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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만한 믿음 / 마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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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이만한 믿음
성경본문 : 마태복음 8장 5~13절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8장 5~13절) 

<목회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8월을 맞게 하셨습니다.
지난 일곱 달보다 남은 날들이 더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위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며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주일을 범하고,
예배의 자리를 벗어난 심령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더위를 피한다는 피서가 하나님까지 피하는 어리석음이 되지 않게 하시고
기둥교회 성도들은 어디를 가나 언제든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요즘 참으로 힘든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며 굳은 얼굴에 미소를 회복하여
소망 중에 내일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이 예배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기쁨의 잔치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이 복된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한 이들,
군대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 외국에 있는 이들,
병상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시고 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오지에서, 외국에서 어쩔 수 없이 공익을 위해 일하는 일터에서
교회와 예배를 그리워하며 인터넷으로 예배에 동참하는 이들에게도
은혜와 평강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부족한 종이 말씀을 들고 섰습니다.
종의 입술을 지켜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며 하나님의 말씀만 전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만나서 반갑습니다. 옆의 분들에게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잘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멋지고 예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요즘은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남자들도 많고,
눈 크게 뜨고 보고 싶은 여자들도 많습니다.
똑똑한 사람들도 많고 공부 잘 하는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여기저기서 상 받고 공로패 받고 감사패 받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도 '잘했다'고 칭찬 받는 사람일까…
한번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내세울 수 있고, 무엇으로 칭찬 받을 수 있습니까?
혹 여러분 가운데 자신의 미모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할머니들 가운데 예전에 동네 총각들 마음 설레게 안했던 분들이 어디 있습니까?
"전에는 나도 꽤 괜찮았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미모도 한순간으로 그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공부 잘한 것, 공부 잘하는 것으로 자랑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른들치고 자기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 공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부모들은 "나는 너만할 때 1등만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배운 지식과 똑똑함도 세월이 지나서
자기 자녀들에게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부모님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돈을 잘 벌고, 돈을 많이 가지셨습니까?
그러나 그 가진 것을 영원히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일에 칭찬을 받아야 될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더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예수님 앞에 서 있다면 칭찬 받을 수 있습니까?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서재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 앞에 선다면 예수님께서 나를 보고 뭐라고 하실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수님께서 저를 보고 우실 것 같습니다.
"얘, 신일아! 너 왜 그러니? 내가 너 때문에… 참 답답하다…." 하실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해 봐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 칭찬 받은 백부장
 
오늘 본문(마 8:5~13)에 보면
예수님 앞에 선 한 사람이 칭찬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Capernaum)이란 동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버나움에 주둔하는 부대의 지휘관 백부장이
중풍병에 걸린 자신의 하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부탁드립니다.
 
[백부장(centurion)은 100명의 군인들을 거느린 지휘관을 말합니다.
로마군대는 군단으로 조직되었는데,
각 군단은 6,000명의 군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군단은 100명의 군인을 지휘하는 60명의 백부장들과
6개의 보병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부장들은 높은 보수를 받았고, 당시에 좋은 직업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보통 20년 동안 군대생활을 했는데 그 이상 군대에 더 머무를 수도 있었고
은퇴할 때 큰 퇴직금도 받았고,
당시 사회에서 중요한 지도자로, 리더로 인정받고 살았다고 합니다.]
                                                  - 비전 성경사전 참조 -
 
백부장은 우리나라 군대로 치면 중대장쯤 되는 위치일 것입니다.
백부장은 대를 이어 신앙을 지켜온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율법대로 살려 애쓰던
당시의 특별한 사람들이었던 바리새인이나 제사장 같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백부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말씀을 전하고, 듣는
회당(synagogue)을 지어 주기도 했습니다(눅7:5).
물론 백부장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군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백부장을 가리켜 "저가 우리민족을 사랑하고"(눅7:5)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해석하고 백성들을 대표하여 그들을 다스리고 감독했던
유대인 장로들도 예수님께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시기를 청했습니다(눅7:3).
 
 
백부장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백부장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 병든 사람을 고쳐달라고 했던
그 병든 사람은 백부장의 아내가 아닙니다.
아들도 형제도, 친척도 아닙니다.
자기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면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또 죽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죽음을 대수롭잖게 여길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더욱이 그당시의 종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종(노예)은 하나의 물건으로, 재산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고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생명 없는 종이 도구라면 생명 있는 종은 노예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록에 보면 로마시대에 농사에 필요한 것 3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무생물도구인 농사기구,
다른 하나는 말 못하는 도구인 가축(소, 말, 돼지…등)을 말하고
세번째는 말하는 도구인 노예를 말합니다.
지금은 자유를,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미국 땅에서도
불과 150여년 전에 흑인 노예가 시장에서 소, 돼지와 함께 거래되었습니다.
100년, 150년 전에도 사람이 물건처럼 시장에서 매매되었는데
2000여년 전 백부장의 노예, 종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의 물건에 불과합니다. 재산이었습니다.
종이 죽는다 해도, 종을 죽인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자기 하인의 아픔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얼마나 인자한 사람입니까?
 
세상에는 이웃의 아픔에도 무관심하고
이웃에서 굶어 죽어 가는 사람이 있어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나, 열대어, 강아지가
자기들이 휴가를 가면 먹을 게 없어 죽을까봐… 염려합니다.
휴가 기간 동안 고양이나, 강아지를 맡기면 돌봐주는 아파트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주 굉장히 비싸다고 합니다.
개나 고양이가 배고플까봐 아파트에 맡기고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이웃집에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얼마나 생각할까요.
열대어에게 먹이를 제 때 주고, 온도를 맞춰주기 위해 휴가를 떠날 때
사람을 고용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개나 고양이가 음식이 까다로워서 개나 고양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기 위해
식품점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나이드신 부모님들의 식성이 까다롭다고
투덜대는 일은 어찌 된 일입니까.
아마 여러분 가운데도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다가,
특별히 갈비를 먹다 남으면 강아지 갖다 준다고 챙겼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아예 doggie bag(더기 백)이라고
개한테 갖다 줄 수 있게 식당에서 손님이 먹다 남은 것을 넣어 주는 봉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개를 갖다 주기 위해 갈비 남은 것을 싸오듯이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싸갔던 적은 몇 번이나 있습니까?
 
백부장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개나 고양이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받는 세상이 되었는데
여러분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까?
 
 
백부장은 자신을 알았습니다.
 
백부장에게는 권력, 지위, 그것으로 얻은 재물이 있었습니다.
하인이라도 아끼는 인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인의 병이 낫기를 바라며 예수님께 청하는 사랑의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하인의 병을 낫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예수님의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만약 백부장이 자신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체 했거나,
무슨 능력이나 가지고 있는 척 했더라면 결코 예수님께 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병든 종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다…' 며 큰소리 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가 할 수 있어, 내가 할께요…'라고 하면
어른은 손을 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잘 못하겠는데요. 이것 좀 도와 주세요. 해 주세요"라고 하면
어른들은 기꺼이 도와줍니다.
백부장은 병든 하인을 위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고
예수님께 하인을 고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나님께 내어 맡길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백부장은 겸손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조그만한 권세만 주어져도 교만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겸손했습니다.
백부장은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라며
자신도 남의 밑에 있는 사람임을 고백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자기 집에 가시겠다고 하자
8절에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8절) 했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방인인 저희 집에 오실 필요까지 없습니다.'
'그냥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백부장의 권세로는 뚜렷한 직업도 없고 높은 자리와 상관이 없었던
30 갓 넘은 예수님 정도라면 '오라'고 명령해도 되는 위치였습니다.
그런데도 백부장은 유대인 30 갓 넘은 총각 앞에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세상에는 신분이나 지위가 남보다 조금 높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 몇 푼 더 가졌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
좀 잘 입었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아무한테나, 아무데서나 반말하고 함부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별히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교회에도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예배 전과 후에 버스를 운전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기쁨으로 봉사하는 분들입니다. 여러분과 똑같이 신앙생활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교인들 가운데 운전하는 봉사자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막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가 '무례지국'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편안한 복장으로 교회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60이 채 안된 사람이 제게 다가와서
"담임목사 있나?"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아니 나도 내년이면 50인데…
나보다 별로 나이 많아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내가 청년회장인 줄 알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별로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왜 그러시나요."라고 했더니
"자넨 알 것 없고 안에 계시지?"하더군요. 제가 뭐라고 했을 것 같아요?
"안에 안계시는데요."라고 했지요. 왜냐하면 제가 밖에 서 있었으니까요….
그리고는 저는 집으로 가 버렸습니다.
세상엔 참 별난 사람이 많습니다. 예의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인들 중에도 막 말하는 사람, 아무에게나 막 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은 [목사]인 것이 자랑스럽지 못하고
오히려 [목사]인 것이 부끄러울 때도 많습니다. 너무 많아서인지…
이런 저런 부끄러운 일들이… 여기 저기서 드러나고 있고
어떤 때는 목사인 제가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그러나 아무나, 아무데서나 '목사, 목사'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지만 또 한번 말씀 드리렵니다.
 
'중'은 '승려'와 같은 말이며 보통 말입니다. '스님'은 '중'의 높임말입니다.
'신부님'은 '신부'의 높임말이고, '목사님'은 '목사'의 높임말입니다.
  ·중 : [명사] 불타의 교법에 귀의하여 성불의 자리에 도달하고자
      불법을 닦고 실천하며 포교하는 사람.
      원래는 그러한 단체를 일컫던 말임. 불승.
·승려(僧侶) = 중 : [명사] 원시종교에서, 종교적 의식을 집행하고
      인간과 신, 또는 부처의 사이에서 매개의 직무를 행하던 사람.
·스님 : [명사] 중이 그 스승을 일컫는 말.
        사승(師僧) / 중을 높여 일컫는 말.
·신부 : [명사] 천주교의 사교자로 주교(主敎) 다음가는 성직자.
        성사를 집행하고 미사를 드리며 강론을 함.
·목사 : [명사] 교의를 해설하고 예배를 인도하며 교회나
        교구의 관리 및 신자의 신앙 지도 등의 일을 맡아보는 교직
        또는 그런 사람.
                                              국어사전  [민중서관] 

 
그런데 절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 중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님'이라고 합니다.
천주교에 다니는 사람도 '신부'라고 하지 않고 '신부님'이라고 말합니다.
'수녀'에게도 '수녀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목사님'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우리 목사가…, 고목사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로 목사와 가깝다는 사람, 예수 믿은 지 오래 된 사람,
교회에서 일 많이 한다는 장로, 권사들 가운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고전13:5)라고 했습니다.
무례한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사이라면 더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도 하나님께 예를 갖추어 절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배 때 단정한 복장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름철이면 해수욕장에 가는 차림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찜질방에 가는 사람처럼 아무렇게나 옷입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무례하게 행하는 것, 무례하게 예배드리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백부장은 권세 있는 사람이었으나 예수님께 예를 갖추고 
예수님 앞에 겸손했습니다.
여러분의 말이나 행동도 범사에 자신을 낮추고 예의를 갖추어 하시기 바랍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알았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백부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예수님께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니다."(마8:8) 했습니다.
중풍병은 보통 병이 아닙니다.
중풍병(Paralytic)은 뇌일혈로 인해 발병하는 병입니다.
중풍병은 뇌동맥이 파손되어 일어난 출혈이 원인이 되어
전신이나 반신, 또는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는 병입니다.
그런데 그 무서운 병을 예수님께서 환자를 보지 않고,
만지지 않고, 가서 기도하지 않을지라도,
말씀으로만 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예수님은 백부장의 엄청난 믿음을 보시고
"가라!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마8:1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곧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여
그 시로 하인의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이만한 믿음
 
예수님은 백부장의 확실한 믿음을 "이만한 믿음"이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십니다. "이만한 믿음"
"이만한 믿음"이라는 말은 영어로 "~such great faith"(NIV)라고 합니다.
위대한 믿음, 엄청난 믿음, 큰~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8:10)고 했습니다.
 
믿음은 혈통으로, 가문의 전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신앙생활 잘 했다고 해서 아들이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 아들, 장로 아들이라고 해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아들이라고 믿음이 생기거나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 많이 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분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도 백부장의 믿음을 기이히 여기셨습니다(눅7:9).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서 제외된 상태였고,
예배와 말씀 속에서 자라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방인인 백부장의 믿음이 예수님을 놀라게 했습니다.
 
큰 믿음, 위대한 믿음, 예수님도 놀라실만한 믿음이 백부장에게 있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놀라실 만한 믿음이 있을 때 백부장의 하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히11:6)
"이만한 믿음, 큰 믿음, 놀라운 믿음, 상식을 뛰어 넘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임합니다.
분명히 기적은 있습니다. 분명 기적은 일어납니다.
기적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기적입니다.
 
기적은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
"놀라운 믿음"을 가진 사람, "위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
"예수님을 놀라게 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기적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적인 회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습니다.
- 낭패와 실망으로 캄캄함에 주저앉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 모두가 "이만한 믿음"으로
  회복과 일어남의 소망의 기적이 있음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포악해지고 잔인해지고 이해도, 배려도 없이 자기만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
  용서할 줄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만한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 기적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 영육간에 병으로 고생하고 경제적인 문제로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들
  "이만한 믿음, 위대한 믿음, 예수님이 놀랄 만한 믿음"을 가지고
  치료와 건강과 회복의 기적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왕 믿을 바에야 기둥교회에서, 부천에서, 한국에서,
내가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놀라실 만큼
그런 큰 믿음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고, 천국을 믿는 것 … 취미 생활이 아닙니다.
주일성수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말씀대로 사는 것… 장난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훗날 천국이 없어도, 영생이 없어도…
후회되지 않을 만큼, 실망하지 않을 만큼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 세상은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가정을 흔들고 교회를 흔듭니다.
세상에는 더럽고 추한 일들이 많습니다.
교인들에 대한 일들도 많고, 목회자와 교회에 대한 일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를 흔들고
복음 전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일들이 자꾸 생겨납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이 교회에, 교인들에게, 목사들에게 많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을 버립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라고 하셨습니다(고전 15:58).
세상엔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신앙을 흔들고, 교회를 흔드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엔 여러분의 가정을, 부부 사이를 흔드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흔들림에 흔들리지 말고 견고함으로
든든히 서는 믿음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백부장의 믿음 같이 "이만한 믿음, 위대한 믿음"을 가져야
빛되고 소금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다 보면 풍랑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도 지금 폭풍을 만나 눈물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폭풍도 필요합니다.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가져오는 태풍은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늘 해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태풍은 중요한 수자원의 공급원으로 물 부족 현상을 해소합니다.
태풍은 저위도 지방에서 축적된 대기 중의 에너지를
고위도 지방으로 운반하여 지구상의 남북의 온도 균형을 유지시켜 주고
해수를 뒤섞어 순환시킴으로써 플랑크톤을 용승 분해시켜
바다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듯 대기의 난폭자인 태풍은 동시에 유용한 면도 지니고 있는
매우 중요한 대기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풍이 없다면 눈에 보이는 비 피해는 적을지 모르지만
해수면의 온도가 높아져 적조현상이 일어나고
바다에서는 큰 피해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태풍도 때로는 우리에게 필요하며 감사할 조건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태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폭풍 위에, 태풍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시29:10>.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 베드로에게조차도
"믿음이 적은 자"라고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믿음에는 '적은 믿음, 병든 믿음, 큰 믿음…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백부장 같은 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왕에 믿을 바에야 백부장 같은
"이만한 믿음, 위대한 믿음, 큰 믿음, 엄청난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의 가정에, 일터에, 교회에… 여러분이 있음으로 든든히 서가고
여러분이 있음으로…, 여러분이 있는 자리에…
요셉이 머문 집을 축복하셨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창 39:1~3>.
백부장이 받았던 은혜, 응답과 복을 누리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백부장과 같은 믿음, 백부장과 같은 겸손, 백부장과 같은 태도의 삶이 되도록
연약한 저희들을 도와 주시옵소서.
말씀을 귀로만 듣고 가는 자가 아니라
가슴에 "이만한 믿음, 엄청난 믿음, 위대한 믿음"을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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