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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란 무엇인가?(9) “고라:거스리고 원망하고 대적하고” / 민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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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란 무엇인가?(9) “고라:거스리고 원망하고 대적하고” 
민16:1-21

며칠 전에 기독교 티비에 녹화된 김삼환 목사님의 설교를 감명 깊게 들은 일이 있습니다.

욥42:1-6 말씀을 본문으로 회개를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회개가 신자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가 신자의 생활에 있어서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할 때 죄인이 처음에 신자로 태어나고 회개할 때 신자가 마지막에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신자가 마지막에 “나는 무익한 죄인입니다 나는 망할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회개할 때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운동경기에 있어서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지막 마무리가 가장 중요한데 신자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마무리가 회개라고 강조했습니다.

욥의 마지막 마무리가 회개였습니다.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이 마지막에 진정으로 회개했을 때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주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개할 때 기쁨이 생기고 회개할 때 평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개인생활에 기쁨이 없고 가정생활에 기쁨이 없고 직장생활에 기쁨이 없고 교회생활에 기쁨이 없다면 그 이유는 회개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인생을 새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회개를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년과 노년에 이르러 회개의 눈물이 메말랐다면 그것은 가장 큰 불행이라는 것입니다. 회개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회개가 가장 큰 은혜요 가장 큰 축복입니다. 회개는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고후7:10). 회개가 없는 사람은 구원과 상관이 없고 천국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일 처음에 선포한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강도는 마지막 순간에 회개했기 때문에 낙원 곧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분부하신 말씀도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제일 처음 설교에서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설교했습니다. 회개는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이고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마지막에 회개를 힘썼고 프랜시스가 마지막에 회개를 힘썼고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을 비롯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회개를 힘썼습니다.

오늘 아침 죄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아홉번째 설교를 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회개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거스리고 대들며 회개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고라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거스리고 대들며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고라는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고 성막 봉사의 직분을 맡은 성별된 사람이었지만 마지막까지 거스리고 대들며 회개하지 않다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았습니다.

제가 최근에 이전보다 심각한 마음으로 설교를 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강변의 성도들이 모두 오른 편에 서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자기 안일 자기 편안 자기 행복에 치우쳐 있는 사람은 왼 편에 설 수 있는 위태로운 형편에 처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강변의 성도들이 모두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합니다. 눈물의 회개를 가슴에 지니고 모두 천국 문으로 들어가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합니다. 여러분들 모두 주님의 오른편에 서기를 바라지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모두 회개하고 구원의 축복과 천국의 축복을 받기를 바라지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 이제 고라와 그의 당이 범한 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첫째 고라와 그의 당은 모세와 아론을 거스렸습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오십인과 함께 일어나 모세를 거스리니라”(1,2). 고라와 세 사람이 당을 지어 하나님이 택하시고 세우신 종 모세를 거스렸다고 했습니다. 혼자서 하나님의 종을 거스리는 것도 죄인데 여럿이 당을 지어 하나님의 종을 거스린 것은 더 큰 죄였습니다. 성경은 당을 짓는 것을 죄라고 규정했습니다. “오직 당을 지어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보응하시리라”(롬2:8). 고라는 당을 지어 모세의 영적 지도력에 대항했습니다. 모세의 지도력이 자기들의 지도력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것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3). 하나님이 택하시고 세우신 종을 거스리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거스리는 것과 같은데 고라는 당을 지어 하나님의 종을 거스리고 하나님을 거스렸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남이 자기보다 높아지면 시기와 질투가 생기고 거스리며 대항하게 됩니다. 남이 자기보다 은혜를 받고 복을 받으면 시기와 질투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았을 때 가인의 마음 속에 시기와 질투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했을 때 에서의 마음 속에 시기와 질투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했을 때 사울왕의 마음 속에 시기와 질투와 반항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뜻에 따라 어떤 사람은 교회의 담임 목사로 세우시고 어떤 사람은 교회의 장로로 세우시고 어떤 사람은 권사와 집사로 세우십니다. 어떤 사람은 몸의 눈으로 어떤 사람은 몸의 귀로 어떤 사람은 몸의 손으로 어떤 사람은 몸의 발로 만들어 주십니다. 서로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귀하게 여기고 서로 협력하며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시기 질투하고 분쟁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신의주 제이교회의 김기범 장로는 아들 같은 젊은 목사 한경직 목사를 너무 잘 받들어 섬겼고 평양 산정현 교회의 조만식 장로는 자기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주기철 목사를 너무 잘 받들어 섬겼습니다.

그런데 고라와 그의 당은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의 지도력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당을 지어서 불만을 토로하며 모세를 거스렸습니다. 유명한 족장들 250명과 당을 지어 모세를 거스렸습니다. “이백오십인과 함께 일어나 모세를 거스리니라.” 모세의 영적 은사와 지도력에 대한 불만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이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강변교회에 젊은 목사가 담임 목사로 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들을 잘 받들어 섬기므로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을 회사의 직원들처럼 대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회사의 인사과장 정도로 대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왕 중의 왕이시고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고라와 그의 당이 범한 죄는 모세의 영적 지도력에 불만을 품고 모세를 거스리고 하나님을 거스린 것이었습니다.


둘째 고라와 그의 당은 자기들의 분수를 알지 못했습니다.

고라와 레위 자손들은 하나님이 특별하게 구별하여 택하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막에서 봉사하는 귀한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에게 가까이 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귀한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오늘날 장로님들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라와 레위 자손들은 성막 봉사의 직분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고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모세의 선지자 직분을 시기 질투하며 원망했고 아론의 제사장 직분을 시기 질투하며 원망했습니다. 사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봉사의 종교인데 사람들은 봉사를 싫어하고 지도하고 다스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에게 다스리는 자들이 되지 말고 섬기는 자들이 되라고 분부했습니다.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고 다스리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을 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 찌니라”(눅22:25).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섬기는 자로 세상에 왔다고 말씀했습니다.

모세가 고라와 레위인들을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신 것이 작은 일이 아니어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리는도다 아론은 어떠한 사람이관대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7-11).

자기의 분수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2장-4장에서 자기를 약한 자라고 했고 무슨 물건과 같은 존재라고 했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고 만물의 찌끼라고까지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장에서는 자기를 만삭되지 못해서 난자라고 했고 엡3장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고 딤전1장에서는 자기를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분수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혜와 직분을 황송하게 여기며 감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라"(딤전1:12).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16:6). 고라와 그의 일당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맡겨주신 직분을 황송하게도 감사하게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불평과 원망을 나타내보였습니다. 1달란트 맡은 자와 같은 불만을 나타내보였습니다. 자기 분수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셋째 고라와 그의 당은 회개의 기회를 대적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모세는 고라와 그의 당을 타이르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회개하지도 않았고 모세의 부름에 응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모세가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보내었더니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12). 그들은 계속해서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13-14).

한번 마음이 삐딱해진 사람은 타이르는 말을 들어도 소용이 없고 충고를 들어도 소용이 없고 책망을 들어도 소용이 없고 설교를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저들은 점점 더 거칠게 대들었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대적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심히 노했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모세도 노하고 베드로도 노하고 바울도 노합니다. 모세는 심히 노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암시했습니다. “주는 그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고라에게 마지막 경고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라는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아 놓고 모세와 아론은 대적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21).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31-33). 고라와 그의 당은 결국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모세를 거스리며 대적하다가 무서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250명이 망했고 그 이튿날엔 일만 사천 칠백명이 망했습니다(49).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회개하면 삽니다. 회개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고라와 비슷한 죄를 범하고서도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아론이었습니다. 아론도 미리암과 함께 모세를 비방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론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자 즉시 무릎을 꿇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순종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제사장의 직분을 끝까지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민12장과 16장과 17장과 18장에 나옵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모세의 사생활과 모세의 지도력을 비방했습니다]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자기들의 분수를 알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서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하나님은 자기의 종을 거스리는 것을 그대로 방관하시지 않습니다]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내 종 모세는 나의 온 집에서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민12:1-10). 바로 이 장면에서 아론이 무릎을 꿇고 모세와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다 내 주여 우리가 우매한 일을 하여 죄를 얻었으나 청컨대 그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10,11). 모세가 무릎 꿇고 중보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아론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민16:46,47에는 아론의 순종이 나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민16:46). 아론은 즉시 순종했습니다. 민17:8에는 회개하고 순종한 아론을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축복하시고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민18:1에는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다시 제사장 직분을 맡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족은 제사장 직분을 담당할 것이니라.”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거스리고 대들며 회개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회개가 없는 자에게는 구원도 없고 천국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막 봉사의 일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무력화 시키는 유일한 해독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자기의 체면과 자기의 지위와 자기의 주장과 자기의 옳음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오직 십자가만을 붙잡는 것이고 오직 주님의 옷자락만을 붙잡는 것입니다. 회개는 주님의 종들을 높이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방향 전환입니다. 유교적인 전통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남자들이 회개하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바리새 전통에 사로잡혀 있던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회개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나타난 회개자들은 대부분 이방인들이었고 세리와 창기와 같은 죄인들이었고 문둥병자나 중풍병자와 같은 병자들이었습니다.

김삼환 목사님의 말씀을 다시 반복하므로 말씀을 맺습니다. “회개는 신자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 회개는 신자의 생활에 있어서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 회개할 때 죄인이 처음에 신자로 태어나고 회개할 때 신자가 마지막에 천국으로 옮겨집니다. 개인생활에 기쁨이 없고 가정생활에 기쁨이 없고 직장생활에 기쁨이 없고 교회생활에 기쁨이 없다면 그 이유는 회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인생을 새롭게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회개를 힘써야 합니다. 장년과 노년에 이르러 회개의 눈물이 메말랐다면 그것은 가장 큰 불행입니다. 회개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강변 성도 여러분들, 고라의 길로 가지 말고 아론의 길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거스리고 원망하고 대적하는 길로 가지 말고 회개하고 순종하고 봉사하는 길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이 살고 교회가 살고 민족이 사는 길이 회개하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회개의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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