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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목회 원칙들 (고전 1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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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바울의 목회 원칙들
고린도전서15:5-12                       

바울의 여정 계획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나아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과동할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하니하노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5-7)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8-9)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10-11)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고전16:5-12) 


  본문 내용은 세 주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의 여정 계획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는 전도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셋째는 주의 일군에 대한 대접의 문제입니다. 


<인생 旅程은 하나님 손에 있다>

  첫 번째로 말씀드릴 것은 바울의 旅程 계획입니다.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소아시아의 에베소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年代로 보면 주후 55년 경, 계절적으로는 유월절 가까운 봄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바울은 세 번째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원래 계획은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곧바로 고린도로 직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정을 변경하여 마게도니아 지역을 거쳐서 고린도로 가기로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보고싶어 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제2차 전도 여행 중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곳이 바로 고린도였습니다.  약 1년 반 동안 머물면서 많은 사람을 전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후에도 교인들과는 서신 왕래가 자주 있었습니다.  특히 고린도 교인들은 여러 가지 교회 내의 문제들에 대하여 바울에게 질문을 했고, 바울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하나 하나 답변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00에 대하여는" 이란 구절이 여러 번 나오지요?  바로 그 부분이 질문에 대한 답변들입니다.  예를 들면, 독신 생활에 대하여(7:1), 처녀의 결혼에 대하여(7:25), 우상 제물에 대하여(8:1),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12:1), 헌금에 대하여(16:1) 등등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교훈한 바 있습니다.  당파 문제, 불륜 문제, 소송 문제, 혼인와 이혼 문제, 부인의 수건 문제, 성찬에 대한 문제, 부활에 대한 문제 들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애정이 깊은 만큼 바울은 고린도로 빨리 가고싶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만을 위해서 일정을 짤 수는 없었습니다.  마게도니아를 거쳐서 고린도로 가고, 거기서 겨울을 난 후에 다른 곳으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일정도 장담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나아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과동할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하니하노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5-7) 

  여기서 가장 주목할 말씀은 7절입니다.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어떤 일정을 짜든지 주께서 허락하셔야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오늘 여러분 이 말씀을 기억해 두세요.  평생 이 말씀을 외우고 다니세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오늘 우리 인생에 어떤 계획을 세울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저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인생 계획을 멋지게 세웠습니다.  1,2학년 때는 신나게 놀고, 3,4학년 때는 열심히 공부하자!  그래서 괜찮은 회사에 취직해서 돈 버는 대로 여행이나 실컷 다니자!  첫 단계는 성공했습니다.  신나게 놀았어요.  아쉬운 것이 없을 만큼 재밌게 놀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부터는 엉망이 됐습니다.  폐병으로 학교는 휴학하고,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병들게 되니까 장가드는 것도, 취직하는 것도 말짱 별 볼 일이 없었습니다.  오직 소원은 죽지 않고 사는 것뿐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사는 것이 그렇게 위대한 것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가치관도 다 변했습니다.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는 것 자체입니다. 

돈이요?  출세요?  유명해지는 거요?  남에게 인정받는 거요?  다 별 것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감격적이고 경이적인 일입니다.  풀 한 포기가 살아 있고, 벌레 한 마리가 움직이는 것이 기쁨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는 것이 재미 없습니까?  그러면 한 번쯤 죽다가 살아나 보세요.  인생관이 달라질 겁니다.  우리는 젊은 시절 많은 인생 설계를 합니다.  대통령도 돼 보고, 정주영 씨도 돼 보고, 화려한 앵커맨도 돼 봅니다.  그러나 무엇이 되겠다고 해서 다 되지는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에만 인생 계획은 이루어집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1,9)
 
인생 여정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야망을 품는다고 다 권력을 잡는 것은 아닙니다.  열나게 뛰어다닌다고 다 돈 버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먼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일입니다.  하나님 뜻에 따를 준비를 하세요.  누가 승리자입니까?  내 뜻을 관철하고 야망을 이룬 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뜻을 이룬 자가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신데렐라가 되고 싶으세요?  백마 탄 왕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세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요셉에게는 열 명의 형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우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몰래 요셉을 노예 상인들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뜻이 이루어졌습니까?  요셉이 불행해졌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의 뜻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요셉이 불행지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이 얼마 동안 고생한 것이 사실입니다만, 하나님께서 요셉을 불행해지도록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가정집에 있을 때에는 가정 총무가 되게 하시고, 감옥에 있을 때에는 죄수들의 감독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마침내는 왕궁으로 부르시고 왕실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뜻을 이루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다윗은 여덟 명의 형제 중에 막내였습니다.  형들은 세상적으로 쟁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다윗의 부친 이새를 찾아 왔습니다.  당신의 아들들 중에서 왕을 뽑을 것이니 아들들을 집합시키시오!  아버지 이새는 다윗은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아들들을 소집할 때에 부르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다윗의 형들이 출세 했습니까?  다윗이 왕이 되지 못했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필경 다윗을 찾아 내셨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우리는 인생 설계를 자주 합니다.  평생 설계를 하기도 하고, 1년 설계를 하기도 합니다.  직업에 대한 설계를 합니다.  퇴직 후에 대한 노후 대책을 설계합니다.  결혼과 자녀에 대한 설계를 합니다.  그러나 설계도대로 되는 인생은 거의 없습니다.  별 선택의 여지 없이 인생은 흘러갑니다.  배우자를 만나고, 직업을 선택하고, 사업을 벌이고, 혹은 병들고, 사고나는 모든 것이 인간의 뜻과는 상관 없이 이루어집니다.  모든 인생의 變數들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고백하세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습니다!  아멘! 


<전도의 문도 하나님이 여신다>

  두 번째로 드릴 말씀은 전도의 문을 열고 닫는 일이 하나님 손에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8-9)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렸다?  좀 어려운 표현입니다.  영문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a great door for effective work has opened to me"(NIV)  "효과적인 일을 위한 큰 문이 내게 열렸다!"  지금 에베소에서는 전도의 문이 크게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제아무리 위대한 사도요 전도자라 해도 바울이 전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전도의 주체는 바로 주님이십니다.  전도 대상자도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전도 지역도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언제 누구를 보내서 전도할 것인지도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과연 그럴까요? 

  먼저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전도를 보세요.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를 보낼 때에 누가 선교사를 뽑았습니까?  사람이 투표해서 뽑았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뽑으셨습니다.  금식하고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선교사를 지목하셨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13:2-3)  바울의 세 차례에 걸친 전도 여행의 행선지를 누가 결정했습니까?  주님이 결정하셨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16:9-10)  바울은 전도하면서 수 많은 도시들을 거쳤습니다.  그렇다고 다 전도가 잘 된 것은 아닙니다.  아테네 같은 곳에서는 열심히 설교했지만 몇 사람 전도하지 못했어요.  반면에 에베소나 고린도에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기 때문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오늘 말씀도 바로 그 부분입니다.  지금 에베소에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2년 이상 전도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옵니다.  그래서 오순절이 되기까지 더 전도해야 되겠다는 겁니다.  비록 박해자들이 전도를 방해하기는 하지만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전도와 관련해서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정리해 봅시다.  첫째로, 전도자를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제아무리 전도를 잘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혼자 다 전도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누구를 통해서 특정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바로 그 전도자가 내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특별한 은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남자들이 잘 믿으신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자들을 전도한 것은 바로 그 아내들입니다.  우리 교회의 최고 전도자는 바로 가족들입니다.  남편을 인도하고, 아내를 인도하고, 형제를 인도하고, 부모님을 인도합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가족들을 위한 전도자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인도해야 될 사람을 남에게 맡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전도 대상자를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전도를 위한 각종의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총동원 전도, 전도 폭발 전도, 신바람 전도... 그러나 전도는 프로그램 때문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되는 겁니다.  100년 전에 한국 땅에 선교사가 처음 들어왔습니다.  지금 한국 땅에는 1000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현존하는 사람만 그렇습니다.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사람들을 다 합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겠습니까?  현재 우리 교단에 속한 교회만 해도 7000 교회요 목사의 수만 해도 1만 2천 명 가까이 됩니다.  모든 교파를 다 합치면 상당히 많을 겁니다.  누가 전도를 받았을까요?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 세계를 향해서 선교사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만 해도 1000여 명의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한국에 믿지 않는 3500만 명이 있는데 왜 다른 나라에 나가야 됩니까?  모든 사람이 다 믿고 나오지는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만이 나올 뿐입니다.  그 수가 차면 전도지역은 옮겨집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셋째로, 전도의 시기를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전도를 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때가 바로 전도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지나면 전도의 문은 닫힙니다.  제가 몇 년 전에 터키를 여행하면서 놀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세계에서 기독교 유적이 가장 많은 나라 중의 하나가 터키입니다.  사도 바울의 몇 십 년에 걸친 선교 사역의 절반이 터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한 때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요 동방 기독교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무려 1000 년 동안 기독교가 융성했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터키에서 누가 기독교인인지 눈을 비비고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회교도들의 도시인 이스탐불이 됐고, 웅장한 소피아 성당은 회교 사원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 정해진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때가 지나면 문이 닫힙니다.  오늘 우리는 전도의 문이 열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특별히 우리는 민족적으로 대량으로 부르시는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열린 시대에 열린 지역에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때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들을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종들을 선대하라>

  세 번째로 말씀드릴 주제는 주의 일군들을 善待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주의 일군들을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10-11)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기 전에 먼저 디모데를 고린도로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디모데가 도착한다면 조심하여 잘 대접하라고 합니다.  우선 두려움 없이 편하게 머물게 하라는 겁니다.  주의 종을 두렵게 하지 마십시오.  마음을 편하게 해주세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고린도 교회 안에는 아볼로파도 있고 바울파 베드로파도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제자였으므로 혹 바울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푸대접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목회자의 신상과는 상관 없이 개인의 好, 不好 때문에 함부로 대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편하게 해 달라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주님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안히 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멸시하지 말라고 합니다.  디모데는 젊고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혹시 나이 때문에 얕잡아 보거나 성품이 온순하다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목사는 세상 명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세상 영화를 다 갖다 준다 해도 그것 때문에 행복할 사람은 아닙니다.  목사에게 가장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은 오직 교인들의 신뢰와 존경입니다.  목사가 잘나서 존경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의 심부름꾼이니 주님을 봐서 존경하라는 말입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5:17) 

  둘째로, 주의 일군들을 대접하는 일입니다.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나아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과동할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5-6절)  바울은 고린도에서 겨울을 날 계획을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다음 행선지로 향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모든 일에 고린도 교인들의 대접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바울 스스로 천막 깁는 일을 하면서 전도 활동을 했지만 그것으로 모든 생활비를 감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더욱이 바울을 돕는 많은 일군들이 있었습니다.  바울 혼자 그들을 먹여 살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목회자를 대접하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주 하기 힘든 말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아주 하기 싫어합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에서 늘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목회자 입장에서는 사람에게 대접을 덜 받는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입니다.  그래서 저는 분수에 넘는 대접은 스스로 사양합니다.  그러나 교인들의 입장은 전혀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목회자를 잘 대접할수록 여러분에게 복입니다.  대접 받는 사람이 사양한다고 해서 대접하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께서 식탁에서 하시는 말씀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맛 있는 생선이 있든지, 반찬이 있든지 마찬가집니다.  "나는 배불러서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나는 별로 맛이 없다.  맛 있으면 너나 먹어라!"  그래서 우리는 정말 어머니가 배부르시고, 맛 없어서 안 잡수시는 줄 알았어요.  철이 나서야 나를 위해서 일부러 안 잡수시는 줄 알았지요.  교회도 똑같습니다.  제대로 된 교회라면 목회자는 대접을 받지 않으려고 애써야 되고, 교인들은 대접하려고 애써야 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가끔 가다 보면 IQ가 좀 모자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목사가 거지가 돼야 은혜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은혜도 다 있지요?  청빈하게 살든지 말든지 그것은 목회자 자신의 양심 문제입니다.  목회자가 양심에 어긋나게 살면 하나님께 벌을 받을 것이고, 바른 처신을 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을 것입니다.  교인들의 입장에서일부러 목회자를 거지 만들어 놓고 은혜 받으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 자기의 도리를 해서 하나님께 복을 받으시면 됩니다.  목회자나 교인들이나 축복의 원리는 한 가지입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주의 일군들에게 존경심을 갖고 대하는 것이 복입니다.  주의 일군들을 대접하는 것이 복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인생 여정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어떤 계획을 세웠다 해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성취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둘째로, 전도의 문을 여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정한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이 정한 때에, 하나님이 정한 사람에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나를 전도자로 뽑으시고, 전도할 사람에게 보내실는지 모릅니다.  항상 준비하고 있다가 부름에 응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주의 일군들을 선대하십시오.  존경심을 갖고 잘 대접하세요.  그래서 주의 일이 잘 되도록 협력하시기 바랍니다.  주는 것이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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