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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섭리의 노동과 안식 / 창 3: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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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창조섭리의 노동과 안식
본문 : 창세기 3:15~21

  지금은 계절적으로 휴가의 계절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또, 안식을 찾아서 자연을 찾아가는 그런 계절이 되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교인 출석률이 가장 저조한 때가 8월입니다. 휴가들을 많이 가기 때문입니다.

  과학 문명이 오늘날과 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앞으로 과학 세상이 오게 되면 인간은 노동이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방법이 좀 달라졌을 뿐 오히려 옛날보다도 더 많은 분량의 일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걸어다니면서도 시간이 남았어요. 그런데 오늘날은 그렇게 정리가 잘 된 길을 그렇게 빠른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데도 날마다 우리 입에 붙은 소리는 “시간이 없다!” 그렇게 살고 있단 말입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많은 일을 해야 됩니다. 옛날에는 어머니 한 사람이 열 명의 자녀도 혼자 다 낳아서 잘 길렀어요. 그러고도 할 일 다했어요. 요즘은 한 두 명도 쩔쩔 맵니다. 일이 많아져서 그렇습니다. 일의 방법만 달라졌을 뿐 힘들고 땀이 흐르는 것은 아주 옛날보다 훨씬 더하고, 옛날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병이 생겼어요. ‘스트레스’라는 병입니다. 이게 만병의 근원이 됩니다. 너무 많은 일에 책임 부담이 많아서 정신 차리기가 힘들어서 오는 질병의 이름이 그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방향 제시가 나타나고 있는데,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종신토록' 이라고 했으니까 “늙어서 죽는 시간까지 네 곁에서 수고가 떠나지 아니하겠다.” 그런 말입니다. 여기서 이 ‘수고’라고 하는 말의 뜻은 ‘힘이 소멸하다’, ‘지치다’ 이런 말로서 “아주 힘이 소멸해서 지칠 때까지,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지쳐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이런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으니 인간은 누구나 다 이 길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과학 문명이 지금보다 열 배나 더 발달한다고 해도 그때는 일이 더 많아집니다. 이러한 말씀을 기초해서 나의 인생을 한번 평가를 한다면, 인생이 왜 사는가? 평생 고생만 하는데 안 살면 안 되는가 말입니다. 바로 이 문제 해답“이 일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정확한 하나님 백성의 인생 철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신 뜻은 “반드시 세상에서 내가 해야될 일
이 세상에 있어서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나는 존재한다!” 이렇게 우리를 봐야 합니다. 실제로 사람이 가장 살 맛이 날 때는 언제인가? 이 세상이 나를 필요로 했을 때 기쁘단 말입니다. 필요 없다고 버리는 날 사실상 내 인생은 살맛 나는 인생은 끝이 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저주받던 개념으로 일이 주어졌는데, 하나님은 그 시간부터 인간이 일해서 기쁨이 주어지도록 노동을 축복하셨습니다. 일이 너무 바쁠 때는 우리가 항상 말합니다.
‘조용하게 좀 쉬었으면 좋겠다!’ 한 달만 쉬어보세요. 일이 그리워 못 견
디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를 기다리는 일의 터전이 있다는 것 같이 행복한 게 없습니다. 종신토록 일하라는 것은 종신토록 행복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역사에나 나라가 망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국민들이 일하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르헨티나에 가서 아르헨티나 목사를 만났을 때 우리 아르헨티나는 옛날 6대 강국 안에 들었었다고! 그런데 이 나라가 왜 이렇게 망했느냐? 아르헨티나의 젊은이들이 일을 싫어하면서부터 이 나라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서 회복하고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지경에 지금 우리가 빠졌다고 그렇게 저한테 말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가 사실 이렇게 경제 국가가 된 것은 제 생각으로는 자원의 혜택이 아닙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입니다. 노동력으로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만큼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민족은 영원하고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할 수만 있으면 종신토록 일 속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일을 하고자 계획을 하고 마음을 쓰면 할 일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그의 삶의 철학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한 복음 9장 4절에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을 한다!” 십계명 가운데도 주어졌습니다. 엿새동안 힘써 내 모든 일을 하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왜 사는가? 일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성경의 제시는 이렇습니다. 첫째
는 창조성입니다. 우리가 하려는 모든 일은 창조적 성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나에게 유익하고 이웃에게 즐거움을 주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오늘 성경말씀에 있는 대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해쳐나가서 기름진 옥토를 가꾸어 싱그러운 곡식과 열매를 산출해 내는 창조성이 있어야 그게 일이란 것입니다. 일은 열심히 했는데, 누구보다도 순교자적으로 했는데 창조적이 아닌 것들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날마다 우리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게 됩니다. 절도라든가, 강도라든가 무슨 사기 행각이라든가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런 일들은 어떤 면에서 다른 일보다도 힘이 듭니다. 생명 내놓고 하는 투기성이 있습니다. 아니, 남의 생명을 위협하고 돈을 빼앗으려고 할 때 얼마나 독한 마음을 가져야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한순간에 자기 생명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순교자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악’이라고 그럽니다. 일은 순교자적으로 했는데 그 자체가 악이 되는 그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창조성이 없습니다. 남의 집에 들어가서 그렇게 깊이 감춰둔 보물을 훔쳐 가지고 나오려면 얼마나 기막히게 눈을 돌려야 하고 가슴이 뛰겠습니까? 그건 보통 담력을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도둑 일을 하는 사람을 보고 용감한 시민이라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게 창조성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도박하는 사람들을 보면 밤을 꼬박 새웁니다.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얼마나 머리회전과 눈동자를 빨리빨리 굴리면서 일을 합니까? 그런데도 사회악으로 취급합니다. 이런 일들은 열심히 했지만 창조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책에 재미있는 제목이 붙어서 책 한 권을 사서 봤습니다. 각설이
출신이었던 목사님이 간증으로 쓴 그런 책이었어요. 재미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각설이가 쉬운 줄 아는데, 각설이가 얼마나 힘드는가? 그 힘든 부분을 이야기했습니다. 365일 굶지 않기 위해서 머리를 써야 하는데 얼마나 머리를 써야 하는지, 우선 각설이들도 자기들의 영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기 관할 구역이 딴 놈이 밥을 얻으러 오면 전쟁을 해야 합니다. 아주 피나게 싸워야 하는 그런 투쟁이 있어야 하고, 밥 줄만한 집의 식사시간을 다 기억하고 있어야 하고, 거절하지 않고 언제나 주는 집과 10번을 가도 안 주는 집 구박만 하는 집을 구분해야 되고, 모든 가정의 가정 주부나 가정부의 성격 파악이 필요하고, 사람 개가 있는 집 없는 집을 항상 기억해야 되고, 실적이 좋아야 두목한테 얻어맞지 않고, 최소한 각설이 타령은 멋지게 부를 줄 알아야 됩니다. 두목이 어느 날 병이 들어 죽으면서 제자들에게 유산을 물려주었다고 그럽니다. “사랑하는 동지들이여! 그 동안 수고 많이 했다. 내가 이것을 유산으로 물려줄 터이니 이것만 가지면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 유산이 무엇이냐 하면 낡아버린 공책 하나를 주었는데 거기에 보니까 온 동네 집 제삿날과 생일날이 적혀 있다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각설이나 강도나 절도나 그런 용기로 창조적 일을 하면 얼마나 성공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보십시오. 창조와 구원입니다. 나의 일을 통해서 되어지는 일이 하나님의 창조성과 구원성의 도움이 될 때 우리는 일하는 기쁨과 행복을 거기서 얻을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오늘 말씀에는 “네 얼굴에 땀이 흘러야” 라고 일의 성격을 말
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의 노동은 축복이 됩니다. 우리 사람의 몸에서 땀이 밖으로 나오는 것은 건강의 절대적 유익이 된다는 상식 때문에 이 도시 문화에서는 사우나 문화가 그렇게 발달한 겁니다. 요즘에는 아예 불 가마로 변했더군요. 노폐물이 몸 속에서 터져 소멸되는 것은 큰 병을 미리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 땀을 흘려 노동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눈물을 흘리면 뇌에 대단히 좋은 작용을 해서 뇌세포가 건강해 지도록 그렇게 의학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콧물이 터져 나오는 것은 병이 해결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감기는 화학약품을 먹는 것보다 콩나물국 뜨겁게 먹고 땀흘리면 떨어지지 않습니까? 땀은 그런 효과가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날마다 아프다고 골골대는 사람 치고 일찍 죽는 사람 못 봤어요. 작은 아픔을 통해서 큰 아픔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얼굴에 땀이 흐르도록 노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건강 법칙으로서 그렇게 사는 것이 종신토록 복이 될 것이다. 땀을 흘리고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는 하나님의 일의 축복! 하나님은 그때부터 노동을 축복하셨어요.

  미국에도 복권 게임이 많아요. 1$만 잘 투자하면 땀을 흘리지 않는 불로소득이 평생을 써도 못다 쓸 만큼 수백만, 수천만 달러 벼락부자가 된단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땀 흘리지 않는 때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벼락치기 부자가 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가? 이것을 언론에서 일일이 다 조사를 했어요. 그런데 결국 복권 부자들은 90% 이상이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기자들이 가서 질문합니다. 그런 것을 조사하면서 “당신이 복권에 당첨되고 나서 그 많은 돈이 내 돈이 된다라고 생각했을 때 당신 생각에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많은 대답이 이혼이었습니다. “이 많은 돈만 가지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계획한 생각이 제일 많았습니다.” 다들 그렇게 대답해요. 그렇잖아요? 내 경우를 공개하라고 말한 사람도 많아요. 1989년도에 700만불 복권 당첨된 알버트 트웬시가 돈 타자마자 본부인과 이혼하고 자기 맘에 드는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3년만에 파산 선고 냈어요. 본 부인이 돈이 그렇게 많은데 12살, 13살 양육비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고소를 했어요. 이미 돈은 다 써버렸고… 18개월 징역을 살았어요. 땀흘리지 아니한 행운이 갖다준 불행이 되었어요. 하나님의 원리는 땀을 흘려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전 세계에서 신체적 조건이 가장 우수했던 사람들이 아메리칸 인디언들입니다. 제일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다 병들어서 지금 멸종 위기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말입니다. 땀흘리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미국 정부가 주는 너무 좋은 혜택 때문에 인디언들은 다른 사람보다 혜택을 정부로부터 아주 많이 받습니다. 왜? 그들이 그 땅의 주인이었는데 백인들이 와서 뺏었잖아요? 그러니까 그의 후손들을 우리가 돌봐주어야 한다 해서 국가에서 생활비를 뭐, 얼마든지 혜택을 다 주었어요. 그때부터 이 인디언들은 그 험악한 산촌을 말 타고 넘어가면서 활을 쏘고 하던 사람들이 매일 술만 마셔 가지고 거의 90% 이상이 알코올 중독으로 죽고 지금은 멸종 위기입니다. 그래서 인디안 보호 구역이 생겨서 “너희들이라도 제발 죽지 말고 살아라!” 온갖 혜택을 다 주면서 보호하고 있지 않습니까? 땀흘려 일하는 민족이 영원하고 종신토록 수고하는 사람이 종신토록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요한 복음 15장 1절 이하를 보세요.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여기 일을 말하는 겁니다. “왜 일을 하지 아니하느냐?” 일하지 않고 열매 없는 가지는 성경말씀에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창세기 1장 2절의 하나님을 보십시오. 창조의 일을 하시고 자신이 자신의 일을 보고 감탄한 게 창세기 1장 2절이에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내 마음의 행복과 기쁨은 창조성 있는 일을 한 다음에 나의 자취를 돌아보는 것! 그게 가장 큰 행복이 됩니다.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찬이슬 맺힐 때에 즉시 일어나 해 돋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큰 일이 아니어도 자기 사명의 처소에서 주어진 평범한 일을 열심히 하면서 그 속에서 주어지는 작은 행복을 크게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삶이 됩니다.

  그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소홀히 생각하는 일의 성격이 있는데, 그것이 휴식과 안식입니다. 하나님도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고 나와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정해주신 안식법은 인간이 받은 즐거운 축복이 됩니다. 우리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절대 필요한 것이 휴식의 시간입니다. 일과 휴식을 훌륭하게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삶의 조건이 됩니다. 하나님이 안식법 선포를 하실 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문 안에 일하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라!” 심지어는 유축까지도 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남종이나 여종이나 이런 사람들은 평생을 통해서 하루도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노예 신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 가운데 선포하심으로 누구도 이 휴식 시간에 자유함을 누리라고 그렇게 하나님이 정해 버리신 것입니다. 인간의 신체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끝없는 노동의 권한에서 자유함을 얻고 휴식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어야 재창조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일하는 만큼 휴식의 조화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법으로 정해 놨습니다. 그 법을 잘 따르면 됩니다. 우리 사람 몸에 병이 생기는 것은 그 질서에 조화가 깨어졌을 때 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쉼을 가져올 수 있는 자기 즐거움을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우리 삶에 필요합니다. 여행이라든가 스포츠라든가 취미활동, 문화생활, 대화의 만남,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요즘의 생활 문화는 휴식 공간을 효과 있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멋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죽어라고 일만 하는 사람은 멋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멋대가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 휴식이 반드시 돈을 많이 써야 되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디어를 내서 얼마든지 지혜롭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오래 전부터 나는 내 목회 인생에 평생에 꼭 일년만 안식년
을 가지기로 계획했고, 교회 앞에서 다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년이 언제냐 하면 2003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 계획했어요. 제 아내도 그렇게 기다리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갈보리교회에 오게 되는 바람에 그 일은 앞으로 칠 년 후로 연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아내한테는 멋대가리 없는 남편으로 이미 찍혔습니다. 성경에 보면 땅도 쉬게 하라고 그랬습니다. 땅도 휴식을 취해야 땅의 기능이 보존이 됩니다. 계속 파고 곡식을 내라고 달달 볶아대니까 땅이 견디지 못하고 병이 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지구 전체가 병이 들어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에 그렇게 했잖아요? 성경말씀대로 돌아가야 된단 말입니다.

우리 한국의 모든 땅이 노쇠해서 병약해졌기 때문에 병충해를 이겨내지 못함으로 모든 식품이 모두 농약에 의존해서 생산하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들은 지금 독약을 먹고사는 거란 말입니다.

  오늘의 마지막 말씀!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일생동안 땀흘려 일
했습니다. 많은 열매도 얻었고 큰 업적도 남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필경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종착 지점을 생각하면서 일해야 됩니다. 그래야 보람있는 일을 할 수가 있고 뜻 있는 땀을 흘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이 세상의 육신에 속한 모든 영광은 무덤에 들어가는 것이다!
나의 인생이 흙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에 내가 그토록 일평생 땀을 흘려 일한 것이 억울하거나 아깝지 않아야 합니다. 참 잘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그래야 일입니다. 나폴레옹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친구의 말을 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천하를 다 가졌던 대왕이시여! 그대가 어찌 이렇게 여섯 자 땅속에 누워 있단 말이오!” 영웅도 재벌도 천하장사도 클레오파트라도 다 나중에는 “꿈인가 하노라...”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종말론적 인생을 살아라! 알렉산더 대왕에게 최고로 충성하던 신하가 전쟁 중에 부상을 입었어요. 그래서 쓰러져 죽을 때가 되었잖아요?

  이 알렉산더가 참 자기에게 충성을 다하고 싸워주던 그 신하가 누워있는데 거기 문병을 가서 약속을 했습니다. “여보게! 그 동안 자네는 나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였네! 자네 소원이 뭔가? 자네 소원은 무엇이든지 내가다 들어주겠네! 어서 말하게!” “대왕님! 나를 일년만 더 세상에서 살게
해주십시오.” “아니, 여보게! 그건 하나님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내가 그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랬더니 그 신하는 눈을 감으면서
“그럴 줄 알았다면 하나님께 충성할 것을...” 하며 죽었습니다.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창세기 초반부터 나타난 하나님의 기쁨은 자신이
하시는 일을 보고 자신이 심히 좋았어요. 내가 일한 것을 보고 내가 감격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삶이 됩니다. 창조적인 일에 열심히 땀을 흘리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는 날 내 영혼이 영생의 쉼을 얻을 수 있는 삶!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입니다. 노동으로 인해서 거칠어진 손과 가득해진 얼굴의 주름살을 보면서 오히려 이렇게 된 것이 얼마나 훌륭하고 감사한가? 나의 삶이 나의 쉼이 좋은 증거가 되게 하려는 삶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휴식의 계절을 맞아서 자연을 찾아가서 안식을 취하며 더 좋은 삶의 철학이 정리되어서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는 8월 달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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