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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 시 130:1~8 (요 6:41~4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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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본문: 시편 130:1~8 (요한복음 6:41~48 참조)
 
  인생을 살다 보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경우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요즈음은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절망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 때문에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자들이나 건강한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하루에 무려 서른여섯 명이나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난한 것을 비관하고 아픈 것을 비관하며 또한 성적이 나쁜 것을 비관하여 자살을 합니다. 심지어 성적이 나쁜 것을 비관하여 자살한 자식을 따라서 자살하는 부모까지 있지 않습니까? 때문에 요즈음은 아침에 신문을 읽는 것이 두렵습니다.

어떤 기자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자살 신드롬이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했습니다. 급기야 우리는 지난 주 초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 소식까지 듣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와 같은 서민들의 눈에는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가 12층 자기 집무실 창문으로 몸을 내던졌을 때에는 얼마나 참고 견디기 어려웠으면 그런 행동을 취했겠습니까?

물론 자살이란 우리 그리스도인들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도 없고 또 미화될 수도 없는 잘못된 행동이지만... 하여간 살다 보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너무 멀리 계신 것 같아서 부르는 것도 너무 힘이 듭니다. 막상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지독한 아픔의 순간들도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시인도 참으로 답답한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도저히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큰 아픔을 겪으며 허덕이고 있습니다. 어디서도 도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도와 줄 수 없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깊이 빠져서 허덕이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쓰라린 아픔의 현장에서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마치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앞이 캄캄한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희망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련과 역경을 당하여 실의와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들어선 것과 같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놀라운 주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깊고 어두운 밤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까? 첫째, 성경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시 130:1) 그는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깊은 곳에 빠졌으면 먼저 거기서 벗어날 궁리부터 해야 하지 않습니까? 누군가에게 긴급 구조를 요청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먼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때문에 기도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하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은 상황이 조금 바뀐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 우리는 그 문제의 덫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성경은 하나님께 나아가 모든 것을 맡기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진짜 문제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순간에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또 하나님께 그 문제를 맡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진짜 도움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있는 그를 진짜로 도울 수 있는 것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믿고 맡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립 얀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아가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더 큰 기쁨을 우리에게 돌려주신다."

  종교 개혁으로 말미암아 타격을 받았던 로마 카톨릭교회의 부흥에 크게 기여한 인물 가운데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제수윗(Jesuit) 교단을 세우고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그 수도회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누군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교황이 당신의 수도회를 해체하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15분 동안 깊이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만든 수도회가 해체될 위기에 처했는데 어떻게 겨우 15분 동안 기도하고 다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겼기 때문에 그처럼 평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시고 우리의 능력 너머까지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한계 너머까지 얼마든지 우리를 끌어올릴 수 있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길 수 있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복된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지금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생의 험한 파도가 몰아쳐 오고 있습니다. 상황은 갈수록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립니다. 그가 이렇게 기다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이며 그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능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신학자들은 과거 회상 능력이라고 합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본 것입니다. 지나온 시간들과 지나온 자국들마다 함께 계셨던 위대한 하나님의 손길을 그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의 삶 속에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환난이 없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뛰어난 과거 회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유월절이나 초막절 같은 절기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주일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실 우리의 예배는 예수님의 사망을 회상하는 것으로서의 성만찬 예식과 그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선포로서의 설교를 중심 축으로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러한 구원 역사에 대한 회상 능력을 반드시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회상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기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사건을 오늘로 끌어와 지금 여기서 다시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과거 회상 능력이 우리에게 비젼을 갖게 해 줍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갈릴리 마을 그 숲 속에서", "나의 등뒤에서" 등 수많은 복음 성가를 작사, 작곡하여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끼친 최용덕 집사의 이야기입니다. 1984년 9월 어느 날로 그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일로 인해서 영적 침체에 빠졌었다고 합니다.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서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상황까지 갔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를 버리신 것 같아서 잠을 자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어느 날 새벽 아침 큐티 시간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왜 날 버리시나요?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리고 눈물에 젖은 눈으로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 그는 자기 등뒤에서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난 널 떠난 적이 없느니라. 네가 날 배신하고 도망가는 그 때도 난 네게서 한 번도 눈을 뗀 적이 없느니라. 네가 울고 있을 때도 네가 다시 일어서길 난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라!" 그 음성을 듣고 감격한 그가 흐르는 눈물을 두 주먹으로 닦으면서 가사를 쓰고 피아노를 두드리며 곡을 만든 것이 바로 "나의 등뒤에서"로 시작하는 "일어나 걸어라!"는 노래입니다. 그 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새 힘을 불어넣어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고 했던 사도 바울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슨 신기한 비법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다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시인도 심각한 문제 앞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말했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사단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근심하고 염려하며 방황하는 동안에는 우리가 사단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도움을 구하며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맡길 때 우리는 놀라운 승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 가운데서 날마다 승리를 맛보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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