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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받은 사람 / 창 6: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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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6:5-12 
제목 : 구원받은 사람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 라고 합니다. 사람은 갈대같이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이 위대한 것은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기에 발전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한다면 운명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인간에 대하여 생각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머니 탯줄을 감고 태어났는데 하나님께서 보내서 존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사람이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것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주성분은 흙이었습니다. ‘찰스 다윈’은 미생물의 진화를 거듭함의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는 것입니다.

셋째, 나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넷째,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끝마치고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즉,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무능합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는 참으로 허무한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노력한다 하여도 생명을 연장할 뿐이요, 근본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요? 그 목적지가 무덤이 아닙니다. 무덤은 중간 기착지요, 최종 목적지는 다릅니다.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지옥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이 죄악 세상에서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을 우리는 구원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십니까? 교회에 왜 나오십니까? 예수 믿으려고 오신다고 할 것입니다. 왜 예수 믿는 것입니까?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 가려고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참으로 귀중한 것을 잊어버리고 덜 중요한 것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먼저 나는 구원받았느냐? 하는 질문에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요즈음 어느 집회나 모임에 가서 들어보면 여러분 예수 믿으십니까? 아멘 하세요. 예수 영접하셨습니까? 아멘 그러면 구원 받았습니다라는 말을 해줌으로 확신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는 소위 값싼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양심 있는 신자들은 나는 구원받은 것 같지 않아 속으로 고민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은 느낌이 아닙니다. 느낌은 수시로 변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기도할 때에는 구원받은 것 같다가도 조금 게으르고 불충성 할 때에는 아닌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말씀이나 요한복음 5:24절의 말씀대로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 나니” 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입니다 라고 하는 것 진리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 중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참 좋은 약을 주었습니다. 먹기만 하면 당장 낫는 약입니다. 위급한 사람인데 그것을 먹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면 죽습니다. 좋은 약이라도 먹어야 약인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예수 믿으면 구원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 믿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입니다. 믿는다는 것이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전통 속에서 형식적으로 교회 나온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인정하고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오늘 이후에는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구원받고 확신을 가진 복된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 구원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말과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입니까? 프랑스의 화학자이며, 세균학자인 파스퇴르는 광견병 예방접종에 성공해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재물과 명예를 얻었고, 많은 사람들이 광견병으로부터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임종을 맞았을 때 한 손은 아내의 손에 맡기고 한 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꼭 쥔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도 죽음의 순간에 필요한 것이 십자가였다는 말입니다. 즉,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죄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노아 시대에는 죄악이 세상에 관영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죄는 불순종의 죄였고, 혼란과 무질서의 죄가 있었습니다. 음란한 죄, 패괴의 죄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인데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했다고 하였습니다. 치명적인 죄는 영적인 타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며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아내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노아와 그의 가정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영어로 셀베이션(Salvation)이라고 하는데 원래 헬라어는 ‘소테리아’이고, 히브리말로는 ‘예수아’입니다. 불행에서 구해내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신약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사용하여 온 일상적인 용어입니다. 애굽에서 해방 받은 것도 구원으로 생각하며 유월절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좋은 일이나 환호하는 말을 할 때 만세라고 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호산나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이 같이 구원이란, 어려움 가운데서 건짐 받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즉 물 속에서 빠져 죽게 된 사람이 건짐을 받은 것이 구원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한 질병에서 죽게 되었는데 살게 되었다는 것도 구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여기에서 말하는 구원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을 말합니다. 즉 천국의 시민권을 얻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떤 사람인데 어떻게 구원을 받았나? 하는 것을 상고 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은혜를 입은 자였습니다.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도저히 받을 자격이 없는 데 알 수 없는 이유와 조건 없이 받은 것을 은혜라 합니다.
구원은 은혜를 입은 자가 받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하였습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선택받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선택을 받아 예수 믿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대로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시인하고 주님으로 영접하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 믿게 된 것이 나의 의지에 의하여 믿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은혜로 믿도록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 부모님이 예수 잘 믿는 장로님, 권사님 그리고 집사님 이기에 자기 의지 없이 예수 믿게 된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저는 아주 형편없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일찍이 저의 조모님이 예수를 영접하고 믿으셨습니다. 그분의 믿음이 우리 온 집안이 예수 믿게 되고 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조모님을 통하여 저에게 은혜를 입도록 하신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어느 분은 친구를 통하여 예수 믿게 된 이들도 있습니다. 그 친구를 통하여 은혜를 입게 해 주신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라는 찬송이 존 뉴톤의 찬송만이 아니라 바로 나의 찬송이요, 우리 모두의 찬송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환경에 의하여, 사람들의 유혹에 위하여, 세상 길로 가다가 어느 날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도 알고 보면 은혜입니다. 주의 은혜를 입지 못하였다면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은혜를 입은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둘째, 의인이었기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노아 를 의인이라 하였습니다. 의인이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죄인이라면 구원과 관계가 없습니다.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습니까? 철저하게 회개하면 의인이 됩니다. 원래 우리는 다 죄인이었으나 예수의 보혈로 죄 사함 받았기에 의인이 된 것입니다. 즉 우리의 의는 용서함 받은 의인인 것입니다.

여러분!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용서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회개해야 합니다.

1. 회개하는 것은 죄를 죄로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한 일이 잘못했습니다 라고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는 말 중에 총체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다같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개하고 닭하고 말다툼을 하게 되었답니다. 개가 닭에게 하는 말이 너는 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꼬끼오 하고 울어서 주인이 아침 새벽에 일어날 수 있도록 깨워줄 수 있는 사명을 지녔는데 요즈음에는 왜 벙어리 같이 울지 않느냐? 라고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닭이 대답하기를 요새는 달라진 것 모르느냐? 주인이 언제 자는지? 언제 깨는지 알 수 없고, 그리고 모두 자명종을 자기가 필요한대로 맞추어 놓고 자기에 내가 꼬끼오 하고 울면 수면을 방해 할 것 같아서 안 운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닭이 말하기를 개 너는 왜 도적을 지키는 일을 위해 짖는 것이 네 사명이거늘 왜 도적을 보고도 짖지 않느냐 하니까, 개가 하는 말이 얘야 우리 주인이 도적인데 누구를 보고 짖어야 한다는 말이냐? 그러더랍니다.

요즈음 사람들을 보세요. 나는 잘못이 없고, 네가 하는 게 잘못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총체적 위기입니다. 문제가 생겨도 누구 하나 책임질 사람이 없습니다. 다 너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는 순간에 두 강도가 같이 못 박혀 죽어가고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면서 그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하여 욕을 하고 잡담을 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가 예수님을 욕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너와 우리들이 이곳에서 내려가도록 해보라 하다가 한 순간 한쪽의 강도가 “네가 동일한 죄를 범하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눅 23:40) 그리고는 41절에 보면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마땅하거늘” 이라고 말합니다. 강도로 다른 사람들 재산을 빼앗고 생명을 해치는 일을 하였기에 이렇게 죽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깨달을 수 있어야 회개가 가능한 것입니다.(마 21:30)

2. 죄에 대하여 슬퍼하며 고백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시편 14:1절의 말씀대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면서 자기 죄를 부정하려고 합니다. 자기 얼굴에 분명히 무엇이 묻어 있는데 누가 말하기를 당신 얼굴에 무엇이 묻어있어 라고 하면 이 사람아 아침에 내가 세수를 하고 나왔단 말이야 하고 부정하면 되나요? 거울을 보면서 닦아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수없이 생각 속에서 언어와 행동가운데서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숨길 것이 아니라 밝혀내고 씻어내야 하는 것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아침운동을 한다고 열심히 뛰고 있었답니다.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행인이 이들을 보고 막 웃더 랍니다. 갑자기 헷갈린 아버지가 뭐가 잘못된 것이 있나 싶어 자신을 살피는데 아무런 잘못된 점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혼자 하는 말 세상에 별 사람들도 다 있어 아침부터 싱겁게 웃긴 왜 웃어 하고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다른 무리들이 또 막 웃더랍니다. 이번에는 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에게도 아무런 이상한 것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속으로 별꼴 다 보겠네 하고 열심히 뜁니다. 한참 뛰는데 또 다른 사람들이 웃습니다. 달려가다 말고 서서 다시 살펴보니 전에 안 보이던 게 보입니다. 바로 튀어나온 배 밑으로 신발이 보이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자기와 아들이 신고 있는 신발이 짝짝이었습니다. 갑자기 부끄러워진 아버지가 숲 속에 들어가서 쉬면서 빨리 집에 가서 신발을 가져 오라 하였습니다. 집으로 달려갔다가 돌아온 아들이 하는 말 아버지 소용없어요. 집에 있는 신발 모두가 짝짝이예요. 그러더랍니다. 우리는 원래부터 죄인이었습니다. 아무리 내가 바꿔 신고 싶어도 그것도 똑같은 죄라고 하는 것을 신고 다닌다는 말입니다.
겸손히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3. 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줄 알고 고백은 하는데 결단을 하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결단입니다. 누구든지 이것이 부족하여 죄 가운데서 헤매이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코카콜라 창업자인 아사 D 캔들러라는 사람은 본래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술로 인하여 중독이 되어 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었습니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힘이 하나도 없어집니다. 그는 결국 알코올 중독자 수용소에 끌려가서 오랜 동안 여러 차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술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어느 날 자기 마음속에 들려오는 강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는데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거절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속에서 가지는 이 악한 욕망을 거절해야만 자유인이 될 수 있다 라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는 깊이 깨닫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손을 잡고 자기가 깨달은 것을 고백하고 같이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술의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득의 십일조를 철저하게 드리면서 코카콜라라는 큰 기업을 이루게 되었답니다. 회개는 결단입니다. 끊어 버리셔야 합니다. 죄의 습관, 그것이 우리를 멸망하게 만드는 무서운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1-24절에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자기 자신을 깨닫습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옵니다. 다음에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할 수 없겠습니다.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20절) 그때 아버지가 입맞추며 안아주고 그를 아들로 대우하여 주신 것입니다. 돌아오면 무조건 사하여 주십니다. 로마서 4:7절의 말씀대로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 사함 받은 이가 바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의인이 된 노아와 같이 우리 모두 용서함 받고 의인되어 구원 얻은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노아는 완전한 사람이라 하였습니다.(9절)

완전이란, 행위가 한 점 티도 없이 완전하다는 말이거나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완전은 경건하게 성숙한 신앙으로 세속에 물들지 않고 동화되지 않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완전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랑 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바랍니까? 사랑 받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고, 사랑 받을 때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모두 사랑을 받을 사람은 많은데 사랑할 사람이 적은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삽시다. 이 사랑은 예수의 사랑입니다. 예수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사는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요, 구원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1. 사랑하면 친절합니다.

누구라도 친절하면 좋다고 합니다. 가정에서도 친절하고,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도로변에서도, 친절한 사람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제주도에 여행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바나나를 하나 사서 아내가 자기야 나 이거 어느 쪽으로 까먹을까? 남편이 아내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면서 흐흥 자긴 아무 쪽으로 먹어도 다 이뻐 그러더랍니다. 이 모습을 보고 샘이 난 다른 여자가 남편에게 보소 이걸 어느 쪽으로 까먹을 까예? 그러자 남편 아내를 째려보면서 가시나 사줘도 지랄(야단)이네 그냥 묵으라 드 가면 다 똥 안되나? 같은 말 한 마디라도 부드럽고 친절하게 하면 사랑입니다.

2. 사랑하면 칭찬하여 주는 것입니다.

비난하면 적이 됩니다. 인간 관계에서 가장 저해 요소가 되는 것이 있는데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칭찬하면서 살면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3.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노예를 팔고 사던 시절 어느 집에 주인의 신임을 받는  조라는 노예가 있었답니다. 어느 날 주인은 몇 명의 노예를 더 사려고 조와 함께 노예 시장을 갔습니다. 그때 조는 유난히 늙고 힘없어 보이는 노예를 보더니 그를 사자고 하더랍니다. 주인은 저 노예는 너무 늙어서 쓸모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네가 짐만 될 것 같다 라고 거절하였는데 주인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조가 간절히 청원을 하여 할 수 없이 그 노예를 샀답니다. 집에 돌아온 조는 그 늙은 노예를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유별나게 보살핍니다. 이상히 여긴 주인이 늙은 노예가 네 아버지가 아니냐? 그때 조는 아닙니다. 그는 제가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원수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그가 나를 유괴하여 노예 시장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노예시장에서 그를 보게 되었을 때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는 주의 음성이 나에게 들려와서 그를 사자고 한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처럼, 스데반 집사같이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면 이것이 완전한 사람인 것입니다.


넷째, 주와 동행하면서 준비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
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동행이란 같이 가는 것입니다. 동행한다는 것을 생각하여 봅니다.
먼저, 마음이 맞아야 같이 갑니다. 다음은 동행하려고 하면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적지가 같아야 동행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이 같아야 동행이 됩니다. 어느 분이 기차를 탔습니다. 타고 보니 방향이 부산입니다. 방향도 같고, 같은 기차 탔다고 동행이던가요? 목적이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목적이 같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라고 하면 이제는 목적지가 천국입니다. 이 세상을 다 살고 나면 주님 계신 천국으로 간다는 방향도 목적지도 정해진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의 마음과 같아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삽시다. 믿음을 갖고 주님을 사랑하면서 주께서 지신 십자가 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하시는 말씀 “너 자신을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이런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악으로 관영합니다. 이 시대는 종말을 가리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노아 같은 복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은혜의식을 갖고 살아갑시다.
그 은혜로 내가 예수 믿게 된 것입니다. 항상 은혜에 대하여 감사함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예수 믿고 회개함으로 의인되었습니다.
다시는 세속적인 죄를 멀리하고 의롭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3. 사랑으로 완전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합시다. 영혼을 사랑합시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성령의 충만한 성도가 되어져야 하겠습니다.

4. 오늘도 내일도 주님 오실 때까지 주와 동행하면서 주께서 명령하신 구원의 방주 교회를 섬기다가 주님 만날 때 천국 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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