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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된 소망을 위한 세가지 명령 / 벧후 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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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복된 소망을 위한 세가지 명령
* 본 문 : 베드로후서 3장 11-14절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
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이르기를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
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서론)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진리는 인류의 역사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시간도 있고, 분도 있고, 초도 있고, 해와 달과 별도 있지만 우
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시간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시간과 역사는 언젠가는 
분명히 종결될 것이고, 그때에 우리 선택받아 구원받은 성도는 영원한 축복의 나라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럼, 언제 시간이 정지되고 
영원한 세계에 우리가 들어가게 될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은 불신자들이나 악인들에게는 무서운 형벌의 날이 됩니다. 그날은 하나님을 대적하
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한 모든 피조물들은 성경에 약속된 말씀처럼 심판을 받
아 불과 유황에 떨어지는 무서운 선고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렇게 부정적인 내용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들에게 있어서 재림의 날은 최고로 복된 날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날은 우
리에게 있어서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영광의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베드
로는 오늘 본문 13절에서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간은 우리에게 있어
서 대단히 영광스러운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재
림의 날을 가리켜서 복된 소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나온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는 많은 사람들이 종종 이 복된 소망을 망각할 때도 있고, 무시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기록한 기자들은 계속해서 이 복된 소망을 강
조하였습니다. 


1. 성경의 기자들이 강조한 복된 소망

  우리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5장 3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
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친히 증거하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우
리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영원전부터 예비하신 축복된 나라입니다. 이것이 우리
에게 있어서 참된 복된 소망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이 기록된 마태복음 5
장 5절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
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온유한 자가 정말 땅을 기업으로 받고 있습니
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이 땅
의 기업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의미하는 
말씀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 복된 소망에 대해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2장 9
절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습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상속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은 사람의 눈으로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영원한 축복의 나라
요, 우리의 귀로도 전혀 듣지 못한 참된 축복의 땅이요, 우리 인간의 마음으로는 도저
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위대한 축복의 나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와 같은 복된 진리에 관하여 구약에 등장한 위대한 이사야 선지자도 이사야서 65
장 17-25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에 대하여 담대히 선포하였습니다. 어떤 분들
은 이 말씀이 천년왕국에 관하여 기록된 말씀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분명히 그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예언으로서 선포하였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면 인간도 변하고 만물도 변하고 모든 피조물도 새롭게 변하게 됩니다. 그러
나 이 새 하늘과 새 땅의 복된 소망에 관하여 성경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로 제시하고 
있는 말씀은 바로 요한계시록 21장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중에 앞으
로 여러분이 사실 영원한 나라에 관하여 자세히 알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집에 돌아가
셔서 요한계시록 21장을 천천히 읽어보십시오. 창세기가 창조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
면 요한계시록은 재창조의 책입니다. 창세기가 죄의 도입을 말한다면 요한계시록은 죄
의 완전한 정화를 말씀합니다. 창세기가 실낙원을 말한다면 요한계시록은 복낙원을 강
조합니다. 창세기가 마귀의 역사가 이 땅 가운데에 시작됨을 말한다면 요한계시록은 
이 땅에서 마귀의 세력이 멸망하게 됨을 주장합니다. 창세기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이 두려워서 도망하고 있는 인간을 그린다면 요한계시록은 모든 죄가 소멸되어진 상태
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동거하고 있는 모습의 그림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창세기
가 사람의 손에 보이고 느낄 수 있는 물질적인 형태의 해와 달과 별을 소개하고 있다
면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히 비추고 있는 복된 세상을 소개하고 있습니
다. 창세기가 인간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계명을 주장한다면 요한계시록은 생명수 강가 좌우에 있는 열리
는 생명나무의 실과가 만국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책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우
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과 모든 악한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서 두 번째 
사망의 고통을 영원토록 받게 될 것이지만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만
이 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참으로 많은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진
(眞)도 있고, 선(善)도 있고, 미(美)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들어가게 될 
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움은 이 세상의 진, 선, 미의 아름다움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참으로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 나라에는 더 이상 어떠한 슬픔
의 눈물도 필요가 없습니다. 어떠한 사망의 고통도 없고 곡하는 것이나 육신의 질병
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
다. 우리의 신분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6-17절에서 이렇게 표현하였습니
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
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
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엇을 받는다고 성경이 말씀
하고 있습니까? 바로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이 찬란한 영광을 받기 위
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기쁘게 감당해야만 할 줄로 믿
습니다. 이같은 사실에 대하여 로마서 8장 18절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
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장차 우리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예수 그리스도
를 위해서 우리가 약간의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장차 나타날 영광과는 족히 
비교도 할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복된 영광을 누릴 존재가 바로 우리 그
리스도인들입니다. 이 영광은 우리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입니다. 하
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순간에 우리가 맛볼 기쁨과 즐거움은 이 세상의 언어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영광인 줄로 믿습니다. 이 영광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
지의 무한하신 능력과 영원토록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만 주
어지는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복된 소망을 향한 베드로의 세 가지 명령

  그렇다면 우리가 이 복된 소망을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믿음의 자세를 갖추어야만 
할까요? 여기에 대해서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베드로는 세 가지 동사를 통하여 우
리가 마땅히 가져야 될 반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날이 임하
기를 바라보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또한 13절에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도 “---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
니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짧은 구절속에 무려 세 번이나 ‘바라보라’고 강조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시면 바라보다가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 등장합니
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에 성전 미문
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난 불쌍한 사람이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을 들어오
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여서 먹고 사는 참으로 가련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
람을 위하여 사도 베드로는 사도행전 3장 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
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그 순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 이 앉은뱅
이가 발과 발목에 힘이 들어가고 걸어다니고 심지어는 뛰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
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을 경험하기에 앞서서 사도행전 3장 4절을 보시면 “베
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즉 먼저 앉은뱅이가 사
도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때에 쓰여진 ‘보라’는 단어
와 오늘 본문에 기록된 ‘바라보라’는 똑같은 말씀입니다. 성전 미문에 초라하게 앉
아 있던 날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다가 모든 육신의 질
병이 고침을 받고 일어나 뛰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사
람이 눈으로 무엇을 바라본다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그 사람의 인물됨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세상의 물질을 바라보고 있다
면 물질의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이 세상의 명예를 바라보고 있다면 명예
를 추구하고 있는 세속적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눈이 이 세상의 더럽고 추한 것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 영혼은 더럽고 추한 것에 물든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는 지금 현재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항상 주의해야만 합니다.

  옛날에 장자라고 하는 사람이 어느 날 관상쟁이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가는 동안 
땅만 바라보면서 혹시라도 떨어진 동전을 줍기 위해서 걸어갔습니다. 드디어 관상쟁이
의 집에 들어가자 그 사람이 장자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 상은 거
지 상이오!” 집에 돌아온 장자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
다. 너무나 속이 상하고 분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 다시 한번 그 관상쟁이를 찾아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에는 넓고 푸른 저 하늘을 바라보면서 걸음도 위풍당당하게 걸
어갔습니다. 마침내 관상쟁이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때에 관상쟁이
가 장자를 보면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의 관상을 보아하니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올라있는 사람이오. 도저히 당신의 그 높은 경지를 내
가 헤아릴 수가 없겠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만을 바라보는 이 땅의 백성들이 아닙니다.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만을 바라보고 언젠가는 틀림없이 그 축복을 누리게 될 하나님의 
백성인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
다. 역사의 시간을 넘어서 영원한 신천신지의 세계속에 우리의 영원하고도 참된 소망
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서 “우리의 돌아
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
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에 이 세상의 보이는 
것을 소망으로 두고 있다면 그것은 잠깐 지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눈
에 보이지 않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축복을 소망으로 삼고 있다면 그 인생이
야말로 참으로 복된 인생인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고린도전서 15장 19
절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에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이 말씀처럼 우리의 인
생이 이생뿐이면 그 인생은 참으로 비참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 하늘
과 새 땅의 축복을 경험하기에 앞서서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따라서 그 
인생의 과정속에서 뜻하지 않은 육신의 질병과 경제적인 어려움과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찬란한 영광과 
기쁨이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그 참된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고난을 힘차
게 뚫고 나아가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초대교회의 문헌을 보면 불신자들이 신실한 기독교인에게 이렇게 시비를 걸었습니
다. “아니! 천국이 그렇게 좋다고 한다면 일찍 죽으면 될 것이지 왜 오래 살려고 그
러느냐?”. 그때에 신실한 기독교인은 다음과 같이 자신있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죽으나 사나 모든 것이 다 좋지만 오직 주님께서 
생명의 한계를 정하시고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서 감당해야만 하는 귀한 사명을 주셨기
에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와도 같이 하나님
께서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우리 믿음의 성도는 그 귀한 사명을 이루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저 천국으로 올라가는 날은 우리
의 모든 사명이 다한 날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도 군대를 제대할 때에 마구 소리를 
외치면서 기뻐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이 고된 세상을 제대하는 성
도가 어찌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오
시 모든 분들을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할렐루야’를 힘차게 외치면서 하나님의 영광
스러운 보좌만을 바라보시면서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11절을 보시면 “이 모든 것이 이렇
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들 스스로가 준비를 해야만 할
까요? 그것은 바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갖추는 일입니다. 또한 14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
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
히 바라보는 가운데에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과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삶을 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서 노력
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은 도덕자체를 위해서 도덕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예
를 들자면, 십계명이 절대적인 계명이니까 십계명을 위해서 십계명을 꼭 지키라고 강
조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십계명을 통해서 인간의 허물과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믿으
라는 목적으로 십계명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자면 
지나온 오랜 역사동안 우리나라는 유교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특별히 유교를 대표하
는 삼강오륜의 가르침을 지켜왔습니다. 삼강오륜을 유교는 제시하고 그것을 모든 사람
들이 지킬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야만 인간다운 삶이 이루어진다고 유교는 주장
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삼강오륜을 지키지 못하고 어긴 사람들이 이 나
라의 왕이 되었고 정치적인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량하고 착한 
백성들에게만 이것을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난 역사는 삼
강오륜의 윤리가 그것이 윤리 자체로서의 의미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였습니
다.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는 어떤 윤리적인 기준과 선한 도덕적인 규범을 만들어놓
고 그 기준과 규범 자체를 위해서 도덕을 지키라고 강조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신약 
성경의 윤리는 언제나 종말론적입니다. 우리가 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직접 대
면하고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윤리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삶을 살다가 예수님을 그날에 만나게 된다면 우
리 모두는 예수님의 거룩하신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똑바로 쳐다
보기는커녕 부끄러워서 얼굴을 옆으로 돌리거나 밑으로 떨어Em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삶
을 살아가는 과정이 선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삶이 되어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따라
서 우리 성도의 윤리적인 기준은 언제나 관계적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우리의 모
든 삶이 거룩하게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장 2-3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
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
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
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모
든 성도님들은 공통된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우리의 영원한 구주가 되시는 예
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한 영광을 우리가 맛보기 위해서 먼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항상 모든 일에 깨끗한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제
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믿기 전의 과거의 삶 때문에 괴로워하
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삶은 이제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의 죄악을 하나님께서는 전혀 기억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아침 안개가 순식간에 
도말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덮어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우리
의 삶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주님 앞에서 책임성이 있습니다. 새 하늘
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그날에 우리는 틀림없이 영광의 주님을 바라볼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간절히 사모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날
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간절
히 사모하라’는 말씀은 우리말 성경으로 정확하게 번역이 잘 되지를 못하였습니다. 
영어 성경을 보시면 이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순간이 좀 더 빨리 올 수 있
도록 노력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
이 앞당겨지도록 노력하라’입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간단하면서도 매우 신비스러운 
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순간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정해져 있는데 어떻
게 그날을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앞당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예수 그리스
도의 재림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달력으로 잴 수 있는 해와 달과 별과 시로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온 역사상 예수님의 재림을 몇 
년, 몇 월, 몇 일로 예언한 사람들은 전부 다 틀렸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예수님의 
재림을 인간적인 시간과 달력으로 예언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예언도 
틀림없이 틀리게 된다고 확신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은 인간
적인 시간과 개념을 초월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오히려 시대의 
영적인 상황이라는 시간에 맞추어져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재림의 시간은 언제일까요? 저는 이 예수님의 재림의 시간에 대
하여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 재림의 시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
상에 전파 되고난 이후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14
절에서 친히 다음과 같이 증거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재
림의 시기는 이 세상의 시간과 달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상황에 따른 시간임
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의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
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
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처럼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하지 않는다는 진리도 깨닫기 바랍니다. 말세에는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전 세계적으로 배도현상이 일어나고 거짓된 기적으로 역사가 나타나서 수많
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
히 재림하게 된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간
은 이런 영적인 상황들이 동시에 일치하는 시기가 곧 재림의 때입니다. 그렇다면, 우
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길 수가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확실한 
대답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저마다 복음전도에 힘을 쏟고 세계선교에 앞장을 서
게 된다면 예수님의 재림의 시간을 앞당길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론)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들고서 전도하고 선교를 하는 일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
러운 재림의 날을 앞당길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날은 우리 모든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스럽고도 가장 복된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의 재림의 날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뜨거운 마음과 사모하는 심정으
로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간절히 기대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
과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노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그러한 믿음의 자세를 갖고서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와 선교의 삶에 앞장을 서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지금도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향한 비전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 
유행가도 있지 않습니까?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
께 한백년 살고 싶네!”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공통된 비전이
요 꿈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육체적으로 강인하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한백년
을 무병장수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한백년 동안 날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랑하는 님도 없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고 예쁜 새들이 노래하는 
저 푸른 초원도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인생
을 모세는 시편 90편 10절을 통해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
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
아가나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향한 비전은 참다운 비전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
은 영원한 비전이 아니요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한 순간의 헛된 꿈에 불과할 뿐입니
다. 혹시라도 여러분 가운데에 여전히 이러한 비전을 품고서 인생을 낭비하는 분이 계
십니까? 그런 분들은 속히 마음을 돌이키시고 저 영원한 나라의 새 하늘과 새 땅을 바
라보는 가운데에 참다운 믿음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하는 영원한 비전을 오늘 이 시
간에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도 들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도 상상할 수도 없는 영원한 나라를 향한 비전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그분의 한없는 능력으로 보증하신 위대하고도 가장 확
실한 약속이요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준비하시
고, 무엇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시는 가운데에 영원한 비전을 이루어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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