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 (벧전 1:18-25)

  • 잡초 잡초
  • 457
  • 0

첨부 1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
벧전 1:18-25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1. 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평소 자기의 몸이 건강하다고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간혹 이상 징후들을 느낄 때도 있지만, 생각하기를 “괜찮을거야 아직 젊은데 뭐” 하며 시간을 끌다가 큰일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별 것 아닌 증상에도 병원을 찾는 건강 염려증 환자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몸은 언제 탈이 날지 모르는 매우 예민하고 약한 생물체임을 잊지 말고 정기 검진을 받아야 좋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인생 길도 정기적으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과연 옳은 길을 걷고 있는지, 가치롭고 의미있는 삶을 사는지, 내 잘못된 성품으로 이웃에 폐해를 끼지는 것은 없는지 등을 살피는 시간들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주간부터 피서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방학과 함께 휴가를 얻어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피서라 하는데 주로 더위를 피하여 시원한 곳에 가서 쉬다가 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런 기회를 통하여서도 자기 삶을 돌아보며 점검하는 기회가 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피서가 피정이 된다면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피정'이란 '피세정령(避世靜靈)'의 줄임말로 '세속을 피해서 영혼을 정화한다'는 의미입니다.

2. 우리의 망령된 행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러 받은 전통을 매우 귀하게 여겼고 그 물러 받은 규례를 따라 살면 다 옳은 사람이 될 것이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습관 안에서 그들은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는데 오늘 베드로는 말하기를 그것을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망령된 행실”이란 영어 번역에서는 “the empty way of life”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공허하고 빈 인생 길이란 뜻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왔는데 돌아보면 공허한 것이었고 아무 의미 없는 삶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한 허무주의적 표현이 아니라 이것은 곧 유대인들에겐 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결국 이런 죄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솔로몬의 전도서엔 너무도 정직하게 그려놓고 있습니다.

“3b)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7)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8)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3b-11)

베드로 사도도 이런 인생임을 알고는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24-25a)

이처럼 인생의 길이 망령된 행실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사람은 구원자를 찾습니다. 이것이 곧 피정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세상 안에 있으면 우리의 진상을 옳게 보지 못합니다. 잠시 세상을 떠나 우리 영혼을 정화시키는 피정의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3. 구원자 예수

영국의 복음주의 지도자인 존 스톳트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되고, 그 구원자가 곧 그리스도 예수임을 인정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즉 우리 영혼을 정화시키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공허하고 헛된 길을 가는 우리 인생을 구원할 것은 은도 금도 아닙니다. 그것 역시 없어질 허무한 것입니다. 아무리 금은으로 우리의 인생 길에 수를 놓아도 그 길을 깨끗케 할 수 없습니다. 금은으로 수를 놓으면 놓을수록 오히려 더 허무해 질뿐입니다.

우리 인생을 예쁜 비누 물방울로 비유해봅시다. 그 물방울은 빛이 비추어지면 더욱 영롱한 무지게 색깔을 내며 아름다워 집니다. 바람을 불어넣으면 더욱 깨끗한 색깔을 띄며 커집니다. 그러나 커지면 커질수록 물방울은 얇아집니다. 곧 터지기 직전입니다. 그러다가 바람이나 매우 미세한 작은 흙먼지와 충돌해도 순간에 터져 사라지고 맙니다.
이런 연약한 인생을 구원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19절)

그 피만이 인생의 공허하고 헛된 걸음을 씻어주시며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인생의 모든 죄 값을 대신하여 흘리신 피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정케 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사죄하는 증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찬 184장 2절)

4.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 참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21절)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많은 철학과 종교들이 이것을 연구하고 탐색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고 주장합니다. “절대 타자”로 “절대 선”으로, “절대 진리”로 현학적 표현으로만 설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실제적이고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얻은 계시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이십니다. 인생들은 죽음 때문에 평생을 종노릇하며 삽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최대의 과제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이전엔 죽음이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었습니다. 우리를 얽매어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죽음을 이기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어 우리 모두의 부활을 가능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여기에 우리 인생이 참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자리를 얻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자살 사건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카드 빚 때문에 주로 일어납니다. 돈 때문에 일어난 일을 죽음으로 갚으려고 합니다. 돈을 넘어선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나도 다시 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것이다”는 부활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3-4)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소망입니다.

고 도원의 아침 편지에 실린 글입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노신(魯迅)의 《고향》 중에서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희망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걷고 또 걸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으로 부활의 그 길을 만들어 냅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