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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 / 창 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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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
본문 : 창세기 22장 11~19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창세기 22장 11~19절 말씀)

  살아있는 동안 사람에게는 늘 크고 작은 문제들이 닥칩니다. 문제를 해결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에요. 문제 해결 없이는 전진이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개인의 문제이든지, 환경적인 문제이든지, 가정적인 문제이든지, 문제를 주실 때에는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이미 준비하고 계시더라! 그뿐 아니라 보다 나은 길을 향하여 나가게 하는 대로를 열어주시더라는 거예요.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만이 다 나은 미래를 차지하게 됩니다. 문제가 너무 크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큰 문제를 통하여 큰 인물이 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한두 번은 감당하기 어려운 혹독한 절망을 겪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물질로 실패하여 궁지에 처하든지, 사고나 질병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나든지, 가정생활이나 사업에 어려움을 겪든지, 어떤 모양으로든지 패배와 절망에 부딪히게 되는데 이런 때 하나님께 두 손들고, 무릎 꿇는 자는 하나님의 참된 은혜와 축복을 맛보게 되는 거예요. 문제가 다가올 때마다 오히려 문제들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더 위대한 일을 맡기시는 성공의 기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작은 문제나 큰 문제나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의 앞날이 달라지더라는 거예요. 문제를 들고 자신이 해결해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인생도 고달픈 인생이고, 이곳 저곳 헛된 곳을 찾아다니는 인생도 힘든 인생입니다. 이사야 44:3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갈망하는 자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고, 사모하고 갈망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인생살이에 당면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고, 말씀을 듣는 중에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야말로 바로 길을 찾은 거예요. 주님 주시는 은혜는 오히려 문제를 축복의 기회로 바꾸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모든 것 물리치고 복된 자리,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78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 어제나 오늘도 언제든지 변챦고 보호해 주시네 주여 성령의 은사들을 오늘도 내리어 줍소서 성령의 뜨거운 불길로써 오늘도 충만케 합소서"

  아브라함은 신앙과 축복의 조상이 됩니다. 16-17절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에 모래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자손들과 후손들이 약속된 복을 받게 됩니다.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미 창세기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저는 이 부분이 젊은 시절에는 잘 이해가 안되었어요. 자녀를 길러 보니까 알겠더라는 것이지요. 우리 부모의 마음이 그렇잖아요? 내 자녀를 사랑하고 잘해주는 사람 보면 좋습니다. 뭔가 해주고 싶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느냐? 그에게 축복하는 사람까지도 축복하시고 그를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하실 만큼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사랑하시고, 자녀된 우리를 사랑하시되, 나에게 복을 주실 뿐 아니라 나에게 축복하는 사람까지도 축복하시고 나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하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고 아끼시더라는 것입니다. 짧은 인생 살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체험이 참 많았어요. 허물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완전해서가 아니에요. 다른 이유 없어요. 내가 주님의 구별된 자녀이기에, 내가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그 중심보시고, 믿음보시고 역사를 허락하시더라는 거예요.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 모두가 이런 사랑받는 자리,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한 평생 완전해서 축복받은 것 아닙니다. 말씀을 좇아 집을 떠나서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도 했지만 실수한 적도 있었어요. 애굽에서는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가, 큰 망신을 당했고, 늦게까지 자식이 없자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여종 하갈을 취해 이스마엘을 낳아 가정에 문제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신 거예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미 알고 계신 하나님이시지만 마지막으로 또 한번 테스트를 하시는데 백세에 기적적으로 주신 아들을 청년이 되도록 키워 놓았는데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지요. 창세기 18장을 보면 이미 사라는 경수가 끊어졌고 아브라함도 나이가 10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 말씀 하시기를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모든 가능성이 다 끓어졌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 이삭을 얻은 거예요. 백세에 아들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 더구나 그 아들을 사랑했어요. 그런데 그 아들을 바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순종하기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번제로 드리라고 했는데, 번제는 짐승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고기는 각을 뜨고, 번제단에 올려놓은 후,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이고, 내장도 씻어서 불에 태우고, 피는 번제단 주변에 뿌리는 제사입니다. 차라리 내 몸 바치는 것 같으면 자신이 결단하고 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라는 것이지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그렇게 드릴 수 있는 부모가 어디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지시하는 곳으로"(3절) 갔습니다. 그리고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올려"(9절)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10절) 했습니다. 철저한 순종의 결과가 축복과 은총입니다. 주님은 중심을 보시기에 순종할 수 없는 일까지 순종하는 그 중심 보시고, 그 믿음 보시고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이제야 알았노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더 큰 복을 주신 거예요. 불순종의 결과는 비극입니다. 그러나 순종의 결과는 은총이요 축복입니다. 나의 믿음과 순종이 자녀와 후손에게 전승되어 복을 누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어떤 습관을 갖느냐 여기에 따라 앞날이 달라집니다. 육신의 습관도 중요하고, 믿음의 습관도 참 중요해요. 어떤 성도가, 말 한필을 사서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내가 예수믿는 사람인데, 말을 길들일 때에도 신앙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가라는 말을 "할렐루야" 서라는 말을 "아멘"이라고 하기로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쏜살같이 달리고 아멘 하면 착 서도록 길을 잘 들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할렐루야" 그러면서 말을 힘껏 몰아 달려갔는데, 앞을 보니까 낭떠러지가 보이는 거예요. 놀라서 급히 멈추려고 "워워" 그랬어요. 서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말은 "워워"라는 뜻을 몰라요. 말이 안 서고 계속 달리는 거예요. 세우는 말이 생각이 안 나요. "하나님 제발 살려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이 착 서는데 낭떠러지 일보직전에 멈춘 거예요. 그래서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할렐루야" 그랬더니 말이 펄쩍 뛰어 내리더라는 거예요. 순종에는 삼요소가 있습니다. 즉각 순종하고, 철저히 순종하고,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순종의 기회를 놓쳐버릴 때가 많아요. 머뭇거리다 보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보다 자기 뜻이 앞 서고, 자기 생각이 더 분명해지기 때문이에요. 결국 안 되는 인생, 실패하는 인생 살게 됩니다. 같이합니다. "즉각 순종합시다. 철저히 순종합시다. 믿음으로 순종합시다. 아멘!" 주님의 명령은 많은 경우에 일방적이에요.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더라는 거에요. 38년이나 자리에 누워있던 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셨고, 중풍에 걸려서 한쪽 손이 마른 사람에게는 그 손을 내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흘 전에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서는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셨어요. 풍랑이 거세어 배가 파선하려 할 때에 주님은, 바람아 잔잔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들에게 물이 삼킬 듯 흐르는 요단강으로 법궤를 메고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견고한 여리고 성을 정복하려면 날마다 그냥 한바퀴씩 돌고 오기만 하라고 하셨고, 암몬 모압의 연합군이 공격해 오는데도 여호사밧에게 열을 지어 서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는 명령이 없어요. 그런데도 그 명령 앞에서 천지가 순종했고, 사람이 그 명령에 순종할 때 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지, 판단을 요구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합리적으로 이해되고, 맞아야 믿는 것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니에요. 신앙은 순종입니다. 이치에 맞게 삶을 사는 합리적인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이야기입니다. 모나미를 경영하던 사장이 경쟁이 너무 심해서 망하기 일보직전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까, 사업하는 동안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너무 많더랍니다. "그 동안 사업을 핑계로 주일 성수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앞으로 주일 성수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떼먹었습니다. 이제부터 철저히 십일조를 구별하겠습니다. 주님 앞에 새벽제단 쌓지 못했습니다. 이제 새벽제단 쌓겠습니다. 이제는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결단을 했어요. 그리고는 성경을 읽는데, 요한복음 21:1-14 말씀에 보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그물을 던졌더니 큰 고기를 153마리를 잡았다는 말씀이 나와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하나님, 제가 모나미 153이라는 볼펜을 만들겠습니다. 하나님 이 볼펜이 모든 사람의 손, 아니 전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손에 다 들려져서 50억 자루가 팔리게 해주세요" 그리고는 결단한 대로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모양은 별로 예쁘지도 않고, 특별히 매력도 없는 볼펜인데, 이 볼펜이 폭발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거에요. 30년 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데, 얼마 전에 50억 자루가 넘었다고 합니다. 비록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여도 순종하는 자가 바로 똑똑한 사람입니다. 순종이 능력입니다. 순종이 하나님의 인도와 복을 받고 역사를 체험하는 비결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축복의 지름길이고, 형통한 삶의 지름길입니다. 내 방식, 내 생각대로가 아니에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형식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의례적인 예배, 의례적인 믿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 원하십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믿음입니다. 그리할 때 인생의 행복도 기쁨도, 부요도 오는 것입니다. "God first"(먼저 하나님을),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다윗에 이어 왕으로 즉위를 했는데, 그는 나라를 다스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립니다. 이것은 정치(권력, 명예)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간증입니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천부장, 백부장, 재판관, 방백, 족장들을 소집하고, 회중들 까지 데리고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구태여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것이 그의 믿음이고 간증입니다. 하나님은 일천 번제 자체보다 일 천 번제를 드린 지극한 정성과 사랑을 감찰하시고 그 중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 중심을 기쁘게 여기신 거예요. 축복도 최고의 축복, 전무후무한 축복을 주십니다. 지혜와 지식, 부와 재물과 영화 외에도 장수의 복까지 허락하신 거예요. 그래서 솔로몬의 통치시대가 이스라엘의 황금기가 된 거예요.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에서 먼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앞세우면 손해 볼 것 같고, 뒤 질 것 같지마는 이것을 여러분의 가정에 지키면 나머지 것은 자연히 옵니다. 가정의 부모님보다 하나님을 우선 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보다, 남편보다, 아내보다도 하나님을 제일 먼저 존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앞세우는 생활을 할 때 진정한 행복이 오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순서를 바꾸는 곳에는 진정한 행복은 없어요. 사탄이 흔들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은혜의 자리인 교회에서 멀어지게 하고, 말씀과 멀어지게 하고, 기도와 멀어지게 하고, 목회자와 멀어지게 하는 거예요. 자연히 세상 재미와는 가까워지게 되는 거예요. 환경과 조건이 자꾸 그렇게 됩니다. 심방을 가도 숨고 피해요. 영혼이 병든 증거예요. 그러니 앞날이, 환경이 열릴 리가 없어요. 되는 것 같은데 안 되는 거예요. 풀릴 것 같은데 다 준비해 놓아도 안 풀리게 되어 있어요. 원리를 어기니까... 자식에게 아파트를 사 주고, 많이 가르치는 것보다 더 귀한 것 있다면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당대가 잘 될 뿐 아니라 자녀와 후손이 잘되는 이런 복된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로마서 8:31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감히 사탄이 손을 대지 못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사람, 그런 가정을 하나님께서도 귀히 여기시기 때문이에요. 우리 가정이 하나님이 귀히 여기실 수 있는 가정, 하나님의 사랑받는 가정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주신 약속을 바라보는 신앙이었습니다. 상식이나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을 앞세우지 않았어요. 아브라함의 믿음은 종들에게 한 말 가운데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먼 길을 걸어서 사흘 만에 하나님의 지시하신 모리아산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두 사환을 떼어놓으면서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돌아오리라"말이 원어로 1인칭 복수예요. 우리 말로 옮겨보면 "우리가 돌아오리라" 그런 의미더라는 거에요. 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러 가면서도 아브라함은 "우리가 돌아오리라" 아이와 함께 돌아올 것을 말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죽은 아들이 어떻게 같이 돌아온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까요? 우리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해답이 안 나오는 말인데, 히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 한지라"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씨인 것을 알았어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때 하늘의 별과 같이 그의 후손이 번성할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씨인 이삭을 번제물로 바칠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상식이나 계산으로는 안 맞는 일이지만, 아브라함 속에 주신 약속을 굳게 믿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이 있었더라는 거예요. 그저 주신 약속 굳게 붙들고 나아갔더니 뒷일은 하나님이 책임지시더라! 아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웅덩이를 파는 수고를 아무리 하여도 웅덩이가 터져 물이 다 새어 나가는데 너희들이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잘 살아 보려고 애를 쓰는 일이 헛된 일이 될 뿐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는 악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내 힘으로 살수 있다는 생각은 불신앙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내가 생각할 때 옳은 길 같아서 열심히 살아도, 불순종의 길은 결국은 죄를 짓게 되고, 나도 망하고, 자녀와 후손이 복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묵묵히 순종하는 곳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말씀에 확신을 가지고 순종할 때에 나에게서 끝나지 않아요. 나와 가정과 자녀와 후손에게까지 복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의 축복은 당장 눈앞만 보는 것이 아니에요. 자녀와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복입니다. 우리가 뿌려놓은 씨앗들이 자녀에게, 후손들에게 나타나고, 열매맺게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네 후손은 원수의 성문을 부수고 그 성을 점령하리라" 승리의 축복을 말씀하는 내용인데 바꾸어서 말하면 내 잘못 때문에 자녀나 후손들이 대적에게 해를 받거나, 대적에게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49:23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사무엘상 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해 주시는 거예요. 주님 함께 하시는 길은 사자굴이 변하여 천사굴이 되는 간증거리가 생깁니다. 다니엘이 그랬잖아요? 사자굴에 들어갔는데 천사가 그 입을 봉해버리니까 다니엘을 해치지 못했어요.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와 자녀와 후손들의 앞날에 뜻하지 않은 화나 재앙이 침범치 못할 뿐 아니라, 성문을 차지하고 사탄이 해치지 못하는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응답과 역사는 때때로 우리의 생각과 기대한 것 이상으로 나타납니다. 미국의 펜실베니아 주는 갈매기가 주를 상징하는 새인데, 그 배경을 알고 보면, 펜실베니아 지역으로 이주해 온 청교도들이 벼농사를 짓고 드디어 수확기가 되었는데, 어느 날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메뚜기 떼가 밭에 날아와서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쓸수가 없을만큼 많은 떼들이 몰려와서 도리가 없었는데, 그 때가 주일도 아닌데 교회 종을 울리고, 사람들이 다 모이자 종을 친 장로님이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합심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칠 무렵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보니 수 많은 갈매기 떼가 몰려와서 메뚜기 떼를 남김없이 잡아먹더라는 거에요. 잘 먹고는 그곳에다 배변까지 하고 떠났습니다. 청교도들은 메뚜기 걱정도 덜고, 갈메기들이 거름을 잘 해 놓고 가니까 이듬해 농사까지 풍작이었습니다. 갈매기를 통하여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그 이후로 갈매기를 펜실베니아 주를 상징하는 새로 정했다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의 방법으로,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응답하시고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순종하는 사람의 축복은 아무도 가로챌 수가 없어요.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만이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을 이루게 됩니다. 같이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의 축복은 아무도 가로챌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만이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을 이루게 됩니다" 주변 사람이 놀랄 뿐 아니라 본인도 놀랄만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이런 증거들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간증거리가 생겨나기를 축원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처음에는 미미할지 몰라요. 그러나 들은 말씀들이 우리 속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서 움직일 때 큰 열매가 나타나고 결국은 큰 역사를 일으킵니다. 역사는 들음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오늘 귀로 들었던 말씀들이 우리 가정과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생활로 그대로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축복된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환경이 어렵다고 반드시 안 좋은 것 아니에요. 요한 웨슬레 목사는 영국의 대부흥 운동에 큰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40년 동안 말을 타고 대륙을 여행했고, 매일 같이 하루 3-4시간 동안 광부들과 농부들, 그리고 영국의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정 생활은 불행했어요. 그의 아내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든지, 어떤 때는 웨슬레 목사의 머리채를 잡고 집 주위를 끌고 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웨슬레는 집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영국 전역을 설교하면서 다닌 것이 더 좋았는지도 몰라요. 하나님은 이 웨슬레를 통하여서 영국 전역을 변화십니다. 악처도 때로는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우리의 모든 환경과 여건 가운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환경이 나에게 불만스러울수록 그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 이레! 힘겨운 인생 살이 가운데에도 미리 예비하시는 주님 바라보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이제 하루 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기도하며 살리라. 찬송하며 살리라. 감사하며 살리라)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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