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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앙망하여 새힘을 얻으라 / 사 4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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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앙망하여 새힘을 얻으라
이사야 40:27-31

요즈음 우리들 주위에서 흔히 듣는 표현은 ''피곤하다'' 또는 ''지쳤다''라는 말입니다. 이런 표현들은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열심이나 적극성을 상실하고 매사를 귀찮아하는 곧, 의욕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동차에 연료가 다 타버려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처럼 우리를 움직여 가는, 열정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의 피곤함은 전인적인 것입니다. 이 피곤함은 육체와 함께 마음과 정신에서 또한 영적으로도 찾아옵니다.

대체로 피곤함은 세 가지 측면에서 찾아옵니다.

첫째는, 생활환경에서 오는 피곤함입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환경이 기대하는 만큼 좋은 조건이 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욥''이라는 사람도 그의 삶의 정황이 너무 고통스럽게 될 때 실망과 함께 피곤함에 빠져버린 것을 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기대만큼 희망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실망과 함께 절망감을 안겨줄 때에 피곤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관계성에서 오는 피곤함입니다. 모든 사람은 관계성 아래서 살아가는데, 이 관계성이 병드는 데서 피곤함이 찾아옵니다. 인간관계가 잘못될 때에 피곤해집니다. 부부의 관계가 병들어 버릴 때, 또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멍들 때 사는 것이 피곤해집니다. 또는 가장 가까이 지내는 직장동료나 이웃과의 관계성이 불편해 질 때 그곳에서 피곤함이 찾아옵니다. 더욱 심각한 피곤함은 신앙생활의 관계성이 병드는데서 오는 피곤함입니다. 교회생활의 관계성이 아파지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병드는데서 피곤해집니다.

셋째는, 일 속에서 찾아오는 피곤함입니다. 일이 너무 지나치게 과다할 때 견디지 못해 지쳐버리는데서 찾아오는 피곤함입니다. 그런가 하면, 열심히 일하는 곳에서의 보람과 열정을 상실하고, 그 일에 지루함과 실망감을 가질 때 피곤하게 됩니다. 또는 추구하는 일속에서 의미성을 잃어버리고, 일에 대한 무가치함을 느낄 때에 피곤해집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에 패망한 후 실의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피곤한 것이었습니다. 포로로 끌려가 노예처럼 살아가는 유대인들은 그들의 환경에 실망했기에 피곤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자신들이, 왜 이런 패망의 슬픔을 당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론은 점점 더 강대해져 가는가? 라면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회의했기에 피곤했습니다. 자신들은 언제까지 이런 노예의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고, 그런 그들의 현실 속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지 못하기에 피곤했습니다. 자신들의 조국은 정말로 재건될 수 있는 것인지, 그 답과 희망을 찾지 못하고 절망했기에 피곤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27절에서처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피곤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의 몸은 지쳐 피곤해 있었고, 정신과 감정과 의지도 약해져 피곤했고, 하나님을 믿는 영적인 삶도 피곤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피곤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피곤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입니까? 그것은 이사야가 피곤한 이스라엘을 향해 선포한 말씀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우리는 지침과 피곤함에서 새로워져야 합니다. 피곤함에서 새 힘을 찾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피곤함의 의미와 가치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피곤함은 하나님의 새로운 힘을 받기 위함임을 깨달아야
우리에게 찾아오는 피곤, 그것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피곤함은 우리에게 더욱 좋은 새 생활을 찾게 하는 요인입니다. 피곤함은 새로운 힘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경고의 신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움의 주시기 위해 피곤함의 과정에 거하게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피곤함에 자신을 계속 정주 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말씀은 피곤함에 머무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며, 새 힘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라늄 광석은 무거운 광석물로서 별로 이용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시대에는 이 광석에 천연적으로 들어있는 우라늄을 핵 원자로의 연료로 사용함으로 현대문명의 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라늄의 원자핵 1그램이 핵분열 했다고 한다면 약 2만 킬로칼로리 또는 24메가 와트시(時)의 에너지가 방출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석탄 3톤이 탓을 때의 에너지에 상당되는 것입니다. 우라늄가운데 핵분열에 직접 관계하는 것은 우라늄 235이고, 이 비율을 높인 것을 농축우라늄입니다. 최근에는 우라늄238에 중성자를 충동시켜 플루토늄 239를 만들어 원자폭탄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라늄 광석은 보잘것없는 광물일지라도 그 속에 들어 있는 무서운 힘을 개발할 수 있음으로 그 위력이 드러났습니다. 우리의 피곤함은 우라늄 광석과 같습니다. 피곤함의 영역은 새로운 힘을 찾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2:10에서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가장 피곤하고 지쳐있을 때가 약할 때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약함이 강함을 이루는 때인 것입니다. 가장 약할 때가 가장 강함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때인 것입니다.

지침과 피곤함은 새 힘을 담기 위한 그릇입니다. 지쳐있다는 것, 피곤하다는 것은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피곤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세계의 능력을 찾게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피곤함은 새 힘의 영역을 향하여 뛰어 넘어가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피곤함이 우리를 무너지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 실패의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피곤함 자체가 하나님의 새 힘을 향하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해야

이사야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새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이라는 말로 수식했습니다. 우리는 새 힘을 찾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든지, 색다른 환경을 찾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취미생활은 해봅니다. 그러나 참으로 인간을 새롭게 하는 새 힘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오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 지시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데서부터입니다.
잠언저자는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잠1:7)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이 땅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호4:1)고 하시면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호4:6)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자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자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본문28-29;새번역)

여러분, 우리는 피곤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확신하면서 하나님을 앙망 해야 합니다.
앙망은 우러러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희망하며 바라보는 것입니다. RSV 영어성경에서는 앙망을 ''wait for'' (기다리다)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저는 호주 캔베라에서 이민목회를 하면서 너무 힘들고 지쳐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것 같은 피곤함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시드니에서 목회하시던 선배 목사님께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위로와 함께 용기를 주는 말씀을 주시면서 곧 저를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는 너무 피곤한 중에, 얼마나 선배목사님을 만날 날을 기대하며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피곤할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릴 때,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6-11)

예수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120명의 무리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에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합심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핍박과 고난의 어려움 중에도 피곤함을 모르며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리는 그리스도의 사건을 일으켰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 John Wesley 는 81세의 고령 중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일에 피곤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초부터 주말까지 혹은 연초부터 연말까지 나는 곤비한 것도 모르고 지냅니다. 나는 글을 쓰나 설교를 하나 여행을 하나 시종 피곤을 모릅니다. 오늘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나는 내 몸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Wesley 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기다리는 생활 속에서 피곤함에 지배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저자는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고 했습니다.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 우리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의 은혜를 기다리는 생활은 새 힘을 얻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지쳐서 피곤할 때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휴가를 내어 새로운 분위기의 장소(제3의 장소)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얻는 장소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신앙의 자리입니다. 그 곳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호흡하는 곳입니다. 우리를 다루시고 만져주시는 성령과 함께 하는 곳입니다. 지치고 피곤한 몸과 영혼의 회복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림으로, 하나님의 새 능력을 찾는 신앙의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치고 피곤한 그 삶의 자리를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리가 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을 기다리는 곳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새 힘, 곧 새 능력을 구하십시오.


새 힘을 얻고자 지금 시작해야

이사야의 말씀은 피곤에서 벗어나도록 지금의 시간, 지금의 자리에서 또다시 하나님을 앙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힘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피곤의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에게 새 힘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9절에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도 힘을 더 하신다" 고 하셨습니다. 새로운 생활을 위해서 새롭게 시작할 때 새로운 생활이 만들어집니다.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훌륭한 조각 예술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커다란 대리석 덩어리를 앞에 놓고 망치와 정으로 열심히 쪼아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쪼아낸 돌 조각이 쌓인 것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좋은 대리석을 이처럼 많이 깨어버리는 것은 낭비가 아닙니까?" 이 때에 미켈란젤로는 "이 대리석이 깨어져 나갈 때에만 작품이 살아나게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지치고 피곤한 몸과 영혼도 대리석의 조각처럼 깨어져 나가야만 새로워집니다. 지치고 피곤한 내 모습을 깨뜨려 새롭게 되도록 지금 다시 새롭게 하나님을 앙망하는 데서 새 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앙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나사로를 장사지낸 무덤의 돌문을 먼저 옮겨놓으라고 했습니다.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피곤하지만 다시 시작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행동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이 오는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바로 이와 같은 뜻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돕는 자가 되고자 할 때에 도움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이고, 남을 대접하려고 행동하기 시작할 때 대접을 받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계 만드는 일에 평생을 보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온갖 정성을 다해 시계 하나를 만들어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계의 초침은 금으로 되어 있고, 분침은 은으로, 시침은 구리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이건 이상해요, 초보다 큰 것이 분, 분 보다 큰 것이 시간이잖아요. 그러면 시침이 금이 되어야 하고 분침은 은, 초침이 구리로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자 아빠는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초가 없이 분과 시가 어디 있겠니? 초침이 가는 길, 그 길이야말로 황금길이란다. 작은 것이 정말 귀한 것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시계를 아들의 손목에 채워주며 다시 강조했습니다. "일초, 일초를 아끼며 살아야 한단다. 일초가 세상을 변화시킨단다"

여러분 우리는 한 순간 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습니다. 피곤하고 지쳐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능력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한 순간을 피곤과 지침에 안주해버리면 안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피곤함과 지침은 새 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곳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은혜를 기다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오래 정주해서는 안됩니다. 새 힘으로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힘의 세계를 향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지금 바로 이 시간 피곤함에서 고개를 돌려 하나님을 앙망하십시오. 새로운 생활, 곧 새 힘을 얻는 생활을 향하여 다시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은 우리를 넘치게 합니다.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며,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할 것이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는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새 힘의 사람으로 승리자의 삶을 이루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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