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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열매(1) (갈 5: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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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1) (갈5:16~23)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문자 그대로는 보리를 거두며 감사하는 주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자칫 잘못하면 전혀 의미 없는 주일로 보내기가 쉬운 절이기도 합니다.
도시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까지도 무감각하게 하는 것일까요?

현대의 도시 생활은 한 아파트 건물에 살면서도 서로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이웃부재, 또는 인간단절이라고 하는데 사람을 고독하게 하고, 소외감을 갖게 하고 이기주의를 생산하게 됩니다.
도시를 매우 싫어했던 사람 중에 세계를 정복했던 징기스칸이 있습니다.
그는 도시를 보면 무조건 불태우고 주민을 흩어지게 했습니다. 사람이 모여 있으면 입이 모이고, 눈이 모이고, 두피가 모이고 생각이 모여서 단합되고 그 힘으로 반항이나 반격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랄트 에거슨도 모여 살고 있는 도시인들을 가리켜서 "도시인들은 말 많은 껍데기"들이라고 악평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울산이라는 같은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예배  드리며 감사하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 앞에 간구 할 수 있으니 도시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농촌이 아닌 이 도시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열매를 추수하는 감사주일이 되어야 할까요?
16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에 보면 육체라는 말과 성령이라는 단어가 대조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육체란 타락한 인간의 본선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의 타락한 성품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이 두 가지는 항상 대립을 합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이 대립의 갈등은 매우 치열합니다.
사도바울도 롬 7장에서 "나의 행하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하노니 곧 권하는 바 선은 행치아니하고 원치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하면서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나의 이 육체 속에는 성령이 함께 내주하고 계십니다. 박세종이라는 이 자연인 속에는 육체와 성령이 썩어질 일에 대해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성령이 육체의 더러운 생각과 행동을 교훈하고 책망하며 나를 새롭게 하시려면 육체와 사사건건 대립하게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맥추감사주일에 육과 영의 싸움에서 승리하셔서 성령의 열매를 거두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한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육체"란 어떤 것일까요?
19절에서 21절까지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랑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아멘!
어떤 것들이 우리 속에 살아 있습니까?
어떤 독소들이 아직도 이 가슴속에 꿈틀거리고 있습니까?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런 육체의 가시들이 나의 삶을 장악하고 있다면 기억하세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여기 사과나무가 있습니다. 빨간게 탐스럽죠? 보이십니까?
마음이 착한 사람들은 보이실 겁니다.
여긴 능금나무가 있네요 보이시죠?
보세요!
나무 잎사귀만을 보면 이게 사관지 이게 능금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열매를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게 무엇이에요? 네 사괍니다. 그럼 이 쪽에 있는 것은 에! 맞습니다. 능금입니다. 어쨌든 열매를 보면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 우린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몇절이요?
네! 22-23절 다같이 시작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로서 제일 처음으로 맺어야 하고 추수해야할 열매는 바로 사랑입니다.
사도바울은 고전 13:13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4장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쟁이라고 하면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낳도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우리를 살리게 하시려
화목제로 보내셨도다 화목제로 보냈도다
사랑하는 자들아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서로 사랑하면 서로 사랑하면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이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는 줄 믿으시면 아멘 새 사람에게는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사랑해야 합니까?
마 5:43에서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는 미워하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의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교회 아동부 3학년에 속한 학생 중에 현수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데 문제 중에 이런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누구인가?
누구라고 적었습니까?
그 답안지에 아주 큼지막하게 뚜렷하게 박세종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맞았겠어요? 틀렸겠어요?
틀렸다고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현수가 그 문제지를 들고 선생님에게 가서 선생님! 이 문제가 왜 틀렸어요 하고 물었더니 선생님께서 얘 현수야! 이 박세종이 누구니? 하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네! 우리교회 목사님이십니다. 했더니 선생님께서 얘야! 목사님은 역사상 위대한 분이 아니시란다.
왜? 목사님이 위대하시냐? 하시더랍니다. 그랬더니 현수가
네! 우리 목사님은요 예수님을 세계적으로 가르치시고 또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시는 유명하신 분이에요 이거 맞게 해주세요.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세계선교보고를 어른들에게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아동부들에게는 더 소상하게 알려 주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보입니다. 목사님을 역사상 위대한 사람으로 보이게 됩니다. 빨간 안경을 끼면 세상이 다 빨갛고 까만 안경을 끼면 세상이 다 까맣게 보이듯이 사랑의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다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즈는 사랑의 별명은 이해라고 하였습니다.
잠 10:12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담임목사를 보실 때에도 사랑의 눈으로 보시면 내가 소망교회를 다니는 것이 행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미움으로 보시면 예배를 드리면서도 목사의 얼굴도 안 바라보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니 마음이 편할 수 있습니까?
그저 다른 사람의 허물만을 꼬집어 내고 흉이나 본다면 그건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람은 성령의 사람도 아닙니다.
누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까?
사랑하는가? 아닌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맥추감사주일에 사랑의 열매를 추수하는 소망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기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을 올바르게 하면 기쁨이 솟아납니다. 시 100편에 보면 "온 땅이여 여호와를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슬픔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슬픔은 사람을 피곤하게 합니다.
슬픔은 그저 죽고 싶은 생각만 들게 합니다.
슬픔은 이 머리가 터져 나갈 정도로 고통이 짓누르게 됩니다.
그러나 기쁨은 어떠합니까?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줍니다.
기쁨은 능력 있는 생활을 하게 합니다. 자신감을 줍니다.
기쁨으로 일하면 힘든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몸이 가볍습니다.
세상도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기쁨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의 기쁨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하게 됩니다.
맑은 날은 기쁘고 흐린 날은 침울합니다.
좋은 일에는 기쁘고 어려운 때에는 짜증이 납니다.
그리고 일시적입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인 기쁨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므로 사라지질 않습니다.
불변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환경에 따라 변질되지 않습니다.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환경에 따라 변질되지 않습니다.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빼앗을 자 없고 빼앗기지도 않는 줄 믿으시면 아멘 하십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소에 갇혀 있을 때의 일입니다.
절망적인 자리잖아요.
예수 그리스도 증거 하다가 갇혔으니 억울하기도 하잖아요. 불평이 나올만도하죠. 원망이 터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 감옥소 안에서도 기쁘게 찬송을 하였습니다.
무슨 찬송을 하였을까요?
우리 같으면 우리라면 어떤 찬송을 불렀을까요?
제 아버님이시라면 아마! 이 찬송을 부르셨을거예요.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옛말에 "소문만복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뻐서 웃음이 있는 집으로 만복이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봉사활동을 해도 기쁘고, 7/17 제헌절 공휴일에 봉사를 해도 즐겁습니다. 병들고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아봐 주어도 기쁘게 일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 힘이 어디서 옵니까?
재물에서 옵니까? 미모에서 옵니까? 학벌에서인가요?
아닙니다.
봉사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시험이나 우리를 쓰러트리려는 모든 유혹에서도 힘있게 승리하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 차야만 합니다.
빈집에 도둑이 드는 것입니다.
내 가슴속에 기쁨이 없으면 더러운 사탄이 나를 장악하게 됩니다. 기쁨이 없으니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변함 없으신 하나님의 선물, 이 기쁨이 넘치면 항상 기뻐할 수 있으니 어찌 그 속에 더러운 시험이나 유혹이 기웃거릴 수 있겠습니까?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헌금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하나 망설이시렵니까?
오늘 그 속에 사랑을 넣으십시오.
오늘 그 속에 기쁨을 담으십시오.
2003년 맥추감사주일에는 사랑을 담고 기쁨을 드리는 진정한 감사주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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