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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능자와 전능자 (요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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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자와 전능자(요 5:1-9)
 
<요한복음 5장 1-9절>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
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 이
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
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
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
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날은 안식일이니


<서 론>

누군가가 저에게 와서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단어를 찾으라고 한다면 조금의 망설임
도 없이 바로 ‘은혜’라는 단어임을 힘주어 말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여 주는 장면들
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이 힘든 노동을 통해서 대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결코 은혜
가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해서 받는 임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러나 은혜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남
들이 하기 어려운 힘든 일을 해서 받는 것도 아닙니다. 어떠한 노동도 하지 않았고 거
기에 합당한 권리나 주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받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
나님의 은혜입니다. 
특별히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선명한 그림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이야기는 다
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아주 독특한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는 주
로 갈릴리 호숫가를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러나 요한복음만큼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기적까지도 우리들에게 증거하
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절을 보시면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
라가시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명절들이 있습니다. 무
려 7개의 중대한 명절들이 있습니다. 이 명절들은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입니다. 이 명절들을 쉽게 암기하시려면 그 앞 글자만을 따서 
‘유무초오나속장’이라고 외우시면 아주 간단합니다. 그런데 이 7가지의 절기들 가운
데에 적어도 일 년에 세 번 정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예루살렘을 올라가서 지
키는 명절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출애굽기 23장 17절을 보시면 “너의 모든 남
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는 말씀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

이 중에서도 무교절, 오순절, 장막절에는 반드시 예루살렘에 모든 남자들은 올라가야
만 합니다. 따라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유월절이 지나서 무교절이 이르자 그 율례를 지
키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예루살렘에
는 ‘양문’이라는 조그마한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은 이름 그대로 양들이 들어오고 나
가는 작은 문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 양문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양을 사
고 파는 시장의 의미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양문 곁에는 히브리말
로 ‘베데스다’라고 하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이 연못은 원래 그 의미가 ‘자비의 
집’입니다. 그 이름처럼 이 연못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와서 자비를 구하는 곳이
었습니다. 따라서 이 연못에는 자신의 병과 문제를 해결함 받기 원하는 비참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또한 이 연못에는 행각이 다섯 개가 있었습니다. 행각이란 
사람이 걸어 다니는 곳을 뜻합니다. 이 행각에는 비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지붕이 쳐 있었습니다. 이 행각을 솔로몬이 지었기에 사람들은 이 행각을 ‘솔로몬 행
각’이라고도 이름 하였습니다. 
성경은 이 행각 안에 수많은 비참한 병자들이 누워 있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소
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 등, 그 당시의 의학으로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이러한 많은 병자들이 그 행각 안에 누워 있는 오직 한 가
지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병을 고치는 일입니다. 그 연못에는 가끔 하
늘로부터 천사가 내려와서 그 물을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물이 동하는 바로 그 순간
에 연못으로 제일 처음 들어가는 사람은 어떠한 병이 있든 지간에 다 낫게 되는 역사
가 일어났습니다. 이 베데스다 연못은 바로 ‘기적의 연못’이었습니다.


<병자의 상황>

일 년에 이 연못에서 한 사람이 병 고침을 받았는지, 열 명이 고침을 받았는지 거기
에 대해서는 성경은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수많
은 병자들이 이 연못에 지금 몰려와 있다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예루
살렘에 올라오셔서 다른 데로 가지 않으시고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이 연못에 도착하
신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병자들 중에서 오직 한 사람에게 이목을 집중하셨습니다. 성
경은 그 병자를 가리켜서 38년 된 병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병자의 상황은 대단히 심각하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조금도 걸어갈 수도 없고 
누워 있는 상태에서도 몸을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너무나 비참한 병자였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자신의 육신이 있다는 것이 영적으로도 매우 큰 낙심이 되었으며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몸에 달려 있는 팔과 다리도 거추장스러운 물건에 지나지 않
았습니다. 도저히 산 소망이 없는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누
구도 그의 곁에서 따뜻한 말로 위로해 주지 않았습니다. 한 두 해도 아니고 무려 38년
을 병상에서 누워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경험한 실로 불쌍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사람의 병의 원인이 바로 죄에 있음을 명확하게 증거하고 있습니
다. 예수님께서 본문 14절을 통해서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
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향해서 “너의 병의 원인이 죄에 있었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의미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38년 된 병자는 안으로는 죄요, 밖으로는 질병이라는 이중고
를 경험한 매우 비참한 존재였습니다. 38년을 이렇게 보냈으니 이 사람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겠습니까? 아니면 돈이 있었겠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다정한 이웃과 친구
들이 있었겠습니까? 따라서 무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이 사람은 조금의 소망도 없
는 사람이요 완전히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연못을 움직
이는 것이 아니라 흔들어 놓을지라도 그 안에 도저히 뛰어 들어갈 수 없는 철저하게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이다 보니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을 향해서 원망을 
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때에 38년 된 
병자는 “물이 동해도 나를 연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원망하며 불평을 합
니다. 이 병자의 인생은 죄와 불평과 원망으로 무려 38년을 허비한 완전히 무능한 삶
이었습니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살아갈 소망이 없는 철저하게 실패한 인생이요 
비참한 무능자였습니다.
우리 인간들도 영적으로 이 38년 된 병자와 똑같습니다. 저는 기독교 교리중에서 가
장 중요한 교리는 바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는 교리라고 생각합
니다. 인간의 전적타락의 교리, 인간의 전적 무능력의 교리야말로 진리 중에 진리입니
다. 인간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의 사건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스스로 찾을 수가 없습니
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전적인 무능력 교리
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38년 된 병자입니다. 소
망이 전혀 없는 불쌍하고 비참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가장 불행했던 사람이 하
루아침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
까? 바로 이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면 가
장 비참한 인간도 순식간에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변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
다. 예수님만이 그런 능력이 있는 줄로 확신합니다. 드디어 능력의 예수님께서 이 38
년 된 병자를 치유하시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그림처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하심>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이 38년 된 병자를 선택하셨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눈을 
씻고 열심히 읽고 찾아보아도 예수님께서 그 연못에 모인 모든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는 내용은 없습니다. 많은 병자들 중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38년 된 병자만을 찾으
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자만 예수님께서 선택하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선
택의 은혜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를 택하실 어떠한 의무가 없으셨습
니다. 그 일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없으십니다. 또한 그 병자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병
을 고쳐 줄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도무지 알지를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자신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이 어떠한 존재인지도 몰랐습니다. 13절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
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도 못할 때에, 예수님에게 무
슨 능력이 있는지 짐작도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병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
니다. 
이러한 선택의 은혜는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임하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
었을 때에, 그리고 우리가 전적타락으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무능하였을 때에 예수님께
서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이미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38년 
된 병자를 선택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본문 21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
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 사람을 택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9장 16절에서는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
암음이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
아 선택을 받았고 육신의 질병을 치유함 받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왜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선
택해서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하나님과 원수 되었
을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선택하심이 먼저 있었
기에 우리가 큰 은혜를 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가 지금 우리들을 이 자
리에 인도한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를 찾으셨습니다. 

본문 6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라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눈에 아주 우연히 그 사람이 보여서 보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
수님께서 그 사람을 보시고 찾아 가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역사
의 시작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을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
원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잃어버
린 자를 다시금 찾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들을 찾아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구원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구원의 가능성만 아주 희미하게 열어 놓
으신 분이 절대로 아니십니다. 선택하신 백성들을 찾아서 구원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15장 4절에서도 이런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너희 중
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
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이 말씀과도 같이 우리 예수
님은 길 잃은 양처럼 이 세상에서 유리하며 방황하고 있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시는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의 가장 위대한 사역입니다. 하나님
께서 택하신 영혼들을 예수님께서는 애타게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찾으시는 사랑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먼저 찾지 않았음을 깨달으십시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기는 
들었어도 그것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찾으셨음을 감사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겸손히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에게 물어보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먼저 오늘 본문 6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낫
고자 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병자의 의식을 깨우는 거룩한 물으심이었습니다. 
이 38년 된 병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육신의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무엇
이 가장 큰 문제일까요? 바로 마음의 질병이 가장 큰 장애였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
한 의식이 크게 병들었습니다. 지금 이 병자의 의식 속에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야! 나에게는 어떠한 희망의 빛이나 참 된 소망이 없어! 이 세상
의 그 누구도 나의 병을 고쳐줄 수는 없어!”라고 하는 패배의식이 가득 차 있었습니
다. 지금도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
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 원인은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식이 병들어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랑의 예수님께서는 먼저 질문을 통하여 38년 된 병자
의 의식의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그 의식의 변화를 통하여 병자의 마음의 소원을 소생
시키셨습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소망의 기쁨으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의식의 없는 무의식의 상황속에서 일어나는 역사가 아닙니다. 지, 정, 
의 의식이 뚜렷하지 않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구원을 받았다고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구원이 아닙니다. 유아세례는 성경에 없는 의식입니다. 유아세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근거를 구약성경에 두고 있습니다. 구약의 시대에 어린 아이들에게 할례
를 베풀었는데 그 전통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유아세례로 바뀌었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
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
다면 여자 아이들은 도저히 세례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여자 아이들
은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식이 없는 유아에게 세례를 주고 구원
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가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무
의식의 상태에서 신령한 은혜를 받았다고 주장을 합니다. 나 자신의 의식의 전혀 없
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환상이나 예언 등의 신비한 경험을 한 것을 자랑 삼아 떠벌립니
다. 그러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무의식의 상태에서 받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은사
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의 장난에 불과합니다. 성경에 나타나 성령의 역사는 우리
의 의식이 항상 분명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의식이 분명한 상태
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다가 받은 방언은 하나님의 은혜가 분명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나타난 것처럼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는 우리의 의식을 깨우는 신령
한 작업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회개케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죄로부터 돌이키게 하시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키도록 예수님께서는 지
금도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
냐?” “네가 비참한 상태에서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기를 원하느냐?” “네가 지금 죄
로 말미암아 멸망한 상태에서 구원의 은혜를 받기를 원하느냐?” 이러한 예수님의 질
문에 우리는 자유의지로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선한 자유의지가 있겠습니까!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
조하는 신학은 아주 잘못된 신학입니다. 그 옛날 이단으로 정죄되었던 오리겐 신학과 
펠라기우스 신학의 영향으로 생겨난 엉터리 사상이요 잘못된 신학입니다. 성경은 분명
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먼저 선택하시고 찾으시고 질문하시고 부
르신 결과로 인간의 지, 정, 의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사건이 구원의 은혜라는 진리임
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변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이야말로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절대적인 진리라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넷째로,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에게 말씀하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본문 8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라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를 향해서 3가지로 명령을 하셨습니다. 
“일어나라”, “네 자리를 들어라”, “걸어가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핏 보기
에는 이 명령에 많은 모순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자신의 힘으
로 일어날 능력이 있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힘
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는 불가능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예수
님의 명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명령을 하십니다. “일어
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명령하
실 때에 그 말씀에는 놀라운 능력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38년 된 무능자에게 전능자 
되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게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
고 이것이야말로 바로 구원의 은혜입니다. 
목사의 설교나 전도자의 증거하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임하게 되면 전
능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임합니
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전도자들은 부지런히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전파해야
만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 복음을 증거해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열
심히 전도하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매 주일마다 새로운 영혼들을 교회로 많이 인도하
고 계십니다. 참으로 귀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전도하는 분들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계속해서 우리 교회에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혼들을 구원하는 전도에 달려 있습니다. 따
라서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믿음의 권속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 불신자들을 
향해서 담대히 선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 자신에게는 능력이 없어도 하나님의 진리
의 말씀을 입술을 벌려서 담대히 선포할 때에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강하신 구원의 
능력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병든 자가 치유함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무능자가 전능자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변화가 임
하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다섯째로,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에게 치유하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의 말씀을 통해서 이 병자에게는 즉각적인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습니
다. 이러한 놀라운 기적에 대해서 본문 9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치유는 즉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리고 완전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도 깨끗이 고침을 받는 실로 놀라운 사건
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영적으로 죽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난 사람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한다
면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오랫동안 죄로 말미암아 방황하고 육신의 질병으
로 크게 고통 당하였던 사람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한다면 그거야 말로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38년 된 병자가 그러한 진리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로 인하여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
어가는 놀라운 변화를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변
화는 오직 예수님께서 먼저 선택하시고 찾으시고 물으시고 말씀하시고 치유하시는 은
혜로만 가능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예수님은 아무런 자격
과 능력이 없는 자에게 은혜를 쏟아 부어 주시는 은혜의 주님인줄로 믿습니다. 그 은
혜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임하여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줄로 확신합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의 병을 고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님 최후의 목적은 바로 병자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시
고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시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치유함을 받은 
그 사람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요한복음 5장 14절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보
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이때까
지 그 사람은 자신의 병을 고친 분이 예수님이심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자신에
게 다시금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서 자신의 병을 치유하신 분이 바로 예수
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5장 15절에서 “그 사람이 유
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그 사람이 자신을 고치신 이가 예수님이심을 믿고 깨닫고 담대히 증거
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을 보시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
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
다. 이 심오한 은혜의 말씀을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5장 1-9절은 마치 한 폭의 아름답
고도 감동적인 그림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스로 무능하고 도와줄 사람도 전혀 
없고 오랫동안 내면의 죄로 괴로워하고 외부의 질병으로 고통하고 있는 사람들도 절망
할 필요가 이제는 없습니다. 천하 만민이 싫어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죄인 중의 괴수
라 할지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하
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을 하셨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고 영원토록 동행하시면서 선택하신 자녀들의 삶을 지켜주
시고 보호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오늘도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구원받기를 원하느냐?” “네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하고 하는 음성이 들려오는 사람은 진정 복된 인생입니
다. 이때에 우리는 힘차게 대답을 해야만 합니다. “주여, 제 낫고자 하나이다!” 
“주여, 저는 구원받을 자격은 없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말
미암아 구원받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며 간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역사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자격이 없다고 좌절하지 마십
시오. 능력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권리가 없다고 죄의 구렁텅이에 마냥 앉아 
있지 마십시오 무능자와 전능자의 관계는 오직 은혜의 관계뿐입니다. 이 은혜만이 가
장 불행한자를 순식간에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변화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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