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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굴속에서 부르는 노래 (시 5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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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속에서 부르는 노래
(시 57:7-11)

이곳 뉴질랜드에 와서 받은 아주 좋은 인상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대화 중에 감사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일 하나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꼭 잊지 않고, 심지어는 가족들 간의 대화 속에서도 감사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대체로 감사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일을 아끼는 한국 문화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든지, 아니면 감사하는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있든 지 여하튼 감사란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죽하면 누군가가 “인생의 형별은 감사가 없는 것이다”라고 했겠습니까? 감사가 없는 삶과 감사가 없는 인간관계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감사’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까 ‘고마움’ 혹은 ‘고맙게 여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감사란 누군가 내게 베풀어준 은혜나 호의에 대해 고마워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사해야 할 일을 감사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하는데 감사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 어긋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란 신앙생활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감사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감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경적인 감사란 감사해야할 일에 대해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수 없는 일까지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응답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는 모두가 믿음의 관계이며, 따라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역시 우리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내 환경이나 조건이 어떠하든지 내 믿음으로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감사란 감사해야할 일에 대해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수 없는 일까지도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 그 증거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57편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다윗이 이 시를 그가 사울 왕을 피해서 굴에 숨어있을 때 지었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이후, 차츰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어가면서 그는 다윗에 대한 시기와 경계심으로 점점 불타올랐고, 마침내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사울 왕을 피하여 다윗은 아무 죄도 없이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기던 다윗은 두어 번 굴속에 숨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아둘람에 있는 굴이었고, 또 다른 한번은 엔게디에 있는 굴이었습니다. 어떤 굴이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다윗은 굴속에 숨어 있으면서 시편 57편을 지었습니다.

시편 57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1-6절까지는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확신과 호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하나님! 나를 좀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위해 모든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마치 배고픈 사자들 가운데 있는 것과 같이 위태하고 고통스러운 처지입니다. 제발 내게 당신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보여 주십시오 .”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만이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임을, 하나님만이 자신을 위해 모든 일을 이루실 수 있는 분임을 확신하고, 그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합니다. 그 다음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7-11절까지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이어집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내 마음은 확고합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송하겠습니다. 내 영혼아 깨어라. 내가 모든 민족들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당신의 위대한 사랑과 당신의 신실하심이 하늘까지 이릅니다. 당신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미치기를 원합니다.” 저는 시편 57편중에서도 특별히 7-11을 읽으면서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화려한 왕궁이나, 안전하고 편안한 침실이나, 풍성한 식탁 위에서나, 크게 승리를 거둔 전쟁터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바라보면서 이 시를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동굴 속에 숨어 있으면 이토록 위대한 언어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분을 찬양했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울 뿐입니다.

다윗이 숨어 있던 동굴을 좀 더 생각해 봅시다. 다윗이 아무 죄도 없이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가려는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서 동굴에 숨어 있을 때, 그 동굴 안에서 다윗은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무엇보다 다윗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서도 “내 영혼이 억울하다고”고 언급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이리 저리 쫓겨야 하는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또 다윗은 배신감 때문에 괴로웠을 것입니다. 자신이 충성했던 사울 왕이 오히려 충신인 자신을 향해 창을 던지고, 군사를 풀어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현실을 보면서 그가 사울 왕에 대한 깊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깊은 배신감은 깊은 분노를 동반합니다. 다윗의 마음은 분노와 증오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또 다윗은 불안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사울의 군사들은 다윗을 찾기 위해 샅샅이 뒤지고 다녔습니다. 게다가 곳곳에 밀고자들이 있어서 다윗의 거처를 밀고하고는 했습니다. 자칫 잘못 하면 사울의 군사들에게 발각되고, 그 자리에서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극도의 긴장과 불안이 다윗을 엄습해 왔고, 어쩌면 다윗은 두려움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오죽하면 다윗이 “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사자들 한가운데 누워 있어 보니, 그들의 이빨은 창끝과 같고, 화살촉과도 같고,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과도 같았습니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고백을 했겠습니까? 다윗은 많이 외로웠을 것입니다. 물론 그를 따르는 부하들이 있었고, 다윗의 가족들 역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다윗과 함께 하고 있기는 했지만 세상과 완전하게 격리되고 단절된 굴속에서 다윗은 세상 모두가 자신을 향해 등을 돌린 것처럼 외롭고 또 고독했을 것입니다.

또 다윗은 많이 지쳐 있었을 것입니다. 계속되는 도망자의 생활이 얼마나 다윗을 지치게 만들었을 지를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1절에서 “주의 날개 그늘로 피합니다”라고 언급했던 것에서 우리는 한편으로 그가 쉴만한 안식처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시편 57편은 자신을 살려달라는 간절한 구원에의 요청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이 되심을 확신하고는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환경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에서 나오는 그런 믿음의 감사, 믿음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이 시편 57편에서 가장 중요한 절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다름 아닌 7절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 내 마음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진실로, 내 마음은 확고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던 중 자신의 마음을 확고하게 정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기로 말입니다. 그렇다고 상황이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굴 밖에서는 여전히 사울왕의 군사들이 자신을 찾아다니고 있었고,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도망자의 지치고 피곤한 몸을 굴속에 숨기고 있었지만, 그래서 애타게 구원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다윗은 더 이상 불안해하거나 절망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대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분의 영광을 찬양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현실을 불안해하면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계속해서 애원만할 수도 있고, 마음먹기에 따라 불안한 현실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향한 사랑과 신실하심이 하늘까지 미치고, 그 영광을 온 세계 위에 드러내실 하나님을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곤경이나 어려움을 만나면 당연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나를 그 곤경과 어려움에서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만큼의 기간을 작정해서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금식하면서 간절하게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잘 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확실하게 정하는 것 말입니다. 때로는 내 마음을 내가 확정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먹기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내 곤경과 어려움에서 나를 구원해 달라고 애원을 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문제에 끌려 다니지 말고, 어느 순간 무조건적인 애원보다는 능히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 또 나를 위해 모든 일을 이루실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신뢰하면서 그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겠다는 마음을 내 스스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마음을 굳게 먹고 나니까 다윗의 눈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과 환경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 온 민족과 열방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 온 세계 위해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시 다윗처럼 지금 어떤 굴속에 숨어 계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억울함’이라는 굴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억울한 일을 당해서 괴롭습니까? ‘배신감’이라는 굴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누군가에게 느낀 배신감으로 증오의 불길이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습니까? ‘분노’의 굴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서 분노를 잠재우지 못하고 있습니까? ‘불안과 염려’의 굴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무엇이 여러분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절망과 두려움’의 굴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여러분의 현실이 여러분을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고 있습니까? ‘피곤과 결핍과 지침’의 굴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무엇으로부터 지치고 결핍되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립과 단절’이라는 굴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모두가 내게서 등을 돌렸다고 느끼십니까? ‘외로움과 고독’의 굴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졌다고 느끼십니까? 그 외에도 칙칙하고, 어둡고, 답답하고, 차가운 어떤 모양의 굴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어떻게 그 굴속에서 나올 수 있습니까? 시편 57편을 기억하십시오. 내 마음을 내가 확정해야 합니다. 더 이상 문제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고, 상황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미음을 정해야 합니다. 그 보다는 그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께 감사하고 찬양해야겠다고 마음을 확실하게 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만이 내 진정한 구원이 되십니다. 그 분만이 내가 부르짖을 때, 나를 위해 모든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내가 피할 수 있는 참된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다윗처럼 이렇게 말입니다. “하나님 내 마음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진실로, 내 마음은 확고합니다. 내가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내 영혼아, 깨어나라. 거문고야, 수금아, 깨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 주님, 내가 만민 가운데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뭇 나라 가운데서 노래를 불러,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주의 한결같은 그 사랑, 너무 높아서 하늘에 이르고, 주의 미쁘심, 구름에까지 닿습니다. 하나님, 하늘 높이 높임을 받으시고, 주의 영광이 온 땅 위에서 높임을 받으십시오.”
인터넷에서 감사에 관한 한 기도문을 발견해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저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배우자가 미워질 때가 있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된 보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허탈하고 허무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영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참된 교회 성도 여러분! 다윗은 굴속에서 현실을 비관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분을 찬양하기로 마음을 확정했습니다. 우리 앞에도 다윗이 숨어 있던 굴속처럼 어둡고, 차갑고, 지치고, 외롭고, 절망스러운 현실이 놓여있을 때, 흔들리는 마음을 믿음으로 꼭 붙잡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무너지는 마음을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다시 세우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내 스스로 내 마음을 확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찬양하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영원토록 신뢰할 수 있는 우리의 구원이시며, 우리의 반석이시며, 우리의 산성이시며, 우리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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