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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분노에서 자유합시다. / 눅 15: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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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누가복음 15:25-32 
제목:분노에서 자유합시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 동독에 있는 개 한 마리가 험하고 힘든 철창을 넘어 서독으로 왔더랍니다. 서독의 개가 묻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모험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느냐 먹을 것이 없어서 그랬느냐” 물으니까, 서독에서 왔던 개 하는 말, “나는 마음껏 짖을 수 있는 자유를 위하여 왔노라.” 그러더랍니다. 자유는 목숨을 걸고 쟁취할 만큼 소중하다는 말입니다.

예전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딸이 1967년 4월 21일 미국으로 망명한 사건 역시 자유를 얻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풍성하고 좋은 시설을 갖추어 놓고 편리한 곳이라도 그곳이 감옥이라면 거기에 가서 살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덜 먹고 불편해도 자유가 있는 곳에서 살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자유는 소중합니다. 우리는 자유를 원합니다.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야 합니다. 물질적인 자유라 하면 물질에 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많으면 많아서 좋고 적어도 그것에 매이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자유입니다. 경제적인 자유는 자족입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고 힘들어도 삶에 즐거움과 만족이 있다면 이것은 경제적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감옥이 되게 하는 게 무엇입니까? 정신적인 속박입니다. 일이 잘못되면 내 죄 까닭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런 죄책감으로 인하여 괴로워하다가 자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죄의 지배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죄책감에서 자유로와야 합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실 때에 사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죄의 유혹이나 지배를 받지 않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게 죄에서 자유 함입니다.
정신적인 자유 즉, 허무주의와 좌절감의 감옥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헛되고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이 지배하면 삶에 즐거움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얼마 있으면 세상을 떠날 건데 뭐 그런 생각보다는 남은 생애가 더 아름답고 귀하다. 그 시간들을 멋지게 살아가자. 의미 있게 살아가자라는 의욕을 가져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분노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화나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1. 왜 사람들이 분노하게 됩니까?

1) 실망할 때 분노합니다.

누가복음 15:11절 이하는 탕자의 비유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둘째 아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하기 위하여 큰아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온 게 너무나 기쁘고 좋았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즐겁다기보다는 아버지의 불공평한 처신에 대하여 실망하였습니다. 물론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큰아들을 이미 신임하였고 모든 것이 다 큰아들의 것인데 그러면서 좀 소홀한 것 같이 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큰 실망을 주었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교회에서 봉사하고 수고하는 이는 몰라주고 처음 나온 이들이나 별로 이름 없던 이들이 하는 일을 인정해줄 때 기존 신자들이 실망할 수 있습니다.

2) 배신당하면 분노하게 됩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자기는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아버지 재산을 늘렸습니다. 몸이 부서져 라고 노력하여 재산을 증식 시켰습니다. 그런데 많은 재산을 창기와 함께 축 내고 돌아온 동생을 위하여 많은 돈을 들여 잔치를 해준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배신감을 가지면 분노하게 됩니다.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리는 예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던지 볼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시당한 것 같이 생각되면 분노하게 됩니다. 이는 일시적인 분노가 아니라 그 감정이 오래 갑니다. 이런 감정으로 인하여 사람을 잘못 되게 만듭니다.

3) 자기 중심일 때 분노하게 됩니다.

사람이 화를 내는 데는 공적인 것도 있습니다. 사회나 단체가 잘못할 때에 내는 분노입니다. 의분이라고 말합니다. 의롭게 해보겠다고 헌신하고 희생하였는데 욕합니다. 저만 잘난 체 한다느니 있으니까 그러는 건데 없는 사람 기죽일 일이 있느냐 라는 식으로 비판합니다. 그런 때 마음에 화가 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형이 분노한 것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나온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그럴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생각하면 돌아온 아들이 너무나 고맙고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아버지의 일입니다.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분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분노하게 됩니다.

4) 기대감을 갖고 있다가 미치지 못할 때에 분노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나에게는 더 큰 것을 줄줄 알았는데 동생에게 먼저 주다니 그런 마음이 생기니까 분노한 것입니다. 가정에서 이혼한다는 부부의 말을 들어보세요.  “실망했어도” 라고 말하면서 화를 냅니다.

5)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꼈을 때 분노하게 됩니다.

내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 오직 아버지를 위하여 집안 살림을 잘하였는데 나를 이렇게 대우하다니 기막힌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한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분은 계시지 않는 지요? 17세기 신학자중 ‘페네용’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화내지 마십시오.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당신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여하간 이유가 있어서 분노한다 해도 유익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분노하게 되면,

1) 자기 자신에게 해가 됩니다.

방울뱀이 있는데 화가 나면 자기 몸을 문다고 합니다. 화를 내면 다른 사람들에게만 해를 주는 것 같지만 자기 몸을 해친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난치병이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거의 화를 갖고 있다가 생기는 병 속된 말로 화병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말하기를 분노라는 말은 ‘Anger’ 인데 위험이라는 단어 ‘Danger’ 이고 여기에서 D자 하나만 빠진 것입니다.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일산의 백화점에서 43세의 주부가 쇼핑수레를 가지러 출입문을 나서다 도난방지기의 경보음이 울려 안전요원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소지품 검사를 받던 여인은 도둑으로 몰리는 게 억울하다고 항의 하다가 화가 난 여인이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그 자리에서 숨진 것입니다. 분노하면 병적 죄책감,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열등감, 불안, 두통, 위궤양, 고혈압 등 여러 가지 증상이 일어납니다. 불치의 병인 암이라는 것도 감정에서 생기는 거라고 합니다. 마음에 섭섭하고 분노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잠을 자지 못하고 밥맛도 없어집니다. 그러는 중에 암 같은 병이 생긴답니다.

2)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줍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호의를 가지고 지내던 사이인데 단 몇 분 동안에 화를 낸 것으로 인하여 그 좋은 관계가 좋지 못한 방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분을 냈으나 상대방은 큰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어렵게 만듭니다. 분노가 계속되면 분노로 그치지 않고 미움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큰 문제를 야기 시킵니다. 분노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해를 미치는가? 에 대하여 연구한 바 화를 내며 내쉬는 숨 1시간의 분량의 독소는 무려 80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증류수가 나온다고 합니다.

부부 행복에 대하여 금기사항 중에 부부가 동시에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는 가까운 사이입니다.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그렇다고 쉽게 화를 내고 큰소리 치면 그것 이후에는 애정이 식어지고 서로가 싫어집니다. 그리고 건강에도 많은 해를 가져온답니다. 남태평양의 솔로몬 군대에서는 독특한 방법으로 벌채를 한답니다. 원주민들이 도끼로 나무를 자르는 게 아니라 나무 앞에서 저주스러운 말로 소리지르면서 벌채를 한답니다.
건강한 나무에다가 30년 동안에 계속 소리지르면 나무가 말라진다고 합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벨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형의 분노 때문입니다. 분노가 사랑하여야 할 동생을 죽였습니다. 자기 잘못을 생각하지 않고 너 때문에 나는 해를 입었다라는 생각을 하고 분노하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3) 영적으로 손해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모세를 만나보세요. 세상의 모든 권세, 명예를 다 버리고 자기 민족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뒤에 있는 백성들을 계속 원망하고 불평을 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계속 원망하고 불평하면 믿음 좋은 사람이라도 화나는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소리 들으면서 지도자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 일들이 모세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다만 백성들을 인도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하나님은 너는 그렇게 바라고 꿈꾸던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선언이 떨어졌습니다.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그가 도덕적인 죄를 범한 게 아닙니다.  분노, 죄입니다. 백성들이 목마르다라고 항의합니다. 그때 모세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백성들이 목마르다고 야단입니다. 목마르지요. 광야 길을 여행하는데 오죽 하겠습니까? 모세가 생각하여도 그들이 하는 일이 너무나 심하다고 느껴집니다. 마침 하나님께서 저들을 위해 물을 공급하여 주기 위하여 너는 지팡이를 들고 행하라 그렇게 했더니 생수가 터져 나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그 다음의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민수기 20:12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십니다. 이유는 민수기 20:8절에 있습니다. 명하면 되는데 지팡이를 들어 꽝꽝 두 번 내리쳤습니다. 이것이 이유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도 쉬지 않고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던 모세가 화가 났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지팡이를 들어 친 것입니다.

그러나 엄청난 결과가 생겼습니다. 화내는 게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분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오면 기도가 나오지 아니 합니다. 억울한 생각, 분한 마음으로 있기에 마음이 열리지 아니 합니다. 그러니 무슨 은혜를 받겠습니까? 사람이 시작을 잘하였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운동하는 것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세를 보세요. 백성들과 함께 수많은 날들을 고생하며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너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니 그의 목적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물론 백성들이 잘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도자다운 자세는 아니었습니다. 너희들이 광야 길을 가는데 참으로 어렵겠구나. 다행히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신다니 감사한 일이로구나.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패역한 무리여 우리가 물을 내랴” 분을 냈던 것입니다. 분을 냈다는 데는 이유가 분명 했습니다. 분을 내기 전에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려서는 겸손하라, 젊어서는 온화하라, 장년기에는 공정 하라, 늙어서는 신중 하라” 는 말 일리가 있습니다.


3. 어떻게 하면 분노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 같이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화를 내고 분풀이하는 것으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1)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냉정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자기는 옳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옳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자기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동생은 허랑방탕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동생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주었다는 것은 자기가 생각할 때에 옳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버지는 사랑의 아버지가 틀림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좋다고 말합니다. 같이 즐기고 있습니다. 감정의 문제를 이성으로 생각하여 보아야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왔다니 다행이다. 나는 형이니까 이해하여 주자 그래도 집이라고 찾아왔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런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자기가 표준이요, 모델이 될 때에 문제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주겠다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 자기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왜 화를 내는 건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이것이 타당한가? 생각해보면 알게 됩니다. 원인을 생각하며 절제하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절제하지 못하는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말부터 절제해야 합니다. 화난 상태에서는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후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깊이 생각하면서 자신이 치유 받아야 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분노를 쉬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속에서 불이 납니다. 그 불길이 더욱 옮겨지지 않도록 쉬게 하여야 합니다.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면 무섭습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불길이 타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이 한다고 괜찮은 가요? 병이 됩니다. 그때는 “주여 나를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하면서 분을 쉬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로 치유 받아야 합니다.

3) 고운 말씨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탕자의 형이 화가 났습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내게는 염소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29절)라고 말하였습니다.
분하여 말할 때에 우리는 심한 말을 합니다. 그러니 더 화가 납니다.   배신자 그럴 수가 있어. 그게 인간이야. 무엇 만도 못한 ○○이지  그렇게 말하면 더 화가 납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유순한 대답은 분을 쉬게 한다고 하였습니다.(잠 15:1) 대개 말 때문에 상처 받고 분노하게 됩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분노에 대하여 설교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한 여인이 찾아와 목사님 저는 가끔 성질이 급해서 쉽게 폭발하지만 뒤는 없습니다. 1분도 안되어서 다 풀어버립니다. 목사님이 그 여인의 눈을 바라보면서 정중히 말했습니다. 엽총도 그렇습니다. 뒤는 없는데 이미 그 사람은 죽어 있거든요. 상처를 싸맬 수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좋은 말, 고운 말씨를 사용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분노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아버지 저 섭섭합니다. 어느 기회에 저에게도 벗들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부부간에 맞지 아니합니다. 화났습니다. 그때 여보 나 화났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대방이 기분이 좋지 않게 보입니다. 이유는 퇴근하고 피곤한 채로 들어오는데 친절하게 해주지 않았습니다. 여보 화났어요. 그래 화났다. 왜요 그럴 수가 있어. 내가 들어오는데 친절은 그만두고 점심도 시원찮게 했는데 빨리 뭐라도 주어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말하였다면 1등 남편입니다. 그런데 야 너 뭐야 사람이 사람 같게 안보여? 그 말을 듣는 아내는 뭐라 해야 합니까? 아, 미안해요. 내가 이 일을 해놓아야 하기에 정신 팔려서 그렇게 됐어요. 반대로 오~매매 사람 치고 째째하기는 그런 것도 이해하지 못해요. 그래 가지고는 무슨 남편이요. 이 집에는 분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상대방이 분노하였을 때 자존감을 높여주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도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너와 다르다 스스로 생각하여야 합니다. 열등감을 가지면 화가 더 생깁니다. 나를 무시해 그럴 수가 있어. 그러다 보면 항상 초라한 삶을 살게 됩니다.

4) 영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내니이까” 라는 사람 가룟 유다로 부터 배신을 당하였고 죽을지언정이라고 말한 베드로에게도 버림받았습니다. 나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배신을 당하였습니까? 요즈음은 자식도 부모를 버린다는데 그렇게 크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몰라서 그러는 거야. 이해하면 오히려 이런 때에 하나님은 나를 축복하신다 라고 믿어야 합니다. 화내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복수는 다시 복수를 가져옵니다. 내가 상대방을 공격하면 시원하기는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만족하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합니다. 화가 나면 열까지 세라. 몹시 화가 나서 죽이고 싶을 정도이면 백을 세라고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신속하게 분노를 해소 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감사합니다. 나는 배신자가 되지 않는 것이 감사합니다. 사람은 나를 화나게 하였으나 주님은 나를 위로하시니 감사합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화난다. 분해서 못 살겠다가 아니라 내가 그를 사랑합니다 라고 바꾸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화를 냅니다. 분노할 때가 수없이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인간의 삶이 불행하게 됩니다.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노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바르게 처리하면 행복 즉, 해피엔드가 됩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는 게 세 가지인데 하나는 걱정하는 것, 둘째는 화내는 것, 그리고 긴장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맏형이 분노하였습니다. 우리는 분노에서 자유로와야 합니다.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살고 좋은 말씨와 행동을 같이 하여야 합니다. 같이 즐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도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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