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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발 씻기심의 교훈 / 요 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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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발 씻기심의 교훈
본문 : 요 13:1-17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생애중 마지막 만찬석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녁식사
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내용입니다. 물론 팔레스타인지방은 날씨가 건조해서 거리에
먼지가 많았고, 게다가 대개의 사람들은 샌들을 신었기 때문에 발을 씻지 아니할 수가 없었
습니다. 그러나 발 씻기신 내용에는 보다 더 신비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까? 조금 전 제자들간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요, 또 본문 2절
말씀을 보면 마귀가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
문입니다. 왜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습니까? 마귀가 유다 마음가운데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
을 불어넣었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의 마음이 이처럼 지저분해졌습니까? 마귀가 그 마음
에 지저분한 생각을 불어넣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선량한 사람들
의 마음속에 이러한 생각들을 불어넣는 일이 마귀의 일입니다. 어떤 지저분한 생각들입니
까? 다투는 생각입니다. 마귀의 조종을 받다가 보면 한 이불 덮고 사는 부부간에도 다툼이
생깁니다. 한 피 받은 형제끼리도 칼부림 나게 하고 한 교회에 다니는 성도끼리도 서로 다
툽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조금 전에도 제자들이 어찌했습니까?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눅 22:24) 했습니다. 세상이 무엇입니까? 자기
발만 내미는 세상입니다. 왜 내 발을 씻기지 않느냐고 불평하고 짜증내고 고발하고 끌어 앉
히는 세상입니다. ♬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랭함을 아느냐 ♬ 왜 다툽니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데 어떻게 형제의 더러운 발을 씻길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바울이 권면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빌
2:2) 품으라 했습니다. 또 마귀가 어떤 생각을 불어넣습니까? 거짓된 생각입니다. 세상은
마귀가 득세하면 거짓투성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존경받는 사람도 거짓말을 잘하게 됩
니다. 교회 안에서도 장로도 목사도 거짓말을 밥먹듯 할 때가 있습니다. 남편도 거짓말하고
아내도 거짓말합니다. 거짓말이 너무 난무합니다. 왜 거짓이 판을 칩니까? 왜 거짓이 개선
가를 부릅니까? ♬ 믿음이 이기네 ♬ 찬송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마귀를 이기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또 마귀가 어떤 생각을 넣습니까? 교만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주
장하는 그룹의 인생들은 저마다 묘하게 교만을 부립니다. 교만을 질책하면서 교만합니다.
나는 교만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교만합니다. 서로가 저 잘난 맛으로 살고 서로가 높아지려
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까지도 자리다툼했습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
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7). 청탁을 하기도 했습
니다. 그 때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우리 성도들 중에는 사장이 있고 과장이 있고 돈 많은 사람이 있고 권세가 대단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교만해질 수 있고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존경받는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겸손의 자리입니다. 어떻게 겸손해질 수 있습니까? 바울
이 답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예수님
의 마음을 품으면 교만한 마음이 달라지고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
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까? 믿음밖에는 없습니다.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참
아도 못합니다. ♬ 믿으면 하겠네 ♬ 이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식사 중에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는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
을 담아 무릎을 꿇고 앉아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때 저도 있었
더라면 예수님이 씻어주셨을 것입니다. 여기 발 씻기심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첫째 먼저 자기의 발을 씻으라

말을 바꾸면 날마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
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9). 어떤 목사님께서 이 말씀을 본문 삼고 날마다 발을 씻으십니
까? 라는 주제로 설교했는데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배드릴 때마다
내 죄를 어찌할꼬 참회하는 기도를 해야 하고 또 날마다 자기의 더러운 발을 씻어야 합니
다. 지금 나의 죄를 씻어주옵소서 이것이 무엇입니까? 성도의 경건한 삶이요, 거룩한 작업
이요, 성업입니다. 예수님은 12제자중 한 사람도 빼지 아니하고 모두의 발을 씻겨주셨습니
다. 우리 모두는 한 사람 빠지지 아니하고 자기의 더러운 발을 씻어야 합니다. 발을 씻어야
잠자리가 편하지 않습니까? 발을 씻어야 교회 앞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먼저 내 눈 속에 들보를 빼야 하고 먼저 내 안을 깨끗케 해야 합니다. 9절에 보면 베드로가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했습니다. 그때 주의 말씀이 무엇입니
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10). 여기 목욕과 발씻는 것 무엇입니까? 목욕하는 것은 신학적 용어로 속
죄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고 죄씻음 받아 의인됐다는 말입니다. 또 발 씻음이 무
엇입니까? 회개를 뜻합니다. 성도는 죄씻음받은 의인들입니다. 그러나 발이 계속 더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내 속에 있는 옛사람 곧 죄성은 날마다 죄를 범합니다. 순간마다 죄를
범합니다. 때문에 날마다 발을 씻듯이 날마다 회개해야 하고 순간마다 내 죄를 어찌할꼬 회
개해야하는 것이 성도들입니다. 여기 목욕은 원죄를 씻는 일이요, 발 씻음은 자범죄를 씻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곁에 발씻을 물동이를 놓고 계십니다. 발씻을 대야를 놓고
계십니다. 발씻을 수건을 놓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먼저 자기의 발을 씻으라는 것이니
다. 또 예수님은 "다는 아니니라" 하셨는데 누구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 가룟유다입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차라리 나지 아니했더라면 좋을 뻔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데 12제자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장본인이 가룟유다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물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베드로인가? 야고보인가? 혹시는 가룟유다인가? 물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어찌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차례차례 발을 씻기시는 데에 자기 차례
가 되었을 때에 "주님 내 발은 절대로 씻기실 수가 없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의 말씀이 무
엇입니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여기 상관이 없다는 말
이 무엇입니까? 나와 교제할 수가 없다는 뜻이요, 나와 동행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 예
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십자가에 죽으사 그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기 위해서입니
다. ♬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 그러나 우리의 발을 보십시오. 어제 씻었
건만 또 오늘 저녁에 씻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날마다 죄를 범한다는 말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말입니다. 날마다 말로, 행실로 죄를 범한다는 말입니다. 그
래서 바울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발 씻는 성도, 날마다 죽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

말을 바꾸면 서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새성전 입당을 앞두고 우리 모두에게 주신 주님
의 교훈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14). 예수님은 여기에서 봉사의 세 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평등한 입장에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서로라는 단어는 수평적인 입장에서라는 말입
니다. 성도는 서로의 높낮이가 없습니다. 너는 낮고, 나는 높고 아닙니다. 더 잘난 사람 없
고, 더 못난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고개를 번쩍 들수 없
는 죄인이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또 하나 마음을 비우고 봉사하라입니다. 발
을 씻기려면 먼저 허리를 굽혀야 하지 않습니까? 또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습니까? 대학시
절에 인천 송도에서 가졌던 수련회에 동참했습니다. 그때에 정규오 목사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저인데 우리교회의 집사님이셨다가 목사가 되신 고 곽영수 목사님이 계십니다. 세족
식을 하는 시간인데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인데 서로 마주보고 발을 씻겨주는데 마침 그 목
사님과 짝이 되어 제가 목사님의 발을 열심히 씻겨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또 한참 후에 교제
를 하는데 목사님께서 내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때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
는지 모릅니다. 주님 나 같은 죄인입니다. 주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발을 씻기고 씻는 순간
에 주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자기를 버리고 봉사하라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매사에 자기자기합니다. 마음들마다 이기심으로 꽉 차있습니다. 우리는 사랑
을 말합니다. 사랑을 찬송합니다. 그런데 사랑이 무엇입니까? 이기심 없는 텅빈 마음이 아
닙니까? 심리학자 엘리 크론은 이기주의자는 다른 사람의 필요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
의 필요에만 관심이 있다 했습니다. 그리고 왜 그럴까? 덧붙이고 그는 답했습니다. 이기주
의자는 자기 외에는 누구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자기밖에 모른다는 뜻입니다.
자기밖에 모른 사람은 남의 인격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섬김을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 7:12)을 실천해야 합니다. 율법가운데 강령입니다. 남을 섬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합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춰야 합니다. 주님의 행하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왜 남을 섬겨야 합니까?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7)이 답합니
다. 어떤 복입니까? 첫째는 주님이 가까이 하시는 복입니다. 예수님은 발이 더러운 사람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발을 씻고 서로의 발을 씻기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둘째는 모
든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복입니다. 하나님은 발이 깨끗한 자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셋째는 마
음의 기쁨이 생겨나는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기쁨을 잃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
의 발을 씻기는 경건을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겪었던 일입니다. 차를 타고 가다
가 겨우 주유소에 파킹하고 땀을 식히고 있는데 한 미국인이 목마르냐 물었습니다. 그렇다
고 했더니 콜라를 한 병 주었습니다.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차가 목마르다고 했습니다. 그
랬더니 여기 기름이 있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대담하게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5불을 내게 주어서 기름을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무이자로 준 것도 아니고 공짜
로 주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람의 얼굴 한 번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적 많습니다. 또 한번
친구 목사님 차를 타고 먼길 가다가 유턴을 하다 진흙탕에 바퀴가 빠졌습니다. 몸부림하고
있는데 가는 차자 멎더니 미국 사람 한 사람이 다가와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물었습니다.
형편을 살펴보더니 자기 차에서 담요를 꺼내와서 흙탕에 깔고 이제 시동을 걸어보자고 했습
니다. 그래서 차자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도 고맙고 미안해서 담요 값을 지불하고
싶다고 했더니 고개를 저으며 그냥 손을 흔들면서 안녕히 가세요 했습니다. 그 매너가 얼마
나 깨끗합니까? 그 애정이 얼마나 따뜻합니까? 제 마음가운데에 이 친구에게 복이 있을지어
다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일을 많이 하면서 복받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셋째 주님의 발을 씻겨드리라

말을 바꾸면 주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5). 여기에서 나는 누구며, 너희는 누구입니까? 나는 선생 예수님이
시오, 너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러니 주종관계입니다. 원칙대로라면 종이 주인의
발을 씻겨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인이 종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원칙을 깨뜨린 기독교
정신이요, 성도들 모두가 보여야 될 믿음생활의 모습입니다. ♬ 나 이제 주님의 새생명 얻
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사람이로다 ♬ 성도는 새사람이 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방법도 새 방법이 되야 되지 않겠습니까? 성경의 방법, 예수님의 방법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행한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보기요, 실천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을 뜻합니다. 기독교가 무엇입니까? 행함의 종교요,
실천의 종교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모두가 자문자
답해야 합니다. 나는 얼마나 행하고 있는가? 신학자 또르는 본문을 주석하면서 예수님은 제
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그들의 믿음을 씻기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섬기려면 이끼낀 나의
믿음을 씻어야 하고 무디어진 나의 믿음을 기경해야 합니다. 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
어주셨습니까? 본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너희로 하여금 이렇게 하기
를 원해서이다. 제자는 선생이 하는대로 본받아야 합니다. 선생이 제자의 발을 씻겼으니까
응당 제자는 선생의 발을 씻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눈 씻고 바도 예수님의 발을 씻
겨준 제자가 없었습니다. 물론 주여 주여 입술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입술의 종교
가 아닙니다. 행함의 종교요, 실천의 종교입니다. 장로님들이 봉사를 안 한다고 소문이 난
교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 마음이 아파서 안되겠다, 제자 훈련을 해야겠다고 계곡을 찾아
산상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의해서 서로의 발을 씻는 세족식을 했는데 서
로가 눈물을 흘리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장로님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높아졌다, 이제 낮아지자 그리고는 교회 화장실 청소는 우리가 맡자 결의까지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교회가 놀랍도록 부흥했다는 미담입니다. 도토리 키재기란 말이 있습
니다. 도토리 키가 더 크면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괴테의 말입니다. 종교인가운데 교만한
자 많고 위선자가 많다고 뜻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도중에 목이 뻣뻣한 자 있습니까?
권세가 많아 권세를 자랑하고, 학력이 많아 학력을 자랑하는 성도 있습니까? 돈이 많고, 인
물이 좋고, 그렇다면 얼마나 돈이 많으며, 인물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더러는 내 믿음이 제
일이야 믿음 자랑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그러나 그 믿음이 주님 앞에서 얼마나 대단한 믿음
입니까? 우리 모두는 예수님 안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
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교만하지 마십시다. 백번을 변하십시다. 나의 재물보다 주님
을 더욱 섬기십시다. 성자 프란시스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길거리에서 문둥병자를 만났습
니다. 너무 불쌍해서 두 팔을 벌려 가슴에 끌어안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 순간 그
문둥병자가 예수님 모습으로 변했다는 신화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초라한 사람, 비루한 사람을 껴안고 발을 씻겨 줄 때에 그가 예수님 모습으로 변한다
면 누가 발을 씻겨 주지 않겠습니까? 나요! 나요! 서로 자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
합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작은 소자들이 있습니까? 헐벗고 굶주리고 매맞고 정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
까? 성도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요 예수님 때문에 살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자들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고 사
랑을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
하여 주님을 잘 섬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내가 목마르다 하시면 나의 물 컵을 드리
고 주님이 내게 이삭이 필요하다 하시면 나의 이삭을 드릴 수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
랑하는 성도여! 우리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지금도 나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믿으
십니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지금도 사랑하십
니다. 믿으십니까?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남은 생애가 승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물은 담은 대야 앞에 세 종류의 인생
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 사람을 향해서 자기의 발을 씻겨 달라고 발을 내미는 인생입니다.
이는 섬김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고 남을 지배하고 남을 자기의 눈 아래에 둔 사람입니다.
그러니깐 남을 깔보는 인생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자기 발을 씻을 뿐만 아니라 남의 발
도 열심히 씻어 주는 인생입니다. 이는 겸손한 사람이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요, 또 봉사
자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 발도 씻지 아니하고 남의 발도 씻어 주지 않는 인생입니다. 이는
무정한 사람이요 믿음이 죽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자신을 향해 물어보십시다. 나
는 누구인가? 두 번째 인생 곧 자기 발을 씻고 남의 발도 씻겨 주는 그리고 주님을 잘 섬기
는 성도되어 복 받을 수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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