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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위해 삽시다 (딤후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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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를 위해 삽시다
본문 : 딤후 1:3-14


  찰스 프리데릭 와이글은 1871년에 미국 인디애나주의 독일계 이민가정에서 12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났습니다. 12세 때 감리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큰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는 결혼한 후 노래하며 설교하는 순회전도자가 됩니다. 그는 전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이 집을 비우는 일이나 전도사역을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남편을 저주하고 딸을 데리고 가출해 버렸습니다. 그는 실망과 좌절감에 빠져 번민하다가 바닷가 낭떠러지에 올라가 자살하려고 뛰어내리려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너를 사랑하고 돌보아 왔는데 네 앞날을 지켜주지 않겠느냐?" 그때 그는 외쳤습니다. "그렇다. 주님께서 날 사랑하고 지켜주신다. 이제 나는 주님만을 위해 살리라" 그때 받은 감동으로 찬송 시를 썼습니다.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주 이름 증거하면서 무한한 복락 주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359장)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것을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돈이나 재능이나 권력이나 인기는 사는 것을 돕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돈을 위해 살다가는 수전노가 되기 쉽고 권력을 위해 살다가는 독재에 흐르기 쉽습니다. 인기를 위하여 살다가 마약중독이 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학자들은 진리를 위하여 삽니다.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을 위하여 삽니다. 법관들은 진실과 정의를 위해 삽니다. 그런데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종합입니다.

  건배할 때 "위하여!"라는 구호를 외칩니다. 우리가 위해야 할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통일을 위하여,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건강을 위하여, 너와 나의 아름다운 우정을 위하여, 그런데 "위하여!" 가운데 가장 차원이 높은 것은 "예수를 위하여"입니다. 예수를 위하여 바울은 자랑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지금도 5천여 가정이 한국을 떠나 선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중국에서, 마피아가 판을 치는 러시아에서, 선교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중앙 아시아에서. 선교사라는 신분이 탄로 나면 심한 박해를 각오해야 하는 회교권에서, 영적으로는 한없이 삭막한 일본에서, 선교사에 대한 배척이 점점 심해지는 인도네시아와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아프리카 오지에서, 세계 여러 곳에서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디모데역시 신실하고 뛰어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어떤 역경과 고난이 불어닥친다 해도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을 만큼 크고 확실한 믿음이었습니다. 어떤 시험도 극복할 수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칭찬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진실로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위해 살려면,


  첫째로 거짓없는 순수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 젊은 청년이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몇 가지 생활용품과 식품을 사기 위해서였습니다. 장바구니를 들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물건을 담고 있는데 한 늙은 부인이 계속해서 자기를 따라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이내 그녀를 무시하고 볼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계산대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는데 그 할머니가 젊은 청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미안해요. 만일 내가 당신을 자꾸만 쳐다보아서 혹시 당신에게 불편한 마음을 주었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당신을 보는 순간 얼마 전에 죽은 내 아들녀석이 생각났습니다. 젊은이는 내 아들과 꼭 닮아서 쳐다보았습니다." 젊은이는 할머니의 아픈 마음을 읽고는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참으로 안됐군요. 내가 할머니를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 할머니는 매우 측은해 보이는 자세로 젊은이에게 부탁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떠날 때 '잘 가세요 어머니!'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까? 그러면 제 마음은 매우 위로가 될 것이며, 기분이 좀 나아질 것입니다." "염려 마세요. 제가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젊은이는 오히려 할머니의 간단한 요청에 기쁜 마음으로 해드리기로 했습니다. 할머니가 떠나가자 젊은이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그 할머니는 젊은이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슈퍼마켓 문을 통해 사라졌습니다. 이 젊은이는 자기의 외침이 할머니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계산대 앞에 섰습니다. 계산대의 직원이 내민 계산 용지에는 무려 127달러나 프린트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나왔습니까? 나는 겨우 몇 가지만 샀습니다." 그는 너무 놀라 물었습니다. 그러나 계산대에 있는 직원은 안경너머로 그를 내려다보면서 말하였습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어머니가 산 모든 물건값은 당신이 지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이 젊은 청년들에게 이런 거짓된 모습을 남긴다면 사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영어 속담에 부모들의 약점과 강점은 자녀들이 반드시 그 값을 지불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과 사랑과 온전한 인격의 사람들은 역시 신앙과 사랑과 온전한 인격의 자녀들을 생산해 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매는 나무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거짓 없는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이 믿음을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 물려받았습니다. 디모데의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신앙의 사람들이었고 진실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디모데 역시 부모와 같은 훌륭한 인격과 청결한 양심, 그리고 거짓 없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거짓 없는 믿음이 디모데로 하여금 예수를 위해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거짓 없는 믿음이란 형식적이거나 겉치레의 믿음이 아니라 진실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 믿음입니다. 비록 조금 실수 한다해도, 조금 부족한데가 있어도 그 마음 중심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기쁘게 충성하는 사람이 거짓 없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엄히 책망하신 사람들은 거짓된 믿음의 소유자들인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외형적으로는 완벽했으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의를 자랑하는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거짓믿음입니다. 거짓 없는 믿음만이 예수를 위해 살게 만들어줍니다.


  둘째로 소명에 대한 뜨거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장터에서 말을 사려고 흥정을 하고 있습니다. 파는 상인에게 묻습니다. '이 말 타는 겁니까?' 말을 팔려는 사람이 '이 말은 등에 안장을 올려놓으려면 뛰고 차고 난리를 쳐서 탈 수 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말은 수레를 끄는 말입니까?' '이 말한테 수레를 지우면 그냥 달아나 버립니다.' 말을 사려는 사람이 묻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팔려는 겁니까?' 말을 파는 사람이 하는 말이 '말 모양이 좋지 않습니까?' 스타일이 좋아서 팔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이 말과 같은 신자는 없습니까? 안장도 올려놓지 못하게 하고. 짐도 지지 않고, 스타일만 갖추려는 성도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부흥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자꾸 생깁니다. 스타일만 성도인체 하면 무엇합니까? 그런 사람은 쓸모 없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모양만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신앙은 소명적인 관계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소명적인 관계가 바로 될 때에 바른 믿음 생활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사람을 보내지 않습니다. 특별히 사명감에 불타 자원하는 사람을 기다리시고 그런 사람을 일꾼으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위하여, 이 나라의 구원을 위하여 누가 갈꼬 하는 사명을 분명히 주시면서 자원하는 소명자를 찾고 계십니다. 디모데는 그의 생애를 복음의 사역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안수함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증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즉 소명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신 것이요, 여러분의 인생을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아시고 예수를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의 이주반도에 백여 개의 나무로 만든 실물과 똑같은 새들을 나무에 올려놓았습니다. 다른 새들을 유인하기 위한 일종의 모형 새들입니다. 이 나무 조각 새들을 놓는 목적은 전멸위기에 처한 앨버트로스라는 새들을 유인해서 새끼를 낳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참으로 바보스러운 앨버트로스 새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2년이 넘도록 앨버트로스 새는 이 나무 조각 새에게 구애를 벌리고 있었습니다. 아주 멋있는 둥우리를 곁에 만들어 놓고 구애를 하면서 다른 앨버트로스 숫새들이 경쟁을 벌리며 구애를 하면 싸워 물리치면서 생명이 없는 나무 새에게만 구애를 하였습니다. 그는 종일토록 나무 조각 새 옆에 신실하게 있으면서 구애를 하며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조류연구가인 일본의 후미오 사토씨는 이 앨버트로스 새가 나무 새에게 심취한 채 구애를 하는 바보 같은 짓을 지켜보면서 "이 새는 진짜 새들에게는 데이트할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앨버트로스 새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해 비슷하거나 어렴풋이 희미한 모방적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신앙의 체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네, 나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성경도 읽고 있습니다. 매일 밤 기도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되면 신앙의 자세에서 벗어나서 쉽게 좌절하고 실패감에 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어떻게 할거나?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한탄하며 몸부림치면서 원망하는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믿는다는 것(believing in God)과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trusting in God)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의 건강, 당신의 경제, 당신의 가족, 당신의 미래에 대해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디모데는 온갖 박해와 거짓교사들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지금 견고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있습니까? 말로만 예수를 위해 산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까? 정말 거짓없는 순수한 믿음, 불타는 소명감의 믿음, 나의 모든 문제, 나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 맡길만한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이러한 믿음으로 진정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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