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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1: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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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1:15-23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기도에서 그는 에베소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지혜와 계시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 눈이 열려서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영적인 축복들에 대해서 알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기도는 비단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기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기도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한 내용은 세 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제일 먼저 바울은 에베소의 교인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달라고 했으며 마지막으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가를 알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제일 먼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가운데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날로 자라 가야만 합니다. 우리의 신앙 성장은 곧 하나님을 더 알아 가는 과정인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신앙의 성숙도는 정비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서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거기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헬라적인 개념이 아닌 히브리적 개념에서의 지식을 말합니다. 헬라적인 개념의 지식이란 쉽게 말해서 머리로만 아는 지식으로서, 이성적이고 사변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거기 반해서 성경에서 나오는 히브리적인 지식의 개념은 경험적이고 인격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히브리적 사고방식, 즉 성경적인 사고방식에서는 어떤 지식이 그 사람의 인격과 삶과 직결되지 않았다면 그런 지식은 올바른 지식으로 간주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누구를 안다고 할 때 그 안다는 말은 그저 이성적으로 파악하거나 객관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것만을 말하지를 않고, 그 앎의 대상과 인격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교제하는 것을 가리켜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도 바울의 기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을 때 그것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을 좀더 인격적으로 체험하여 알기를 바란다고 한 것입니다.

  시34편의 8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다윗은 노래하고 있습니다만,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지식이며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산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수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을 믿고는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든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속한 것들보다 세상에 속한 것들을 더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시고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체험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기도에서 항상 간구되어야 할 가장 큰 소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에서 그는 두 번째로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달라고 한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부르셨는지를 분명히 알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만, 이것을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처럼 우리를 부르신 데에는 어떤 분명한 목적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왜 부르셨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에 대해서 롬8:29에서 보면 이렇게 설명되고 있습니다.ꡒ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ꡓ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우리의 죄를 다 씻어 의롭다 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의 구원의 과정이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구원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는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은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돈을 잃고 지위를 잃더라도 예수님의 형상을 더 닮아 가면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성공한 듯 해도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가지 못하는 성도는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과 함께 우리의 마음 눈이 밝아져서 알아야 할 것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가를 아는 일입니다. 여기 나오는 기업(基業)이라는 말은 ‘상속물’ 또는 ‘유산’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후사(後嗣)라고 말하는데 이 후사라는 말은 유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 상속자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장차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스러운 유산을 상속받을 상속자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에게 주실 기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썩어 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장차 우리 성도들의 구원을 완성하실 때 이 썩어져 가는 만물도 다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다시는 썩는 것이 없고, 죽음의 공포와 질병의 두려움이 없으며, 전쟁과 피흘림이 없이 풍요로움과 평화와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가득한 새로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실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 믿는 자들에게 상속물로 주시리라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장차 기업으로 받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가 누릴 그 영광과 풍성함을 우리의 인간적인 지혜와 이성적인 능력만으로는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 눈을 밝혀 주실 때 우리는 그 영광스러운 기업의 풍성함을 체험하고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장차 누릴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거나 그것들 때문에 염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우리는 그런 영광스러운 부르심과 장래에 우리가 누릴 영광스러운 신분에 걸맞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간구함으로 더욱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성령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깨닫게 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20절 이하에서 보면 사도 바울은 그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가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귀 사건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만, 예수님을 그처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신 것이 성령의 능력으로서, 바로 그런 지극히 큰 성령의 능력이 오늘 우리 믿는 자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성도들이 바로 이런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 자각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기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자기 의지로 착하게 살아보려고 하니 신앙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눈이 밝아져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지극히 크고 강력한 능력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승리하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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