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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요 8: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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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31-36절)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바야흐로 온 나라가 ‘탈출’을 시도하느라 야단입니다. 승용차로, 버스로, 열차로, 비행기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되풀이되던 삶의 현장으로부터 탈출해 보고 싶다는 것이지요. 솔직하게 말한다면 「日常으로부터의 도피」일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부산 사람들은 한국 최고의 해수욕장 해운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저 멀리 동해 설악산이나 서해 쪽으로 힘들게 길을 떠나갑니다. 반면에 서울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쉴만한 곳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생해가면서 부산으로 제주도로 내려옵니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동으로 가는 사람, 서쪽으로 가는 사람... 결국 길은 차와 사람들로 막히게 됩니다. 휴식이 아니라 고생이요 해방이 아니라 짜증입니다. 실제로 가서 보면 별 것 없고, 고생스럽기만 한 대도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경쟁하듯이 돈을 써가면서 찾아갑니다. 해외여행/휴가여행 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내걸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알고 보면 ‘방콕’(?)휴가 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날 경제적인 빈곤과 정치적인 억압 속에서 살아야했던 적이 있습니다. 1950,60,70년대 약 30년간 참 가난하고 어려운 가운데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경제성장’ 에다 모든 힘을 다 쏟았습니다. 잘 살게되면 꿈이 성취되고 행복이 눈앞에 펼쳐질 줄로 기대하였습니다...우리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기는 하였지요. 경제적으로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대단한 성취를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로부터 30~40년이 지나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은 그 당시와 비교해서 별로 행복한 것 같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소유’ 나 ‘환경’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사람의 행복은 소유가 넉넉한데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행복이 결정된다면 정말 낙심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에서 ‘행복’을 만들어 내고, 행복을 저장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께서도 ‘마음 속에 모든 좋은 것. 귀한 것’ 이 다 들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마태복음 11:29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마음을 배워서 우리들도 마음으로‘행복’을 체험하고 누리라고 조언하고 계시는 겁니다.

사실 예수님은 오늘의 우리들처럼 여행을 많이 하신 일도 없습니다. 겨우 강원도와 경상남북도 만한 지역(팔레스틴)안에서만 머무셨습니다. ‘소유’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머리둘 곳 마저 없었고, 방금 주민세를 낼 적은 액수의 돈도 없었습니다. 두벌 옷도 없었습니다.
죽으실 때 묻힐 무덤조차도 마련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누가 우리 예수님을 가난하다 할 것이며, 불행하다 할 것이며, 억압 속에서 살았던 분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다스리시며 완전히 자유 하셨던 분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충고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를 자유케 하노라/아들이 너희로 자유케하니 너희가 참으로 자유케 되리라/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요8:32,36, 고후3:17, 눅4:18,19, 고전7:22)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권위가 있습니다 권세와 힘이 있습니다(마28:18~19) 그러므로 예수님이 “자유케하는 것/ 자유를 받으라!” 하시면 우리는 당장 자유의 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확실한 자유의 사람으로 보장하시고자 아예 자신을 「자유를 얻기 위한 대가」로 십자가 위에다 내어 놓아버렸습니다. 자신의 몸을 대가로 지불해버린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로마서5장과 8장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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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였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설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5:8,10, 8: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당신)은 지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시지요? 예수님께서 여러분(당신)을 위하여 여러분(당신)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어주신 것을 믿으시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예수님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와 있으면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예수님의 피가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해방을 얻었습니다. 자유를 얻었습니다. 자유인이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유인!... 이 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 구원을 ‘해방’이라고 합니다. 해방된 사람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의 삭개오를 생각해 보세요!(눅19:1~10) 그는 여리고의 갑부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위용과 권력도 부여받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하지를 못했습니다. 행복이 없으니 자유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얽어매지 않았으나 마음속에 진정한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사는 것이 재미가 없었습니다. 갑갑하고 답답하였습니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예수님께서 자기 마을을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작심하고 달려갔습니다. 예수님 얼굴을 한 번 보기라도 하리라는 결심으로 부끄럼을 무릅쓰고 길 가운데 서 있는 뽕나무 위로 담대하게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해방이 되었습니다.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찾았습니다. 로마 제국의 힘을 이용하여 누려왔던 저 세속적인 자유와는 180˚다른 진정한 자유였습니다. 정말 살 것 같은 자유였습니다. 하루룰 이 땅에서 살다 죽어도 전혀 아까울 것이 없는 ‘하늘의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주여, 내가 의지했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겠습니다. 그리고 남으로부터 빼앗거나 훔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습니다.”(눅19:8) 소유를 줄이는데서, 가난한 사람에게로 다가가는데서 ‘자유의 향기’를 맡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우리는 참 자유 위대한 자유 하늘의 자유를 가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자유를 올바로 누리고 더 풍성하게 누리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들이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 안에서 이 자유를 마음껏 누리라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그 지혜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섬길 때 우리는 더 많이 자유할 수 있습니다(갈5:13~14, 마20:28, 행20:35, 마7:12) 내어놓을 때 우리는 더 많이 자유로워집니다. 더 많이 내어 놓아보십시오!
짐을 줄이고 무게를 줄이고 지갑을 비워나갈 때 그에 비례하는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낮아질 때,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내어놓을 때, 포기할 때 우리는 놀라운 자유를 맛 볼 수 있습니다. 낮아지고, 포기하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고 위대한 자유를 얻는 지름길입니다.
양보할 때 최고 수준의 자유가 찾아옵니다. 때로 깨끗이 과감하게 양보하십시오! 비우고 양보하면 손해일까요? 아닙니다. 깨끗이 비워졌으니까 하나님께서 ‘ 더 좋은 것’을 주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무시해 버리고 성령님의 소원(음성)에 더 귀 기울일수록 우리는 더 큰 자유를 누립니다. 십자가 밑에 쉴 때 하늘의 자유가 찾아옵니다.(갈6:14, 2:20, 눅23:42,43)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온갖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힘들어 신음하고 사경을 헤매다가 십자가 밑으로 나아와 쉴 때 그렇게도 찾던 진정한 자유를 발견하였는지 일일이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예수님 자신도 십자가상의 그 순간 가장 자유 하셨습니다.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었으나 ‘사명’을 필하고, 인류가 구원을 받게되는 그 순간 예수님의 마음은 가장 자유 하셨습니다. =눅23:34, 요19:30 It in finished! 이 순간!...) 찬송가471장1절 「십자가 그늘 밑에 나 쉬기 원하네.저 햇빛 심히 쬐이고 또 짐이 무거워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 곳 찾았네」
이 여름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면서 놀라운 자유와 휴식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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