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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명예 / (사 55: 6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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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명예(이사야 55: 6 - 13)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어" (13절 하)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명예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를 믿는다" 혹은 "김창인이다"라고 하는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름이 곧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름과 내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곧 나요, 내 자신이 곧 그 이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명예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명예롭게 일하고 죽을 때도 명예롭게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오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내일은 또 저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심지어 자기 아들을 내어 주어 죽게 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번복하시지 않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걸고 말씀하시고, 일하시며, 명예를 걸고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의 명예'라고 제목을 정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명예, 즉 여호와는 어떤 이름을 가지고 계시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I. 말씀하시는 여호와 (6-7절 상)

① "찾으라" 말씀하시는 여호와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6절 상)

우리는 찾아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작년 1년 동안 가슴에 너무 사무쳤던 이산 가족 찾기 운동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이든 할머니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하여 여의도 광장에 가서 몇 날이나 밤을 새워 가며 지내는 그 모습을, 그리고 드디어 그리던 얼굴을 만났을 때의 장면을 눈물이 없이는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 가족을 찾는 사람도 있고, 세상 재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있으며 세상의 권세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여호와를 찾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찾을 것을 다 찾고 여호와를 찾지 못하면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성공했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차라리 이 세상 것을 갖지 못했어도 예수를 믿는 믿음, 하나님을 찾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로서는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런데 언제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까?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가 언제입니까? 성경을 통해서 보나, 기독교 역사를 보나, 고통을 당할 때 또 어려움을 당할 때가 바로 여호와를 가장 많이 찾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이 많고 권세도 있고 잘 살 때는 세상에서의 아쉬움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전도해 봐야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쉬운 것이 없을 때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병들어 죽어 갈 때나 세상에서 실패하여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때, 그때가 곧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건강할 때는 방탕하였다가 병들어 죽어 갈 때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 사업이 번창할 때보다 망했을 때에 돌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올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이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할 때이구나! 하고 기억해서 고통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은혜를 받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② "부르라"말씀하시는 여호와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6절 하)

여호와를 부르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여호와여,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가까이 계실 때가 언제입니까? 마가복음에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이 나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시고 제자들은 갈릴리 저편으로 건너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은 자기네끼리 노를 저어 갔습니다. 얼마쯤 갔을 때 바람이 거슬러 불어 풍랑을 일으켰는데, 성경은 기록하기를 노를 젓기가 힘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여 고생을 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데 지나가려는 것같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받아야 할 교훈이 무엇입니까? 인생을 살아갈 때나 가정 생활이나 믿음 생활할 때 정말 괴로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예수님께서 오시는데 마치 지나가려는 것같이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지나가려는 것입니까? 불러 주기를 바라고 붙잡아 주기를 바라고 하시는 행동입니다. 이럴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배에 오르셔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여 갈 곳까지 갔습니다. 내가 가장 괴롭다고 생각될 때, 예수를 믿기가 어려우며 하나님의 일을 하기가 어려울 때, 인생살이가 괴롭다고 느낄 때에 다 아시고 가까이 와 계시는 주님을 부르며 기도하며 축복의 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③ "돌아오라"말씀하시는 여호와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은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7절 상)

본문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하나님을 떠났던 것은 사실인데, 이 사람들은 떠난다고 말하지 않고 떠났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예수님을 떠날 때에 떠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떠나지 않고도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곧잘 나오면서 하나님은 벌써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없이 계획하고, 제멋대로 살면서도 무엇이 잘못되면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하며, 그래서 자기도 하나님을 버린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악인은 그 길을 버리라"고 할 때의 길이란, 항상 방법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즉 악인은 그 방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는 그 생각, 즉 사고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멀지 않은 서부면 감일리에서 지렁이 분양으로 5억을 사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기한 사람은 아주 젊은 여자였습니다. 지렁이를 사서 기르면 3배가 남고, 10배가 남고....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꾀어서 그들의 돈을 가로챘습니다. 쉽게 사기를 쳐서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는, 그리고 남은 다 망해도 자기만 잘 살아보겠다는 사고 방식, 그런 방법들은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다가 보면 지루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언제 성공을 하겠는가"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공의 길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악한 방법이나 불의한 사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고 방식 등을 다 정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떠나는 것은 교회로 나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 때 성공과 승리가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여호와는 나를 찾으라고 말씀하시고 나를 부르라고 말씀하시며, 내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여호와입니다.


II. 약속하시는 여호와 ( 7중 - 9절)

① 긍휼의 약속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7절 중).

우리의 주변을 정리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긍휼히 여긴다"하는 말은 우리 말 그대로 "불쌍히 여긴다" 혹은 "동정한다" 는 뜻이지만, 히브리 사람들이 쓰는 긍휼은 "나아감"이란 말로, 성경에서는 자비라는 말로 여러번 번역되어 있으며 긍휼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자비라는 말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고 부드럽게 대하여 주는 행동을 말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푸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면 아버지가 자식에게 베풀어주는 것을 자비라고 생각합니다.

한 곳에 부자 영감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영감님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반면 아우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작은 아들이 곰곰히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유산을 받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주실 유산을 미리 달라고 졸라서, 드디어 받게 되었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외국에 나가게 되니 얼마나 자유스로운지, 창기들과 함께 먹으며 친구들과 즐거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돈이 많이 있으니까 친구들도 많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한 밑천 잡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성공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유도 만끽하였지만, 이 자유는 어떤 의미에서는 방종입니다. 이 비유 속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르키고,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난 사람을 가르킵니다. 교회를 떠난 후, 성공한 다음에 다시 교회에 와서 믿음 생활을 잘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당분간 한 밑천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며 그 뒤에 오는 실패의 아픔은 갑절이나 더합니다.

돈도 다 떨어졌으며 친구도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게다가 흉년이 들었습니다. 돼지를 키우는 집에 취직을 했지만 월급은 고사하고 음식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돼지와 함께 자며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떠나 사는 사람의 말로입니다. 이럴 때,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모습으로 어떻게 아버지께 갈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거지로 있거나 도둑질이나 자살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신문을 보니까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도둑이 남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도둑이야! 하고 소리를 치니까 도둑이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이번에는 강도야! 하고 소리를 치니까 도둑이 되돌아와서 자기가 도둑이지 왜 강도냐고 하였답니다. 거지가 된 아들은 죽을 생각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들은 죽을 용기를 가지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니까 아버지는 부드럽고 너그럽게 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긍휼과 자비입니다. 돌아온 것만으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의 잘못을 탓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돌아올 때 긍휼과 자비로 대해 주실 것입니다. 과거의 실패를 생각하거나 과거의 성공에 자만하지 마십시오.


② 용서의 약속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7절 하)

널리 용서하신다는 말은 없었던 것처럼 용서하신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의 속죄관은 반드시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가 다 용서받았습니까? 아닙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만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3절, 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면 너는 용서하라." 하루에 7번이나 죄를 짓고 회개한다고 7번을 찾아옵니다. 속상해서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회개하거든 다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상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도 하나님께 나아가서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실수도 다 용서해 주십니다. 아무리 오래 전에 지은 죄라도 잊어버리십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까. 과거의 실수에 절대 좌절 마시고 새 힘을 얻으시며 동시에 과거의 성공이나 충성에 절대 자만하지 마십시오.


③ 보장의 약속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8 -9절)

한마디로 하나님은 인간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높음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우리가 땅이라면 하나님은 하늘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이 약속한 것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부도 수표가 많이 생기게 됩니다. 말로 해도 부도 수표가 나고 진짜 어음을 끊어 주었다가도 부도 수표가 나고,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됩니까? 사람은 무능해서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백퍼센트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전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모르시거나 못하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한번 말씀하신 것은 꼭 지키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믿는대로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시다는 것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본질로 말씀하시며 보장해 주는 약속을 하시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 약속을 여러분의 축복이요 영광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III. 역사하시는 여호와 (10 - 13절)

말씀만 하시거나 약속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① 형통의 역사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10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다시 돌아가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이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은혜가 됩니다. 하늘에서 비나 눈이 온 다음에 그것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일이 없습니다. 땅을 적셔 들어가면 뿌려진 씨가 움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종자가 되며 양식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그의 뜻을 이루고 모든 일에 형통하게 됩니다. 형통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가 명하여 보낸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일을 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그만큼 축복받을 일을 하는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축복엔 공짜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여 보내신 일, 나에게 주셔서 하라고 하신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단비가 되어서 내가 하는 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형통하여 우리에게 성공이 약속됩니다.


② 인도의 역사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12절 상).

즉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하러 나간다는 말입니다.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12절 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인도하여 주시는데, 산천 초목을 보십시오.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12절 하). 하나님의 알을 기쁨으로 하려고 나아가는 사람을 인도하여 주는 장면을 보고 산들과 작은 산들이 노래를 발하고 그 산에 있는 숲들이 손바닥으로 박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인도함을 받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 제 인생의 문제를 의논하고 싶어서 선배 목사님을 찾아가 보기도 하였습니다. 의논을 하면 "그래 그럼 그렇게 해보지"합니다. 또 다른 분에게 가서 의논을 하게 되면 거의 같은 말을 합니다. 절대 책임 있는 말을 안 해요. 나는 어떻게 해보자고 같이 동참하여 주기를 바라지만 절대 그런 말을 안 해 주었습니다. 정말 내 문제를 자기 문제처럼 생각하며 인도하여 줄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여 주신다고 하십니다. 석가모니가 인도하는 불교인들을 보십시오. 공자가 인도하는 유교인들을 보십시오. 우리를 이미 만세 전에 아시고 택하사, 때가 되매 불러 주셔서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 것이 산천 초목이 기뻐하며 환영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이신 줄 믿고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③ 대신의 역사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요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3절).


잣나무와 가시나무가 비교됩니까? 그런데 가시나무 대신 잣나무가 난다고 합니다. 화석류와 질려, 즉 찔레나무와 비교가 됩니까? 찔레나무를 뽑아 버리고 화석류가 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전부 좋은 것으로 심어 주고 가꾸어 주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모두가 하나님께서 형통하는, 그리고 좋은 것만 주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지내 놓고 보니까 고난이 좋은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에게 고난이 없었으면 믿음과 인생이 바로 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바로 잡아 준 것입니다. 디모데는 위장병이 얼마나 심했던지 물만 마시고 살았습니다. 건강할 때에 기도를 안하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중병을 앓다 보니까 기도를 많이 하고 은혜를 많이 받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어떤 것이 온다고 내 계산대로 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나쁜 것 대신 좋은 것을 심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나를 찾으라, 나를 부르라,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약속하시고, 보장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믿을 수 있고, 믿는 대로 받을 수 있는 약속입니다. 그런가하면 형통케 하시고, 인도하시고, 대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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