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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눈에 든 사람 / 대하 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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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눈에 든 사람(역대하 34:1-7) 

이스라엘 왕들 가운데 가장 걸출한 인물을 꼽으라면 우리는 선뜻 다윗왕을 들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제2의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오면 대답이 그리 수월치가 않습니다. 초대왕 사울을 꼽자니 그 불행했던 말년이 그렇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꼽자니 왕국 분열의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이라 마땅치가 않습니다. 무소부재한 권력의 정점에 오른 왕으로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꼽는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정치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혹여 그 시작은 좋았을지라도 마무리가 안좋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대왕들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가 않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평가가 약 80%에 이르고 있고 "여호와 보시기에 선을 행했다"든지 또는 "정직히 행했다" 평가는 지극히 적습니다. 나답, 바아사, 시므리, 오므리, 아합, 아하시아, 여호람, 므낫세, 아몬,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등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는 평가를 듣는 왕들입니다. 그나마 선정을 베풀었던 왕들을 꼽는다면 첫째로 아사왕을 들 수 있습니다. 역대하 14:2절 이하에 보면 그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과 주상과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들에게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며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아사왕도 예언자의 말이 자기 비위에 거슬린다 하여 그에게 화를 내고 옥에 가두었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심한 중병에 걸려 죽고 맙니다. 그는 병들어 죽을 때까지 의원만을 찾았지 하나님을 찾질 않았다고 역사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아사왕의 아들인 여호사밧도 괜찮은 왕이었습니다. 왕상 22:43절에 보면 "여호사밧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산당을 폐하지 아니하여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했다"고 했습니다. 장점도 있었지만 단점도 있었습니다. 이런 한계를 가진 왕들이 꽤 있습니다. 왕하12:2절에 보면 요아스왕도 그런 왕이었습니다. 그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만 역시 산당을 제하지 아니함으로 백성들로 하여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게 합니다. 또 왕하 14:3절에도 보면 아마샤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처럼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는 않았다고 했고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다 행했지만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여 백성으로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아마샤도 말년에 제사장에게 노를 발했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문둥병자가 되고 맙니다. 요담이라는 왕도 그러했습니다. 그도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으나 그는 여호와의 전엘 들어가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므로 백성들로 산당에서 제사하게 하며 사악을 행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왕들보다 더 뛰어난 왕의 반열에 히스기야가 있습니다. 왕하 18:3절에 보면 "히스기야왕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이스라엘 자손이 우상화하여 섬기던 모세의 놋뱀을 부숴버렸다"고 했습니다. 사가는 히스기야에 대해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이런 자가 없었다"면서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다 지켰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말년에 경솔한 행동의 실수로 끝이 좋지 못한 결과를 맞고 맙니다.

자 그럼 성군이라 일컫는 다윗의 뒤를 이을만한 이스라엘의 왕은 누굴까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긍정적 평가가 따르는 왕이 바로 요시아왕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의 행적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만은 왕하 22:2절에도 보면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했다" 하고 23:19절에는 "요시아가 여호와의 노를 격발한 산당들을 다 제하고 벧엘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선지 이후로 흐지부지되었던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거창하게 지킨" 자도 요시아요 "유다 땅에서 신접한 자, 박수 그리고 우상의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하고 오직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한 자"도 요시아라고 증거하고 했습니다.

이런 요시아 왕에 대한 평가는 왕하 23:25절에는 절정에 달합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아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이런 평가는 이스라엘의 그 어느 왕에게도 붙여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윗에게도 이런 평판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삼하11:27절에 보면 다윗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야의 아내를 취한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왕상 15:5절에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요시아는 왕위에 있은 지 18년 동안 그 땅과 전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증한 모든 것들을 그 땅에서 다 제해 버리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복종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요시아는 다윗의 뒤를 잇는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인정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살펴본대로 이스라엘 왕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한 왕들입니다. 이들이 왕이었던 시절은 왕도 백성도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습니다. 둘째는 시작은 좋았지만 나중이 안좋거나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던 왕들입니다. 처음엔 정직하고 겸손했는데 끝까지 그러지가 못했습니다. 교만하게 되고 게으르게 되고 나태하게 됩니다. 그리고 셋째는 시종여일 '정직하고 선한 왕들'입니다. 첫째 부류에는 아합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왕들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차라리 왕이 안되었더면 좋았을 인물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에는 아사나 아마샤 등이 해당됩니다. 시작은 좋았으나 끝이 좋지 않았던 안타까운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류는 다윗이나 요시아 같은 왕을 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도 이 세 부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셋 중에 여러분은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되십니까?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의 판단 기준입니다. 누가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고 또 그 판단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악한 왕들 중에는 정치, 외교, 군사, 경제면에서 매우 뛰어난 업적을 세운 왕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좋은 왕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준이 "여호와 보시기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어떠했는가?' 이게 기준입니다. 즉 하나님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백성들이 좋다고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아니면 아닌 것이고 아무리 백성들이 싫다고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면 좋은 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공동의회를 앞두고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쓰십니다.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도 쓰시고 힘있고 강한 사람도 쓰시지만, 또 미련한 자를 택하여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도 하시고 가난한 자를 들어 가진 자들을 부끄럽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모세나 다니엘, 바울 등은 많이 배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베드로를 비롯한 야고보와 요한은 고기잡는 것 밖에 모르던 어부였습니다. 늘 약자와 가난한 자들에게 각별하셨던 주님이셨지만 삭개오 같은 부자도 마다하지 않으셨고 아리마대 요셉에게도 헌신의 삶을 살 기회를 주셨습니다. 빌레몬도 쓰셨지만 그의 종 오네시모도 쓰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분, 모든 지위,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다 쓰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다 쓰신다는 이 말이 아무나 막 쓰신다는 말은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틀림없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게 무언가 하니 정직과 충성입니다. 이게 바로 부르심의 기준입니다. 즉 하나님의 눈은 정직히 행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모두 쓰임받는 게 아니고, 사람마다 모두 주님께 영광을 입는 것도 아니며, 물건마다 귀하게 쓰임 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은 가치와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치 없이 사는 사람이 있고, 값비싼 것임에도 의미 없이 쓰이는 물건이 있습니다. 반면에 가진 것은 미약하나 가치 있게 사는 사람이 있고 값어치는 떨어져도 의미 있게 쓰이는 물건도 있습니다. 벳세다 언덕에 5천여명이 모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 200 데나리온의 식량이 필요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장정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하루 5만원 잡는다면 약 천만원 정도 가 필요했습니다. 2천원 정도 하는 제일 싼 음식 한 그릇씩 먹는다 했을 때의 금액입니다. 그런데 턱없이 부족한 것이긴 했지만 한 아이가 자기의 가진 것을 드렸을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드린 아이가 있었고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주님께 바쳐진 봉헌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루살렘 주변에 수많은 나귀와 나귀 주인이 있었지만 주님이 입성하실 때 쓰임 받은 나귀는 하나였습니다. 세상에 향내나는 수많은 향유가 있지만 예수님께 드려져 그분의 죽으심을 예비하는 뜻깊은 향유는 하나였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재능있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것을 가졌어도 하나님께 전혀 쓰임 받지 못하고 의미 없이 살다가는 인생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볼 때 별로 신통치도 않고, 재능도 없어 보이고, 가진 것이 없는 듯해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 또한 부지기수입니다.

물론 쓰임 받는다는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사울도 왕이요 다윗도 왕이요 아합도 왕이었지만 다 같은 왕은 아니었습니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여러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대통령이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떠한 대통령이 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 종이 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남다른 자격이 있어 목사되고 장로된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칭찬 받는 자로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겁니다. 비록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순간부터 더욱 겸손히 충성되게 그 직분을 감당해 내갈 때에 은총을 입는 겁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요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가 여덟살이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입니다. 그런데 왕이 되었습니다. 말도 안됩니다. 여덟살 짜리가 어떻게 제대로 왕노릇할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섭정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요시야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는 겁니다. 여기 정직히 행했다는 말은 올바르게 살았다는 말이고 성실하고 충성되게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랬을 때에 그는 여덟살의 어리디 어린 왕이었지만 자기 아버지였던 아몬보다도, 할아버지였던 므낫세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요시아는 사람이 보기에는 어린 왕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 어떤 왕보다도 당신 마음에 들었던 멋진 왕이었고 그랬기에 하나님은 그를 들어 귀하게 쓰신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고자 이새의 집에 갔을 때 다윗은 가장 확률이 적은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삼겠다고 하신 이새의 아들은 일곱이나 되었는데 다윗은 그중의 막내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고는 "과연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바로 이 아들이구나"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아,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다음 아들, 다음 아들 차례로 지나가게 되는데 그들 모두는 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왕의 역할을 감당할 귀한 재목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어린 막내 양치기 소년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십니다. 그 모습 그대로를 본다면 이새의 아들들 중에 가장 왕으로 기름 부음 받기에 합당치 않은 자가 다윗이었습니다. 얼굴은 아직 붉은 색조도 가시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눈에는 가장 왕으로서 부적격하다고 여겨졌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를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신 겁니다.

요시아 또한 그러했습니다. 비록 나이 어린 소년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행하며 그 마음이 변치 않았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바른 일을 하고 변함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겼기에 그는 이스라엘의 숱한 왕들 가운데서 가장 왕다운 왕으로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앞날을 생각하며 우리는 오늘 정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기꺼이 헌신할 귀한 일군들을 세우고자 합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군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진정 정직하고 충성된 종이 일꾼으로 세워지도록 기도하면서 임하기를 바랍니다. 혈연이니, 지연이니, 학연이니 등등의 인간적인 것을 앞세우지 말고 정말 요시아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 충성할 일꾼을 세우는 성숙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남보다 2% 혹은 1%의 충성을 더하는 일꾼을 찾으십니다. 물은 100도에서 끓지만 99도에서는 끓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의 역대왕들처럼 99도 이하에 머물며 삽니다. 그러므로 참일꾼은 남보다 1% 혹은 2% 더 충성하는 일군입니다. 이게 교회 일군의 조건입니다. 바로 그 작은 차이가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어 내기 때문입니다.

요시아처럼 그렇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고 충성된 종으로 쓰임받는 은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유명하나 무명한 자가 아니라 무명하나 유명한 자가 되십시오. 그 이름이 자신에게 더 큰 심판이 되지 않고 더 큰 축복이 되도록 정직하고 충성되이 섬기며 사십시오. 하나님의 눈에 들어 쓰임받는 복된 인생이 여러분 앞에 펼쳐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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