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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점점 나아져 가는 복 / 사 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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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점점 나아져 가는 복 
본문 : 이사야 54장 1~3절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 이사야 54장 1~3절 말씀 -

  동물은 본능에 삽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의 생각에 이끌려 삽니다. 주님을 만나고 나면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생각이 달라지고, 그 속에 갖는 꿈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남자가 차에 부딪쳐 넘어졌는데, 별로 심하게 다친 것 같지 않아 일어서려고 합니다. 그 장면을 본 어떤 사람이 크게 다친 것처럼 쓰러져 있다가 나중에 보험금을 타라고 귀뜸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일어서려고 하다가 많이 다친 척 하며 차 옆에 쓰러졌는데 그것을 모르고 뒤차가 달려와 치어 죽은 거예요. 보험금 타려고 하다가 더 큰 생명을 잃은 거에요. 무엇인가 거저 얻을려고 하는 헛된 것 꿈꾸면 결국은 더 큰 것을 잃게 됩니다. 같은 사건을 만나도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다니엘이 던져진 사자굴은 죽음의 자리, 형벌의 자리, 절망의 자리가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증거하는 자리가 되었잖아요? 이런 간증거리가 여러분의 삶속에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비전이 있으면 당장의 어려움과 고생도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부산에 살던 시절입니다. 아내와 함께 시내를 나가면, 서면 골목길에서 해삼을 가끔 사먹은 적이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해삼을 파는 아저씨는 만날 때마다, 늘 술이 한잔씩 되어 있어요. 아마 추운 겨울 밤을 술없이는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서 서울 대학에 다니는 아들 자랑을 합니다. 비록 자기는 가게도 없이 길거리에서 해삼을 파는 장사를 하지마는 서울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생각하면, 그것이 기쁨이고 소망이고, 보람인 거예요. 어려운 때일수록 분명한 비전이 있으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아무리 풍족하게 갖추었어도 비전이 없으면 점점 망가지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미국에 메인이라는 한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정부에서 그 지역에 댐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앞으로 몇 개월 후면 당신들을 더 좋은 곳으로 이주해 주고 이곳 전체를 댐으로 만들어 물로 채울 것입니다" 이런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부터 그 도시는 더러워지기 시작하더라는 거에요. 사람들이 쓰레기를 안 치우고, 집을 가꾸지 않고 사는 거예요. 아무도 마을을 관리하지 않은 것입니다. 마을에 대한 비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비전이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을 가꾸게 됩니다. 점점 나아져 가는 삶의 비결이 있다면, 분명한 비전을 갖는 거예요. 우리 속에 믿음의 비전이 분명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하고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죽을 지경이 되고서야 하나님께 나아와 부르짖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생각해야 할 은혜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불행을 몰고 오지만, 늦었다 싶을 때라도 말씀에의 순종은 다시금 축복을 몰고 오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일들이 축복으로 전진하고 축복으로 연결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 회복 할 뿐 아니라 축복의 하나님을 만나는 곳에 길이 열립니다. 우리의 앞날을 붙들고, 이루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 시간도 사모하는 심령마다 충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82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오늘 본문은 한 마디로 소망과 축복의 말씀입니다. 현대어 성경에 보면 "예루살렘아, 너는 임신을 하지 못하여 자식을 낳아 본 적이 없는 여인과 비슷하였다. 그러나 너는 이제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러라! 네가 버림받은 여인의 신세와 비슷하지만, 오히려 남편이 있는 여자보다 더 많은 자식을 둘 것이다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아, 네 천막의 터를 더 넓혀라! 네 천막을 아끼지 말고 넓게 펼쳐라! 천막의 줄도 더 길게 늘이고 천막의 말뚝들도 단단히 박아라! 앞으로 네가 사방으로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 자녀들이 다른 족속의 땅까지 차지하고 살며 황폐한 성읍들을 다시 개발하여 살 것이다"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떠나가고, 하나님과 멀어졌는데, 하나님이 그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지니 창대한 복이 임한다는 거예요.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셨던 이 복된 말씀이 오늘 이 시간 나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들을 뿐 아니라 우리 가정에, 생활로 체험되기를 축원합니다. 

  1절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로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5절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내였는데, 이스라엘이 이방 신을 섬기게 되었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말았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 그냥 버리시지 아니하고, 돌이키시려고 손을 대시는데,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말할 수 없는 수치와 고통을 당합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서 이사야 선지자는 "홀로된 여인"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없으니까 아이를 가질 수도, 낳을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이야 그렇지 않습니다마는 구약 이스라엘 시대에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큰 수치였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아이를 낳지 못해서 너무나 괴로워 하고, 고통스러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가 홀로된 여인처럼 잉태하지도 못하고, 생산치도 못하고, 구로치도 못하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너는 노래할지어다.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은 홀로된 여인이 아니라, 수치의 자리에 있는 여인이 아니라, 하나님은 다시금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내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과거를 따지면 길이 없어요. 우리의 행위를 보면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죄인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주안에 있는 나를 아무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가로막을 자가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신랑입니다. 나의 허물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수님의 사랑 받는 신부가 된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환경이 벅차고,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수 없는 이유는, 절망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의 소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소망이고, 기쁨입니다. 더더욱 사랑받는 신부로, 끔찍이 아끼시는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위기는 오히려 축복받는 새로운 기회가 됩니다. 세계 2차 대전 때에 프랑스가 독일 나치스 군대에게 패해 버리자 영국에서 도와주려고 건너갔던 29만 대군이 자기들만으로 불가능한지라 영국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도버해협을 건너 도망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안 히틀러는 도망하는 영국군들을 아주 전멸시켜 버리라고 명령했어요. 그 때 영국왕 조지 5세는 온 영국에 "어떻게 하든지 영국 군대를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전국민이 함께 기도했어요. 그런데 그날 독일군 지역에는 큰 폭풍우 때문에 비행기가 한 대도 뜰 수가 없었고, 탱크 한 대도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영국군이 건너려고 하는 도버해협은 얼마나 잔잔했던지, 많은 배가 29만의 영국 군대를 무사히 영국까지 옮기도록 했다는 거예요. 결코 우연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되게 하시려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의 역사를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경남 진주에 밤을 따서 일본에 수출을 하는 어느 장로님 이야기인데요. 그 해에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도 밤 풍년이 들어서 일본에서 밤을 사러 온 사람이 자꾸만 값을 깎으려고 하더랍니다. 너무 값이 싸서 밤을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져서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로 접근하던 태풍이 제주도 근해에서 일본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일본을 강타한 거예요. 이 태풍 때문에 일본의 밤들이 모조리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 일본 사람이 찾아와서, 몇 배의 값으로라도 우리 밤을 사겠다고 하더라는 거예요. 결국 그 해에 3억의 이윤을 남겼다는 간증입니다. 내힘으로 인생 사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아요. 주님이 붙드시는 인생, 위기에라도 결국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안 되는 일은 실패가 아니라, 다른 길이 열리는 축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 안 되는 일을 통해서 주님의 원하심을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축복의 세계로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형통한 앞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케 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나의 길도 열어 주시고, 회복케 하실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문제 가운데에도 해결의 복을 주시고, 이전 보다 갑절로 채워 주심을 체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절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곽은 다 무너졌습니다. 그들은 성곽을 다시금 쌓아야 합니다. 훼파된 하나님의 성전도 다시금 건축해야 합니다. 또 그들이 거할 장막도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장막을 지을 때 어떻게 지으라고 하셨습니까? 크게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큰 그릇 준비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실 축복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실 때 큰 소망을 주셨습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그랬어요. 장막을 짓기 위해서 터를 잡아야 하는데, 터를 작게 잡지 말고 최대한으로 넓게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장막을 쳐야 합니다. 그런데 휘장을 아끼지 말고 최대한 그 휘장을 널리 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줄을 길게 하며" 휘장과 휘장을 이어서 대들보에 매기 위해서는 줄도 필요합니다. 그 줄도 최대한으로 길게 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로 향하는 기도의 줄을 길게 해야합니다. 기도의 줄을 놓치지 말아야 되요. 나 혼자서는 절망하고 낙심할 일이 너무나 많은 세상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살다가 너무 힘들어 죽고만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죽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 싶을 때가 있을지 몰라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예비된 길이 있습니다. 지금 안 보여도 주님이 에비해 놓으신 길이 있어요.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에게는,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자살이 없어요. 내가 누구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아멘!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을 곧 잊어버리게 됩니다. 알고는 있지만 실감을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라는 사실이 지금 나의 어려운 문제와 내가 지금 처한 형편에서, 헤쳐 나가고 감당해야 할 큰 짐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게 되는 거에요. 그럴 때라도 기도하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뚜렷하게 믿어지고, 믿어지면 그때부터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거예요.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고 내 생활 속에서 체험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해도 사업이 내리막길이 될 수 있어요. 상황이, 형편이 더 나빠질 수 있어요. 그럴 때라도 주님이 내 곁에 계시고,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의 확신이 들면 마음이 든든해져요. 염려나 걱정이 물러갑니다. 나를 흔들려고 하던 사탄의 역사가 꺾여지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사람에게도 사랑의 줄을 펼쳐야 합니다. 사람에게 향하는 사랑의 줄이 무엇입니까? 길지 않은 인생 살면서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거예요. 요셉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복을 끼쳤습니다. 나중에는 총리가 되어 형제들과 아버지는 물론이고 저주 받아야 할 애굽에까지 복을 끼치는 사람된 거예요. 내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유익을 끼치고, 복을 끼치는 인생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행여라도 될 일도 안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닌, 안될 일도 되게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기초를 튼튼히 하라는 거예요. 굵은 말뚝을 깊이 박아 놓아야 큰 장막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해 지기 때문입니다. 잘 살았든지 못 살았든지, 자랑스럽든지 후회되든지,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우리 모두가 지나간 것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큰 믿음의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절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왜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장막을 크게 만들어야 했습니까? 하나님이 주실 축복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 가지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은 홀로된 여인이 아닙니다. 좌우로 번창하게 될 것입니다.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은 어디를 가든지 승리하게 되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그 땅이 그들로 인해서 바꾸어지고,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손의 축복, 땅의 축복,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은 말이지요? 아브라함때부터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이 세 가지 축복을 다시 한 번 선포하고 있고, 문자 그대로 얼마가지 않아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서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취되어집니다. 포로 생활을 끝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조국 땅에 돌아오게 되고,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숫자적으로 증가되고, 점차 강성해져 갑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도 살아가다보면 의심이 생길 때 있습니다. 낙심스러울 때 있습니다. 회의가 느껴지고 갈등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안되겠다" 힘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주님 바라보세요.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역사하시는 하나님, 일을 이루어나가시는 하나님,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앞날을 세밀하게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바라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것 다 이루어 놓아도 주님 잃어버리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되는 것 같은 일도 결국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든든하던 사업 무너질려면 하루아침이에요. 그 많던 재산 날아가려면 순간이예요. 그렇게 튼튼하던 사람 넘어지면 못 일어나기 쉽습니다. 단란한 가정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행복하고 지금 평안하니까, 믿을 게 못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함께 하시지 않는 모든 수고 모든 성공 결국은 헛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나님 함께 하시는 곳에 열매가 맺혀지고, 평안과 행복이 있고, 참된 성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대하며 사는 자녀들을 절대로 실망시키시지 않습니다. "가능성 없는 일이다" 내 마음 대로 결론 내리지 말고 어려울 때 일수록 더 기대하고 바라보십시오.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에게도 위기의 때가 있었어요.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는데, 사기를 당해 원금을 모두 날리고, 인부들 임금도 주지 못한채 빚에 시달립니다. 길이 안 보여요. 너무 괴로워서 자살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해온 록펠러는 황량한 폐광에 엎드려 기도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주십시오" 통곡을 하며 기도합니다. 마음속에 이런 음성이 들리더라는 거예요.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둘 것이다.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이 말씀을 믿고 폐광을 더 깊이 파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록펠러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수군 거렸습니다. 한 참을 파 내려가니 황금 대신 검은 물이 분수처럼 솟구치더라는 거예요. 쓸모없는 폐광인 줄 알았는데, 유전을 발견해서 위기를 넘긴 것은 물론이고, 일약 거부가 됩니다. 당장에 안 이루어져도 택도 아닌 일이라고 할지라도 이루실 줄 믿고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 붙들고, 기도의 응답 붙들고 흔들리지 아니하고 의심치 아니하고 믿어서 기어코라도 역사를 체험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귀로 들은 이 말씀의 복이 우리의 삶 속에도 풍성하게 이루어 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가정과 앞날에 성취되는 기쁨을 맛보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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