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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하는 자에게 내리시는 복 (시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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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자에게 내리시는 복
시 3: 3-8

  오늘은 시편 3편 3절에서 8절까지 있는 말씀가지고 “기도하는 자에게 내리시는 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8절을 보면,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당해서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마하나임이라는 곳에 쫓겨가서 머물며 쓴 것입니다. 평안할 때가 아닙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쓴 시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내용이 거의 기도로 채워졌는데 이 기도가 이루어 져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복을 주신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복의 창고라고 할 만큼 하나님은 엄청난 복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약속했다고 해서 그것이 내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을 받아 누릴 때 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라는 방법을 통해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만날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는 것은 하나같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주시고 또 주시고 또 주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뜻을 강조하는 어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 즉 기도 외에는 이렇게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꼭 약속된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시는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붙드심의 복 (3-5)

  솔로몬은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넘어질 수 있으나 그때마다 다시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아버지 되는 다윗은 시편 37편 24절에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넘어지는 것 같아도 넘어지지 아니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붙들어 주심은 우리에게 큰복입니다.

  세도가 많은 사람이 날 붙들어 주면 누가 날 건드립니까? 또 돈이 많은 재벌이 나를 붙들어 준다면 돈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이 날 붙들어 주신다면 얼마나 큰복입니까? 그런데 붙들어 주시는 복은 기도하는 자에게 약속된 복입니다.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때로는 새벽에, 때로는 밤을 지새우면서 때로는 금식하시면서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무식해서 기도하셨습니까? 가난해서 아쉬운 것이 많아서 기도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라는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절부터 5절까지를 보면,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3절 말씀을 설명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방패가 되셔서 나를 죽이려고 공격하는 창이나 화살을 모두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골리앗 대장 앞에는 방패잡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쪽에서 물 맷돌을 던지거나 창을 던지거나 화살을 쏘면 방패막이가 모두 막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던지는 물 맷돌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죽은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가 되시면 모두 막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수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하였는데 머리를 들었다는 것은 그 이전까지는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까? 고개를 푹 숙이고 코가 쭉 파져 있으면 성공했을 때입니까? 실패했을 때입니까? 승리했을 때입니까? 패배했을 때입니까? 경쟁에서 패배하고 기가 죽어서 머리를 푹 숙이고 있을 때 머리를 드시는 자, 즉 하나님께서 승리를 안겨주고 성공을 축복으로 주셔서 머리를 들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방패요, 영광이요, 내 머리를 드시는 자라는 것은 한마디로 나의 전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은 나의 전부라는 신앙고백을 먼저 하였습니다. 다윗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양 몇 마리를 치는 목동이었는데 일국의 대왕이 되어서 400년 왕통을 이어갔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크고 대단한 일입니까? 다윗은 이 모든 것의 전부가 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신앙을 먼저 고백하고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4절에서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었더니 성산에서 응답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성산은 시온산을 말합니다. 시온산에 무엇이 있습니까? 성전이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쫓겨가서 기도하고 있지만 아직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벌써 응답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는 기도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해야합니다. 응답을 해주실 것인가, 아닌가를 생각하며 기도하면 안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을 때에는 아무 것도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기도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고 그 기도가 응답이 되어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5절의 배경은, 다윗이 우리처럼 평안히 먹고 자는 때가 아닙니다. 시편 3편은 예루살렘 왕궁에서 지은 시가 아닙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던 압살롬이라고 하는 아들이 반역을 일으키고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되려고 하는 때입니다. 그런 괘씸한 사람들에게 쫓겨서 예루살렘을 다 내어주고 요단강을 건너올 때에는 얼마나 급했던지 신도 못 신고 마하나임이라고 하는 곳까지 쫓겨 온 때입니다. 마하나임을 지나면 국경밖에 없습니다.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 아닙니까? 이렇게 분통터질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럴 때에 잠이 오겠습니까? 그런데도 다윗은 그 날밤에 잠을 푹 잤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란군이 그날 밤으로 요단강을 건너 쫓아왔다면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밤에 끝장이 났을테니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단강 건너에 있는 반란군으로 하여금 후새의 모략을 통해서 건너오지 못하도록 막아주셨습니다. 그래서 평안히 자고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꼭 붙들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5절입니다.

  여러분들도 막다른 골목에 처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분통터져서 잠을 잘 수 없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면 편히 잠자게 되는 것입니다. 그날 밤이 고비가 되었던 다윗은 다음날 아침에 건강한 몸으로 일어나 그 때부터 승리하는 기회를 다시 잡았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사람은 승리합니다. 나중에는 압살롬이 패배하고 죽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이런 위기에서 기도할 줄 아는데 반란군의 괴수가 된 아들 압살롬은 기도할 줄을 모릅니다. 승리는 기도하는 자의 것이요,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시시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스위치와 같습니다. 발전소에서 어마어마한 전기를 생산하여 그 전기는 전선을 타고 여러분들의 안방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불이 들어오고 자동적으로 전자제품이 작동이 됩니까? 스위치를 반드시 켜야 합니다. 스위치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보여도 그것을 키면 모든 집안의 전자제품들이 작동됩니다. 공장의 기계들이 작동됩니다. 그러나 스위치를 끄면 작동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복은 복중에서도 큰복입니다.

  저의 큰딸이 열살 때 제가 막내아들을 낳았습니다. 1년이 지나서 큰딸이 열한 살이 되고 막내아들은 아장아장 걸었습니다. 그 때 저의 집이 서울차량공사 뒤편이었습니다. 하루는 큰딸이 막내아들에게 예배당 마당에서 놀자고 하니까 누나에게 업어달라고 하였습니다. 또 누나가 동생을 잘 업어 주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무슨 띠로 매는 것도 아니고 동생을 업고 두 손을 뒤로 잡고 길을 건너려고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신호가 바뀌자 뛰어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좀 든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딸아이의 다리를 툭 치고 지나갑니다. 그때 다리가 꼬여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열한 살 난 아이가 자신이 넘어져서 이마가 다칠 상황에 아기를 그대로 업고 있겠습니까? 손놓고 땅을 짚으면 안 다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끝까지 동생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 손을 놓았으면 태어난 지 1년밖에 안된 아이가 아스팔트 위에 나뒹굴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정말 아슬아슬합니다. 큰 변이 날 뻔 했습니다. 그러나 큰 딸은 동생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딸아이는 아스팔트에 앞으로 넘어지면서 앞니 두 개가 부러졌습니다.

  설교 준비하면서 그 때 생각이 났습니다. 열한 살 난 누나가 끝까지 붙들어 주었기에 동생이 큰 변을 당했을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천상천하의 하나밖에 없으신 능력 있는 분, 천상천하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실 때 누가 감히 우리를 해칩니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심은 성도들에게 최고의 축복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를 반드시 붙들어 주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꺾어 주심의 복 (6-7)

  본문으로 돌아가서 6절과 7절을 보면,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천만인은 압살롬의 반란군을 가리킨 것입니다. 실제로 천만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압살롬과 그 패거리들의 뺨을 치신다고 하였습니다. 호통을 치신다는 뜻입니다. 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해치는 자들의 송곳니를 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꺾는다는 말의 뜻은 기를 꺾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압살롬 군대의 사기를 꺾으시자 패잔병들로 다시 재편성된 다윗의 군대 앞에서 완전히 패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악당들의 사기를 꺾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군대의 사기는 코브라 독사의 송곳니와 같습니다. 그것을 꺾어 버리면 이미 독사는 아닙니다.

  독사 코브라의 입안을 보면 위턱에서 송곳니 두 개가 나옵니다. 송곳니에서 나오는 코브라의 독을 모아 놓으면 장정 이백 명 내지 삼백 명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독사의 입에서 송곳니 두 개만 꺾어놓으면 미꾸라지와 다름이 없습니다. 맥을 못 추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지고 놀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를 꺾어 놓으면 본연의 성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저는 ‘동물의 세계’나 ‘자연은 살아있다’ 등등의 자연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사자는 아래턱에 송곳니가 두 개, 위턱에 송곳니가 두 개 있습니다. 이 송곳니 네 개로 짐승을 물어버리면 단숨에 숨통이 끊어 집니다. 한번은 TV를 보는데 송곳니가 없는 사자가 나왔습니다. 그 때 해설자가 말하기를 저 사자가 죽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하였습니다. 늙어서 이빨이 빠졌기에 사냥은 절대로 못하게 되고 가족들이 사냥을 해와도 이빨이 없으니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는 사자와 호랑이의 이빨을 꺾어버리면 강아지처럼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반란군의 기세를 꺾어버리면 강아지처럼 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첫째로 우리들의 믿음을 빼앗아 가는 마귀입니다. 둘째로 건강을 빼앗아 가는 병마가 혹시 여러분들 집안의 원수가 될지도 모릅니다. 셋째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지긋지긋한 가난이 원수일 수도 있습니다. 몇 일전에 자녀 셋을 거느린 젊은 엄마가 첫째 아기, 둘째 아기를 높은 아파트에서 던지고 셋째 아기는 끌어안고서 뛰어 내려 모두 죽고 말지 않았습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헤어날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남의 일이니까 말하기 쉬워서 ‘죽을 각오를 하고 살면 되지, 왜 그러나’라고 돈 안들고 힘 안들기에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 상황이 되어 보십시오. 그렇다고 목숨을 끊으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집안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 헤어날 수 없는 가난이 원수가 아닙니까? 원수의 기를 꺾어 주신다는 것은 승리를 내게 주신다는 뜻입니다. 축복은 내게 있다는 뜻입니다.

  악마의 이를 꺾어 주시고 병마의 이를 꺾어 주시고 가난의 이를 꺾어 주시면 여러분들의 발목을 절대 붙잡지 못할 줄로 믿습니다. 나를 위해서 나를 괴롭히고 나를 죽이고 나를 망치는 원수의 이를 하나님께서 꺾어주심의 복이 여러분들의 큰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즉 승리의 복이 여러분의 복이 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해답의 복 (8-)

  본문으로 돌아가서 8절을 보면,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시편 3편을 지을 때가 마하나임으로 쫓겨가 있을 때입니다. 막다른 골목이 아닙니까? 이런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는 길은, 즉 구원 얻는 길은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문제의 해답과 해결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막다른 골목에 처해본 적 없으십니까? 오늘밤이 고비라고 하는 막막한 상황에 처해 잠못 이룬 적은 없으십니까? 심지어 이 시간에 나올 때에도 죽고 싶은 심정을 가지고 나오신 분은 안 계십니까? 다윗이 바로 이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답과 해결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에 한글을 배우지 못하고 일본어를 배웠습니다. 2학년에 올라가니까 구구단을 외우는데 일본어도 제대로 못하는 때에 이것 역시 일본어로 외웠습니다. 그 때 하도 외워서 지금도 구구단을 외울 때에는 일본어로 하는 것이 더 빠릅니다. 그 당시는 군국주의 교육인지라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채찍을 가지고 학생들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숙제를 내주었는데 학생이 안 해오거나 숙제를 틀리게 해오면 고사리 같은 손을 채찍으로 때립니다. 아프다고 손을 감싸면 곧바로 머리를 내려칩니다. 그래서 아프다고 머리를 손으로 감싸면 종아리를 칩니다. 군국주의 교육이란 군대식 교육이라는 말입니다. 또 월요일마다 교장선생님이 단 위에 서있으면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아이들이 한시간 동안 행진을 하며 경례를 하였습니다.
  한번은 숙제를 해야하는데 도무지 문제가 어려워서 풀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학교에 가고 싶겠습니까? 그 때에는 그 문제를 들고 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짜증을 내십니까? 기쁨으로 도와 주십니다. 나에게 푸는 법을 가르쳐 주시는데 아버지가 못 푸는 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숙제를 해서 학교에 가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문제를 내가 풀지 못하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에게 두고는 그 문제가 나보다 크기 까닭에 내가 풀 수가 없지만 나의 아버지는 문제보다 더 큽니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초등학생 숙제 문제는 작은 것입니다. 그래서 못 푸는 문제가 없습니다. 나의 문제의 해답은 아버지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서 오늘밤이 고비다, 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도무지 해결책이 없다고 절망할 때에 그 해결책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문제보다 작기 때문에 해결을 할 수 없고 해답을 찾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문제 보다 크신 분이시기에 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해답, 나의 모든 어려운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 나가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풀어주십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합니까? 내 아버지가 내 숙제문제를 기쁨으로 가르쳐 주고 푸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처럼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보십시오.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세 번째 복이 해답의 복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내리시는 복은 해답의 복입니다. 여러분들의 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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