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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기념주일]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갈 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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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8월10일 광복절기념주일) 
본문 : 갈 5:1,13

  한국사람들이 외국여행을 하다 외국인들로부터 인사를 받으면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답니다. 미국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웃으면서 "Hi, Hello, How are You"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이들은 인사를 반갑게 합니다. 어떤 미국인이 우리 한국 관광객보고 'Good Morning" 하고 인사를 했답니다. 인사를 받은 우리나라 사람은 인사를 받았으니 인사로 답해야 하는데 잠시동안 머뭇거리다가 상대방 얼굴을 쳐다보고 뭐라고 했는가하면, 'Yes'라고 했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세상을 이기며 자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 마음속에 평안함이 있습니까? 자유함이 있습니까?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에 여러 작가들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림 중에 반 고호의 그림이 있습니다. 밀밭으로 거센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벌판 전체가 흔들리는데, 새 한 마리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습니다. 이 그림 속에서 고호는 자유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자유를 원했던지, 이렇게 바람결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밀의 숲 같은 세상에서 새처럼 한없이 날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유를 향한 몸부림, 이것이 고호의 작품 전체의 주제입니다. 그는 유난히도 태양과 함께 그림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를 태양의 화가라고도 부릅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그가 자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외로웠습니다. 병들어 신음하면서도 그는 그림을 통해서나마 자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귀를 그리기 위해서 귀를 잘랐건만, 진정한 자유의 그림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신이상이 된 그는 권총을 머리에 쏘아 자살함으로 세상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자유입니까? 세상을 버리는 것이 자유입니까?

  우리는 지난주간 정몽헌 현대아산회장의 투신자살 소식을 듣고 경악을 했습니다. 그는 자살함으로 사면초가의 답답한 삶으로부터 자유를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해답이 아닙니다. 자기의 죄와 인생의 문제를 짊어지고 죽는다해서 자유를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 안에서 자유에 관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특히 바울은 유대교의 율법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율법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데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갈라디아서는 자유의 본질을 설명해 주는 서신입니다. 그러므로 성서 연구가들은 갈라디아서를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인간이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자유란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자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어느 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무엇으로부터 자유케 만들어 주십니까?


  첫째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신앙의 고전들을 남긴 한나 허나드(H. Hurnard)라는 영국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좋은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19세까지 말더듬과 비정상적인 공포증으로 심리적 장애를 일으키며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열등감과 공포의 노예가 되어 매우 불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까지 의심하며 사탄에 이끌려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세 때 어느 수련회에 참가했다가 자신에 대한 깊은 절망을 느끼고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 울부짖으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완전히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어두움에서 벗어나 천국의 빛과 영광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죄와 공포의 멍에를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어두운 불행의 속박에서 해방을 얻은 것입니다.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그 후 그녀는 신학훈련을 쌓고 선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아일랜드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습니다. 유대인들을 위한 선교사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1932년부터 팔레스틴으로 들어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평생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유를 얻은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충성된 종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을 때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1:5은 '담대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1:10은 '두려워 말라'고 여섯 번이나 강조하고 있고, 이사야 43;1은 '너는 내 것이라'고까지 말씀하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7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에서 자유를 얻어야 참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1930년대 미국 경제공황이 일어났을 때 루즈벨트 대통령은 "불황에 대한 두려움보다 두려움에 대한 생각이 더욱 두려운 존재다"라고 했습니다. 참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두려워하는 것들을 빨리 물리쳐야 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내 생명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우리를 맡기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믿을 때 두려움에서 참된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죄악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한 사업가가 사업이 망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저는 사업에 실패하고 삶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은 그에게 처방을 내렸습니다. 종이에 메모를 해 주면서 그대로 꼭 지킬 것을 당부했습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이사야 53장 5-6절을 하루에 세 번씩 읽으라고 했습니다. 이 남자는 처방대로 아침 점심 저녁에 세 번씩 읽었습니다. 그는 그 후로 말씀을 읽으면서 죄악에서부터 자유함을 얻었고 더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죄악으로부터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죄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하면 육신의 질병을 얻게 됩니다. 마음이 병들면 육체까지 병들게 됩니다. 실패로 인한 강한 자책감과 열등의식과 같은 정신적인 질병은 육체에도 병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흑인들에게 특히 적혈구 빈혈증 환자가 많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흑인이라는 열등의식이 빈혈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성연애자나 마약 복용자가 AIDS에 잘 걸리게 되는 이유도 동성연애나 마약 복용이 선하지 못하다는 자멸감 때문에 쉽게 AIDS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업에 망하거나 감옥소에 들어가는 사람도 병에 많이 걸립니다. 죄의식과 패배감이 병을 일으킨 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질그룻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질그릇인 우리는 쉽게 긁히고 금가고 깨어집니다. 상처 나기 쉬운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의 영적인 모든 상처를 이미 치유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6)" 본문 1절에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삼일만에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에서 자유하고 죄의 형벌에서 자유함을 얻은 사람입니다. 고로 이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죄로부터 해방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참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죽음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20세기의 가장 유명했던 실존주의 철학자이며 작가였던 "사르트르"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유'라는 제목과 함께 수많은 수필과 감동적인 글들을 무수히 남겼습니다. 그 후 사르트르는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쉐 병원에 폐수종으로 입원합니다. 그리고 그는 한달 동안 죽음 앞에서 발악하며 몸부림쳤습니다. 나중에 그는 체면도 내 던져 버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살려달라고 고함을 치며 절규합니다. 그는 무서운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옆에 있는 아내에게 차마 자기의 병명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소리치며 발악하며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 앞에서 죽음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불쌍한 여인과 사르트르! 이것이 저들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1980년 4월 16일, 사르트르는 입원한지 한달 만에 병원에서 죽어갔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간 후 프랑스신문들은 대서특필했습니다. 죽음에서 자유하자고 그렇게 외쳤던 사르트르의 종말은 왜 그렇게 비참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르트르가 그렇게 비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미사려구를 사용하여 좋은 글들을 남겼으나 결코 그에게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었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절규하며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종노릇하던 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는데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바울이 깨달은 것은 죄로 인해 우리 모든 인간이 사망의 종노릇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롬6:1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은 자유는 아무 것에도 속박을 받지 않은 참된 자유입니다. 사망도 그 자유를 얽매일 수 없습니다. 죽음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여서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될 때에 죽음을 초월한 생명에 이르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이 주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의 대통령 메달'을 받았습니다.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 자유인으로서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었지만 이 분은 가난한 이웃과 불쌍한 사람을 위하여 집을 지어주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미국 사람들이 제일 존경하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좋아하지만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에밀 부르너는 "인간은 자유롭다. 그러나 그 자유는 하나님께 얽매일 때 비로소 자유 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사랑의 노예가 될 때 자유롭고, 진리의 노예가 될 때 자유롭고, 하나님의 은총에 사로잡힐 때 거기에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고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곳에 오로지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두려움에서, 죄악에서, 죽음에서 자유케하신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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