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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좁은 문 (마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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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마7:13-14)

70년대를 들어오면서 한국 사회는 중공업시대와 함께 교회는 윤리와 도
덕적인 이미지에서 탈바꿈하여  사회적 안에 성공적인 문화의 단체로 변
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로버트.H.슐러라는 사람의 적극
적인 사고방식(Yes, I Can)이라는  상업적인 이념이 교회의 신앙을 이해
시키려 했고, 중국의 웟치만 니 라는 사람의 영적인,  소위 영성(靈性,
spiritual personality)에 집중하여  결국  신비주의와 방언이나 이적주
의로 몰입하게 하는 커다란 교회 성질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
다.

  사회는 이미 변화를 요구하는 시기에 이와 같은 이념의 접목은 교회의
전통적 성질을 흔들어 놓게 되었고, 한국교회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를
신속하게 가져왔고,  한국 경제의 겉 부분에 해당하는 풍요 속에 문화주
의로 변모하는데  특별한 반항 없이 교회는  완전히 초대 교회의 질적인
모습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시대가 요청하는 것은 가려서 적응을 해야겠지만 무조건 변하지 않아도
될 것마저 변하고 말았으며 이제 고치기 힘든 상황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조심스럽게 읽으면서 교회의 성질이 과연 시대마다
그 질적인 면이 바뀌는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오늘의 우리는 어떤 중심으
로 믿음의 생활을 할 것인가를 재고하고자 합니다.

1. 생명의 문은 좁은 문입니다

13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그러나 멸망의 문은 크다고 했습니다.
큰문은 누구나 들어가기 쉽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아서 여러 가지로 편
리합니다.  사회 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공의 문은 언제나
좁은 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문은 사회적인 문으로 이해 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대학
시험이나 직장 시험을 통과하는 문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다만 특이하고 아무렇게나 취급할 수 있는 예수님이 아니라는 것뿐입니
다.
주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들어가게 하시는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
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4:6 '내가 곧 (그)길이요 (그)진리요 (그)생명이니…'라고 하셨습니
다.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을 벗어난 지구촌 역사의 모든 이론은 합리적이어
서 아무래도 쉽습니다.  진리는 구체적으로 일방적인  주관 때문에 어느
시대나 생활에 실천하기 힘든 요소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문 자체
가 좁은 문입니다.

그러나 크고 넓은 문은 멸망의 길이라 하셨습니다. 멸망(아 폴-레이아,
ajpwvleia)는 파괴, destruction, 소모 waste, 파괴된 상태  state of
being destroyed, 절면 perdition,  비극 misery등으로 번역됩니다.
세상은 언제나 육신의 욕구대로 쉽게 살려하다가 멸망을 받고 말았습니
다.


2. 길이 협착합니다

  입구의 문이 좁은 것뿐 아니라 들어가서 걷게되는 길마저 협착하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고 살아가는 길이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니란 말씀입니
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예수 믿고 사는 길을 아주 쉬운 것으
로 착각하고 자기 실생활에 맞게 믿는 척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으며 기독교 역사가 그렇게 쉽게
이어져 오지는 않았습니다.
주를 따라 사는 길,생명으로 가는 길은 협착하다고 하는 이 협착은, 환
난과 고난이 따른다는 말입니다.

협착, 쓸리보(qlivbw)라는 말은 밀어닥치다, 에워싸다, 고난을 당하다,
압박, 상처받은, 고뇌, 짐진, 핍박, 환란,  고통 등으로 기독교 신앙 생
활을 통한 현실적인 부분들을 잘 해석해 주는 말입니다.

가령 예수를 믿으면 과연 가정에 평화가 깃들고 좋기만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살던 정신이 다르게 작용하기 시작하면 우리들의 상식 자체가
부딪치게 되는데, 이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로서 보수적 주류 정치학을 대표해온 정치학
자인 새뮤얼 헌팅턴(samual p. huntington)은 1992년 '포린 어페어즈
(foreign affairs)'에 <문명의 충돌?>이란 글을 통해 '문명충돌론'을 제
기했으며, 1996년에 펴낸 저서 <문명의 충돌; 세계 질서의 재편(the
clash of civilizations: remaking of world order)>에서 냉전의 종언과
함께 국제정치의 가장 심각한 분쟁은 문명들간의 충돌이라고 주장했습니
다.

헌팅턴이 문명권을 구분하는 1차 기준은 종교이며, 이에 따라 기독교권,
정교권, 이슬람권, 유교권, 불교권, 힌두권  등이 설정되고, 이 외에 라
틴아메리카권, 아프리카권(비이슬람), 일본권 등도 설정된다고 했습니
다.

그는 '이념은 가고 그 자리를 문명이 차지한다'면서 '이념의 갈등이 문
명의 갈등으로 부활되고 그 중심에  기독교 서구문명 對 이슬람 및 아시
아 유교문화권의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회를 전망하는 정치학자의 견해이기도 하나 기독교 사상이 세
상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상당히 부합되는 이치라 여겨집니다.
대개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이며, 그 사랑은 교회 가면 병이 낫
거나 생활에 도움이 되거나 떡이 있거나  무슨 가정에 물질 축복이 굴러
들어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매우 강합니다.


물론 1970년대 이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 전에는 그다지 물
질주의로 기독교를 문화적인 차원에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마 10: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
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이 말씀을 귀 기울여서 잘 새겨 들어둬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사실은
사단(마귀)이 우리들의 영혼과  삶의 방식이 하나님과 함께 동거하는 것
이 싫어서 여러 가지로 우리의 생활에 방해를 놓습니다. 그것이 환난 핍
박이라고 합니다.


생명이 되는 길은 협착하다 했습니다. 바울은,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
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
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3. 찾는 이가 적습니다

14절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
라'
이 진리의 생명 길이 문이 작고 들어가도 그 길이 협착하니까 사람들이
잘 찾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길은 경쟁을 하는 길도 아닙니다. 아예 사람들이 잘 찾지도
않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은 역사 속에 경험된 것만 믿습니다. 그리고 통계를 따라 남들
처럼 사는 것이 우선 편해서 합리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 속
에서 우리가 진리를 발견할 때는 꼭 다수를 따라 옳다고 여긴 것만 진리
가 아니었습니다.

1492년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있었으나 콜럼버스
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다수의 생각이  아닌 콜럼버스의
생각이 옳았습니다.

갈릴레오 역시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시대의 다수의 사람
들은 그를 이단자로 몰아 종교재판에 올려놓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수의 생각이 반드시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고 말았습니다.

출 23: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오늘 이 시대는 물질로 가치를 판단하는 소위 물질만능시대라 부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 사상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안전
하고 그래서 믿어 평안을 얻어야 할 기독교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예사로 들어가는 줄 압니다.  물론 우리의 능력으로 갈
수는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쉬운 길이 아닙니다. 노력이 아니면서도 그
렇게 형편없는 신앙으로 주어지는 천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청함을 입
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시
대를 극복하는 참된 신앙인으로 잘 살아 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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