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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우리 교회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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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우리 교회 (사도행전6:1-7)

[1]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2]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현대 미국교회의 저명한 목회자중 한 사람인 릭 워런은 말하고 있습니다.
‘21세기 교회의 이슈는 교회 성장이 아닌 교회의 건강이다.’
참 의미 있는 지적입니다. 새겨듣고 실천, 적용, 힘써야 할 지적입니다.
18세기 영국과 미국교회의 부흥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목회자중에 조지 휫필드가 있습니다. 그는 교회의 건강은 바로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적 건강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면서 ‘매일 신앙 점검표’를 작성하면서 인생을 점검하며 살아갔습니다.

1) 작정해 놓은 기도 시간에 기도하였는가?(단6:10,행3:1-2,마14:23,막1:35,눅5:16,22:39
“예수께서 나가 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그 곳에 이르러 무릎을 끓고 기도하여”
(예수님의 기도는 시간을 내어, 한적한 곳에서, 정기적으로,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였다)

2) 매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매 순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요청할 때 기뻐하시고 도와주십니다.

3) 대화나 행동 전에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를 심사 숙고 하였는가?
(고전10:31,롬14:7,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4) 선한 일을 행할 때 뜨거운 열심히 하였는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내게 주어진 일을 할 때 억지로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지못해
서 하거나 어떤 이익을 바라보고 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받으십니다.

5) 말하고 행동할 때 온유와 친절로 하였는가?

6) 이웃에게 교만하거나 투기하지는 않았는가?

7)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드렸는가?

여기 예루살렘교회를 보십시오. 짧은 시간 안에 급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믿는 자가 많아지고 구원받는 자가 더 해 갑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여명이 모이던 것이 수천명, 수만 명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본문6:1에서도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바람직한 장면입니까? 기독교 신자라면 누구든지 교회가 급성장 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사직동교회도 교인이 더 많아지고 구원받는 자가 날마다 더 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너무 급하게 성장하다 보니까 부작용 현상이 여기 저기서 나타났습니다.

1) 파벌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1절: 헬라파 유대인들/ 히브리파 유대인들)

여기 ‘파’라는 단어를 보십시오. 헬라 말을 일상용어로 사용하고 헬라문화에 익숙해서 살고 있는 유대 신자들은 자기들끼리 헬라파를 형성합니다.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사용하면서 히브리 전통 문화를 지키는 유대신자들은 히브리파를 형성합니다. 꼭 계획적으로 파를 만들고 있었다기 보다는 익숙하고 편리한대로 상대하면서 살다보니 이상하게 파벌이 형성되어진 것입니다. 나중에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고린도 교회를 보십시오. 거기는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고 심지어 예수파...까지 생겨났습니다.(고전1:12)

파벌 현상이란 이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잘 통하고 생활 습관이 같고, 마음이 서로 잘 맞는 사람끼리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현상은 곧 상대적으로 원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급성장하고 있던 예루살렘교회에 헬라파, 히브리파라는 전혀 뜻밖의 파벌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무래도 약세를 보이던 헬라파교인들 입에서 원망의 소리들이 새어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신자의 입에서 원망이 흘러나오면 은혜를 쏟아버리고 맙니다. 실컷 은혜 받았다가도 원망 한 마디 터뜨려 버리면 그 은혜는 다 쏟아지고 맙니다. 원망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 가지 재앙’이라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이적을 목격하고 홍해를 육지처럼 통과하고 애굽 군대의 최정예 기마부대가 그 홍해 가운데서 몰살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으며, 메마른 광야에서 생수를 마시고, 달콤한 만나를 시시때때로 받아먹는 등 얼마나 크고 놀라운 하늘을 은혜를 누렸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핏하면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받았던 그 큰 은혜들은 순식간에 다 쏟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은혜를 쏟고 나니 불신 이방민족과 똑 같은 인간이 되고 맙니다. 원망은 불평으로도 번역되었습니다. 마귀의 본성이 ‘불평분자’ 라고 성경이 증거 합니다.(욥1:10-11,계12:12, “마귀가 크게 분 내어” 계12:10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 원망은 마귀적입니다. 매사에 원망과 불평이 많은 사람은 건강할 수 없습니다. 개인도, 가정도, 부부도 그리고 나라도 그러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 우리 나라는 부쩍 원망과 불평이 많습니다. 100년 전, 대한제국 말기처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4대 강대국이 우리 민족의 문제를 다시 좌지우지하고 있는데 우리는 청와대의 대통령부터 여,야,법원,경제,노사,학생,지역간에 파벌이 형성되고, 원망과 불평, 서로 모함하고 못 잡아먹어서 야단입니다. 계속 정신 못 차리고 우물안 개구리처럼 서로 싸우고 원망하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만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건강하고 튼튼한 교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2) 중요한 것(우선적인 것)을 제쳐놓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힘써하고 있습니다.(2절)

그러니 건강할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부흥과 성장속도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지도자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중요한 일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도들(베드로,야고보,요한)은 어떤 일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까? 사람들 식사 대접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요즘 말하는 ‘무료급식 봉사’와 같은 것입니다. 이 일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봉사입니다. 그러나 사도들과 지도자들이 본연의 사명인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은 아예 제쳐두고 이런 봉사에 너무 깊숙이 빠져 있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고서는 교회가 건강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는 물질, 재정, 살림살이 등에 대해서 초연해야 합니다. 관심을 줄여야 합니다. 정신적인 일, 영적인 일, 신령한 일에만 몰두해야 합니다. 교단의 병원문제로 말미암아 그토록 낭패를 당하고서도 아직 목회자들이 거기서 뛰쳐나오지 않습니다. 결과는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부탁드리고 교단의 장로, 집사들에게 모두 넘기고 맡겨야 합니다. 목회자가 신령한 세계에 몰두하지 않고서는 교회가 결코 건강해 질 수 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교회의 물질적인 예우 같은 정말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문제 때문에 관심을 쏟고, 논쟁을 한다면 교회의 미래가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목회자는 신령한 것을 좋아하고 신령한 것으로 부요하고, 신령한 것에 전문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교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담임목사는 그러한 비젼으로살아가겠습니다. 그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기도해 주십시오.


3) 예루살렘교회는 평신도 일꾼들을 미처 양육하지 못하였습니다.(3,5,6절)

이제사 일곱 장립집사를 안수하여 세웁니다. 너무 늦은 조처입니다. 그것도 겨우 일곱명 밖에 못 세웁니다. 지금 예루살렘교회 교인이 얼마입니까? 적어도 수 만 명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뒤늦게사 평신도 일꾼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도들만으로는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베드로, 요한, 야고보같이 기라성 같은 주의 종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역부족을 깨달았습니다. 사도들의 힘만으로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평신도를 일꾼으로 세워 놓으니 스데반집사같은 일꾼은 사도들 못잖은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 대부분께서는 집사입니다. 여려분은 스데반의 뒤를 따르고 있는 평신도 일꾼들이십니다. 우리 교회의 건강과 부흥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 사람 목회자의 힘만으로는 결코 아니 됩니다. 여러분의 각성과 동의와 헌신과 참여가 결정적 열쇠입니다. 여러분은 저보다 더 능력 있는 일꾼으로 교회를 봉사하실 수 있습니다. 스데반과 빌립은 집사직분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에게 전도하고 증거 하였습니다. 집사, 장로, 목사라는 직명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한가? 지혜가 충만한가? 칭찬 듣는 신자인가? 이것이 중요한 조건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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