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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도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라!` / 고전 9:23~27 (잠 16: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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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너희도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라!" 
본문:  고린도전서 9:23~27 (잠언 16:1~5 참조) 
 
  우리의 몸의 눈은 사물을 보는 기능을 합니다. 눈이 정상일 때는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지만 눈에 탈이 생길 것 같으면 제대로 볼 수 없게 됩니다. 보기는 보지만 사실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눈과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과 이 세계를 바르게 보는 영적인 눈이 있습니다. 이 영적인 눈은 단순히 보는 정도가 아니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능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깨끗하게 보이는 것들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반대로 보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도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실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뜻과 그 길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 즉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면 결과적으로 우리는 죄를 짓기 쉽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제멋대로 맹세하는 것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부정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싫증난 아내를 버리기 위해서 이혼 증서를 써 주는 것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눈이라면 차라리 빼어 내버리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마 5:29 참고).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두 종류의 눈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눈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눈입니다. 육신의 눈은 건강하지만 그러나 불행하게도 영혼의 눈이 어두운 사람, 즉 영적으로 장님인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실 바울 사도도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영혼의 눈이 어두운 소경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순간 그는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을 때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그가 이제 앞을 보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겨우 다메섹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를 위하여 아나니아라는 인물을 준비해 놓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이 그를 고꾸라지게 하신 것은 그를 아주 파멸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를 바르게 세우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임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지시를 받은 아니니아가 그를 찾아가서 그에게 안수하자 그는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습니다. 그 비늘 같은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는 그 때까지 비늘 같은 것을 눈에 덮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인들 제대로 볼 수 있었겠습니까? 자기가 믿는 하나님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핍박하는 예수가 과연 누군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정상적으로 볼 수 없었고 또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습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아주 분명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볼 수 있게 되었을까요?

  먼저 바울 사도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적인 조건으로 볼 때 그만큼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도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혈통이나 학벌, 그리고 율법적인 열심에 있어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그 때까지 그는 그런 모든 것들로 꾸며진 모습이 자신의 참 모습인 줄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만나고 난 후, 특히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고 난 후 밝은 눈으로 보자 비로소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동안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세상적인 조건들이 갑자기 배설물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아는 지식만이 가장 고상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유일한 푯대로 삼고 달려가노라고 고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가 전도한 각 지역의 교회들을 위하여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들의 첫 부분을 볼 것 같으면 한결같이 자신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소개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온전히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가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과연 그는 그 고백대로 살았습니다.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가 살고 또 죽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에게 나타나신 것은 그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쓰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그런 사명이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 때 그는 그것이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사명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은 생애를 오직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하여 불태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먼저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주님 안에서 그 사명 감당을 위한 해답을 찾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주님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과 7절 말씀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의 삶은 한 마디로 성육신의 삶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인간이 되셨던 것입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하여 주님처럼 성육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었고, 이방인들에게는 이방인과 같이 되었으며,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다만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 사도는 장차 주님이 주실 상급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옛날 고린도에서는 2년마다 올림픽 경기와 비슷한 운동 경기가 열렸다고 합니다. 경기가 시작될 무렵이면 각 지역에서 경기에 참여하기 위하여 찾아온 운동 선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하는데 그 운동 선수들은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지 열심히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힘든 훈련을 마다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그토록 열심히 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경기에서 우승해서 면류관을 받고야 말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커다란 도전을 받았습니다. 운동 선수들도 썩어버릴 면류관을 받기 위하여 그토록 열심히 훈련을 하는데 하물며 영원히 썩지 아니할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의 삶의 목표는 아주 분명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쳤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3절과 14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리고 그는 최선을 다해 달려갔습니다. 그 부름의 상을 받기 위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눈은 건강합니까? 우리의 눈, 특히 영적인 눈이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건강하다면 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눈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면 주님은 우리의 눈을 반드시 고쳐 주실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귀중한 사명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장차 받을 상급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귀하게 여기고 충만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주님 보좌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는 칭찬과 함께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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