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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짐이 너무 무겁습니까? /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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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짐이 너무 무겁습니까? 
본문 : 마태복음 11장 28~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 28~30절 말씀)


  토스토엡스키의 작품에 보면 이런 말이 자주 나옵니다. "죄인에게는 산다는 그 자체가 힘들고 버거운 일이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살아간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누구나 사는 것이 힘듭니다. 저도 사는 것이 힘듭니다. 천국이 있음을 믿기에 버티고 사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정말 이겨 나가기 어렵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라는 말은 "피곤하다. 열심히 일하다"는 의미로, 열심히 해 보았는데, 얻어지는 것이 없기에 낙심이 되고, 좌절이 되어 힘이 빠지고, 용기가 나지 않는 그런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인생 살이도 그렇습니다. 나름대로 한다고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남는 것이 없더라는 거예요. 때로 힘이 빠지고, 살맛 안 나는 인생이더라는 거예요. 자꾸 안되고, 얽히는 일 때문에, 답답하고 괴로울때가 많더라는 것이지요. "무거운 짐 진자"라는 말은, 자신은 원하지도 않는데 소나 말처럼 무거운 짐에 눌려 피곤하고 지친 상태를 말합니다. 짓눌려 있으니 편할 리가 없습니다. 무거운 짐은 육적인 짐도 있고, 정신적인 짐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문제일수 있고, 앞날에 대한 부담감과 불안으로 생기는 짐도 있습니다. 내 개인의 짐일 수도 있고, 가정의 식구들일 수도 있습니다. 물질의 문제일수도 있고, 질병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라고 하면 가난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질병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남편이나 자녀가 애를 먹이고 속을 썩이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저 사람에게는 무슨 걱정거리가 있겠나?" 싶은 사람에게도 수고와 무거운 짐이 있더라는 거예요. 부자에게도, 출세한 사람에게도, 다른 사람이 부러워 할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도 수고와 무거운 짐이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누구도, 어느 가정도 예외일수가 없더라는 거예요. 모양과 크기는 달라요. 그러나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은 다 짐을 지고 삽니다. 힘들고, 괴롭고, 속 상하고, 답답한 일들을 안고 살아가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인생을 고해라고 하잖아요.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쉬운 인생이 없더라는 거예요. 돈 모아 놓으면 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독신으로 사는 사람은 결혼한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결혼한 사람은 독신으로 살 것을 괜히 결혼했다고 후회 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직장 생활하는 사람은 조그마한 것이라도 내 사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사업하면서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은 써주는 회사만 있으면 직장 생활을 했으면 하고 바라더라는 거예요. 한 마디로 인생을 살기가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힘이 드니까 도피를 합니다. 술로 도피해 보기도 하고, 마약이나 노름을 통하여 삶의 짐을 잊어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스포츠나 비디오에 몰두하든지, 나쁜 경우에는 불륜의 관계에 빠져서 인생의 짐을 잊어보려 합니다. 그러나 도피는 인생을 더 힘들게 만듭니다. 힘든 인생에서 참 안식을 누리려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공자(孔子)를 찾아갔더니, 획죄어천이면 무소도야라(獲罪御天 無所陶冶) "하늘에 죄를 범하면 사함 받을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에게 갔더니 "전생에 죄를 지었으면 이생에서 그 죄의 업보를 받을 것이고, 이생에서 죄를 지었으면 내생에 그 업보를 받아야 한다" 잘못했으면 그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사야 1:18 말씀입니다. 어떤 죄라도 예수님 앞에 나오면 해결 받을 수가 있다는 말이지요. 강도도, 사람들에게 따돌림 받고 손가락질 받던 세리장 삭개오도, 창녀도,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접혀 끌려온 여인도 용서하신 주님께서 우리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죄의 문제뿐만 아니라 질병의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육신의 질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도, 염려와 낙심의 문제도 주님이 감당해 주시겠다고 했어요. 요한복음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버지를 떠나 방탕하던 탕자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었던 인생의 무거운 짐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면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었어요. 인생이 너무 힘들고 지칠 때 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내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로 돌이키세요. 양다리 걸친 인생이 제일 힘듭니다. 고달픕니다. 좋은 것 같아도 그 인생은 피곤한 인생입니다. 당장 성공했더라도, 주님께로부터 멀어지는 삶은 시간이 흐르면서 무의미한 삶임을 깨닫게됩니다. 그래서 만인이 부러워하던, 아름다움과 돈과 명예를 다 가졌던 마릴린 먼로 같은 사람이나 노벨상까지 받았던 헤밍웨이같은 사람도 자살로 인생을 끝냈잖아요? 인생이 너무 곤고하고 짐이 무겁습니까? 힘들고 고통스럽습니까? 사람 바라보지 마세요. 환경을 바꾼다고 근본적인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주님께 나아가 우리의 문제를 고하면, 주님께 내어놓으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해답을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없던 길도 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능력의 사자 불의 사자였던 엘리야도 로뎀나무 아래서 차라리 죽는게 났겠다 생각하다가 지쳐 잠들었을 때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떡과 생수를 공급하여 먹고 새 힘을 얻어 황야길을 40주야를 걸어 호렙산까지 간 일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새 힘과 능력은 믿음의 확신을 갖게 합니다. 기진 맥진해 있을 때라도 새 힘을 주고, 낙심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갖고 다시 일어나게 하시더라! 아멘! 주님의 능력은 바꾸어 주시는 능력입니다. 마르고 컬컬한 심령을 시원하게 해 주실 뿐 아니라, 슬픔이 변하여 노래가 되게 하시고, 눈물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수학 문제에 해답이 있듯이 인생의 모든 문제에도 해결책이 있습니다. 때로 문제의 해답을 알 수가 없기에 답답해하고, 낙심할 때가 있을 뿐입니다. 시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문제 때문에 인생을 불행하게 살고 실패하며 후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맡겨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두손들고 온전히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참된 믿음은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현실과 주님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 맡겼을 때 바뀌어질 수 있는 내 삶의 현실을 보십시오. 그래서 사탄의 매임에서, 질병의 매임에서, 죄와 원망과 미움과 낙심스러운 마음의 매임에서, 욕심의 매임에서, 나를 얽매이고 있는 모든 것에서 자유를 얻을 뿐 아니라 누리며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능력이오, 말씀의 능력입니다. 매여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할 수가 없어요. 교회에 나오지마는 큰 기쁨이 없습니다. 즐거움이 없고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적극적 사고방식도 아니오, 심리적인 치료도 아닙니다. 잊어버리는 도피가 아닙니다. 오직 주의 능력만이, 살아있는 주의 말씀만이 우리를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를 얽매이고 있는 모든 무거운 짐들과 고통의 멍에가 꺾여지고 풀려지기를 원합니다. 자유를 되찾으시기를 원합니다. 참 해방의 기쁨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굽었던 것들이 바르게 회복되고, 바뀌어져야 할 것들이 바뀌어지며, 우리의 심령 뿐 아니라 기억까지도 치유받고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역사를 심령으로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내 짐이 점점 무거워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내 대신 짐 을 져주시네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 주시네 (후렴)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아멘. 

  서로 인사합시다. "주님 의지하며 삽시다. 어려울수록 주님 바라봅시다" 사람은 조금만 가진 것이 있어도, 조금만 갖춘 것이 있어도, 그것 의지하고, 붙들며 삽니다. 인간의 본성이에요. 시편 146:3-5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분명 어려운 시기입니다. 힘겨운 환경입니다. 주위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른 것 다 잃어도 하나님만 잃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일어 설 수 있습니다. 

  흔히 사춘기 시절에는 부모를 떠나 자기 마음대로 하고 살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집을 나가는 자녀가 많습니다. 세상에서는 가출하여 성공한 사람이 혹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결국 안 되는 인생 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의 생각에서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과 생활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순종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능대로 사는 것은 쉬워요. 본능을 거스리고, 다스려나가며 사는 것이 어렵더라는 거예요. 때로는 말씀이 제약처럼 느껴지고, 부담스러운 멍에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멍에가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더라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 의 멍에를 메지 말라" 주님을 가까이 할수록 우리의 삶속에 참 자유를 누리게 되더라는 거예요. 반대로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워 말씀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자유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 삶이 더욱 힘들어지더라는 거예요. 말씀의 멍에는 부담이 아니라 참 평안과 안식을 주는 것이더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세계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렘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쉼을 주기 원하시고, 평안을 주기 원하시더라! 아멘! 우리의 일이 되기를 원하시고, 행복하기를 바라시더라! 우리가 더 건강하기를 바라시더라! 눈 앞의 장애물 때문에 낙심하고 주저앉지 않는 비결이 어디에 있느냐? 주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거예요.

어떤 성도님이 시어머니가 어찌나 못살게 하던지 도저히 살수가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몇번이나 죽으려 했는데, 그 때마다 남편이 밤에 잠들기 전에 아무 말 없이 손을 꼬옥 붙잡아 주더라는 거예요. 거칠 거칠한 손, 고되게 일한 그 큰손으로 꼬옥 잡아 주면 그만 눈물이 나고, 그 어려운 시집살이를 견디어 낼 수 있더라는 거예요. 험하고 악한 세상에서 어려울 때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 때마다 하나님의 크고 부드러운 손이 여러분을 꼬옥 잡아주실 때, 위로가 되고 새 힘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은혜받고 축복받는 비결은 주님의 크고 부드러운 손이 나의 심령과 생활 속에 닿는 거예요. 빙점을 쓴 미우라 아야꼬는 11년 동안 척추 카리에스에 걸려서 병석에 누워 있었습니다.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일어나 일본 최대의 문인이 되었고, 최고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앤디 여사는 사하라 사막에 도전하여 유칼리 나무를 심는데 성공했는데, 이사야서에 있는 사막에 꽃이 피고 샘이 넘쳐흐르리라는 구절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1만년 동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땅인 사하라 사막에 도전하여 성공한 거에요. 그 유명한 쥬리어스 시저는 간질환자였습니다.

가장 위대한 황제라는 아우구스터스는 심한 위궤양으로 평생 고생을 했어요. 2차 대전때 영국 공군의 영웅인 다그러스 베이더는 두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끼운 뒤에도 공중전의 최우수 조정사였다고 합니다. 버클러 박사가 신학교 교수로 있을 때, 희랍어에 최고점을 받은 학생은 눈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자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비결을 물어 보았더니 빌립보서 4장13절로 대답하더라는 거예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때로 절망의 때에, 주변에 아무도 힘이 될 수 없는 막막한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세 시대 유명한 이태리의 문호 단테는 플로렌스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고, 처음에는 정치적 지도자로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정당이 서로 충돌하는 중에 패배를 해서 도망할 수밖에 없었고, 타향에 유리하며 고독한 망명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에 천국과 지옥의 비전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을 기록한 것이 유명한 신곡입니다. 고독한 가운데 주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난 거예요.

모세도 마찬가지예요. 호화로운 애굽 궁전에서 살던 청년인데, 어쩔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게 됩니다. 허송세월처럼 보이는 고독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뛰어난 지도자가 됩니다. 고독한 가운데서, 어찌보면 최악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난 거에요. 신념이 300%의 일을 할 수 있다면, 믿음은 3,000%의 일까지도 능히 할 수가 있다는 거예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의 삶이 지금까지는 어떠했든지, 앞으로 우리의 삶 속에 주님이 주시는 참된 쉼이 있고,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점점 나아져 가는 역사가 일어나고 잃어버렸던 것들을 회복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도 막히고, 물질도 막히고, 환경도 막히고, 안 되고 없는 가운데라도, 주님이 열어 주시면 닫을 자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막힌 것을 여시는 분이에요. 때로 쉽게 될 것 같은 일도 주님이 열어 주시지 않으면 안 열립니다. 아무리 막혀있어도 주님이 여시면 열려지게 됩니다. 나에게는 열 힘이 없어요. 능력도 없고, 지혜도 없어요. 그러나 주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께는 문제가 안 되요. 나는 못하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은 하십니다. 못하는 것을 하게 하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었던 것을 다시 살리시고, 부족한 것을 채우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복된 자리, 귀한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나와 가정에 막고 있는 것들이 다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물질의 문도 활짝 열려지고, 환경이 복된 환경으로 활짝 열려지고, 막혔던 사람과의 관계가 활짝 열려지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겨 싸고 있는 것들이 끊어지고, 풀어지고, 열려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될 줄로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은 운명이나 팔자가 아니에요. 모든 방법이 다 실패할 때라도, 모든 문이 다 닫혔을 때라도. 여전히 주님은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만 바로 되면 우리의 미래는 앞날은 열립니다. 위기는 위기로 끝나지 않아요. 위기는 기회가 되는데, 망할 기회도 되고 축복과 도약의 기회도 됩니다. 어느 길을 가느냐? 바로 나에게 달려있어요. 어느 길을 가느냐에 따라 고통일 수도 있고 기쁨일 수도 있습니다. 멸망의 길이 될 수도 있고, 성공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불행의 길이 될 수도 있고 행복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예요. 많은 은혜를 체험하고 어제까지는 잘 왔더라도 오늘 망할 수 있고, 어제까지 안 되었더라도 오늘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별도리 없어요. 나를 의지하지 마세요. 나의 갖춘 것 붙들지 마세요. 하루 하루를 , 한해 한해를 주님 붙들고 살아가세요. 주님의 섭리의 손길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열려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된 결말을 바라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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