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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의 비결 (삼상 17: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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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승리의 비결 
본문 : 사무엘상 17:45~49 

작년 월드컵 경기를 잊지 못한다. 온 백성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그 때의 짜릿한 느낌을 다시 맛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인생도 운동경기와 같다. 바울이 말씀하기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승리하여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패배하여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게 된다.

운동경기와 같은 인생을 살 때에 우리는 어떻게 승리해야 할까? 우리는 어떻게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여기에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역전승은 해도 역전패는 하지 말아야 되겠다. 처음에는 잘 안되다가 결국에 최후의 승리자는 괜찮아도,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다가 마지막에 가서 다시 기울게 되면 참으로 안타깝게 된다. 이탈리아와의 경기 때에 우리는 역전승해서 온 백성이 기뻐하였지만 역전패한 이탈리아 감독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은 침울해서 운동장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눈으로 생생하게 보았다. 역전패의 인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룟유다를 보라. 그는 예수님에게 제일 인정받는 제자이었다. 그러기에 가룟유다는 회계를 보았다. 아무에게나 살림을 맡기는가? 믿을 만하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가? 가룟유다는 다른 제자들에 비해서 더 똑똑하고, 더 믿을만한 사람이었는가 보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엄청난 죄를 지었다. 처음에는 인정받았지만 마지막이 좋지 않았다. 마치 그는 역전패를 당한 인생과도 같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라. 처음에는 대제사장에게 잡혀가고, 억울하게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온갖 수모를 다 겪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역전승의 인생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가 역전승의 사람이다. 간음하다가 붙잡혀 온 여인. 자기의 죄 값으로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 사마리아에 물을 길러 나온 여인. 남편이 다섯이나 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았던 여인, 비참한 패배자의 인생을 살았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으니 이 사람도 또한 역전승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막강한 힘을 자랑했던 공산주의를 보라. 특별히 소련의 깃발을 보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점이 많다. 바탕이 붉은 색인 것은 공산당의 지도아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건설을 지향하는 소비에트 국민의 영웅적 투쟁의 심벌이며, 낫과 망치는 집단농장 농민과 노동자계급의 빈틈없는 단결을 의미하며, 다섯 모난 붉은 별은 지구상의 오대륙에 있어 공산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한다는 사상의 상징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국가들은 망했다. 패배자가 되었다. 어느 만화에 마르크스가 소련국기 속에서 낫을 들고, 레닌이 소련국기 속에서 망치를 들고, 스탈린이 소련국기 속에 마지막 남은 별을 들고 나와 빵집 앞에 줄지어 서있는 시사만화를 본적이 있다.

공산주의는 그들이 승리할 줄 알고 온 세상을 완전히 붉게 물들일 줄 알았는데 그들은 역전패하고 말았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역전승은 괜찮아도 역전패하면 안된다. 바울이 우리에게 강력하게 말씀한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고백한다. 면류관은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 최후의 승리자에게 주는 상이다. 우리도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도 역전패의 인생을 살면 안 된다.

다윗과 골리앗을 보라. 골리앗은 키도 크고 전쟁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 힘도 세다. 머리에는 노 투구를 쓰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고 다리에는 각반을 쳤고 어깨에는 단창을 메었다. 창을 들고 방패를 들었다. 완전무장해서 조금도 틈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다윗을 보라.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서 사울의 군복을 입혔는데 맞지 않는다. 칼을 군복 위에 차보아도 맞지 않는다. 다윗이 말하기를 “익숙치 못합니다”한다. 갑옷도 입지 않고 칼도 없이 막대기 하나와 돌 몇 개를 들고 골리앗과 싸우러 나간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에는 골리앗이 이미 이긴 사람과 같고 다윗은 이미 패배한 사람과 같다. 그러나 결과는 골리앗이 무너뜨리고 다윗이 승리하였다. 골리앗은 역전패를 당하고 다윗은 역전승을 하였다. 다윗은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다.

그러면 다윗이 이긴 승리의 비결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다양한 비결이 있겠지만 다윗에게는 뚜렷한 정신력이 있었다. 내가 블레셋의 골리앗을 무너뜨려 온 땅으로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 다윗에게는 뚜렷한 영적인 이유가 있다. 뚜렷한 영적인 목적이 있었다. 누가 인생의 최후 승리자가 되는가? 뚜렷한 영적인 목적이 있는 사람이 승리자가 된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물질을 많이 모으면 승리자요 성공자가 되는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권력을 쥐고 있으면 승리자요 성공자가 되는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어느 신문에 보니까 커다란 수탉 한 마리가 거기에 나왔다. 그래서 웬 수탉을 여기다 이렇게 큰 사진으로 그려놨나 했더니 설명하기를, 다른 수탉을 다 물리치고 모든 암탉을 차지하게 된 강 한 수탉이 지붕 위에 올라가서 위풍당당하게 소리를 지른다. “이 세상은 내 것이다"라고. 그런데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독수리가 와서 채갔다고 한다.

자기 스스로 온 세상을 정복한 줄 알고 교만해 하는 순간 독수리가 와서 채갔다. 이 수탉은 최후의 승리자가 될 후 없다. 최후의 승리자는 영적인 목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다윗을 보라.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 이러한 목적 때문에 다윗이 승리자가 되었다.

좀더 폭넓게 말하자면, 최후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사울왕이 조건을 걸었다. 골리앗과 싸워서 이긴 자에게 왕의 사위가 되게하고, 세금을 면제시켜 주는 등 파격적인 조건이 있었다. 신분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다윗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마음으로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다. “골리앗, 네가 누구인데 왜 나의 하나님을 모욕하느냐? 온 땅으로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리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신분상승의 목적이 아니었다. 예쁜 사람과 결혼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이것이 곧 승리의 비결이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는 어떤 고통을 당해도 역전승의 인생을 살 수가 있다. 패배의 아픔을 경험해도 얼마든지 역전승의 인생을 살 수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자가 되라. 이러한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에 최후의 승리자가 될 줄로 믿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맹인을 만났다. 저 사람이 누구의 죄 값으로 저렇게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누구의 죄 값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 고통을 당할 때에 우리는 넘어지기 쉽다. 절망하기 쉽다.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소서. 하나님 내가 넘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내가 고통 중에 있지만 나의 아픔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사모합니다는 간절한 기도의 소망이 있을 때에 하나님은 길을 열어 주신다. 결국에는 최후의 승리자가 되게 하신다.

지미카터 대통령을 보라. 그는 대통령 시절에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집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집에 입주할 때에 성경책과 열쇠를 그들의 손에 쥐어 준다고 한다. 대통령시절에는 그는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삶을 살 때에 참다운 승리자요 성공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얼마나 멋있는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물질이 필요하다. 지식이 필요하다. 지혜가 필요하다. 건강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물질의 풍요로움, 지식의 풍요로움,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결국에는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없음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최후의 목적으로 깨닫는다면 마치 독수리에게 채어간 수탁과 같은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존 그리샴이 쓴 “유언장”이라는 재미있는 소설이 있다. 내용이 재미있다. 미국에서 돈 많기로 몇 등 안에 들어가는 악덕 기업인이 수십억 달러의 유산을 남기고 자살했다. 그 돈을 서로 많이 먹겠다고 여러 명의 전 부인들과 배 다른 망나니 자식들, 악덕 변호사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그런데 막상 유언장을 열어보니 “유산 전부를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딸에게 주라”고 되어 있었다. 이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알코올 중독, 탈세, 위증 혐의로 인생 좌절 직전인 한 변호사가 맡게 되었다.

변호사가 딸을 찾는 임무를 맡고 어렵게 수소문해보니 사생아로 태어난 이 딸은 브라질 아마존강 상류의 오지에서 선교를 하고 있었다. 주인공 변호사가 이 딸을 찾으러 아마존으로 들어간다. 풍토병에 걸릴 위기도 처하고, 빌려탄 소형 비행기가 폭풍우에 휩쓸리다 불시착하기도 한다. 고생 끝에 이 딸을 찾았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엄청난 유산이 당신에게 주어졌다고 변호사에게 이야기하자 선교지에 있던 딸은 “그 유산은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계속하다가 오지에서 뼈를 묻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모로 실패했던 변호사가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사생아로 태어난 선교사는 자기 인생의 뚜렷한 영적인 목적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변호사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은 그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서 심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변호사도 주님을 만나고 복음을 깨닫게 된다. 마음 속에 인생의 뚜렷한 영적인 목적을 갖게 된다. 역전승의 인생을 살게된 이야기 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는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역전패하지 말고, 역전승의 인생이 되어야 한다. 많이 가졌다고, 많이 배웠다고, 많은 힘을 가졌다고 우리의 영적인 생활이 게을러진다면 역전패의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 부족해도, 없어도, 약해도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가 되자. 분명히 우리는 최후의 승리자가 될 줄로 믿는다.

사랑하는 성도여! 지금 우리의 삶이 힘들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뚜렷한 영적인 목적을 갖으라. 최후의 승리자, 역전승의 인생이 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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