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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헛되지 않는 수고 / 고전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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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헛되지 않는 수고
  본문 : 고전15:58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필리핀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신문을 보았습니다. 2주간 동안 국내의 소식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신문의 내용을 거의 빠짐없이 읽어내려 가다가 사회란에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평균 36명씩 자살한다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실례로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한 어느 고등학생의 이야기, 성형수술을 한 것이 잘못되어 절망에 빠져 있다가 끝내 삶을 포기한 어느 30대 주부의 이야기, 그리고 자식의 카드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난을 원망하며 목숨을  버린 가난한 부모의 가슴 아픈 이야기 들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의 절망에 빠지면 자살을 생각할까요? 그러나 자살은 그 어느 것으로도 미화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습니다.
  자살은 사람이 짓는 그 어떤 죄악보다 더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삶이 흔들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삶이 돈이 없다는 것 때문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남보다 미모가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삶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사는 것 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든 살아있는 이에게 기회가 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필리핀에서 숙소와 학교를 오가며 고가도로 밑에, 그리고 다리 밑에, 살고있는 빈민들을 보았습니다.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나라 경제의 90%를 10% 밖에 안 되는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필리핀 사회에서 가난한 빈민들의 삶은 참으로 버겁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철학을 보았습니다.
  비록 집이 없어 시내의 고가도로 다리 밑에 평상 하나 놓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옆에는 작은 화분들을 갖다놓고 꽃을 가꾸는 마음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고가도로 밑을 집으로 삼아 화분을 가꾸고 피어난 아름다운 꽃을 보며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들은 어떤 면에서 자기들 나름대로의 삶의 철학을 터득한 사람들이 아닐는지요...?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지 못하면 그런 것들에 근본적으로 삶 자체가 흔들려 버리고 흔들려 버리고 맙니다. 
 
  인생을 살려면 개똥 철학이라도 가져야 합니다.
  어느 거지 부자(父子)가 길을 가다가 불조심 포스터를 바라보며 아들 거지가 아버지 거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집이 없으니 불날 걱정이 없네요" 그러자 아버지 거지가 하는 말이 "이놈아 그것이 다 이 애비를 잘 만난 덕이란다" 라고 했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지 노롯을 하더라도 거지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인생철학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을 세워주는 뼈대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세워야할 삶의 철학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입술을 주장하시어 내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이 내 입술을 통해서 증거되기를 소원합니다.
 
  본문 말씀을 한번 읽어보겟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본문의 말씀을 한 마디로 설명하면
  우리의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헛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  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다른 의미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강력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에 흔들리지 않는 철학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그러므로"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라는 것은 이미 어떤 내용들을 설명한 후에 결론적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는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은 분명한 이유를 이미 말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은 분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전 15:10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어떻습니까? 스스로 반문을 해보십시오. 혹시 "나의 나된 것은 나의 잘남 때문이요" 라고 하실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찌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 나를 존재케하고 나를 세웠으며 나의 가치를 드러나게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믿음 때문입니다.
  고전 15:2절의 말씀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헛되이 믿지 않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헛되이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진실하게 믿습니다.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우리가 진실하게 믿는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는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은 "날마다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고전 15:57절을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언제나  께 계셔서 이김 즉 승리를 주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는 이 믿음이야 말로 우리의 모든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함께 하심의 약속은 오늘 우리들에게 승리의 약속을 주고 계십니다.
  시139:9-10절에 보면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주의 오른 손이 붙들어주신다는 이 함께 하심의 약속은 오늘 고달픈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함께 하심은 고전 15:57절에 있는 대로 승리의 약속 보장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 과 "함께 계심" 에 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인종씨의 "믿음 때문에" 이라는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그대 있는 곳에
나 있어
세상이 춥지 않은 것은
홀로가 아니란
믿음 때문이오

내 두 발이
벼랑 끝에 선다해도
절망치 않을 것은

그대 두 팔이
내 허리를 감아 주리니
홀로가 아니란 믿음 때문이오

내일이
평온 가운데
나를 서게 하리니
홀로가 아니란
믿음 때문이오.

  시인은 홀로 있어도 춥지 않고 자신의 발이 벼랑 끝에 선다해도 절망치 않는 것은 자신이 홀로가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벼랑 끝에 서도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외로움이 자신을 춥게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날에 평온으로 굳게 서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읍시다.
  우리가 주님의 일로 움직이고 있는 동안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행 27장에 보면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큰 광풍을 만나서 배가 파선을 당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바울은 기도 하는 중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27:23절에서 25절의 말씀을 보면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황제 앞에서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광풍중에서 함께하셨고 하나님이 함께하는 바울 때문에 그 배에 타고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도 보호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사명이 남아있으면 하나님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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