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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만 섬깁시다. / 마 6:21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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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 : 21 - 24
하나님만 섬깁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 보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늘에 쌓은 보물과 땅에 쌓은 보물입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오늘 본문에서 두 눈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한 눈과 나쁜 눈입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 주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입니다. 다 똑같은 맥락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바르게 섬기는 사람은 성한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재물을 우상시하면서 재물을 섬기는 사람은 나쁜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보물을 땅에 쌓는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면서 신령한 눈으로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놓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성한 눈입니다.(22절)

예수님은 우리의 눈을 가리켜서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등불이 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등불이 하는 역할을 어두움을 밝히는 것입니다. 등불이 하는 역할은 어두움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등불이 꺼져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두움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그러니 눈이 성해야지 온 몸이 밝지,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은 물론 예수님은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눈이 성하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스데반 집사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돌에 맞아 순교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눈을 들어서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의 신령한 눈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신령한 눈이 활짝 열렸기에,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환하게 빛났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나쁜 눈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소경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들에게 신령한 눈을 주셨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신령한 눈이 활짝 열리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스데반 집사처럼 천사의 얼굴이 되어서 어떤 환경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므로 하나님이 은혜와 축복을 받아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언제나 환하게 빛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나쁜 눈입니다.(23절)

  여러분, 왜 우리의 눈이 나빠집니까? 우리의 신령한 눈이 어두워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이유를 뭐라고 말씀합니까? 세상에 눈이 어두워서 그렇습니다. 다시말해서 황금에 눈이 어두워서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눈이 나쁩니다. 그들은 땅만 바라보면서 삽니다. 그래서 땅에 보물을 쌓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되는 세상이라고 믿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 중에서도 세상의 것 때문에 바르게 예수를 믿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두움을 밝혀야 할 세상의 빛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는 빛조차도 어두우면 누가 이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겠습니까? 이 세상은 그만큼 어두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돈만 알고, 재물만 밝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는 달라야합니다. 우리는 신령한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는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사랑, 정성, 진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물질 때문에 우리의 신령한 눈이 어두워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셋째로, 두 주인에 대해서 살펴봅니다.(24절)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두 주인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24절 끝 부분에 보니까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입니다. 이 두 주인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와 "저"입니다.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이들 두 주인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방향이 서로 다릅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엣 것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세상과 재물은 우리에게 땅을 바라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재물은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면서 땅에 보물을 쌓아두라고 재촉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겸손하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재물은 우리에게 큰소리치면서 떵떵거리며 살라고 요구합니다. 이처럼 서로 간에 요구하는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동시에 두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은 결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두 주인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을 온전히 섬김으로서 물질을 다스리는 복을 얻기 바랍니다. 그리고 위엣것을 사모하며 늘 하나님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고 영안이 밝아서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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