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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니엘과 같이 되는 것 (단 6: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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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과 같이 되는 것
단 6: 19-24

  오늘은 다니엘서 6장 19절에서 24절까지 있는 말씀가지고 "다니엘과 같이 되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설교 제목을 "∼것"이라는 식으로 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 저희가 은혜 받으며 부르는 찬양 중에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라는 가사가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모두 아홉 글자입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제목인 "다니엘과 같이 되는 것" 역시 아홉 글자입니다. 설교 마친 후에 "내가 원하는 한가지 다니엘과 같이 되는 것"이라고 찬양을 불러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니엘서는 읽고 또 읽어봐도 다니엘의 하나님이 얼마나 멋진 하나님인지 모릅니다. 너무 멋지고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요,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만 좋으시다 라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믿음도 생활도 다니엘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생활은 좋지 않게 하면서 다니엘이 받은 복만 달라고 하면 주실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목을 "다니엘과 같이 되는 것"이라고 정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주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다니엘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니엘이 우리와 전혀 다른 특별한 사람이기에 주님의 기쁨이 된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본문에 의지하여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항상 섬기는 다니엘 (19-20)

  "항상"이라는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변함 없이 끈질기게 또는 한결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섬겼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9절과 20절을 보면,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다니엘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소년시절에 대제국 바벨론에 의하여 유대가 망하면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 후에 왕족이나 귀족 중에서 열 명의 소년들을 뽑아서 바벨론 왕궁에서 교육을 시키는데 그때 다니엘이 뽑혔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소년이 그 나라에서 뽑혀서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나라가 망하고 자신은 뽑혀서 원수의 나라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니엘이 왕궁에 가서 보았더니 만만 진수가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데 그것이 전부 바벨론이 섬기는 태양신에게 제사 드렸던 제물입니다. 유대인인 다니엘로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그것을 먹으면 자신의 육신도 마음도 믿음도 모두 더러워진다고 하며 먹지 않고 채소만 먹기를 고집하였습니다. 믿음 때문입니다. 이미 소년 때에 철저하게 믿음생활을 하였다는 뜻입니다. 공부한 후에는 일을 하였는데 너무 잘하니까 바벨론에서 방백을 삼았습니다. 방백이 되었을 때에도 믿음생활을 잘 하였고 바벨론제국의 국무총리가 된 후에도 소년 때의 믿음생활과 조금도 변함 없이 항상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본문 6장은 바벨론시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벨론이 메대파사 연합군에게 정복당하고 메대사람 다리오가 왕이 되어 통치하는 시대가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리오왕의 통치가 끝난 후에 파사사람 고레스가 왕이 된 시기까지 다니엘은 국무총리를 하게 됩니다. 시대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도 다니엘은 여전히 국무총리직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다리오왕이 가만히 지켜보니 다니엘이 하나님을 너무 잘 섬겼습니다. 일을 시켜보면 성경에 있는 대로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허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리오왕은 다니엘을 몹시 아끼고 신뢰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왕의 총애를 받자 그 나라 토박이들의 시기와 질투가 대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굴러 들어온 돌이 자기들 위에서 좌지우지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참소하는 자들이 다니엘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흠잡을 데가 없었고 단지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대적들은 이것을 흠으로 잡았습니다. 사실은 흠될 것이 아니지만 큰 잘못이나 되는 것처럼 조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무식한 할머니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글자를 알면 몇 자나 더 압니까? 글자 몇 자 안다고 거만하지 마십시오. 또 기도를 가난한 사람들이 아쉬운 것이 많아서 하는 것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 기도라면 여러분들은 그 가난하다는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잘 살고 있습니까? 다니엘보다 더 잘 살고 있습니까? 다니엘은 대제국의 국무총리이면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자기의 영화를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얼마나 어수선합니까? 편히 잠자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가장 절실할 때입니다.

  대적들이 다니엘의 기도하는 것을 흠으로 잡아서 왕을 미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에게 고하기를, "대왕은 신과 같은 분인데 대왕의 이름이 아닌 다른 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가 있으면 큰 변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든지 대왕에게 반역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사자굴을 깊이 파고 몇 일 동안 사자들을 굶긴 다음에 그 사자들에게 먹이로 주어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는 그리하기로 동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내용의 조서에 어인을 찍어 반포했습니다. 왕이 어인을 찍으면 자신도 변경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조서대로 하면 다니엘이 영락없이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왕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기도하던 다니엘이 붙잡혔습니다. 왕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바벨론을 뒤엎은 메대파사제국의 대왕을 그때당시 누가 감히 거스릅니까? 천하의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다리오왕도 자신이 아끼는 다니엘을 보호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놓고 봉했습니다.
  대적하던 사람들이 이제 곧 다니엘은 죽었다고 하며 밤새도록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다니엘을 너무 아끼는지라 밤새도록 한잠을 못 잡니다. 그리고 새벽이 되자 사자굴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그 하나님이 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라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항상 섬김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한결같이 믿고 사랑하고 섬기는 그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더냐 라는 뜻입니다. 다리오왕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지켜보고 다니엘의 믿음을 그렇게 평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항상 섬긴 다니엘이었습니다.

  제가 38년 전에 결혼을 하였는데 그때는 서약을 다음과 같이 하였습니다. "신부 김기옥 양은 신랑 김창인 군을 남편으로 삼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가난하거나 부요하거나 한평생 길이 사랑하며 귀중히 여기고 도와주고 위로하며 고락간에 변치 않고 생전에 일정한 부부의 대의와 정조를 굳게 지키기로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약합니까?" 또 저에게도 같은 서약을 하였습니다. 이 말대로 하면 괴로우나 즐거우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가난하거나 부요하거나 한결같이 이 남자, 또 이 여자를 사랑하겠느냐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이 서약을 생각하면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가난하거나 부요하거나 일평생 하나님만 사랑하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다니엘에게 이렇게 물었다면 그는 한손이 아니라 두손을 번쩍 들고 큰 소리로 "예"라고 분명히 서약했을 겁니다. 다리오왕이 지켜보니 한결같이 또는 변함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다니엘이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이 그렇게 멋지다면 우리도 다니엘과 같은 믿음, 다니엘과 같은 인격, 다니엘과 같은 생활로 다니엘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받은 복만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면 다니엘과 같이 항상 섬기면 복 받을 수 있습니다. 항상 섬기는 다니엘처럼 말입니다.

  둘째, 도우심을 받는 다니엘 (21-22)

  우리가 이 사람에게 또는 저 사람에게 도움 받으며 산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는 도움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은 더 도와주지 못해서 아쉬워하시고 모든 사람들은 부러워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수록 자랑이요, 영광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서 간증거리가 없다면 그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간증거리가 없다면 큰 문제입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에 왜 다니냐고 물으면 설교 들으러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10년 후에도 그 사람은 역시 설교 들으러 간다고 합니다. 밤낮을 설교 들으러 나와서 비판만 하고 있으니 변화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배를 바로 하면 믿음이 바로 되고 사람이 바로 되고 생활이 바로 됩니다.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1절과 22절을 보면,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자신 사자의 밥으로 주어지고 굴입구를 봉하였기에 뼈도 못 추리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이 사자굴 밑땅에 닿기도 전에 이미 그 천사를 보내셨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고 땅에 떨어진 후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자에게 물려 죽은 다음에 천사를 보내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이미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천사가 사자의 입을 봉했습니다. 그래서 사자는 먹이 감이 떨어졌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아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 날 밤새도록 천사와 함께 지내며 사자를 데리고 놀았습니다. 이것은 돈을 줘도 경험을 못하는 일입니다. 천사에게 돈 줄 테니까 하룻밤 나와 함께 지내자고 해보십시오.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사자를 강아지 데리고 놀 듯이 했는데 돈을 준다고 한들 사자가 놀아줍니까?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 도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사자굴은 땅밑으로 내려 판 것입니다. 동서남북 뚫고 나갈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은 오직 한곳 뿐으로 위에만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살길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위에서 내려온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잘 믿어도 난감한 일이 닥칠 수 있습니다. 다니엘도 자신의 인생이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일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아기를 낳을 때 쉽게 낳습니까? 아니면 죽을 고생하며 낳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만 그 고생을 하고 믿는 사람은 그 고생 없이 낳는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만 고생합니까? 믿는 사람도 똑같이 고생합니다. 아기 낳는 것만 똑같이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외의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사자를 이길 힘과 도움이 하늘에서부터 왔다는 것이 큰복입니다. 복음성가에 있는 대로 환난고초 많으나 이길 힘을 주시니 더욱 크신 은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자를 이길 하나님의 도우심이 큰복입니다. 난감한 일을 당할 때에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도 뚫고 나갈 곳이 없습니다. 위를 보십시오. 나의 도움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서부터 옵니다. 이런 도움을 어디서 받습니까? 천만인이 나를 돕는다고 그렇게 되겠습니까? 대제국을 건설한 메대파사왕 다리오를 누가 당해냅니까? 그런 왕도 못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이렇게 복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난감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도우심을 받은 다니엘처럼 말입니다.

  셋째, 완전 승리한 다니엘 (23-24)

  본문으로 돌아가서 23절과 24절을 보면,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고 하였습니다.

  사자굴에서 사자밥이 되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사자굴에서 끌어 올려서 보아란 듯이 살아 나왔으니 그것은 더욱더 크게 승리한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국무총리로서 다시 집무를 해야 하는데 자신을 사자의 먹이로 주고는 그 날밤에 승리했다고 하며 잔치를 벌였던 참소하던 원수들이 아직도 주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얼마나 불안합니까? 또다시 참소하지 않는다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 때에 다니엘이 왕에게 저 사람들 때문에 불안해서 견딜 수 없으니 처리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을 했습니까? 그런 부탁을 한 일이 없습니다. 왕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참소하던 사람들과 처자식들까지 전부 끌어온 후에 한 사람씩 사자굴로 던집니다. 사람들이 땅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뛰어 올라서 물고 뼈를 부수고 먹어버렸습니다. 완전 승리가 아닙니까? 이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덕분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의 원수는 마귀요, 마귀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우리를 괴롭히던 마귀의 족속들을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 완전히 소탕하고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완전 승리한다는 예표적인 사건입니다. 다니엘에게만 그런 예표적인 사건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살아가는 동안에 다니엘못지 않은 고난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그때마다 다니엘을 도우신 그 하나님의 도우심이 여러분들을 때마다 적합한 은혜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도우심을 받는 다니엘처럼 말입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면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다니엘입니다. 소년 때나 청년 때나 늙었을 때나 한결같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포로의 신세가 되었을 때나 대제국의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나 변함 없이 하나님을 섬긴 다니엘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다니엘입니다. 사람의 도움은 받을수록 괴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은 받으면 받을수록 영광입니다. 다니엘이 죽는 줄만 알았던 그 처지에서 기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보아란 듯이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셋째는 완전히 승리한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살아 나왔고 총리로 복직되었지만 참소하던 자들은 주위에서 여전히 노릴 수 있었기에 찜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자발적으로 다니엘의 대적들을 깨끗이 처리해주었습니다. 깨끗한 승리,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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