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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식, 몰상식, 초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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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몰상식, 초상식

 
최근 어느 교회에 관한 기사를 보니까 교회 목표 중의 하나로서 '상식이 통하는 교회'라고 밝힌 것을 신문 기사에서 보았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교회' - 일견 타당성이 있고 마음에 와 닿는 교회 목표로 들립니다. 그러나 성경적 사고라는 측면에서 엄밀히 생각해 본다면 이 '상식이 통하는 교회'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식이라는 말이 영어로는 common sense이고 국어 사전에는"보통 사람으로서 으레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지식이나 판단력"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식이 통하는 교회'라는 말은 보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이나 판단력이 존중을 받는 교회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그처럼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상식이 통하는 정도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뒤섞여 사는 사회에서는 '상식이 통하는 정도의 사회'만 되어도 그 사회는 비교적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상식에서 벗어난 그릇된 말이나 행동을 몰상식하다고 우리는 말합니다만, 오늘 우리 사회 현실을 보면 몰상식한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국민들이, 특별히 사회 지도층의 사람이나 엘리트 계층의 사람들이 상식적으로만 살아도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경우에는 상식이 통하는 정도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가리켜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두움인 이 세상 가운데 교회가 빛이 되고, 또 썩어 가는 이 세상 가운데서 교회가 방부제의 역할을 하려면 교회는 상식적인 것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라고 해서 상식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세계에서도 때로는 상식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상식 이상의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것을 가리켜서 초상식의 믿음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행하지 않는 상식 이하의 짓을 하는 믿음은 몰상식한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에서 더러는 이런 몰상식한 일들이 자행됨으로써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이런 상황을 볼 때에 왜 앞서 어떤 목사님이 '상식이 통하는 교회'를 교회의 목표를 삼았는가 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상식 수준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한 사회를 변화시키며 역사의 과정을 창조적으로 주도하며 이끌어 가는 주체 세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우리 교회의 믿음의 자세에서는 상식 이상의 초상식적인 믿음의 사고와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에 대해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가지고 판단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는 아무 것도 안보이고 모든 것이 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중에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들에 대해서 마치 그것을 보고 있는 듯이 살아가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상식적이라고 하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중요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적'이라는 말은 '현실적'이라는 말과 크게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과, 그 말씀 안에서 우리가 소원하고 바라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며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어떤 사람이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가지고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상식적인 사고만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엉뚱하게 보이고 심지어는 몰상식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민수기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도 이런 상식과 초상식 간의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12명의 정탐꾼들은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이라고 보고를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10명의 정탐꾼들은 비록 그 땅이 너무나 좋은 땅이지만 거기에서 살고 있는 민족들은 아주 강하고 성읍들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낙 자손이라는 말은 키가 3m에 달하는 엄청나게 큰 거인 족속들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거인 족속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마치 메뚜기처럼 보이더라고 말을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보고합니다. 그러자 이런 보고를 들은 온 백성들은 소리를 높여 밤새도록 통곡하며,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의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런 백성들의 동요를 보고서 옷을 찢으며 "아니다. 우리가 두루 탐지한 땅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땅이니 그 땅의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우리와 약속하셨고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므로 우리가 그들 앞에서 메뚜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우리 밥이라"고 백성들을 설득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꾼들의 말을 더 의지해서 "우리는 이제 망했다"고 울부짖으면서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쳐죽이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그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원망하며 거스르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게 됩니다. 즉 그들 중에서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광야에서만 40년 동안 떠돌다가 다 죽고 맙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한 갈렙과 여호수아는 새로운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사건에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거인들의 상황을 보고하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할 수가 없다고 말한 10명의 정탐꾼들은 어떤 사람이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그들은 결코 몰상식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직접 목격하고 돌아와서 백성들에게 보고한 내용은 극히 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그 땅에 거주하고 있는 아낙 자손들은 힘이 강하고 용맹스런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에 비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왜소했고, 도무지 힘으로 겨루어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아주 현실적인 분석과 판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매우 상식적인 선에서 보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해서 갈렙과 여호수아의 판단은 오히려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 거인 족속들 앞에 설 때 우리가 메뚜기처럼 보이는 것이 현실인데,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밥이다"라고 말하는 그 두 사람의 발언은 대단히 비현실적인 것으로 백성들에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고 하나님의 약속이 그렇기 때문에 그 땅을 차지 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으로서, 그처럼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모두 다 벌떼처럼 일어나서 반대하며 돌로 치려고 하는 상황 속에서도 "아니다. 할 수 있다"고 외쳤던 그들의 믿음은 상식을 초월한 초상식적인 믿음이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은 이처럼 수많은 백성들의 반대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하나님의 약속만을 바라본 두 사람에 의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의 이러한 초상식적인 믿음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요즘의 유사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런 자기 확신이나 신념이 아닙니다. 또 믿음은 많은 경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통속적 심리학에서 주장하는 그런 적극적 사고 방식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롬10:17에서 말한 것처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세상의 어떤 처세술이나 경영학적 이론에 귀 기울이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듣고 배우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이 오늘의 현실과 괴리감이 있고 우리의 현실에는 부적절한 듯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하는 자세로 말씀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거기서 우리 안에는 믿음이 생겨나며 그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초상식적인 삶을 살아 내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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