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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2) / 왕상 1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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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 복 (2) ♧
왕상19: 9-18,2003.08.10.늘찬양교회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우리 주님의 사랑이 이 시간 성도 여러분에게 말씀을 통하여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지난 한 달 동안 우리는 회복에 대한 설교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두에 자살에 관한 빅뉴스 등을 다루었는데 이번 주에는 세상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자살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것은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자살 사건입니다. 그런가하면 정회장의 투신자살에 충격을 받은 80대 실향민이 상봉무산에 대한 충격으로 독극물을 마시고 목숨을 끊은 데 이어 우울증을 앓던 30대 여성도 이에 영향을 받아 16층 아파트 난간에서 투신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런가하면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근무하던 송모 차장(40)이 국민연금제도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회복에 대하여 주제를 정하고 자살에 대하여 집중보도 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는데 사회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특집기사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련의 자살사건들과 선지자 엘리야가 탈진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들도 절망하고 자살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이 시대 절망과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연 절망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영적 회복은 가능한가? 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씀드리도록 합니다.

지난주간 엘리야의 회복(1)에 대하여 말씀드리면서

첫째: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잠을 주셨으며,(5-6절) 둘째: 먹을 것을 주셨으며,(5,7절)셋째: 호렙산으로 부르셨다,(8절)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없이 홀로 서기를 감행하다가 스스로 절망의 늪에 빠져버린 채 절망의 나락에서 잠을 자고 있는 엘리야를 하나님은 버리시지 아니하시고 로뎀나무 아래로 찾아오셨듯이..... 그 어렵다는 교회를 건축하고 13년이나 되는 기나긴 세월을 IMF와 그에 따른 경제위기를 그리고 성도들의 떠남과 무관심 속에서도 굳굳히 지켜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임한 외로움과 목쉼과 어깨통증으로 인하여 고통하며 탈진의 수렁에 빠져 ..... 기도한답시고 새벽강단에 내려가서는 들어 누워 잠만 자는 목사를 ....... 하나님은 버리시지 아니하시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회복시키셨듯이 저와 여러분도 회복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잠들어 있었지만 엘리야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잠들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모든 것을 포기하였지만 하나님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소명도, 이스라엘의 영적 갱신도, 갈멜산의 승리도 다 내 던져버렸지만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엘리야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은혜에 무감각했지만 하나님의 가슴은 여전히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찬양의 이유이며 능력의 근원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사랑은 상대적이고 계산적입니다. 나의 사랑이 식어지면 내가 잠든 사이에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속절없는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비록 사랑이 식어 깊은 잠에 빠져 있을지라도 나를 기억하십니다. 돌아올 때를 기다리십니다. 심지어 도망가니까 찾아오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를 보내어 어루만져 주시고 그를 다시금 호렙산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호렙산은 어떤 산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호렙산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산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영광스러움을 경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곳으로 엘리야를 인도하셨습니다.

호렙산 굴에 도착하여 쉼을 갖는 엘리야에게 임한 첫 메시지는 "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네가 누구며 무엇하는 사람이며 무엇을 하다가 이곳까지 왔으며 네가 이곳에 와서 진정 발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즉시 " 내가 만 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熱心)이 특심(特甚)하오나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10절)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세계적 은막의 스타로 한 시대를 살았던 마를린 몬로라는 여배우를 기억하십니까? 그녀 역시 마지막을 자살로 마쳤는데 그녀가 남긴 일기장의 자살유서에서 "나는 견딜 수 없도록 고독했다."라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정몽헌 현대이사회 회장이 무엇이 부조해서 자살한 것일까요? 정회장 역시 정치와 경제 그리고 검찰의 삼각 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독과 외로움을 느꼈을까요? 고독함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고독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만듭니다. 고독은 사람들의 존재 의미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고독은 사람을 무너지게 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이 고독이라는 무서운 질병의 화살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하여서도 날아옵니다. 그래서 낙심하게 만들고 사역의 열정을 잃게 하며 극단적인 포기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지금 엘리야의 형편이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참으로 열심 있는 주의 종이었습니다. 자신의 고백대로 "열심이 특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혼자라는 생각을 이기지 못해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때 두 번이나 반복하여 "오직 나만 남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 주님 저는 혼자입니다. 저 혼자뿐입니다. 혼자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를 알아줄 사람도 나를 이해할 사람도 없나이다. 그러니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 이것이 엘리야의 마음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는 이런 경험이 없었습니까?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 혼자만 고통스러워해야 하고, 나 혼자만 슬픈 가슴을 억눌러야 하고, 나만 왕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 본 적이 없습니까? 가족들도, 직장의 동료들도, 교회의 성도들도 모두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처럼 생각되어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독을 견디지 못해 절망했던 경험이 없습니까? 이 절망의 그늘과 외로움 속에서 신음하는 목사가 여기 있습니다.


세미한 음성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13절)

"오직 나만 남았나이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나이다."고 고백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섰으라"(11절)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방황하는 엘리야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참된 하나님을 발견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더니" 엘리야는 하나님의 모습을 한번보고 싶은 기대감을 가지고 굴 어귀에 섰습니다. 계속해서 보십시오.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계시
지 아니하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1절)

제일 먼저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며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지진'이 지나갔지만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불'이 있었지만 불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사실 엘리야의 마음속에는 '나에게 갈멜산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영력과 능력을 다시금 부어주셔서 비를 내리게 하는 기적과 이적 등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아울러 선지자로서의 가치와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하옵소서......' 하는 마음이 더 많았습니다.

저 역시 교회가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종종 내 마음속에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에게 개척시절 때 나타났던 그 놀라운 이적과 병 고침과 기적들.... 비를 명하여 내리게 하며, 뇌사자에게 여호와의 생기를 명하여 생명을 불어넣으며, 각종 병자들을 안수하여 고치게 하시고, 천사를 명하여 성도들의 사업과 믿음의 형제들을 모을 수 있게 하옵소서...." 하는 마음으로 개인의 욕심과 명예와 이기심이 포함된 그런 기도를 드릴 때가 없쟎아 있습니다. 답답함 때문에 나오는 기도의 하소연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오히려 침묵하셨습니다. 아니 외면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람과 지진과 불이 모두 지나간 뒤 '세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세미한 소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상처받은 마음으로 낙심 중에 있던 엘리야가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과 같은 거창하고 요란스러운 것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보지 못하고, 아주 세미한 소리, 침묵에 가까운 소리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합니까?

세미한 소리는 우리의 마음이 가라앉아 차분하고 정돈될 때에만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초자아(Super-Ego)가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에서 들었던 것은 자기 영혼 깊은 곳에 숨어있던 목소리였습니다.

사실, 그동안 호렙산 밑에서 엘리야는 아합 왕과 이세벨 여왕의 무리들과 싸우느라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너무 진을 뺐습니다. 그는 엄청난 일들을 해내면서 숱한 기적들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고독감으로 영적 탈진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신경과 정신이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습니다. 원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얼마나 위대한 선지자인지 아시지요?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습니까? 그런데 저에게 돌아 온 보상이 무엇입니까? 이세벨의 칼뿐이지 않습니까?"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하니 자연 우울한 탄식만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탄식과 원망과 불평의 소리도 한 참을 지나자 다 사라져 갔고 드디어 빈 마음, 가난한 마음속에 안식과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능력사역도 경험했지만 더불어 수도원 생활도 경험해본 사람입니다. 더불어 상담사역도 경험해본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침묵 속에서 나의 겉옷을 벗어버리고 진심으로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선하게 하는지, 무엇이 참된 구원사역인지를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느 날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인 테오필루스(Theophilus)가 사막에서 수도 생활하는 공동체에 찾아왔습니다. 이 때 수도하던 형제들이 가장 늙고 존경받는 수도사 아바 팜보(Abba Pambo)에게 감독님이 감명 받을 이야기를 좀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이 때 팜보는 내내 침묵만 하고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계속해서 채근하자 그제야 다음과 같이 한 마디 했습니다. "만일 감독님이 내가 침묵하는 것에 의해 감명을 받지 못한다면, 내가 말해봤자 역시 감명을 받지 못할 걸세."--"If he is not inspired by my silence, he will not be inspired by my words either." 여러분, 때로 침묵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됩니다. 또한 오해가 많고 다툼이 많은 세상 속에서 침묵은 오해와 다툼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영성훈련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독거(獨居,solitude) 훈련인 것입니다.

엘리야는 동굴 속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진실로 그분만을 마음속에 믿고 의지하고 나갈 때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침묵 속에서 세미한 음성 가운데서 듣게되었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답답하십니까? 디프레스가 되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영혼의 안식을 취하십시오.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침묵 속에 마음을 정돈해 보십시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우울증을 이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처방을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복잡한 것들이 내 마음을 옭아매고 있고, 온갖 더러운 것들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고요해져야 합니다!


새 사명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15-18절)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고요와 안식으로 가득차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음성의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니고 엘리야에게 세 가지 중요한 임무를 부어주시는 사명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회복의 최고 정상은 사명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심의 자리에 다시 세워져 사명을 따라 길을 가는 것, 그것이 회복의 길입니다. 사명이 부어질 때 우리에게는 참된 삶의 기쁨과 희망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붙드시지 마시고 사명을 붙드십시오..... 사명이 기적을 낳습니다.
늘 제가 외치는 말이 있지요.....

"하나님은 한번도 사람을 써 본적이 없다. 다만 그 사람 속에 있는 사명을 들어 쓸 뿐이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 거듭남의 영적 비밀과 아울러 세미한 음성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사명을 좇아 믿음으로 세워질 때 이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의 사람, 능력의 사람, 권능의 사람,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야에게 임한 사명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방 왕을 세우는 일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둘째: 북 이스라엘의 예후장군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할 일은 세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이 세 사람을 통해 바알 숭배자들을 진멸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17절에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는 말씀이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바알 숭배자들을 완전하게 진멸 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물론 엘리야의 특심한 열심히 능히 이 일을 성공적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동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처리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합의 용서가 있어야 하고, 엘리사의 선지자 등극과 아울러 하사엘과 예후가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아합의 작은 회심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짜르고 진멸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심판은 분명합니다. 진멸의 때는 다가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승리는 값진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보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기다리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를 마냥 방치하실 수 없는 하나님!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심판자를 세우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십 수년 후에야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동역자를 붙여주시는 하나님(18절)


사명을 부여받은 엘리사에게 말씀 한마디를 주셨습니다.
"엘리야야 지금 네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백성이 바알 종교로 넘어가고 선지자들이 다 죽고 너 혼자만 남았다고 인생을 끝내자고 하는데 바알에게 입맞추지 않고 바알 신에게 꿇어 엎드려 절하지 아니한 칠 천명을 남겨두었다....그러니 너는 이 사람들과 함께 동역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온전하신 뜻을 이루라......"(18절)

잠시 생각을 멈춰보십시오.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생각과 엘리야의 생각이 얼마나 다릅니까? 하나님께서 보신 사람들을 엘리야가 보지 못한 사람들이 무릇 얼마입니까? 7,000명입니다. 70명이 아닙니다. 700명이 아닙니다. 영특한 선지자, 엘리야가 보지 못한 사람들이 무려 7,000명이었습니다. 엘리야가 과연 그 7,000명을 보았다면 그렇게 낙심할 수 있었을까요? 엘리야의 제자였던 엘리사가 누구입니까? 그 7,000명 가운데 한사람 일 뿐입니다. 엘리야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던 그 7,000명 이것이 인간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입니다. 넓은 문으로 몰려가는 그 허다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오늘날도 처처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입 맞추지 않는 순전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참 좋은 것을 택하였습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눈을 떠보십시오. 한발만 더 주께 다가서 보십시오.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영광이 보일 것입니다. 7,000명의 거룩한 성도들이 여러분의 손을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여기 서 있는 목사는 교회의 크기와 교인의 숫자에 대하여 신물이 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심한 상처를 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이 아픔이 너무 크고 힘들고 억울해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다시금 개척교회로 돌아가 이적과 기적을 행하여 능력사역을 하고 싶지만 그것에 진정한 복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 세미한 음성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그마한 일에도 마음을 합하고 뜻을 합하여 함께 일할 수 있는 참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 이번 8월 14일과 15일 1박 2일 동안 집단상담을 통하여 한 식구 한 몸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느끼며 주님 안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서 함께 동역자로 영원히 살고싶어 이렇게 귀한 모임을 정하였습니다.

동역은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만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도 가정과 사업의 일도 중요하고 소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함께 사명을 지고 함께 늘찬양교회를 부흥시켜 나가는 동역의 길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진심으로 귀하게 여기며 함께 헌신할 때 우리는 이 땅에 각종 이방 신들과 우상들과 어둠의 권세들을 이기고 참된 교회로 참 영혼을 살리는 살아있는 온전한 교회로 재창조되어 나타나는 늘찬양교회가 될 것입니다.

숨겨둔 하나님의 용사 7000명을 찾습니다. 아니 7명이라도 좋습니다. 내가 먼저 그 한 사람이 되겠다 할 때 우리는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여러분의 사명에 헌신하십시오. 오늘 우리의 모습이 무기력하지 않습니까? 주님을 향해 불타는 사랑이 식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이 한 목숨 바치겠다던 그 열정이 지금도 여전히 내 가슴속에서 불이 타고 있습니까? 주님의 나라를 꿈꾸던 그 꿈이 여전히 생생합니까? 바로 그 자리로 돌아서야 우리의 남은 생애가 힘차게 승리하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이세벨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 해왔는데 어이없는 일로 우리의 신앙이 허물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당신의 영성이 로뎀 나무 아래 웅크리고 있지 않습니까? 죽기를 자처하는 자리에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의 영적 삶이 회복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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