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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회 복(3) ♥ / 왕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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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 복(3) ♥
왕하20:1-7

『 어느 교회에 목사님이 불쌍한 앉은뱅이를 날마다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대문에 나가면 배고파 엎드려 있는 거지 앉은뱅이에게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돈을 주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목사님께 고맙기도 하고 또 배가 고프면 교회 마당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몹시 아파서 죽게 되었습니다. 온 교회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장로님이 교인들에게 선포했습니다."우리 목사님이 몹시 편찮으셔서 위급하게 되었으니 우리 모두 금식하며 기도합시다." 그래서 온 교우가 교회에 모여서 작정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는데 앉은뱅이가 마당에 또 왔습니다. 한 분 집사 님께서 "너 같은 것이 여기 무엇 하러 왔느냐? 지금 우리교회는 목사님이 위독해서 온 성도들이 기도 중에 있으니 빨리 가라"고 좇았습니다. 그랬더니 앉은뱅이가 말하기를 "그래요! 그렇다면 나도 여기서 목사님을 위해 기도 할 것입니다."하며 버티자 집사님은 "그렇다면 네 맘대로 해라" 하고 앉은뱅이를 밖에다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앉은뱅이는 기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속으로 외쳤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꼭 살아야 합니다. 제가 의지할 때가 없습니다. 살려주시면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당신을 믿겠습니다. 하나님 제발 살려 주세요"

교인은 예배당 안에서 앉은뱅이는 추운데 밖에서 밤을 세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목사님이 건강하게 회복되었습니다. 목사님이 몸을 움직이며 마당으로 나오셨습니다. 온 성도가 모인 자리에 앉은뱅이도 너무 기뻐하며 저 뒤에 앉아 있었습니다, 목사님은"내가 죽어 주님 곁에 갔는데 모두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형식이고 외식된 자가 많은데 가장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자를 보았습니다."

모두가 누구일까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목사님은 저 뒤에 구석에 숨어서 부끄러워 얼굴도 못 내밀고 있는 앉은뱅이를 찾아가서 손을 잡으며 "형제여!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 형제의 기도는 나를 살려 주었습니다.고맙습니다"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고 있었고 온 성도들은 정말 하나님이 들으시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 못함에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하며 모두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 1박2일 여정으로 '무봉산 수련원'에서 '집단상담훈련'을 가졌습니다. 이 귀한 모임에 장년 21명과 학생, 어린이들 15명까지 합쳐 도합 36명이 은혜로운 시간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번 모임을 나의 목회사활이 걸린 중요한 시점으로 생각하고 여러분에게 강력한 참여 메시지를 보내었는데 예상외로 많은 성도 님들이 참석해 주셔서 너무도 기쁘고 행복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신입성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헌신으로 빛나는 모임이 된 줄로 믿으며 진심으로 참여한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이번 모임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가정과 교회의 공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늘찬양교회의 성장과 앞날의 문제를 생각하며 함께 고민하고 아파했던 그런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대화를 나눔에 있어서도 교회의 문제를 내 문제처럼 여기고 진정으로 아파하며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형식적이고 마지못해 그리고 비판적으로만 보는 사람도 없쟎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수양회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최대의 보화는 36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의 참석을 통하여 성도들이 늘찬양교회에 대한 많은 애착과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교회 부흥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엘리야 선지자가 느꼈던 나 홀로 라는 외로움의 문제였습니다. 어느 누구하나 교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지 않고 그저 교회 나왔다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형식적인 신앙인의 모습과 교회가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해도 십일조에 대한 관심이나 재정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으므로 전혀 위기의식이 없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 수련회를 통하여 순수하고 거짓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소수의 무리들을 바라보면서 저 분들의 순수함과 희생이 저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늘찬양교회를 떠나지 아니하고 늘찬양교회를 지키며 사수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목적의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자고로 양은 목자를 귀히 여기고 목자는 양을 소중하게 여길 때 교회는 성장하는 것을 봅니다.

저는 이번 수련회를 마치고 새벽에 눈을 뜨면서 생각나는 것은 히스기야의 기도였습니다.
히스기야가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그 병으로 인하여 죽고 살지 못하리라."(1절下)는 사명선고를 받고서는 당황함과 안타까움에 잠을 못 이루고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문제해결의 축복이 기도밖에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주 앞에 행하며 주의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20:2-3)하며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 생명을 15년 동안이나 연장시켜 주셨듯이 ..... 저도 하나님께 엎드려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 시켜 주신 하나님 우리 늘찬양교회가 귀한 장소인 이 곳을 절대로 떠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도와주옵소서 앞으로 15년 동안에 채무를 다 갚고 더 귀한 장소로 옮길 지언정 15년 안에 불상사로 이곳을 옮기거나 떠나는 일이 없도록 지켜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저 혼자만의 기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어야 응답이 빠르게 나타납니다. 그렇게 되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내 교회에 대한 주인의식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Ⅰ. 주인의식과 불평하는 마음

우리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성도들에게 '주인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열정과 헌신은 있으면서도 유독 교회재정과 교회행사 그리고 교회봉사에 대해서는 마음을 합하지를 않습니다. 하는 사람만 하고 모두다 강 건너 불 보듯 구경만 합니다. 마치 전도사님들이 주님에 대한 믿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은 있으면서도 자기가 찾아서 교회 일에 충성 하려하지 않고 목사가 일을 시켜야만 교회 일을 하듯 성도들도 주인의식을 갖고 내 일을 찾아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야 하는데 내가 나서서 교회 일을 하면 저만 예수 믿나 혼자 열심인 척하네! 하는 미움의 화살을 받을까봐서 인지 서로들 눈치만 보고 또 남이 하겠지 하는 식으로 미루다 보니까 교회가 엉망입니다. 시켜도 눈 가리고 야옹하는 식으로 하는 시늉만 낼뿐 진실로 마음과 정성을 담아 일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어차피 이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니고 얼마 안 있으면 떠나야 하니까? 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겉돌고 있는 것입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늘찬양교회의 재산권이 내 이름으로 되어 있다보니 재산세가 개인에게 부과되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아까워서 여러분에게 5명의 공동대표자를 뽑아 명의를 늘찬양교회의 이름으로 등록하자고 해도 자신에게 혹시나 어떤 금전적 손해라도 올까봐서인지 명의 변경에 동의를 하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막대한 재산세를 저 개인이 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교회의 목사님들은 노후를 생각해서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로 명의를 교회이름으로 옮겨놓지 않는다고 하는데 저는 목사가 자원해서 하자고 하는데도 스스로가 교회의 주인의식을 거부하였습니다.

우리교회가 이렇게 된 대는 늘찬양교회 성도들이 한 푼 두 푼 헌금을 모아서 교회를 건축해야 하는데..... 국가의 놀이방 자금에다 땅만 있으면 교회가 지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건축을 시작하였다가..... 건축업자가 부도가 나고 .... 그것을 교회가 위임받아 마무리 공사를 하였고 뒤이어 IMF를 맞아 더 큰 위기에 몰리다 보니까! ....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증을 잘못 서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재산마저 가압류 당하고 경매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 교회마저도 사회적인 논리로 풀려다 보니 모두가 다 움츠려 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교회가 IMF를 맞아 어려움을 당하자 서로의 눈치만 보던 차에 큰 뜻을 품고 한 성도를 타교회로 보내었는데 그것을 기회로 너도나도 중진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신입성도들도 썰물처럼 교회를 떠나는 불상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 7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게 정신 없이 물질과 싸워오다 보니 이제는 지치고 지쳐서 힘을 잃어버렸고 더 더군다나 내년부터는 놀이방 자금에 대하여 10년 동안 원금을 분할 상환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기도도 되지 않은 머물러 있었습니다. 목회자는 그래도 이런 위기감을 어떻게든 극복해보고자 다시금 학원강의를 시작했고 겨우 겨우 위기를 넘어가고 있는데......

부모는 집주인으로부터 방 빼라는 통고를 받고 어떻게든 일년만 더 연장시켜 달라고 주인에게 사정사정하며 하소연하고 있는데 철모르는 아이들은 엄마 밤 달라고 울며 떼쓰는 아이들처럼 목사님 왜 예전처럼 심방을 안 합니까? 교회가 지하라 냄새가 많이 나고 어둡고 안 좋습니다.... 더 더군다나 지하라 무서워서 기도가 안됩니다. 목사님! 설교가 왜 그렇게 길어요..... 목사님 찬송이 왜 그렇게 느리고 모르는 곡만 부릅니까?...왜 시간은 안 지킵니까?...라는 철부지 소리만 해대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늘찬양교회가 지하라고 하지만 이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장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화요일 평택만민침례교회에서 지방회가 있어서 참석하고 왔는데 주차장이 없어서 목사님이 주차안내를 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교회에 들어가 보니 생긴 모양도 이상하지만 창문이 한곳도 없었습니다. 환풍도 안 되는 그런 예배실을 보다가 우리교회를 와보니까 넓고 깨끗하고 환하고 거기다 창문까지 나 있고 환풍기도 제습기도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시설도 보통이 아닙니다. 천장과 벽을 늘찬양교회답게 미래 찬양사역을 대비하여 그 비싼 석고보드에 마이톤을 붙여서 방음처리를 하였고 벽에도 나무를 붙여서 모양과 아울러 흡음재의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으며 또 저 뒤에서도 강단이 잘 보여서 은혜를 많이 받으라고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았고, 또 거기다가 침례교회답게 침례탕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뿐만 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늘찬양교회를 예쁘게 보셔서 주위환경을 너무나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600여평이 넘는 공원을 교회 옆에 붙여 주셨고 또 아파트 공원 놀이터를 앞과 옆에 그리고 한성아파트 정문을 교회 앞에다 열어 주시고 주차안내를 하지 않아도 곳곳이 주차할 수 있는 장소로 차고 넘치는 은혜를 부어 주시므로 누가 보아도 늘찬양교회는 최고로 좋은 위치 교회장소로는 최고의 장소이다 는 과찬을 들어도 부끄러움이 없는 그런 장소에 총 280여평의 늘찬양교회를 지었건만 .......

늘찬양교회의 주인이 되기를 거부하려는 성도들과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을 듣고 복음을 뜨겁게 전하려는 열정보다는 환경 탓만 하면 전도와 기도와 예배참여를 거부하며 회피하려는 성도들로 인하여 내년이면 교회가 다른 교회로 넘어갈 수 있다는 안타까운 위기감을 마지하며 저는 목매어 눈물이 안나오고 잠이 안 오는 이 뼈아픈 고독감과 허무감과 외로움 속에 7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요즘 잘 나가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로 주목을 받고 있는 대광교회도 성전이 지하입니다. 한국에서 여의도 순복음교회 다음으로 가장 많은 교세를 자랑하고 있는 서울 사랑의 교회도 지하교회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도실이 지하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좋은 시설을 갖추고도 지하 탓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아마 2층 3층의 상가를 얻어 교회를 세워도 무섭다고 안 나올 것이고 또 덥다고 교회를 안 나올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과 환경 탓만을 둘러대며 자신을 헌신하려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 보여지는 헌신과 기도소리 찬양소리는 앉은뱅이를 찾아가 "당신이 진정 나를 위하여 기도해준 참 기도의 사람이었오" 하고 감사의 악수를 청하는 목사님의 손을 부끄러워해야 할 우리들의 신앙양심의 모습입니다.


Ⅱ. 히스기야가 병에 걸려 죽게되는 이유

25세의 젊은 나이로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처음 신실한 왕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인 제사장 스가랴와 경건한 어머니 아비야 밑에서 영향을 받은 히스기야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큼직한 발자국을 남긴 왕입니다. 그는 여러 산당을 제거했으며, 우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미신적으로 섬기던 놋 뱀도 부수어 버렸습니다.(왕하18:4절) 히스기야는 이처럼 할 수만 있다면 성전과 백성, 나라 안을 정결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만 섬기도록 한 믿음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용감하고 선한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로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1절下) 는 말씀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던 히스기야 왕이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함락되어지고 유다 땅 마저 견고한 여러 성읍 들이 무너지자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있을 때 앗수르의 군대가 찾아와서 조공을 바치며 앗수르를 섬기라고 하며 위협을 하자 히스기야는 그들의 침략을 무마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놓여있던 성전 기구와 성전기둥에 붙어있는 금들을 긁어내어 상납을 하므로서 하나님의 성전을 훼손하였고 기도가 아닌 물질로 앗수르의 왕의 마음을 사서 위기를 피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왕하18:15-16)는 것입니다.

없으면 "못하겠다" 할 일이지 어떻게 하나님의 전에 있는 문의 금과 기둥에 입힌 금과 은을 벗겨 가지고 앗수르 왕에게 받치려고 하였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이 만큼 히스기야 왕의 믿음이 떨어졌다는 것이고, 앗수르의 침공과 군대를 두려워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엘리야와 히스기야 왕처럼 이세벨의 보복을 두려워하고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듯 원금 상환을 두려워하고 환경을 불평하며 스스로 자포자기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생각하니 교회 부흥을 책임진 목사로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할 뿐입니다. 저는 사실 이번 수련회의 참여여부를 보고 교회와 나의 진로문제를 결정하겠다고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나는 혼자입니다. 저 혼자뿐입니다. 혼자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를 알아줄 사람도 나를 이해할 사람도 없나이다. 그러니 차라리 여기서 끝내게 하옵소서...... "이것이 나의 마음이었습니다.


Ⅲ. 히스기야의 통곡과 기도

분문에 나오는 히스기야는 자신이 그렇게 의지하고 믿었던 앗수르 군대가 자신이 보내어준 물질을 뒤로하고 군대를 몰고 유다를 침공하겠다는 협박의 전갈을 받고 히스기야는 뒤늦게 후회함 속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왕이 보내온 협박편지를 펴놓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毁謗)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왕하 19:16,19)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도다 저들이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保護)하여 구원하리라."(왕하19:20-34)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있던 날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다 죽여 송장이 되게 하는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그런 기도의 몸부림 속에 히스기야는 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그 병으로 인하여 죽고 살지 못하리라."(왕하20:1)는 사형선고와 같은 심판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군대를 물리쳐주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병도 고쳐주시사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고 히스기야는 즉시 낮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엎드려 진심으로 회개의 기도, 회복의 기도, 치유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의 내용은 2절과 3절에 기록된 것처럼 "낯을 벽으로 향하고 ......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이것이 히스기야의 기도였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한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얼굴을 벽을 향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일어날 기력조차 없어서 침상에 드러누운 채 얼굴을 돌려 벽을 향해 기도를 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얼굴을 돌려 벽을 향한 방향에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성전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문제만을 바라보고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고난의 벽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와 응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벽 자체는 단절과 절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벽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실재와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가르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하였습니다.

다윗은 시편50편 15절에 "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하였습니다.

둘째: 진실과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도했습니다.

3절에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여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의 뜻은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진실과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고 순종하며 살아왔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특히 "주의 보시기에"라는 말의 뜻은 "당신의 면전"이라는 말로서 즉 「나는 순간 순간 주님을 대면하며 살아왔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시 51:6)에 다윗은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진실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연합하며 살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했고 계명을 지켰고 진실과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한 왕이었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에게 신임과 인정을 받은 왕이었던 사람입니다.

셋째: 통곡했습니다.

3절에 "심히 통곡하더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의 통곡은 회개와 간구의 눈물이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를 살려주세요, 내 나이 39세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이 민족을 구해야 하고, 이 백성을 바로 세워야하며, 성전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제가 일찍 죽으면 원수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 피를 토하는 절규였고, 창자가 끊어지는 애통의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절규가 없습니다. 외침이 끊어졌습니다. 부르짖음이 사라졌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기도하지 않은 것은 목사님 때문이고 교회가 지하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11월 24일까지 100일 동안 히스기야의 기도를 선포합니다. 오로지 기도제목은 하나님 "늘찬양교회를 살려주세요..... 내 나이 이제 46입니다. 한참 일한 나이이고 이제 한 마음 되어 위기의식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어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이번 집단상담훈련에 36명이나 되는 많은 식구들이 참여한 증거가 아닙니까. 저는 이제 늘찬양교회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아직도 내 곁에 남아있는 7000명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성도들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이제 이 민족을 구해야 하고 이 백성을 바로 세워야 하며, 교회를 교회답게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교회를 떠나거나 이 교회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생명을 15년 간이나 연장시켜 주셨듯이 우리 늘찬양교회가 앞으로 15년 동안 이 귀한 장소를 떠나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15년 안에 빚진 채무를 다 청산하고 더 넓고 아름다운 동산에 멋진 늘찬양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축복하옵소서...." 하며 히스기야의 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이 기도에 함께 동역 할 7명의 동역자를 구합니다.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진심으로 기도함을 통해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가 늘찬양교회 위에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히스기야 왕이 이렇게 낯을 벽을 향하고 간절하게 통회 자복하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사야 에게 임하였습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 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 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왕하20:5-6)

결국 히스기야는 삼일만에 아픈 병상을 털고 일어나 성전에 나가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찬송하였음은 물론 그 생명이 15년 동안이나 연장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늘찬양교회 성도들이여!
우리가 건강할 때, 자유로울 때에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일을 힘써야합니다. 병상에 들어 누워서야 하나님의 전을 기억하고 예배를 그리워해서는 안됩니다. 러시아, 중공, 북한의 지하교회의 성도 님들의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성경, 찬송을 옆구리에 끼고 자유스럽게 성전에 올라가 예배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의 전을 사모해야 합니다. 시84:1절을 보면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 지요" 했으며, 시 84:4절에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늘찬양교회 성도님들이여!
우리의 믿음 생활이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 급함 같이 성전을 사모하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며 모이기를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늘찬양교회가 올해 안에 출석인원 100명을 채우고 15년 안에 빌린 채무를 다 갚고 더 넓고 좋은 장소로 교회부지를 구입하여 옮기기까지 하나님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늘찬양교회를 축복하옵소서 기도하며 엎드리는 귀한 모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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