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더불어 함께 살아갑시다 / 롬 12:10-18

  • 잡초 잡초
  • 350
  • 0

첨부 1




더불어 함께 살아갑시다
롬 12:10-18 

우리 한국민족은 ‘단일민족’입니다 하나의 말과 글을 쓰면서 하나의 얼굴과 하나의 문화를 가지고 이 비좁은 땅에서 5천년 이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큰 결점이 무엇이냐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 아주 미숙하다는 겁니다. 엊그제 우리 교우 한 가정이 이사를 하였습니다. 짐을 내려 엘리베이터에 옮기는데 그 빌라 주민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전등 깨뜨리면 변상해야 합니다” ‘한 통로에 이사와서 함께 살게 되어 환영합니다/뭐 좀 도와드릴 것 없습니까?’ 지나가는 말이라도 이렇게 한마디가 나와야 한되겠습니까?

고구려의 기상이 중국 대륙으로 뻗어 나갔을 때 우리 민족은 이러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압록강 두만강으로 국경선이 밀려나고 급기야 지금은 임진강과 휴전선으로 이 작은 한반도 마저 둘로 분단되고 나니 우리의 기상과 배포는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고 말았습니다. 미국 California주의 1/10밖에 안되는 이 남쪽땅에서 경상도 전라도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 작은 땅에서 새삼 행정도 는 왜 필요합니까? 남북이 통일되면 지금의 서울이 정확하게 국토의 중앙지점이거늘 왜 상상을 초월하는 예산을 낭비할려고 합니까?

사회가 어수선합니다. 시국이 상당히 편하지 않습니다. 소외감,박탈감,좌절감들이 뒤엉켜서 사람들이 과격해집니다.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중심을 잃고 있습니다. 여기다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위험한 상황으로 숨가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6.25동란 53주년을 맞으면서 심각한 성찰과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신자)들은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특별히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정신’을 일으켜야 합니다. 국가적으로도 그러하고 교회적으로도 긴장해야 할 때입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자를 찾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를 두루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약한 자를 노립니다. 믿음 흔들리는 자를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이제는 정말 ‘우리들끼리’ 뭉쳐야합니다.적대 분열이나 이적행위는 결코 없어야 합니다. 서로 물고 먹으면 서로 멸망하고 맙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100년전과 너무나 흡사한 역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변의 강대국들이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들의 이익을 계산하면서 우리 남.북한을 요모조모 살피고 있습니다. 일본은 재무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100년전의 4개 강대국들이 하나도 변함없이 그대로 우리 남.북한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남북은 아직도 서로를 불신합니다. 의심합니다 . 서로 국력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주전63년, 이 해는 유대인들의 역사에서 비참한 기록을 남겨야 했던 해 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을 통치하던 이스라엘 지배층은 ‘하스몬’왕가였습니다 그 왕가에서 내분이 일어나 권력투쟁에 영일(a peacaful day)이 없었습니다. 그러는사이 로마제국의 Pompey 장군이 유대지역으로 진격하여 예루살렘을 함락시켜 버렸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에 예속되고 말았습니다. 주전 63년에 로마 제국에 멸망당한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다시 회복된 것은 A.D1948.5.15이었으니 서로 물고 먹다가 초래한 예루살렘 멸망과 참담한 성전 파괴는 무려 2000년동안 계속 되었던것입니다.

I. 더불어 함께 살아갈려면 마음을 바다처럼 넓혀야합니다.

10절을 보십시요!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라고 했지요. 마음을 바다처럼 넓히지 않고서는 어떻게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형제란 참으로 다양한 신자들을 통털어서 일컫는 호칭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많을 수 있습니다. 까다롭고 때로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형제일지라도 사랑하라 합니다. 사랑할 뿐 아니라 심지어 ‘존경’까지 하라 합니다. 13~14절을 보세요!
남을 사랑하고 존경할려면 내 마음을 바다처럼 넓히지 않고서는 어떻게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형제’란 참으로 다양한 신자들을 통덜어서 일컫는 호칭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많을수 있습니다. 까다롭고 때로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형제일지라도 사랑하라 합니다. 사랑할 뿐 아니라 심지어 ‘존경’까지 하라 합니다.

13~14절을 보세요!
남을 사랑하고 존경할려면 내 마음을 바다처럼 넓히는 방법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왕상 4:29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데’는 넓고 마음이 최고의 선결과제입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저에게 바다같이 ’넓은마음‘을 주시옵소서! 마음이 넓지 못하고서는 이 나라 이 백성을 도저히 치리할 수 없나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왕에게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냥 ‘바다같이 넓은 마음’이 아닙니다. 보십시요! “바닷가의 모래같이”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셧을까요? 바닷가9해변)의 모래라면 백사장입니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상상하면 됩니다. 모래(백사장)는 벌거벗은채로 거센 파도를 막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파제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모래 방파제가 파도를 막아주므로 해안지역(육지)이 보호를 받습니다. 모래(층)는 태고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하여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낼것입니다. 사나운 파도를 온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저 해변의 모래가 고난을 참고 견뎌내므로 바다가 건재하고 육지가 건재한 것입니다.(할렐루야!) 솔로몬왕은 바로 이 바다의 모래처럼 ‘넓은 마음’을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이 마음을 가져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품고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L.A동양선교교회 하면 임동선 목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배포가 큰 목사님입니다. 공군 군목을 역임하고 도미하여 앞의 교회를 세운 분입니다. 거물급 목회자입니다 은퇴 즈음에 고백한 이야기 입니다. 좀체 울지 않는 성품이랍니다. 평생 목회하면서 4번을 울었답니다. ‘장래가 구만리 같은 젊은 공군장교들이 비행기 사로로 순직해 그들의 장례식을 치를 때마다 장대비 같은 는물을 흘렸다/미국의 인쇄소 노동자 생활 6년동안의 고생이 뼈에 사무쳐 울었다/교회를 목회하는중에 고통이 심해 울었다/’아버지의날‘에 보내온 아이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감격해 울었다’ 이렇게 울기는 했으되 워낙 바다처럼 넓은 마음의 소유자였으므로 한국을 대표하느 거복 목회자의 길을 걸을수 있었나 봅니다.

왜 ‘바다같은 마음’이라야 할까요? 우리 말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어머니처럼’(海)모든 것을 다 받아들입니다. 형제를 사랑할 뿐 아니라 존경까지 하려면 바다같이 넓은 마음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내 마음에 잘 맞는 형제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아니한 형제까지도 사랑하고 심지어 존경해야 한다니 우리의 이 ‘좁은 가슴’가지고서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저 불신자들이 우리를 폄하하는 말중에 ‘기독교인의 가슴은 새 가슴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는 가슴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작고 빈약합니다. 왜 불신자들이 우리를 이렇게 말하는지 정말 자존심이 상합니다. 불신자들은 싸웠다가도 금새 풀거나 심지어 ‘막걸리 한 잔’에 다 풀리는데 우리는 정말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6:11~13 “고린도인들이여 마음을 넓히라”고 했습니다...요4:9,27 예수님께서 사라리아 여인과 장시간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계셨지요! 더군다나 그 여인이 어떤 위인입니까?....당시의 관행으로는 일대 파격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마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여 엉거주춤 행동하고 있었습니다(요4:27)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그 파격적인 접근방식은 쉽게 이해받기 어려울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죄많은 사마리아 여인도 하나님 앞에서는 ‘더불어 함께 데리고 가야 할’ 영혼이라고 확신하셧던 것입니다. 부드럽고 화려하고 깨끗하고 성결한 사람과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뭇사람(every one)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 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벧전2:17,18)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 둡시다 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더불어 함께 살아갈려면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셨듯이 우리도 서로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출20;1, 신24:21,22)

13절을 보십시요! 생활이 곤궁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도와주고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세요! 나를 핍박하는 자가 있으면 오히려 그를 불쌍히 여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합니다. 나를 핍박해 올때 누구든지 그 사람을 향하여 복수하고 싶고, 저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그러한 사람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5절을 보세요!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마음이 서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16절을 보세요!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겸손히 처신하는 것이 서로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17절을보세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는 것이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복수하고 싶어서 복수할 수 있기 때문에 다 복수하고, 또 다 앙갚음 해 버리면 결국 아무도 살아남지를 못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