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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잘 났습니까? / 빌 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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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잘 났습니까?
본문 : 빌립보서 3장 1절-16절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업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 하나님이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그런 나도 유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 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세인이요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개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사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 (빌3장1절-9절)

바울사도는 지금 율법주의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엄청난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책들의 대부분은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독교 서적도 예외는 아닙니다.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옳으냐? 하는 문제 입니다. 삶, 죽음, 영혼, 그리움, 사랑, 이런 것들입니다. 인생을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사는 길은 없을 가요. 우리는 다들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단어도 싫어합니다. 병원, 호텔, 이런데도 4자를 다 싫어합니다. 한문에 죽을(死)사자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삶에 대한 욕심이 많습니다. 죽음을 멀리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잠언7장4절).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잠언7장4절).

이것은 사람은 사람이 가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죽음이 있습니다. 저 멀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죽음의 시간이 다릅니다. 순서는 뒤 바뀔 수 있습니다. 모양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도 다 가야 합니다. 성경은 죽음을 통한 지혜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바울인들 별수 있습니까. 그도 삶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잘 난 삶을 다 포기했습니다. 그는 자기 보다 더 잘 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위해 다 버렸습니다. 이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는 종말로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는 마지막으로 라는 말이 아닙니다. 끝으로 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덧붙여서 라는 말입니다. 그는 몇 가지 삼가라 합니다.

1,행악 자를 삼가라 합니다. 악한 일꾼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기보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2,손할례당을 삼가라 합니다. 할례의 참 뜻을 무시하고 즉 영적 뜻을 생각지 않고 다만 육체의 살을 베는 것만을 강조하는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진정한 할례당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할례당이라는 것입니다. 그도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정말 잘 난 사람입니다. 그는 바리세인입니다. 왕족입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세상적인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그는 정말 잘난 할례당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A, 하나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봉사는 노예의 신분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표시하는 낱말입니다. (롬9장4절) 신자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이 잘 난 사람입니다. 손 할례당은 예배가 형식적입니다. 그저 참석하는 정도입니다. 한 번 왔다 가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할례당은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앉는 자세가 다릅니다. 기도하는 모습이 다릅니다. 걸음걸이가 다릅니다. 헌금하는 모습도 다릅니다. 이런 삶을 우리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라 할 수 있습니다.

B,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랑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생각했습니다(눅18장12절).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자랑합니다. 예수님 없으면 우리는 못 삽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체를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마3장9절) 하나님과의 언약의 표시로 받은 할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리스도를ㄹ 믿음으로 얻게 되는 참 의미로서의 할례의 뜻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외적인 자랑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할례의 진정한 의미를 변질 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입니다. 그러니 늘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삽니다.

저는 얼마 전 깜짝 놀란 기사를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가수 조용필 씨가 잠실 스타디움에서 가수데뷔 35년 기념 공연을 한답니다. 무대 길이만110미터, 스피커260개, ENG 카메라만 70개, 공연에 투입되는 스태프만 3,000명이랍니다. 정말 나는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여기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모여 듭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에서 만일 이런 행사를 한다면 낭비라 할 것입니다. 한번 행사에 이런 엄청난 돈과 장비를 동원 하는 것을 보고 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웬만한 일에도 돈 때문에 행사를 주저 할 때가 많습니다. 한 생명이 온 천하 보다 더 귀하다는 말은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1부 예배에 오시는 그 많은 사람을 귀찮게 여기시면 안 됩니다, 그 사람들에게 돈 2,000원을 드린다고 우리 교회가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우리 교회에서 그 사람들에 대해서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분들은 우리 교회에 자랑입니다.

저는 이 일을 자랑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이 돈으로 개척교회를 지원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가 있지 않느냐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어쩝니까. 이들 중에는 노숙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돈 2,000원만 받기 위해 오시는 분만은 절대로 아닙니다. 말씀 듣고 은혜 받기 위해 오시는 분이 많습니다. 지난 번 맥추 감사 주일에 어느 반에는 한 사람 빠짐없이 다 감사헌금을 하였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는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그럼 다시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누가 잘 난 사람입니까? 세상 적으로는 부작 잘 난 사람입니다. 공부 많이 한 대학교수가 잘 난 사람입니다. 의사 변호사가 잘 난 사람입니다. 외적으로 키 크고 인물 잘 난 사람입니다. 돈 잘 버는 인기 직종에 있는 사람이 잘 난 사람입니다. 가수, 탤런트, 운동선수 같은 사람이 잘 난 사람입니다. 남다른 재주를 가진 사람이 잘 난 사람입니다. 그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그러나 분명 그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보다 더 잘 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 보다 더 멋있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리빙스턴이나 손양원 목사님 같으신 분은 그 보다 못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여기 하나님이 보실 때는 더 잘 난 사람입니다. 여기 정말 잘 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울 사도입니다. 스스로를 약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민족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어느 구석 남보다 뒤 진 구석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잘 난 사람이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정말 잘 난 사람은 바울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남을 위해 산 사람입니다. 자기를 버린 사람입니다. 철저히 자기를 낮춘 사람입니다. 사회에 내 놓으면 누구나 그 앞에 굽실 굽실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정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산 사람입니다. 화려한 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쓰레기와 같이 버린 사람입니다. 아무런 미련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위해한 사람입니다. 바울의 일생이 이랬습니다. 정말 훌륭하지요. 그를 위해 비석하나 세워준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을 자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를 위대한 사도라 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일생은 전혀 세상이 흔들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늘 자랑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기기 힘든 셋이 있습니다. 첫째가 돈입니다. 둘째가 이성문제입니다. 셋째가 이름 문제 곧 명예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이라면 우리는 바울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답니다. 그런데 바울을 보세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요즈음 우리 교단에서도 총회 임원을 제비뽑기로 했습니다. 저는 아주 잘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을 때는 선거에 부정이 많았습니다. 한때 다른 교단에서는 10당 8락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10억을 쓰면 당선되고 8억을 쓰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와 같진 않지만 우리교단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최선의 방법은 제비뽑기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도 출마 한 사람이 많습니다.

맺는 말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바울은 정말 위대한 바리세인입니다. 로마의 시민권자입니다. 그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 적으로는 정말 자랑 할 것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 좋은 것들을 다 버렸습니다. 쓰레기처럼 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미련 없이 버린 것입니다. 그는 그래도 거기에 대해 늘 부족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잘 난 사람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낮아져야 합니다,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하나님은 늘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바울처럼 사는 사람을 늘 아기십니다. 정말 잘 난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한 바울의 인격을 본 받아 늘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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