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 요 5:17~21

  • 잡초 잡초
  • 914
  • 0

첨부 1


† 설교제목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 성경본문 :요한복음 5:17~21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매우 분주하게 쉴 틈 없이 전개되었습니다.
초기 삼십 년 동안은 나사렛 동네에 있는 사가에서 가족을 부양하는 등 인간적인 일들로 이루어졌습니다(눅 2:51). 공생애 삼 년 동안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 때문에 제한된 시간과 환경의 틀 안에서 그가 하셔야 될 일을 계획대로 진행하여 나갔습니다. 그 일들은 주로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쳐주는 일이었습니다(마 9:35).
이와 같은 주님의 사역은 바닷가에서나(마 13:11), 산에서나(눅 6:2), 회당에서나(눅 4:16), 빈들에서나(막 6:35), 집에서나(마 13:36), 어디서든지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이루어졌고 그런 일들로 인하여 식사할 겨를도 없었습니다(막 3:20).

그렇지만 세상사람들은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모두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말씀을 책잡았고 하시는 일에 문제삼고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삼십 팔 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범했다고 하며 시비를 벌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이 구덩이에 빠져서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안식일이라고 구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 하물며 사람이 병들고 죽어 가는 것을 보고도 안식일이라고 손을 못쓰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마 12:12).

여기 인식일 문제로 시비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선한 일을 열심히 하여야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딛 2:14). 또한 그로 인해서 어느 정도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자기가 하여야 될 일에 주춤거리거나 소홀히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을 강조하는 뜻입니다.
죄와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세속에 빠져 나태하여 지기 쉬울 때 주님께서는 자기의 일에 성실하여야 될 성도의 사명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Ⅰ. 일을 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33:2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주적인 대권 자로서 일을 기획하시고 실행하시고 아름다운 결과를 이루어 내시는 분입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소유하고 계시는 전능성(全能性)과 전지성(全知性)과 무한성(無限性)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1) 드러나지 않게 일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는 일은 조그마한 것이라도 그것을 드러내고 오래도록 그 업적을 부각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요란하게 나타내거나 이를 과시하려 하지 않습니다. 태양계를 운행하시며 지구를 하루 한바퀴씩 자전(自轉)시켜도 소리가 나지 않게 하십니다. 인력(引力)에 의하여 천체를 공중에 매어 달고 바닷물을 움직이게 하시지만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하십니다.

욥기 26:7-10에 보면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중에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일을 하고 계시지만 사람들이 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2) 창조하시고 구속(救贖)하십니다.

창세기 1:1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소요리 문답 제9문답에는 “창조하신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창조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엿새동안에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그 권능의 말씀으로써 만물을 지으신 일인데 매우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0:26에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신 것으로 그 모든 일을 마감하신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보존하시며 그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도록 섭리하십니다. 지금도 생성 변화하는 모든 세계가 다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섭리에 따라서 운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재창조하시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21:5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죄로 인하여 오염되고 파괴된 세상을 하나님께서는 치유하시고 새롭게 만들어 놓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게 하시는 일입니다(롬 8:1-2). 고린도후서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

(3) 의(義)를 이루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결과적으로 공동선(共同善)을 이루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자기에게만 좋고 다른 사람에게 좋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공존 공영하도록 섭리하십니다. 사도행전 17:25-26에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와 모든 피조 세계에까지 다 유익 되고 선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마 6:33).


Ⅱ. 하나님의 일에 동참 하여야됩니다.

예수께서 삼십 팔 년 된 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시며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일이 안식일에 이루어졌다고 문제를 삼는 유대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써 재창조하는 사역입니다. 인간의 질병은 범죄의 결과로 일어난 현상으로써 정상적인 생리작용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창조 원형이 파괴되고 망가져 버린 불행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이를 고치신 것은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심과 동시에 죄에 감염된 영혼을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일입니다. 여기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신 말씀은 유대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수님께서 일하셔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며, 동시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1)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

요한복음 5:21에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죽음 아래 놓여 있는 인생을 살려내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먼저 죄의 권세에서 놓임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5:20에 보면 사람들이 메고 온 중풍병자에게 예수께서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수족이 마비되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에게 사죄의 선언을 함으로써 회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유대인들은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하고 비웃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하고 중풍병자를 향하여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눅 5:21-26). 사죄함을 받은 그 사람은 그 즉시 질병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곧 영혼도 육체도 다 치유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2) 성도가 하여야 할 일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이 있습니다. 디도서 2:14에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일은 많으나 일군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37-38에는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를 부르실 때 그들에게 중요한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는 죄악의 바다에서 죽어 가는 생명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와서 구원받게 하는 일로써 곧 전도자의 사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주님께 받은 이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된다고 하였습니다(딤후 4;2). 그는 또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하였습니다(딤후 4:5).


(3) 교회가 하여야 할 일

예수께서 지상에 자기의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로 하여금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게 하였습니다. 교회가 하는 일은 정부나 사회 단체에서 하는 일과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 나라에서 하는 일은 정치적 영역에서 민생의 안녕과 복지를 위하는 일이지만 교회는 종교적 영역에서 하나님께 대한 예배적 기능을 하며 사람들의 영혼을 관리하는 일에 우선을 둡니다.

정부나 국가기관은 국민의 총의에 따라서 만들어진 헌법을 시행하지만 교회는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성경말씀을 실천하게 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국가가 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도록 가르치며 실천하며 보여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쳐주신 일을(마 9:35) 그대로 계승하여 교육과 선교와 봉사의 기능을 성실히 수행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Ⅲ. 일하는 자가 유의할 점

그리스도의 일군된 사람은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의 일군이 된 것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보았습니다. 에베소서 3:7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딤후 2:15).


(1) 사명에 대한 인식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상에 보내실 때는 반드시 그가 수행하여야 될 사명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존재 가치요 목적이 됩니다. 로마서 14:7-8에 보면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사명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다거나 남이 대신 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 찾아 오셔서 “내 어린양을 치라”고 분부하실 때 자기 친구 요한을 두고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요 21:20-22). 누구든지 자기의 사명이 끝났다거나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이 세상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됩니다.


(2)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을 인식하게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9:4에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을 할 때 자기의 형편이나 상황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의도에 따라 지체 없이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됩니다.

세상에 그 어떤 일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비중 있게 생각하여야만 됩니다. 지금 당장 하여야 될 일을 다음으로 미룬다거나 자기 일을 먼저하고 교회일을 뒤에 하려고 한다면 낭패를 보는 수가 있습니다. 기회가 마냥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할 수 없는 밤은 시간이나 외부적인 상황만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 건강이나 물질이나 가정 환경이나 현재의 조건이 갑자기 어두움으로 휩싸일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4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마음에 비상을 걸고 빈틈을 주지 말아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엡 5:15-16).

(3) 실적에 따르는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7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나 양과 염소의 비유는 모두 심판대 앞에서 예수님으로부터 각 사람의 행한 실적에 따라 상벌을 받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겨서 준엄한 심판을 받습니다(마 25:30). 한편 착하고 충성된 종의 경우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하고 최상의 영광을 같이 누리게 됩니다(마 25:21).

이와 같은 충성스러운 일군들의 실적은 금과 같고 은과 같고 보석과 같이 자랑스럽게 드러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고전 3:12-14). 그들의 행한 일과 남긴 업적은 해와 달과 별과 같이 자자손손 두고두고 누리는 축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고전 15:41).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