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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살리라 / 갈 2: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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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음으로 살리라 (8월3일 주일) 
본문 : 갈 2:15-21

  미국의 에커드 드럭(Eckerd Drug)은 세계적으로 1,700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기업형 마켙입니다. 이 회사의 잭 에커드 회장은 주일 날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에 감동을 받고는 그의 모든 연쇄점에 연간 3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도색잡지 '플레이보이(Playboy}'와 '팬트하우스(Panthouse)'를 판매하지 말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 지시를 받은 각 연쇄점 사장들은 크게 반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단호했습니다. 그런 도색잡지를 팔아서 수입을 올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입이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서 강력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자기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자기 안에 사신 그리스도의 뜻대로만 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더욱 번창하여 나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이란 행함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죽은 자 입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 사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사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전에는 율법이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깨닫게 해주는 몽학선생에 불과했고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속죄의 희생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말씀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구원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은 은총으로 우리에게 임하였습니다. 이 은총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 윌리암 바클레이는 목사로, 선교사로, 그리고 신학교 교수로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가 죽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 그가 작성한 "헌신강령"이라는 종이쪽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자신이 작성한 이 행동강령에서 바클레이는 그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쳤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이 종이 위에 85세가 될 때까지 매년 스스로 서명을 하였습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마음, 몸, 영혼, 시간, 모든 소유물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낡고 누렇게 된 종이이지만 바클레이는 매년 죽을 때까지 그 종이 위에 서명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서약을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당신에게, 나는 모든 일들의 관리를 맡깁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말씀드립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드리는 것이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내어 맡긴다는 말입니다. 내 생명까지도 주님의 손에 맡긴다는 결단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냐에 관계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인종이든 관계없이 사랑합니다. 가난하든지, 부유하든지,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관계없이 사랑합니다. 재능이 있든 없든, 키가 크든 작든지 관계없이 사랑하십니다. 잘 생겼던지 못 생겼던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데는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있는 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상원의 원목이었던 엘로이드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과 같음을 느꼈다고 회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처음에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강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무엇을 행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늘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학교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교수님이 엘로이드를 보고 "사랑하는 엘로이드, 자네는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적으로 받고 있다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도 지금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가 될 때 가능해짐을 아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던 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제자를 데리고 어떤 길로 들어서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각자에게 십자가 하나씩을 내주시며, 나는 이 길이 끝나는 곳에 가 있을 테니 그곳까지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지시한 다음 자취를 감추셨습니다. 첫 번째 제자는 가볍게 십자가를 매고 가는 데 반해, 두 번째 제자는 지독히 힘들어하면서 뒤쳐져 따라왔습니다. 십자가를 걸머진 지 하루만에 첫 번째 제자는 길 끝에 당도하여 십자가를 주님에게 넘겨 드렸습니다. 주님은 첫 번째 제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아주 잘 했다." 두 번째 제자는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길 끝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제자는 십자가를 주님의 발 밑에 내동댕이치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한테는 저 제자보다 훨씬 더 무거운 십자가를 주시다니요! 제가 이토록 늦게 온 것도 그것 때문이라고요!" 주님은 마음이 상한 채 슬픈 얼굴로 두 번째 제자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십자가는 둘 다 똑같은 무게였느니라." "그렇다면 왜, 앞사람은 아주 쉽게 십자가를 옮겼는데, 유독 저만 십자가를 옮기느라 쩔쩔맸습니까?" 두 번째 제자는 무례하게 대들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에게 타이르셨습니다. "십자가를 탓하지 말아라. 그 까닭은 십자가를 지고 오는 동안 줄곧 불평을 늘어놓은 너한테 있느니라. 네가 불평할 때마다 십자가의 무게는 늘어났던 거야. 앞에 온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있는 동안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십자가의 무게를 덜어 준거야.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 옮길 수 있었던 거란다."
  힘들이지 않고 쉽게 사는 삶이 되려면, 나의 욕심과 죄와 혈기와 이기심과 정욕과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잘못된 성품이 포기되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살아있으면 일하면서도 불평하게 되고 십자가를 지면 질수록 십자가는 더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너무 이유가 많습니다. 아직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죽어야 합니다. 죽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오직 예수만 내 마음 속에 계시게 됩니다. 그래야 삽니다.

  웟치만 니 목사님의 간증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죄에서 떠나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본문을 읽다가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래 내가 죽어야 죄에서 해방될 수 있구나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는 죽자" 말로만 죽는다고 말하지만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웟치만 니는 아래층에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웟치만 니라는 사람이 죽은 것을 아세요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알렸습니다. "여러분, 웟치만 니는 죽었습니다" 이렇게 광고를 하고 나자 그때부터 그에게 정말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었음을 선포하고 광고하시기 바랍니다.

  믿음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하여 죽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전 15:31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내가 죽는 것이 사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게 하는 것입니다

  죠니 타다는 유명한 미술가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지체장애자입니다. 그의 몸은 10대 때 다이빙 사고로 목 아래로는 모두 마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죠니는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가 밥을 먹기 위해서는 수저의 모양을 입안에 잘 들어가도록 구부려야 했습니다. 그녀는 친구에게 수저를 구부려 주도록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멀쩡한 수저를 구부리는 것을 친구에게 미안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구부러진 수저로 죠니가 밥을 먹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죠니는 말했습니다. "이 수저는 구부려져야만 나에게 알맞게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죠니는 계속 말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쓰시기 위해 우리를 구부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부리실 때 그 과정이 매우 힘들고 파괴적이어서, 해를 끼치는 것처럼 생각이 들게도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우리의 삶을 그분의 계획에 따라 모양을 만들도록 허락한다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에게 더 많이 양보할수록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더 많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주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이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우리 믿음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심으로 나는 무엇이든지, 어떤 것이던지 주님의 은혜 안에서 감당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0절에 보시면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하였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 것을 우리가 확신하기 될 때 우리는 더욱 담대하여 하나님의 귀한 일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제 시대 때 최봉석 목사님은 능력을 많이 받은 목사님입니다. 그래서 최권능 목사라 했습니다. 최목사님은 일본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평양 감옥에 갇혔습니다. 일본 형사가 주일날 목사님을 불러내어 조사를 했습니다. 어떤 말을 물어도 대답이 없으니까 매를 가지고 칩니다. 그때 목사님 입에서는 '예수'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쳐도 '예수', 저렇게 쳐도 '예수'입니다. "이 영감쟁이, 어째서 예수뿐이냐?"고 형사는 야단을 합니다. 이때 최목사님은 "내 몸 속에는 예수만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아무리 때려도 예수 밖에 나올 것이 없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신앙의 선배들은 이렇게 예수를 진실 되게 믿었습니다. 오직 예수뿐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예수로 눈을 뜨게 하시고, 저녁에는 예수로 잠을 자게 하소서. 예수여 내 주여 내 중심에 오셔서 예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진정한 성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통하여 내 마음대로 살던 인생이 변하여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언제나 승리하며 살아가는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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