 역사가 바로 감동이다. 영어 성경에 의하면 stir라는 표현을 썼다. stir라는 표현은 움직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우리가 커피를 마실 때에 설탕이나 프림을 넣으면 밑으로 가라앉는다. 제대로 맛을 내지 않기 때문에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먹는다. 여기에서 휘휘 젓는 일을 stir라고 한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자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이 감동함으로 움직여야 한다. 감동함을 받은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일을 하신다. 요셉이 애굽 땅에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바로 왕이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다. 요셉의 배경은 불확실한 사람이다. 팔려온 사람이다. 그리고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서 고생도 하였다. 객관적으로 볼 때에 요셉은 총리로 임명되기에 무리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하면서 강력하게 주장한다. 요셉을 통해서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다.

요셉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이 되고 나니 바로 왕도 그것을 알아보고 총리로 등용시켰다. 이같이 하나님의 영적인 감동이 있는 사람이 쓰임 받는다. 영적인 감동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칭찬받는다.
느헤미야를 보라.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다. “내 하나님이 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내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야 한다. 감동이 일어난 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건강하게 살려면 감동을 느끼라는 것이다. 의미요법이란 정신치료법을 개발한 빅터 프랠클 박사는 유대인이었다. 나치 수용소에서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긴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은 살아남고 어떤 사람은 너무 쉽게 죽어나간다. 건강한 사람이라고 살고 약한 사람이라고 금방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뭔가 삶에 의미를 체험한 사람은 살아남는다는 결론이다. 그러면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는가? 작은 것을 통해서라도 감동을 받을 때에 내가 사는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프랭클린 자신이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감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저녁 노을의 장엄함, 동료들의 흥얼거리는 소리, 수용소 입구에 핀 들꽃을 감탄하며 그의 마음이 움직이는 감동을 느꼈고 이러한 감동으로 살아남게 되었다고 한다.

20세기 독일 정치 역사에 자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 직을 맡았던 사람이 헬무트 콜 총리이다. 독일통일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유럽공동체가 이뤄질 수 있는 모든 기반을 이뤄낸 사람들이다. 그러나 몇 년 전 콜 전 총리의 아내는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 살아있을 당시 차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독일인들 사이에 남편보다 훨씬 더 인기가 있었던 그녀였다. 의미요법의 측면에서 본다면 콜 전총리의 아내는 작은 것에 감동하고 감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성공이 오히려 그들의 삶을 박탈해간 것이다. 감동하고 감탄하는 능력은 삶을 의미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재미있게 해 준다.

하나님은 영적인 감동을 통하여 마음이 움직이는 자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또한 우리의 마음이 움직일 때에 우리의 삶이 건강하다. 우리의 삶에 참된 행복과 기쁨이 있다. 나는 우리 교회가 감동으로 지어지기를 바란다. 눈물어린 감동의 이야기들이 이곳에 많이 담겨져 있기를 바란다.
어떤 병원에 팔다리가 모두 잘리고 눈까지 먼 채 몸통만 남아 있는 문둥병자가 있었다. 그를 위로하고자 방문한 목사님은 그 문둥병자에게 은혜가 넘치는 것을 느끼고 궁금하여 물었다. “실례이지만 당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은혜가 넘치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비록 팔다리가 잘리고 눈까지 멀어 성경을 읽을 수 없지만 혀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문둥병이 들어 감각이 없는데 감사하게도 아직 혀에는 감각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비록 팔다리가 모두 잘려 움직일 수도 없고 눈까지 멀어 성경을 볼 수도 없었지만 감각이 남아있는 혀를 가지고 점자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었지만 은혜에 감동을 받은 이 환자는 이 땅에서부터 천국 생활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감동이 사라지면 바로 이곳이 지옥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친구들과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크고 작은 감동이 있을 때에 그곳은 마치 천국과도 같다.

우리의 마음이 감동되어 아름다운 성전을 짓기 바란다. 마음이 움직여 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이 감동되어 나타나는 현상은 자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는 중에 성막을 짓게 되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면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누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기쁨과 감격으로 성막이 지어졌다.

영적인 감동을 통하여 스스로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프랑스의 한 병사가 전투 중에 가슴에 유탄이 박혀서 급히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집도하던 의사가 "조금만 더 깊이 박혔으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라고 하자 병사는 이렇게 대꾸하더란다. "아니오. 내 가슴을 조금만 더 깊이 파보시면 내 심장 중심에 내 조국 프랑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요" 젊은 그가 자기 조국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득차 있기를 바란다. “내 가슴을 조금만 더 깊이 파 보세요. 내 심장 중심에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과연 우리는 이처럼 교회를 사랑하는가?

이렇게 감동으로 채워진 사람, 교회 살아으로 채워진 사람은 먼저 교회를 생각한다. 한 선교사가 뉴 헤브라이즈 군도에서 몇몇 원주민들이 돼지들을 잡는 것을 보았다. 이 원주민들은 돼지의 꼬리를 잘라내서 그것들을 쌓아 놓았다. 그 선교사가 원주민들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고기는 우리를 위한 것이고 이 꼬리들은 우리의 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영적인 감동을 받지 못한 사람의 모습이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꼭 그와 같은 어리석고 죄스러운 짓을 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자신들을 위해 먼저 취하고 혹, 남는 것이 있다면 그 찌꺼기를 하나님께 드린다.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반대로 영적인 감동을 받은 사람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먼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한다. 서기 1623년, 자유로운 신앙을 찾아 박해받던 조국을 등지고 신대륙, 미국 땅에 도착한 영국의 청교도들은 목적지에 닿아 짐을 풀자마자 제일 먼저 세운 건물이 교회였다 한다. 믿음이 없는 삶은 지옥생활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세운 건물은 학교였다. 2세들에게 참된 교육을 함으로써 바른 역사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 것이다. 세 번째 가서야 그들은 자기네들이 거처할 집을 한 채씩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을 지을 때는, 누구나 교회를 중심으로 세웠고, 앞 창문을 열면 반드시 교회가 보이도록 하였다 한다. 뿐만 아니라, 마을길을 닦을 때도 사방에서 교회로 통하도록 계획을 짰다고 한다. 그들이 바로 오늘날 미국 사람들의 조상이다.

영적인 감동을 받은 사람은 이렇게 자원하여 주의 성전을 중심하여 생각하고 주님의 성전을 먼저 생각하는 믿음의 사람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자원하는 마음이 생길 때에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일을 하셨다. 열왕기하 3:15의 말씀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다른 성경은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엘리사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손이 그 위에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의 마음이 감동되었는가? 그것은 곧 하나님의 손이 그 위에 있는 증거이다. 예배를 통하여 은혜의 감동을 느낀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손이 그 위 있는 증거이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중에 은혜의 감동을 느낀다. “하나님의 손이 그 위에 있는 증거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영적인 감동으로 지어보자. 기쁨과 감격으로 지어보자.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어보자.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손이 그 위에 있음”을 함께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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