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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연합하는 삶 (요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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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하는 삶 (요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7:21)라고 우리가 하나로 연합하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내용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하나이신 신비적 연합의 관계임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기를 원하심을 알게 합니다. 연합은 같이 울고, 같이 우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연합체는 개인의 유익을 위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연합체는 곧 깨집니다. 내 모든 것을 합하여 연합의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연합을 통한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전북 기독교 교회 협의회의 연합된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신 하나님께서 전국 여전도회 남전도회 연합회를 통하여 영광 돌리도록 섭리하심을 봅니다.

그래서 연합하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 하며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먼저 주님과 연합하는 삶.

  주님과 우리는 신비적 연합의 관계에 있습니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 17:23)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 15:4)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하시니 주님과 연합이 되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6)고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연합하여야 합니다.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롬 11:17)다고 합니다.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롬 11:19)함으로 원죄의 나무에서 찍힘을 받아 완전히 단절되도록 찍어 잘라내어서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라는 생명나무에 접붙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이로 인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부활로 다시 사는 연합의 관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3)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4)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고 합니다.

폭풍우 이는 바다를 그리고 싶어 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이 화가는 폭풍우 치는 날이면 바닷가에 나가 유심히 관찰하고 화실에 돌아 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흡족한 그림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화가는 큰 결심을 하고 항구를 찾아가 출항하는 배의 선장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그 배에 승선했습니다. 배는 출항했고 항해 중에 무서운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선장은 이 화가를 마스트에 매달았습니다. 이 화가가 선장에게 부탁한 것이 바로 폭풍우를 만나면 자기를 마스트에 묶고 폭풍우가 멈출 때까지 내리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화가는 폭풍우에 맞섰고 비와 바람에 젖었고 폭풍의 일부가 되었고 나중에는 폭풍우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폭풍우와 하나가 된 체험을 한 다음에 이 화가는 비로소 만족할만한 명화를 그릴 수 있었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만이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살게 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가끔 영적인 문제에 관해서 강력한 견해의 차이를 표명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의 교리에 대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열띤 논쟁들을 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안에서 신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놀라운 통일성 때문에 그들의 견해차이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기도 합니다.

벅스톤은 이 복된 진리를 예증해 주는 이야기 하나를 들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두 적군이 퍼터맥 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 강기슭에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북부 군악대가 민요를 연주할 때마다 남부 음악가들도 남부인의 마음에 드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한쪽 군악대가 "즐거운 나의 집"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즉시 경쟁은 그치고 양군 음악가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곧 양쪽 강기슭에서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라"하고 울려 퍼지는 양군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벅스톤은 이런 말로 그 이야기를 끝맺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순례자의 무리는 하나의 강한 고리에 서로 묶여 우리의 고향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은 꼭 같은 "집"을 가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가족의 구성원들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됩니다.

신중하고 근면한 성경공부의 중요성과 건전한 교리를 강조할 필요성을 경시하지 않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하는 진리를 알아야 하고 또 그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나 신자들 간에 가끔 논쟁으로 야기되는 증오심은 "즐거운 나의 집"을 함께 노래한 남군과 북군처럼 천국 백성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가족으로 함께 나눌 교제를 명상한다면 사랑으로 바꾸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예화 뱅크)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연합해야 합니다.


  또한 성도와 연합하여야 합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 17:11)라고 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어 교회로 들어오게 된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한 연합체가 되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2-47)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십자가 아래에서 모든 성도는 하나가 될 수 있고 피부 빛깔과 언어와 문화와 생활 습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합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선하고 아름다운 믿음을 만들어 가고 지키기 위해서는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는(빌 2:2∼4)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연합해야 합니다. 연합하되 다양성 속에서 연합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다양한 인격과 직능을 지녔습니다. 다양한 개성과 직업,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생각들을 가진 분들이 모였습니다. 이런 다양함 속에서 하나를 이루어 연합하며 평화롭게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며 봉사하게 됩니다. 모두 생각도 모습도 다르지만 예수님을 기준으로 하여 하나로 연합하였습니다. 같이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함께 봉사합니다. 이것이 연합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아름다운 신앙의 연합은 힘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연합된 형제자매들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조화입니다. 다양한 개성, 다양한 모습 속에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마치 각자의 소리는 다르지만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 가는 합창처럼 말입니다. 합창함에 있어 자기의 소리가 크게 나면 합창이 잘 되지 아니합니다. 아름다운 합창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의 소리를 잘 조절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성도의 연합에는 화평 화목이 또한 중요합니다. 한마디의 말과 행동 때문에 화평하고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깨기도 합니다. 화목의 사람으로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도의 연합은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화평과 화목속에 이루어 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포용과 관용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각자는 많은 견해가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생각과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이 연합하여 화평과 화목을 이루도록 조화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합하여 일을 하려면 예 하고 협력하여야 합니다. 협력이 잘 되어야 힘이 납니다. 그러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작은 일에도 피곤하고 짜증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연합에는 협력정신 협동정신이 필요합니다. 협력하되 믿음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온 교회가 믿음으로 하나 되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행복의 연합체가 됩니다. 늘 믿음으로 협력하여야 합니다. 사랑과 수고는 협력할 때 더욱 가치가 드러납니다. 믿음의 연합을 이루어 함께 할 때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려 복음전도가 가능하게 되고 아름다운 향기를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연합에 앞장서며 자신을 낮추고 함께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존 노에는 연합의 진리란 교만과 자존심을 버리고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가도록 해준다고 말합니다. 그는 어릴 때 자신이 친구들과 뜨거운 여름날의 철길 위를 걷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철길을 걷는 방법은 침목 위로 걷거나 침목을 피해서 걷거나 철길 위로 걷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철길 위로 걸어갈 때에는 중심을 잘 잡고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데, 제대로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존과 친구들은 철길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1킬로미터 이상 걸어갈 수 있는 방안을 생각했습니다. 존은 이쪽 철길 위에 서고 친구는 저쪽 철길 위에 섰습니다. 그들은 의지하며 서로의 팔을 굳게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철길 위를 오래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완벽한 팀웍을 이룬 것입니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진리를 분명히 증거 해줍니다.

“자신을 자랑하면서 동시에 남에게 의지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애쓸 때 온전한 연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연합은 교만을 물리치고 자신을 낮출 때 이룰 수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작은 새의 노래에서 들을 수 있다합니다. 칠면조나 타조나 독수리에게서 아름다운 소리 보다는 우렁찬 소리를 듣습니다. 카나리아나 굴뚝새나 종달새가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만약 우리의 목소리를 합하여 하나님께 아름다운 찬양을 드리려면, 우리는 각자의 목소리를 조절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이를 위해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인터넷 정보클럽)

연합도 자신을 낮추는 가운데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성도들과 연합 합시다. 


  그리고 교회가 연합해야 합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17:20).

한 교회나 특정한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교회 다른 사람들도 하나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교회만이 아니라 유다와 사마리아교회 까지도 모두 하나 되기를 위해 기도드렸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사마리아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을 보내어 사마리아교회를 격려하고 협력했습니다. 가이사랴에도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베드로의 증언을 들은 다음 교회를 인정하고 협력했습니다.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바나바를 보내어 격려하고 협력했습니다. 이로 인해 연합과 협력의 폭이 점점 더 넓어졌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지역감정을 넘어서서 사마리아교회와 가이사랴 교회와 안디옥 교회와 협력하며 하나를 이루며 연합하였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먼저는 지역교회와 연합하고 협력하는 일을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교단 교회와 연합하고 협력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나아가 교계 교회들과 연합하고 협력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교회와 연합하고 협력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의 연합을 위한 기도 가운데는 세계교회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계교회가 하나 되기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는 빌립보 교회도 로마교회도 한국교회도 일본교회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오고 오는 시대에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신자들이 하나 되게 하옵소서 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셨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세계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계신줄 믿습니다.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고 하십니다. 주님의 간구 중의 하나는 이 땅 위에 있는 주님의 교회들이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웃의 교회들 그리고 세계의 교회들과 연합을 추구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도 주님의 기도 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벽이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아직도 일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일본교회와의 협력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 교회와도 연합해야 합니다. 중국교회와의 연합운동, 조선족교회와의 연합운동 그리고 북한교회와의 연합운동을 우리는 꾸준히 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복음전도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며 선교의 중요한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연합운동은 이기는 운동 정복운동이 아닙니다. 주도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는 운동도 압니다. 연합운동은 함께 사는 운동이고 포용하고 품는 운동이며 희생하며 감싸는 운동이며 협력하며 화해하는 운동입니다.

두 개의 어린 나무가 서로 나란히 자랐습니다.  그런데 바람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두 나무가 서로 엇갈리게 되어, 이렇게 된 가운데 점차적으로 두 나무의 껍질은 벗겨졌습니다.  그리고 수액이 섞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나무는 결국 하나로 연합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점점 진척이 되면서 이윽고 두 나무는 아주 튼튼히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더 강한 나무가 약한 나무의 생명을 흡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보다 더 강한 나무는 점점 더 크게 자라나는데 비하여 다른 한 나무는 점점 더 작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다른 한 나무는 시들고 쇠퇴하기 시작하여 결국은 흔적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밑의 줄기는 둘인데 위로 올라가면 한 나무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서로 만난 때가 있었습니다. 통회하는 그 마음의 상처는 예수님의 그 아픈 마음의 상처와 접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말씀이 심령 속에 이루어져 나의 옛 생명은 점점 더 약해 가 그 옛 생명이 점점 더 쇠하여 결국은 그 옛 생명이 거의 사라질 정도에 이르기까지 되었다면 그것은 귀한 축복입니다.(둘로스 자료) 주님이 나의 전부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연합하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기도하신 대로 주님과 연합하고 성도가 연합하고 교회가 연합하되 이웃 교회들과 연합운동을 펴 나가야 하며 세계교회들과 연합운동을 펴 나가야 하겠습니다. 연합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주님께서 소원하시고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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