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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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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예수님의 쉬는 방법
설교내용  일 속에 있는 휴식

  예수님은 공생애 바쁜 기간 중에도 휴가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쉬는 방법을 오늘 말씀에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쉰다는 개념이 정반대로 가는 그런 어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그런 어법이 아주 많습니다.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합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원하다고 합니다. 감정이 시원하다, 마음이 시원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심리는 여름이 되면 빨리 겨울이 왔으면, 또 한 겨울에는 빨리 여름이 왔으면… 이런 심리를 안고 삽니다. 여름이 되면 덥다고들 합니다. 여름은 더워야 됩니다. 내가 조금 더 더워질수록 곡식이 더 잘 됩니다. 내가 덥다고 하는 이것이 해로운 게 아닙니다. 우리가 더운 그런 감각을 느낄 만큼 날씨가 더워야 곡식이 잘 자라고 충실해지는 것입니다. 여름은 여름답게 더워야 되고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됩니다. 그래야 만상이 다 잘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두 가지 힘드는 현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할 일 없이 노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휴식없이 일만 하는 것도 힘듭니다. 그래서 일하는 것과 쉬는 것, 이 두 가지는 함께 있어야 됩니다.
  금년에 저는 실제로 정신적으로 굉장히 무거운 짐을 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목회도 목회지만 교단의 총회 행정적인 면에 비상사태가 나서 재단살림을 정상화시키는 일에 세 파트로 짐을 지고 있습니다. 저의 사생활이 없습니다. 그게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내게 교훈을 주십디다. 금년에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도, 부산을 그렇게 많이 왔다갔다해도 그 일속에 휴식이 있었습니다. 아주 묘합디다. 부산에 연거푸 이틀을 갖다오면 아주 피곤합니다. 그런데 피곤하다 싶을 때는 비행기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만나니까 기쁘고 어떤 분은 "목사님, 이렇게 만났는데 내가 저녁을 낼 테니까 시간을 좀 내십시오" 합니다. 예정에도 없이 맛난 식사도 대접받게 되고 이런 저런 일 때문에 휴식이 됩니다. 일 속에 휴식이 있었습니다.

  짐 벗고 쉬라

  오늘 본문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메시지 중에 간단한 원리는 짐을 벗고 쉬라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짐을 벗어라, 그리고 쉼을 얻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짐을 벗는데 매우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내게로 와서"라는 것입니다. 짐을 아무한테나 가서 벗어놓으면 안됩니다. 주께로 가서 벗으라는 것입니다. 짐을 주님께 가서 벗어야만 쉼이 옵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말씀합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나는 너희들이 지고 있는 그 짐에 대하여 충분한 기쁨과 휴식을 줄 수 있는 자신이 있다,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지금 엉뚱한 짐이 더해진 것은 짐을 벗기는 벗었는데 엉뚱한데 벗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만 가서 벗으면 그 짐은 우리에게 쉼을 주는 것입니다.

  굿모닝시티라고 하는 사기분양사건을 잘 아실 것입니다. 3,400백명의 고객들이 이 사기사건에 휘말렸습니다. 이게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사기 당한 액수가 3천4백억인데 이 사기꾼 회장에게 몽땅 갖다 바쳤는데 이게 법적으로 보상을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여당대표라는 사람은 4억2천만원이나 받았다 라고 본인 입으로 말을 하니까 대가성 없는 돈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 10만원은 대가성 없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몇 억이나 주면서 대가성 없이 받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갑니다. 그 사연을 보면 40년 동안 노점상해서 모은 것으로 내 평생소원 점포하나 가지고 살아보자 해서 거기에 몽땅 털어 넣은 사람, 26년 환경미화원해서 전 재산을 넣은 사람, 군복무 중에 부상당한 아들의 돈을 넣은 사람 등 애처로운 사연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주인을 잘못 만난 것입니다.

  짐을 풀더라도 예수님께 가서 풀어야 합니다. 좋은 주인에게 가서 풀어야 합니다. 주께 짐을 벗어야 쉼이 옵니다. 여러분, 짐은 지금 누구한테 맡겨놓고 삽니까? 주님께 맡기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벗어야 됩니다. 짐을 주님께 맡기더라도 분명하게 맡겨야 됩니다. 어중간하게 맡기면 안됩니다. 예배당 들어올 대는 맡겼다가 나갈 때 찾아가면 안됩니다. 나갈 때 찾아가는 사람, 토요일에 찾아가는 사람, 월요일에 찾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분명하게 벗어야 됩니다.

  멍에를 메고 쉬라

  그리고 주님은 또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내가 지워주는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멍에를 메고 쉼을 얻으라' 정반대의 이야기입니다. 앞의 것은 짐을 벗으라는 것이고 뒤의 것은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벗으라는 것은 휴식이고 메라는 것은 일입니다. 일과 휴식이 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은사를 주님이 약속합니다.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라" 쉼을 얻는 문제는 똑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정말 휴식이 있고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일 속에 휴식이 있고 휴식 속에 일이 있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일과 휴식의 균형은 창조의 질서입니다. 하나님도 엿새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레 되는 날은 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을 너무 심하게 지키다가 예배시간에 잠을 자고 쉬는 사람까지도 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잠자는 복이 있어서 어디서든지 잔다." 이것은 곤란합니다. 그런데 제가 잠에 대한 어떤 글을 찾아보니까 짐 혼이라는 박사가 핵심수면을 누리라는 말을 했습니다. 짧고 깊게 자라는 것입니다. 차 타면서 자는 잠도 있고 예배시간에 자는 잠만큼 깊게 자는 잠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귀로 들으면서 잔다고 합니다. 옆 사람이 깨우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 안 졸았다." 복을 받아서 예배시간에 조는 게 아닙니다. 잠을 그렇게 해석하면 안됩니다. 성경에 보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우리에게는 잠을 달게 자는 휴식이 있어야 합니다.

  광주에서 새벽에 여고 2학년 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학생은 매일 새벽 2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하고 그 때 집으로 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저녁 10시까지 보충수업 하다가 그 길로 학원으로 가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6시 반에 일어나서 학교에 갈 준비를 하면 하루 4시간 밖에 못 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이 부족하면 기억력도 판단력도 쇠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몇몇 학생들 가운데는 지금 이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 70세가 되면 7시간 이상 잠이 안 온다고 합니다. 평안의 잠을 잘 수 있는 그 평안, 휴식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요즘 우리에게는 일과 휴식의 부조화 때문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좋은 주인입니다. 그 분은 우리 짐을 맡아도 안전하고 우리에게 멍에를 지워주셔도 안전한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겸손히 배우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는 겸손하고 온유하다는 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보면 꼭 그렇게 어울리는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의미상으로 우리 신앙생활에 실제적으로는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일하면서 언제나 놓치지 말아야 되는 자세는 겸손히 일하는 것입니다. 겸손히 일하는 사람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또 겸손히 일하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불평 안 하고 낙심 안 하면 일이 됩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불평하고 낙심하는 이것만 극복하면 얼마든지 일이 됩니다.

  겸손히 배우라

  우리의 성전건축은 겸손히 해야 됩니다. 성전건축 한다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교만하면 안됩니다. 성전건축을 할수록 우리는 겸손해야 됩니다. 교회의 주인 되시는 주님의 영광만 드러나야지 사람의 소리가 높아지고,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고, 사람이 영광 받는 그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이 지워주는 멍에는 가볍습니다. 실제로 쉽고 가벼운 게 아닙니다. 주께서 감당케 하시니까 쉽고 가벼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정말 천직과도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고 주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전건축으로 인한 민원도 있겠고 우리 안에 이 용기를 빼앗아 가는 부정적인 말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슨 상황에서든 우리가 그것을 돌파하는 근본적인 힘은 바로 우리의 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짐을 맡아주신 그 분, 우리에게 멍에를 지워주신 그 분, 우리 교회의 성전건축의 멍에를 주님이 지워주신 멍에로 받아들이면 이 멍에는 가볍게 감당해지는 역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상한 소리에 낙심할 필요가 없고 마음 빼앗길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 외국신문에서 우리나라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보면 기분이 좀 상합니다. 일전에 미국의 뉴스위크지라는 신문에서 한국의 심지를 건드리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이 중국보다 더 사회주의적이다. 사회주의 나라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다. 왜 그러냐 하면 배고픈 북한은 사회주의로 포장된 자본주의를 하겠다고 하고, 배부른 남한은 자본주의로 포장된 사회주의로 하자는 이념이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있다. 그러니까 사회주의 나라는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남한이다. 중국보다 더 사회적이다." 이렇게 보도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 당국자들은 국내 신문이 한 마디 하고 심지를 건드리면 거기 대해서는 온갖 소리로 반항을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 밖에서 엄청난 소리를 하는데도 한 마디도 못합니다. 만약 이런 기사를 국내 신문이 실었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오. 청와대는 난리가 날 것입니다.

  전경련에 간부급 되는 분이 미국에 가서 '사회주의적'이라는 언어를 한번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가 대통령인수위원회 시절인데 거기서 발끈해 가지고 결국 그 사람이 사과했습니다. 미국 신문에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거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대항을 안 합니다. 우리나라 신문은 한마디 건드리면 신문이라는 게 보도기능이 있고 비평기능이 있는 것인데 역대에는 어디 안 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뭔가 기준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맺는 말

  우리는 기준을 바로 잡아야 됩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죄 짐을 담당해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요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분도 예수 그리스도요 우리에게 멍에를 지워주신 분도 한결 같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주가 되시는 한 우리를 흔드는 어떤 사탄의 유혹도 도전도 문제가 되지 않을 줄 믿습니다.

  이제 잠시 후에 사계절이 바뀌면 어느 덧 '입당한다' 라는 시간이 올 것입니다. 그만큼 잠깐 지나가는 일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되고 계속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 모두가 이런 일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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