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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렘 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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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성완석 목사)
본문 : 예례미야 13장 1~11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 가에 감추니라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취하라 하시기로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취하니 띠가 썩어서 쓸데 없이 되었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 없음 같이 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 예례미야 13장 1~11절 말씀 -

  청주에 있는 어느 교회 집사님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인데, 8남매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그런데 자신은 아멘 때문에 태어났다고 하더랍니다. 이 집사님의 어머니는 큰아들이 결혼하자 자부를 데리고 목사님에게 가서 기도를 받았는데, 목사님이 기도하신 후에 "아들을 낳을 지어다" 선포를 했어요. 젊은 자부는 시어머니 앞이라 창피하여 아멘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멘하고 응답을 했어요. 1년 후에 늙은 어머니가 늦동이로 이 아들을 낳은 거예요. 축복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시편 37:4-5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리로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와 간구에 허락의 은혜를 주시기를 축원합니다.주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힘을 더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크신 역사를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은 내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에요.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고, 만족을 찾으려 하지 마세요. 오직 예수 안에 참 만족도 기쁨도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인생 살이는 빨리 길을 찾아야 되요. 많은 불행을 겪고, 많은 고통을 겪고, 파멸을 당한 사람들은 자꾸 다른 길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이에요. 여기저기 되는 길이 있는지, 기쁨과 행복을 주는 길이 있는지, 찾아 다니다 보니 인생을 다 낭비해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 품을 떠나서는 아무리 가져도 늘 부족하게 되어있어요. 공허하고 허전해요.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부족함이 없이 할 수 있는 거예요. 별 다른 도리가 없어요. 교회에 나와서 말씀 듣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보면 힘없는 것 같고, 재미없는 인생 사는 것 같지마는 주님이 붙드시는 인생, 점점 더 강건해 지고, 풍성해 질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키시고, 생활을 회복시키시고, 더 큰 복으로 채워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 500 1.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3.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후렴)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베띠를 사서 허리에 띠고 있다가 얼마 후에 그것을 유브라데 물가의 바위틈에 감추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 날 후에 그것을 도로 파내라고 합니다. 말씀대로 꺼내어서보니 썩어서 아무 쓸모없이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힘으로 살아보려 했던 유다의 교만이 결국 썩은 띠와 같이 무익하고 쓸모없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베띠는 제사장들의 에봇위에 매는 띠를 가리키는데 하나님 앞에서의 성결과 영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백성들로 구별된 존재가 되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져서, 모든 민족 가운데 자랑거리가 되어지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떠나가 버린 거예요.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악의 자리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을 하찮은 것과 바꿔버린 거예요. 이전에는 귀한 존재였는데 말씀을 거역하므로, 이제는 쓸모없는 썩은 띠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에스겔을 부르시고, 모세를 부르시고, 사무엘을 부르신 그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셔서 하나님의 소유 삼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거예요. 내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실 뿐 아니라 막을 것 막아주시고, 물리칠 것 물리쳐 주실 줄로 믿습니다. 시편 118:24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주님 주신 복된 날입니다. 힘겨운 환경과 여건속에서도 주님께 예배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나아왔어요. 이 시간도 우리 각자 각자에게 넘치는 은혜로 충만하게 채워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시기에 때로는 손해를 겪게하고, 아픔을 주셔서라도 나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과일나무에 좋은 열매를 거두려고 하면 전지를 해 주어야 합니다. 거름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쓸모없는 가지는 잘라 내 주어야 합니다. 때로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내게 유익하지 않을 때 하나님 막아 주시는 것입니다.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거예요. 그 때는 다 몰라요. 지나고 보면 알게 되더라는 거예요. 

  1917년 12월 어느 날, 프랑스의 한 기차역에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군인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무려 1,200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한꺼번에 기차로 몰려들어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는데, 기관사가 열차밖에 서서 출발을 하지 않더라는 거예요. 군인들이 아우성을 하는데, 한 장교가 기차에서 내려 기관사에게 말하기를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열차를 움직이려 하지 않는거요?" 기관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하기를 "사람이 너무 많이 탔어요. 이대로 가면 산비탈 커브길에 가서는 큰 사고가 나게 됩니다" 그러나 장교는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며 "잔소리 말고 어서 기관차에 올라타시오. 지금 이 사람들은 조국 프랑스를 살려낸 영웅들이란 말이오. 이들을 한시라도 빨리 고향으로 데려다 주어야 하오" 그리고는 기관사를 향해 총을 겨누더라는 거예요. 기관사는 하는 수 없이 기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1,200명의 군인들이 좋아서 환호성을 쳤답니다. 30마일도 가지 못해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고, 속력이 점점 빨라지는 거예요. 군인들은 앞을 다투어 창문으로 뛰어내렸고, 결국 기관사가 염려했던 산비탈 커브길에 왔을 때, 기차는 탈선하는 큰 사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날 죽은 사람이 500여명, 다친 사람이 250여명이나 되었다고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안다고 하지마는 앞날을 모르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주님은 나의 과거를 아시고, 나의 현재를 아실 뿐 아니라 나의 걸어가는 길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복된 인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에요. 개척 초기에 미국 캘리포니아는 사금(砂金)을 캐려는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이끌고 서부로 달려갔어요. 남보다 빨리 가기 위해, 많은 땅과 사금을 차지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렸는데, 청교도들은 주일에는 사람은 물론 가축도 쉬어야 할 것을 알고 지켰어요. 처음에는 청교도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뒤쳐지는 것 같았는데, 캘리포니아에 가까이 갈수록 오히려 그들이 앞서가더라는 거예요. 결국 좋은 땅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청교도들이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쉬지 않고 말을 달리던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도, 말도 지치고 병이들어 오히려 더 늦어지더라는 거예요. 때로는 다 이해가 안 되어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의 발걸음을 복된 길로 인도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띠는 허리에 띠고 있을 때 띠로서 의미가 있는 거예요. 유다 백성도 하나님께 매여 있을 때 가치가 있고, 영광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교만해서 듣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축복이 재앙으로 변하는 거예요. "내가 한 번 해보리라" 내 힘으로 한 번 잘 살아 보겠다고 어금니를 무는 것입니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한 나라도 그렇습니다. 사람에 의해 일이 되고 안되고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지 아니하면 헛수고라는 거 깨달을 때가 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의 품을 떠나지 않는 한 소망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약속하신 대로 은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심고 백이나 천을 거두는 것이 번성입니다. 창대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도록 크게 우뚝 서는 것입니다. 창대와 번성에는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 있고, 하나님이 주신 창대와 번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오래갑니다. 박성수 사장은 이 랜드로 잘 알려져 있지요. 언더우드, 브렌따노, 헌트가 다 같은 계열입니다. 박집사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불신자와 결혼을 시키려는 거예요. 결사적으로 반대했는데도, 결혼이 억지로 강행되었고, 박집사는 결혼식장에도 안 간 거에요. 부모는 화가 나서 박집사를 내쫓아 버렸고, 그는 신촌 로타리 앞에 2평짜리 가게를 얻어 500만원으로 옷장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개업을 하면서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가게를 운영하기로 약속하고 기도하기를,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이 사업에 복을 주시면, 선교하는 일에 쓰겠습니다. 500만원으로 시작된 이 사업이 10년 후에 1,000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사업을 하고, 주일 성수나 십일조 하지 않는 대리점은 물건 공급을 중단할 정도로 믿음으로 사업을 했어요. 10년 이후 1989년에 정확히 1,000억이 되더라는 거예요. 그 다음 해에는 3,800억이 되고, 그 다음 해에는 7,000억이 되더라는 거에요. 지금은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 지 모르겠어요. 주님 의지하고 주님께 붙어있는 자녀를 주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때를 따라 도와 주시고, 공급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찬을 통해서, 예비하신 크신 은혜를 받고, 새로운 영적인 회복과 생활의 회복이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기적도, 역사도, 축복도 과거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을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내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위치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한 만큼 은혜가 임하고, 내가 변한 만큼 축복이 임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같이합니다. "내가 변한 만큼 은혜가 임하고, 내가 변한 만큼 축복이 임합니다" 문제는 밖에 있지 않아요. 잘못된 환경이, 잘못된 이웃들이, 주변이 달라지면 뭔가 나아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변화되기 어려워요. 내가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여 나가면 능력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국제광고회사 최고 경영자인 팸 메이피스 래릭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그 실수에 대응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상사가 당신의 잘못을 지적할 때 변명을 늘어놓지 말라" 하나님 앞에 서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나를 지적할 때, 변명하고 빠져나갈 생각을 한다면 소망이 없어요. 사랑받지 못해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잘된 사람들, 다른 하나는 불순종하고 저주받은 사람들이에요. 베드로후서 3:11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순종하고 복 받을 것인가, 불순종하고 저주받을 것인가. 순종하고 번영할 것인가, 불순종하고 패망할 것인가. 순종하고 영생을 얻을 것인가, 불순종하고 멸망을 얻을 것인가. 바로 나에게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복된 길, 잘 되는 길, 후회하지 않는 길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감히 사탄이 손 못 대는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11절에 보세요.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게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 하였느니라" 주님의 원하심은, 주님의 계획은 주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게 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하고, 주님과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를 원하셨는데, "그들이 듣지 아니 하였느니라" 그 길을 버렸다는 거예요. 스스로 어두운 길, 안 되는 길을 가고 말더라는 거예요. 축복의 길을 등지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나의 모습이에요.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 속한 행복, 주님께 매여있는 행복,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어요. 당장 거추장스럽고 제약인 것 같아도, 주님 품이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어미 꿩이 새끼들을 기르면서, 해치려는 짐승이 나타나면 크게 소리를 쳐서 새끼들이 나무위로 날아 올라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자라는 동안 먹이를 먹을 때에도 너무 멀리가지 못하게 늘 간수를 했어요. 멀리가면 어미 소리가 안 들리니까, 그런데 한 마리가 맛있는 먹이를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다른 새끼들과 멀리 떨어져 갔는데, 여우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오더라는 거예요. 새끼들이 위험하게 된 것을 본 어미 꿩이 소리를 지르자, 새끼 꿩들이 일제히 나무 위로 날아갔는데, 먹이에 정신이 팔려 어미 꿩과 멀리 떨어져 있던 새끼는 어미의 소리를 못듣고 여우에게 잡혀 먹고 만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좋아 보이는 것 때문에 주님의 품에서 멀어지면 결국 후회하는 때가 오게 됩니다. 늘 주님을 가까이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음성과 멀어지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 매여있는 쓸모있는 띠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마세요. 잘 되었든 못 되었든 과거는 과거입니다. 지난 일에 매이지 마세요. 잃어버린 것 자꾸 생각하고, 과거에 연연하면, 힘있게 나아가지를 못해요. 물질에 목표를 두면 물질 있을 때는 괜찮아요. 물질 없어지면 절망하고 버틸 힘이 없는 거예요. 처음부터 못 살던 사람은 돈 없다고 자살하지 않아요. 있는 물질 믿고, 의지하고 살다가 그것 무너지니까 살 힘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낙심하고 자살하는 거예요.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에 목표를 두면, 이룰 때 까지는 괜찮아요. 그런데 막상 이루고 나면 잘못된 길을 가기가 쉽고, 후회하는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때로 후회하면서도 우리 쉽게 잊어버리고, 또 후회하는 길을 가게 되고, 주님 기뻐하시지 않는 길을 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난 날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되거니와 나를 향하여 주신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약속도 잊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우리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어요.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입니다. 잘 풀리고 열리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집니다. 자기 힘으로 사는 줄 알아요.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 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형편과 사정을 잘 압니다. 낙타가 짊어질 수 있는 짐이 얼마나 되는 지를 알아요. 그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아요. 주님은 나의 형편을 아시고, 처지를 아시고, 나의 나아갈 길을 아십니다. 내가 감당하고, 짊어질 수 있는 분량을 아시더라는 거예요. 주님 원하시는 뜻을 잘 분별할 뿐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하면 감당할 만한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때를 따라 길을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사는, 주님을 중심하는 복된 가정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사역을 같이 하시는 분 가운데 킴 웍스라는 한국인 처녀가 있었는데, 맹인이었습니다. 한국 전쟁 때 실명을 했고 고아원에서 자라났는데, 어떤 미군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공부하고 또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하여 훌륭한 성악가가 된 거예요.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집회를 할 때마다 간증을 하는데, "사람들이 앞을 못 보는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앞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 뛰라고 말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말합니다. 나를 인도하는 사람을 내가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꼭 도착을 합니다. 우리는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20년 후도 알지 못합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보이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오늘을 살면 하나님을 내일을 인도하셔서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그곳에 도달케 하실 것입니다"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마세요. 하루 하루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순종하면 결국 복된 길로 인도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틀림이 없어요. 지금은 이해되지 않는 일도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노라고 간증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예비하신 좋은 결말을 바라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역대하 15:15을 보면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 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내 힘으로 하려면, 너무 힘들어요. 직장도, 사업도 내가 책임지고 살려고 생각하면 단 하루도 발뻗고 쉴 수가 없는 것이 인생 살이예요. 믿음으로 주님께 맡겨 버리세요. 주님이 책임지시는 인생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성찬을 우리가 받게 되는데,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가 있고, 성찬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가 있어요.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떡은 내 몸이요 포도주는 내 피니 이를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나 자신을 살펴보면, 허물이 많고 아직도 혈기가 남아있고 아직도 마음 가운데 불의한 것이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나의 죄 때문에,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받으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이냐? 믿음없는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과거가 어떠했느냐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과거를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신다면 아무도 떳떳하게 설 수 없어요. 우리의 모습은 마땅히 징계받고, 진노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 아시면서도 주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붙드시더라는 거예요. 불순종한 나였지마는 나에게 새로운 출발의 은혜를 주시려고, 예비해 놓으셨더라는 거예요. 이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면서 무엇보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에 깊이 잠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용서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마땅히 내가 받아야 할 고통과 저주를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고통을 당하며 대신 값을 치르신 거예요. 단순한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버림받은 고통을 주님은 겪으셨던 것입니다. 레위기16장을 보면 죄인을 위해 두 마리 염소가 필요한데 하나님을 위한 염소는 안수하여 번제로 드려지고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안수하고 광야로 보내집니다. 사람도 없고, 물도 없고, 풀도 없는 곳으로 데려가서 버리고 오는 것입니다. "주인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결국은 광야에서 울부짖으며 헤매다가 견딜 수 없는 목마름으로 혀를 모래밭에 박고 죽는다고 합니다. 성찬의 거룩한 예식을 통해서 주님의 살과 피를 받는 우리, 먼저 하나님과 아무 가로막힘이 없는 활짝 열린 관계로 회복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람과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무너지는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직 씻지 못한 상처, 아직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다면 주님의 살과 피를 받으시면서 깨끗이 씻어버리고 풀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새 출발하시는 복된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 생활 잘 하는 비결은 어떤 경우라도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요, 십자가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절망스럽고, 한스럽고, 정말 죽고만 싶을 때라도 나를 위해 십자가의 뜨거운 피를 뚝뚝 흘리시던 주님 바라보면 새 힘이 납니다.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그토록 사랑하셨는데, 주님이 나를 위해 그토록 고통 당하셨는데, 그 은혜 입은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 때문에 주저앉아야 합니까? 십자가를 생각하며 감격하는 가슴 있어야 합니다. 이 감격 없으면, 이 감격이 식어지면 우리는 자꾸 흔들립니다. 주님이 주신 살과 피에 우리의 온 몸을 적시는 깊은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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