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약속은 더딘 것같아도 확실하게 실현됩니다 / 히 6:13 - 20..

  • 잡초 잡초
  • 888
  • 0

첨부 1



성 경 : 히브리서 6장 13절 - 6장 20절
제 목 : 하나님의 약속은 더딘 것같아도 확실하게 실현됩니다 

<5:11-6:20>은 영적 성숙에 대한 경책과 격려의 부분입니다. 그 중 오늘 본문은 <12절>의 격려에 대한 보충 강조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절>, 이런 의미입니다.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은 약속의 성취, 실현을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의 의미는 "게으르지 말고,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으십시오. "이 권면입니다.

영적 성숙의 방편 5번째는 게으르지 않고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서 마침내 그 약속의 실현을 경험한 사람들의 수고와 인내를 본받는 것입니다.
그 권면을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떤 특징이 있으며.. 또 믿음의 선배들의 본이 어떠함을 부연해서 설명해 주는 부분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또 우리가 본받아야할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경험하는 믿음의 선배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약속은 복의 약속입니다<14절>.

무엇보다도 첫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복의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14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습니까?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반복은 강조입니다.
확실하게 복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와 똑같은 문장이 구약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구약 창세기에 나와 있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이러한 것입니다.

<창12:1-3>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13:14-18>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같게 하리니.. <창15:1-5>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밤하늘의 별을 보아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7장>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네 이름은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고 하고 네 아내는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고 ..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라...

히브리서 기자가 돌아보건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총괄하여 기억하니."반드시 복을 주고 복을 주리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고, 아브라함에게는 복의 약속을 주고, 나에게는 뭐야?"이런 생각이 찾아올지 모르겠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만 복의 약속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렘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선한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하셨듯이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초청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뿐만이 아니라 당신에게도 확실한 복을 내려 주시기를 약속하시며 초청하십니다.
뻔한 이야기같지만, 그러나 자연인의 의식, 무의식 속에는 하나님이 무서운 하나님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두려운 하나님, 혼내는 하나님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니까 피하고 가까이 하기 싫어하고 그러지요.

또 마귀는, 뱀이 아담에게 그러했듯이, 사람에게 하나님은 좋은 분이 아니다라는 회유를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은 당신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잘 믿으면 불익을 당할 것같은 두려움은 마귀가 부추기는 것입니다.

성경의 주제를 복음(福音)이라고 요약하듯이,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복의 약속입니다.
거꾸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초청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약속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것이고 우리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 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평안과 소망을 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단은 두려움으로 우리를 몰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소망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어느 종교 단체에서 집안에 액이 끼었으니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식으로 사람을 포섭하는데, 이는 그 성격상 마귀적입니다. 이런 것은 복이 아닙니다. 저주이지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죄사함의 은혜이지 정죄하고 죄책감에 눌리게 하는 저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로마서12장 2절처럼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시라고 하면서, 왜 나는 여태 결혼도 안시켜 주고 취직도 안시켜 주고 돈도 못 벌게 하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까? 반문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인간에게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대로 다 되는 것이 복인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처럼 단순한 발상이고 인생의 깊이를 모르는 소치입니다.

부모가 되어 본 사람이라면, 아이가 원하는대로 다 해 주는 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망치게 하는 것인 줄 다 압니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다 되는 것은 복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일확천금을 바라는 소망이 그것입니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가 그랬습니다. "아무 까닭없이 천금을 얻으면, 큰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큰 화가 있으리라"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동차 산업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모델 중의 하나가 포드사의 T-200이었습니다. 이전의 마차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자동차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를 시켜서 자동차를 대중화, 보편화시킨 모델입니다.
한번은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T-200이 고장나서 길가에 세우고 고치려고 애를 쓰지만, 잘 안고쳐집니다.

마침 길을 가던 어느 신사가 제가 한번 손을 봐 드릴까요? 하자 이 자동차 주인이 이 차는 내 것인데, 당신이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반문합니다.
그러나 이 지나가던 나그네가 본넷 안을 유심히 살펴 보더니 몇 가지 부품을 손으로 만지고 "시동 걸어 보시지요?" 시동을 걸자 T-200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자동차를 이렇게 잘 아십니까?" 저는 헨리 포드라고 합니다. 이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지요.
나를 만드신 이가 나를 가장 잘 아시고 그 분만이 나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그 분의 손에 인생을 맡김이, 그 분의 지시하는 방향을 따름이 우리에게 최선의 행복입니다.

<사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의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은 광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피상적 생각으로 헤아리는 지평 너머에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다 헤아려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신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로 확실히 믿도록 당신의 성품과 명예를 걸고 맹세로 확증해 주십니다<16-18절>.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하여 두 번째로 주목할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로 확실히 믿도록 당신의 성품과 명예를 걸고 맹세로 확증해 주십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은 약속을 확실하게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될 때까지 연약한 우리로 의심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맹세하여 주십니다. 어떻게 맹세하여 주셨습니까?
대개 사람들끼리 약속할 때에, 서로 잘 믿지 못하면 어른을 찾아가서 우리가 이렇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약속의 내용을 밝히고 그 앞에서 서약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하나님보다 큰 사람이 없으므로 하나님 스스로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십니다<13절>.

그리고 <18절>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이란, 하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셨다는 것과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는 성품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명예로 보증된 약속이고 또 하나는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에 소망을 두고 나아가는 우리들이 "빚 갚을 능력 있나?"의심에 시달리지 않고 "저 말 거짓말아냐?"믿지 못해서 불안하지 않고... 안심하고 약속의 실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19절> 이 소망, 하나님의 명예와 성품이 근거가 된 약속이기에 확실하게 성취가 되는 소망이기에... 이 소망은 믿을 것없는 세상에서 잘 믿지 못하여 의심에 시달리고 염려에 휘둘리기 잘하는 우리 심령이 바람과 파도에 떠밀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닻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19절, 20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예와 성품으로 보증하여 우리에게 확실한 성취를 보장한 "복의 약속"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대제사장"에 대한 약속이었고 그 약속은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시110:4>에 구체적으로 이 약속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요는 이 약속이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되었고 예수님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은 우리 인간에게 최선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히브리서의 맥락, 예수님이 온전한 대제사장이시라는 문맥으로 돌아옵니다.
예수님의 온전한 대제사장인 것이 왜 우리 인간에게 최고의 복인가? 그것은

앞으로 예수님의 대제사장되심의 의미를 밝혀 주는 7,8,9,10장 공부하면서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맥락에서 본다면, 제사장의 역할, 제사장의 mission은 용서와 화해, 치유와 회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용서와 화해,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고자 합니다.

오늘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확실히 지키시고 또 그 약속이 실현되기까지 우리로 의심에 시달리지 않고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하나님의 명예와 성품을 걸고 맹세로 보증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민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식언한다, 말을 먹는다는 것은 "이 사람이 내가 언제 그런 말했냐?"는 식으로 오리발 내미는 것이고 후회한다는 것은 괜히 잘난 척해서 "그래 내가 해 줄게."했다가 "괜히 했다, 사실 지키기 어려운데..."이런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잘 그러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하늘의 별같이 많으리라 하신 약속,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음이 없어서 딴 아들 만들었다고 해서 취소된 것이 아니고.. 지켜 주셨지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상한 분이신지.. 아브라함의 경우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딱 한번만 주시고 말지 않습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창12장, 13장, 14장, 15장, 17장> 아브라함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마다 반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처럼 믿음이 희미해지기 잘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배려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온전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복의 약속도,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의 정도, 유무와 관계없이 죄악의 모습에 관계없이 성취하셨습니다. "내가 약속을 하긴 했다만, 니들 하는 짓을 보니 도저히 안되겠다.." 이런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약속도 우리의 어떤 모습과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성취시켜 주십니다.
내가 혹시 이런 잘못한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음이 상해서, 삐져서 안 주시는 것이 아닐까? 이런 불안한 생각에 시달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 의미의 약속, 영생의 약속 우리의 행위와 무관하게 반드시 이루십니다. 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영혼의 닻을 내리십시오.
의심과 회의에 시달리지 마시고...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됩니다.


3. 하나님의 사람들은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의 실현을 경험합니다<12-15절>.

세 번째로, 하나님의 약속에 관계해서 본문에서 세 번째로 주목해 보고자 하는 것은 약속의 성취를 경험한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명예와 성품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약속이 복의 약속이고 그리고 반드시 실현됨을, 그 소망을 붙드는 것입니다.
삶의 현실이 거꾸로 진행되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상황이 하나님의 약속과 정 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도 ..양은냄비처럼 후다닥 뜨거워졌다가 후다닥 식어지는 천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붙드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 그가 믿음의 연단을 받는 것은 이삭을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의 자식을 죽이라... 그 때에 아브라함은 결국은 하나님이 죽이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알았던 것이 아닙니다.

방법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지금 명령이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어떤 방법으로든지 죽였다가 다시 살리셔서라도 이삭을 통하여 후손이 번성케 한다는 약속을 그는 신뢰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를 죽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게 하셔서라도 약속을 성취하실 것을 그는 믿었습니다.

욥의 믿음의 고백을 아시지요?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 하나님께서 나를 죽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이니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믿음의 고백...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고백하는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풀무불에서 우리를 불에 타 죽게 하신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기에 감사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드는 고백입니다.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아도, 악인이 형통하는 것같고 안믿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으로 보일 때에도, 하나님을 잘 믿어보려고 하는 나에게 고난이 더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불평하기 잘하고 원망하기 잘합니까? 조금만 잘 되는 것같으면 해 하고 웃다고 조금만 안되는 것같으면 금방 짜증, 불평, 원망..하기 잘합니까?
조금만 감동을 받으면 선교사로 헌신했다가 조금만 힘들면 예수믿는 뿌리채 흔들리는 것, 이런 모습이 바람에 나는 겨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이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시37:5-7>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이루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여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양은냄비처럼 천박하게 흥분과 불평을 오르락 내리락 하지 말고 참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나햐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오래 참음, 인내입니다.
<12절>에서도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약속의 성취를 경험했다고 가르쳐 주고 <15절> 아브라함의 모습에서도 "오래 참아" 약속된 것을 받았다고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까지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처음 약속을 받았을 때가 75세였고 아들 이삭을 낳을 때가 100세였으니까 25년을 인내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배들을 보십시오. 노아, 모세, 요셉 등등 믿음의 사람들은 인내의 달인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노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내의 지존이라 할 수 있겠지요. 수십년을 산꼭대기에서 배 하나 짓고 있었으니까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까지 일부러 인내의 기간을 거치게 하십니다. <약1;3,4>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하려 함이라."<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우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인내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의 약속을 내리시기 위하여 먼저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복의 약속을 받을 그릇이 되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정결케 하시고 강건케 하시고. 그 준비시키시는 좋은 방편이 인내입니다.
조급하지 마십시오. 조급함은 천박한 행동입니다. 인내를 배우십시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 8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10년, 조지 반크로프가 미국의 역사를 쓰는데 26년이 걸렸고 아담 클라크는 성경 주석을 쓰는데 40년 걸렸습니다.
일은 능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내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상황이 거꾸로 되어가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드십시오.

그러나 믿음으로 오래 참음이 게으름이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믿음으로 기다림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은 아닙니다. 도리어 게으름은 믿음과 정반대입니다.<12절>
하나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마음에 조급하지 말라, 쫓기지 말라는 것이지 오락이나 하며 놀고 지내라, 무위도식(無爲徒食)하라 이런 뜻이 아닙니다.

노아를 기억해 보십시오. 300년의 기다림의 기간동안 그는 한가히 놀며 지내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하늘에서 방주가 뚝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믿음이 없었다면, 방주를 짓지 않고 놀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가 광야 40년 인내의 기간에 "내가 왕년에 왕자였는데..." 이렇게 자기 연민에 빠져서 생각했다면, 양치는 생활 못하고 아마 알콜중독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인내의 기간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술과 방탕에 자신을 방임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종살이나 할 사람이냐 생각하였다면, 자기 앞의 삶에 성실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결코 나라 총무의 소양을 준비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믿음의 인내의 연단 기간에, 작은 삶에 충실하지 못하였다면.. 그들은 믿음의 사람이 결코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마음만 높아서 내가 이런 것 할 사람이냐.. 이렇게 분을 삭히고 있었다면 결단코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노아는 300년의 인내의 기간동안 그 많은 조롱과 비난 속에서도 산꼭대기에 배를 짓고 있었고 모세는 40년의 광야 인내의 기간동안 양치는 생활에 순응하였고 요셉, 총리가 되기까지 청춘의 시간을 온갖 험한 자기 앞의 삶에 성실하였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오래 참음은 게으름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준비입니다. 의미없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내 앞에 허락한 오늘의 삶, 하루하루에 충실함으로 나의 그릇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업의 기간을 의미없이 보냅니다. 염려하느라고 아무 것도 못하고 세월만 보냅니다. 그러나 이랜드 박성수 회장님이 근육무력증으로 2년을 집 안에 누워 있을 때, TV보고 놀지 않고 2,000여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지요? 존 번연은 감옥에서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믿음의 오래참음은 게으름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준비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의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고 우리의 연약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맹세로, 반복적인 확인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 하나님이시라면, 그리고 우리 앞에 그렇게 하나님 신뢰하여 약속의 성취를 경험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음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오늘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상황이 거꾸로 진행되어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구름넘어 해를 바라보듯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여유있게 바라보며 게으르지 않고 오늘 허락하신 작은 삶에 충성을 드리며 인내하는 믿음으로 응답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