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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1) / 왕상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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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 복 (1)♣
왕상 19:5-8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우리 주님의 사랑이 이 시간 성도 여러분에게 말씀을 통하여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삶을 비관한 자살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카드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을 비관하던 30대 가장이 어머니와 아들을 목 졸라 살해하고 아내마저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존속살인 등)로 조모(34?회사원? 용인시 풍덕천동)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장애인 아들의 카드 빚을 걱정하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30일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이씨는 6200만원의 카드 빚을 지고 있는 큰아들을 위해 지난 28일 3200만원을 준데 이어 이날 오전에 다시 은행에서 3000만원을 대출 받아 건네준 뒤 “카드 빚을 갚았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까운 생애를 마감하였습니다.

남편의 주식투자 손실을 비관한 30대 주부가 두 자녀를 숨지게 한 뒤 자신은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투신자살 하였습니다. 지난 31일 오후 9시55분쯤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구영리 I 파크맨션 13층에 사는 장모(41·회사원)씨의 부인 오모(37)씨가 1층 화단에 떨어져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성적 비관과 실연을 이유로 여고생 2명이 아파트에서 함께 투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31일 새벽 1시15분쯤 서울 방화동 D아파트 신축현장 옥상에서 김모(17·고2),정모(18·고1)양이 떨어져 숨진 것을 친구 오모(17·고2)양이 발견하여 신고했는데
경찰 조사결과 숨진 김양은 2주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임신 4주 째인 사실을 알고 고민해 왔으며, 정양은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힘들어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듯 우리주위에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탈출구를 찾아 자신의 생명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계속해서 재연되고 있습니다. 만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도 하나님 믿지 못하였다면 자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하심을 덧입어 낙심과 좌절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금 하나님의 선지자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오늘은 낙심과 좌절과 절망감속에서 죽기를 간구하고 있는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위로하시며 세워주시는가? 에 대하여 회복이란 주제로 말씀을 증거 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잠을 주셨습니다.(5-6절)

프랑스의 경제학자인 프라스티에는 미래의 인간은 인생의 총 88만 시간 가운데 44만 시간을 잠자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미래에는 여가와 쉼의 문제가 중점적으로 대두되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잠은 가장 기본적인 건강이며 즐거움입니다. 아울러 잠을 건전하게 조절하고 은총으로 아는 것은 영적인 사람들의 기본입니다. 시편기자도 시편 127:2에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고 하였고 예수님도 파도 가운데 배에서 환경을 초월하시고 주무셨습니다. 잠언 3:24은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잠이 달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단 잠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잠을 자지 않고 살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잠이 온다는 것은 우리 몸에 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울러 쉼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번민과 욕심이 많은 사람 즉 죄가 많은 사람은 잠을 제대로 못 잡니다. 다시 말해 쉼과 안식과 평안을 가져다 주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 아무리 좋은 영양식과 비싼 보약을 먹어도 늘 어깨가 처져있고 피곤에 지쳐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는 얼마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지 그 먼 거리를 달려 시원한 로렘나무 그늘아래 들어 누워 이세벨의 협박도 잊은 채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습니다. 더욱이 천사가 어루만져 강제적으로 깨운 후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을 먹고 마시고는 이내 또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이렇듯 휴식에 있어서 잠은 기본입니다.
어제도 잠간의 만남 속에 유귀례 집사님은 강원도 홍천으로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하고 또 변산반도로 낚시와 수영을 하러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가장 기억나는 일은 실컷 잠
한번 자보고 싶은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 여름철 휴가를 방콕에서 보내시기로 한 분도 여러분 계실 것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대신 제가 책을 드릴 때니 집에서 책을 보시면서 방콕 행을 즐기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잠도 잘 오실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5,7절)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하던 엘리야가 피곤에 지쳐 잠들자 그때에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워 잤습니다. 천사가 두 번째 와서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탈진해있는 엘리야에게 다가와서 "네가 지금 왜 여기에 들어 누워 있느냐? 네 꼴이 이게 무엇이냐?"고 꾸중하시지 않고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의 지친 어깨를 주물러 주셨으며, 정신을 차리게 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습니다.

제가 좀 이해가 안되며 안타까워하던 일들 중에 하나는 왜 사람들이 놀러가면서 저렇게 많은 짐 보따리를 들고 가는 것일까? 저 짐 보따리의 대부분은 먹는 것이겠지..... 왜 .... 굳이 무겁게 싸들고 가지말고 가까운 음식점에서 돈주고 간편하게 사먹지 했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여행을 할 때에 가장 큰 문제가 잠자리와 그 다음에는 먹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맛도 그렇지만 ...... 음식값이 차지하는 경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짐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것이 힘은 들지만 그런 대로 더 한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광야 한 가운데 퍼져있는 엘리야 도저히 걸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탈진해있는 엘리야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적으로 육신 적인 공급 즉 떡과 물의 공급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종들에 대하여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니 사람이 알지 못하는 신령한 음식을 주실 것이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배고픔에 대해서는 지극히 민감하면서도 하나님의 종에 대해서는 굶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상관을 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사도 가정을 이루고 있고, 또 그 밑에 가족들이 여러 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족마저 침례요한처럼 약대 털옷에 이슬과 석청을 마시면서 사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본인들은 남편에게 여보 여름휴가비 안나와...... 언제 나오는 거야 ...... 올해는 얼마나 나와 하면서 궁금함 속에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더 물어보면서 ...... 13년을 목회해오는 동안 교회 재정은 물론 어느 누구하나 개인적으로 목사님에게 "목사님 여름휴가 다녀오셔야 되지 않습니까? 목사님과 목사님의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저희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꼴을 먹지요.... 하면서 여기 부족하지만 휴가비 좀 마련해 왔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하고 인사한번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시대에 우리형편에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배부른 소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목회자에게도 그런 쉼과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꼭 기도원이나 수도원의 개인적이 휴식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서 탈진의 징후, burn-out징후를 발견하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마6:31)

주님은 이렇게 제자들에게까지 자상한 배려와 관심을 가지고 저들의 영적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향하여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우리 주님은 오늘도 침체에 빠져 지쳐 있는 인생들을 부르십니다.


세 번째로 호렙산으로 부르심을 통하여 영적권세를 부어 주셨습니다.(8절)

호렙산은 모세가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부르심은 받은 사명의 산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거듭남의 영적 비밀과 성령의 능력과 영적 충만함을 공급해주시기 위하여 종종 우리들을 호렙산으로 부르실 때가 있습니다.

호렙산은 꼭 기도원과 수도원 또는 산상부흥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호렙산은 갑작스런 사고와 아픔을 통하여 병상에서 들어 누워 치료를 받고 있을 때에도 나타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사업의 실패와 좌절과 절망으로 인하여 모든 희망을 꿈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며 도피하고 있을 때의 처소가 호렙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의 실패의 절망에서, 대학진학의 실패에서, 전진을 향한 진군의 나팔소리가 끊겨진 그 어떤 자리에서도 호렙산은 다가올 수가 있습니다.

호렙산이 참으로 귀한 것은 모세와 엘리야도 그랬지만 실패한자에게만 나타나는 하나님의 치료의 산이요 능력의 산이요 권능의 산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현실화되어 현재 우리의 삶에도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가난과 질병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 그것이 문제입니다. 본래의 인간은 진선미, 진실과 선함과 아름다움으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고 살 수 있는 영성이 있었습니다. 바른 양심을 갖고 살아가는 도덕성이 살아 있었습니다. 남을 자기처럼 아끼고 도와주는 사회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끊어졌고, 양심을 속이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스런 존재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것이 인간 불행의 근본 원인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울어도 안되고, 참아도 안되고, 죽어도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 우리 허물을, 우리의 죄악을, 우리의 가난을,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니 대속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나는 공로 없으나 예수의 공로를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내 질병을 담당했다고 믿어야 합니다. 죄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내 죄를 이미 담당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고린도후서 8:9에 "너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거니와 그는 부요하신 자로써 가난하게 사심은 가난하게 산 너희를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하셨으니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는 자, 주님이 버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약한 자라도 십자가를 붙들면 삽니다. 어떠한 절망 상태에 있을지라도 찾아오신 주님을 거절하지 아니하고, 거부하지 않는다면 소망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자기를 찾아오신 하나님, 하나님의 사자를 뿌리치지 않았습니다. 자기 몸을 어루만지도록 내어 맡겼습니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염려를 주 앞에 맡기는 것입니다. 마음의 짐을 주 앞에 맡기는 것입니다. 나의 앞길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떡을 겸손히 받아먹는 것입니다. 생수를 받아 마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새 힘을 얻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엘리야를 새롭게 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엘리야는 자기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기막힌 구렁텅이에 빠져있을 때에 하나님이 내미시는 손을 붙잡았더니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삶에 지치고,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절망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찾아오신 주님, 말씀을 붙잡으시고 다시 한번 일어나십시오. 하나님께서 새 힘을 줄 줄로 믿습니다. 사명이 있는 한은 죽지 않습니다.


넷째로 : 세미한 음성을 통하여 만나 주셨습니다.(12절)

하나님은 사십 주야로 걸어 굴에 도착하여 단잠을 자고난 아침에 하나님이 그에게 "엘리 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엘리야는 "내가 3년동안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노력을 다 기울였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나만 남았는데 나 마저 죽이려해서 내가 이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다 쏟아놓았습니다. 엘리야의 불평에 하나님은 전혀 놀라지 않으시고 새로운 사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 겁쟁이야!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야단을 치지도 않으셨으며 "무슨 소리하느냐? 너 혼자라니 아직까지 때묻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이 7000명이나 있는데 그들과 함께 협력하여 일하지 않고 너 혼자 의인인척 행동하고 네 스스로 지쳐 자멸해놓고 그 원망을 나에게 하다니 이런 부끄러운 사람!"하며 충고하거나 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분노와 상처 미움 원망 불평들을 잊는 그대로 다 받으셨습니다. 때로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불평 원망 미움 분노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내려놓지 않으면 병을 얻거나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옥수수 밭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고 말하므로 자신의 갈등의 문제를 해결한 재단사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내 속에 울고있는 나에 대하여 하나님께 털어놓고 고백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처나 아픔이나 고통을 하나님께 내어놓아야 합니다. 또한 다른 중보 기도 자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로 하여금 내어버리도록 하셨습니다. "엘리야야! 너를 좌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를 근심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침체가운데 있을 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우리의 침체를,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그런 슬픈 기억들 아픔 상처들을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십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 모두 누구라도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좌절하고 절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좌절이 하나님의 좌절이 아닙니다. 우리의 침체가 하나님의 침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침체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쉼을 주시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모든 좌절을 하나님께 내어놓으시기를 원하시며,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의 침체와 좌절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쉼과 안식과 치료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믿고 우리의 문제를 영적 호렙산으로 가지고 갑시다. 특별히 늘찬양교회가 그런 호렙산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는 저와 여러분의 중보기도 팀이 호렙산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도 힘들거든 조용한 기도원이나 수도원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와 명상과 말씀을 통해 세미한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치료와 영적 회복을 누리시고 돌아오시는 귀한 여름휴가철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형편이 안되어 휴가를 못 떠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교회에서 마련한 내적 치유에 필요한 여러 도서들을 읽고 묵상하므로 다시금 새롭게 거듭 태어나는 귀한 휴가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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