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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가 복이 있도다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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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16:13-20
제목 : "네가 복이 있도다"

1. 무엇이 복입니까?

옛날 중국 주나라의 첫 왕인 무왕 이라는 사람이 기자(箕子)라는 신하에게 한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복받기를 원하고 또 소원하고 있는데 도대체 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기자가 대답하기를 “왕이여 복에는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수(壽)’ 하는 것입니다. 장수하는 것입니다. 오래사는 것이 복입니다.
둘째는 ‘부(富)’ 하는 것입니다. 재물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복입니다.
셋째는 ‘귀(貴)’ 입니다. 사람이 귀하게 되는 것, 권세를 얻는 것이 복입니다. 네 번째는 ‘유호덕(攸好德)’ 입니다. 도덕을 지키기를 즐겨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 입니다.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는 것, 이 다섯가지가 복입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가 말하는 오복(五福)이 복의 기준이 되어졌습니다.


다섯가지의 복을 보면 유호덕을 제외한 모든 복이 어떤 것을 소유한 상태를 복이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는 것 보다 무엇을 소유하느냐에 복의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것을 소유한 것이 복의 기준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서 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만이 복이 아니라 그 장수(長壽)를 의미있게 쓸 수 있는 사람이라야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복이 아니라 그 돈을 바르게 쓸 수 있는 사람, 소유한 것이 아니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돈 없었으면 그 죄 안지을 것인데, 그 돈 없었으면 교만하지 않을 것인데, 그 돈 때문에 교만해서 하나님도 받아들일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이 된다고 하면은 그 돈은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권세있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권세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 권세가 없었다고 하면 착취하고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것인데 오히려 그 권세가 복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평안하게 죽는 것이 복있는 사람이 아니라 의롭게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8가지 복을 이야기 하시면서 이런이런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고 나열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은 자, 이런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는데 거기에 보면 소유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도 주는 것이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어떤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면, 이 모든 것이 더해집니다. 소위 말하는 오복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만 하면 우리에게 오게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복된 사람이 되어서 그 복된 사람에게 따라오는 복을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이런 사람은 복있다 저런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많이 말씀하셨는데 어떤 개인 이름을 불러가면서 아무개야 네가 참 복이 있다 그렇게 말씀하신 적은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베드로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의 공생애를 사시고 마쳐갈 즈음에 제자들에게 시험을 치듯이 물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는냐?> “예, 엘리야 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나 세례요한, 어떤 사람은 선지자 중에 한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얼마만의 침묵이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용감한 베드로 그는 입을 열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너무너무 만족하시고 너무너무 기뻐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 내가 네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이런 축복을 주겠다>고 기뻐하시며 <네가 복이 있도다>하고 그렇게 축복해 주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이미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여러분은 예수님을 향해서 뭐라고 고백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있으니까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지난 몇 주 동안에 이 말씀에 대해서 계속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의 고백, 정말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시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이 장소에서 나의 예배를 받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는 이 사실을 가슴 뜨겁게 받아들여서 오늘도 예수님 마음을 이렇게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같은 동일한 이런 고백을 하는 자에게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보시면서 “성진아, 네가 참 복이 있도다. 아무개야 네가 복이 있다. 너 정말 복있는 사람이야, 정말 너 복받은 사람이야” 그렇게 말씀하실 것인데 예수님으로부터 이렇게 복되다고 다 칭찬받을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가장 복받은 사람은 믿어지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복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습니까?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메시야로 살아있는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을 복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이라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건물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여기에 편안히 앉아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교회당이 곧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기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중국 기나라의 어떤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기(杞)나라 사람의 근심 우(憂), 그래서 기우(杞憂)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을 기우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을 가지고 있으면 이 땅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수돗물이 깨끗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물을 마시고 그 물로 지은 밥을 먹고 나왔습니다. 믿지 아니하면 물 한 방울 먹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원지에 독약을 넣지는 않았나 그렇게 생각하면 물 못 먹어요 밥도 먹을 수 없습니다. 믿지 않고는 우리가 택시를 타고 올 수도 없습니다. 요즘 택시강도가 많은데 이 사람이 혹시 하는 불안이 있다면 어떻게 택시를 타겠어요? 비행기를 탈 때 기장(機長)이 정신병자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면 어떻게 그 비행기를 타겠습니까?
남자들은 이발관에 가서 목을 탁 내놓고 면도를 하는데 이 사람이 혹시 내가 잘 모르지만 아버지, 할아버지 때부터 어떤 원한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불안이 있으면 어떻게 목을 내놓고 면도를 하겠습니까?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서로 믿고 살아야만 행복하지 부부가 서로 믿지 못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서도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아내를 믿지 못하는 소위 의처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늘 불안해 했습니다. 내 아내가 나가서 바람을 피우지는 않을까, 또 외간 남자가 우리집에 들어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기집을 어디에다 두었는가 하면 학교 공부하다가 내다보는 잘 보이는 곳에 방을 얻어놓고 애들 가르치다가 나와서 한번 보고 또 보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 선생님 마음이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이런 의심을 가지고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갈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일반생활에도 믿음없이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믿으면서 살아갈 때 행복이 있고, 남편과 아내를 믿어야만 행복이 있고 믿어야만 우리가 참된 만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믿음없으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없는 신앙생활, 얼마나 따분한지 모릅니다. 믿음없는 신앙생활 이것은 참 재미 없어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예수님은 우릴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박혀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성령님께서 지금도 이 자리에 계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다, 우리를 구원하신다, 죄사함에 대한 믿음, 부활에 대한 믿음, 영생에 대한 믿음, 이런 믿음이 없으면 기독교는 아무 것도 아니고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능력도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하나님이 믿어지고 성령님이 믿어지고 죄사함도 믿어지고 부활도 믿어지고 영생도 믿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믿으면 다 믿어지기 때문에 예수님 믿으라 하지 하나님 믿으라는 말은 잘 쓰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믿어야 되겠지만 예수님만 믿으면은 하나님 믿어지고 다 믿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안 믿어지면 하나님도 안 믿어지고 성경도 안 믿어지고 죄사함도 부활도 영생도 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되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믿어야만 예수님을 바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믿으면 믿는 동시에 엄청난 변화가 오게 됩니다. 그것을 믿는 순간에 우리 모든 죄가 다 사하여 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우리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다 사하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집니다. 천국 백성이 되어집니다. 영생을 얻게 되어집니다.
그러니까 이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고백을 한 베드로가 얼마나 복이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고, 너는 정말로 복 받았다>고 그렇게 예수님께서 감탄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와 같은 복 보다도 더 큰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죄 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백성이 되고 영생얻는 이것보다도 더 큰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베드로가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믿음을 고백했을 때 예수님이 너무너무 기쁘셔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고 축복하셨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오늘도 누구든지 이 고백을 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이 고백을 하는 성도들 되셔서 오늘도 주님께서 여러분들 한사람 한사람을 바라보시면서 아무개야 네 복있다 아무개야 네가 복있도다, 아무개야 네가 복있도다.>고 주님께서 감격할 수 있는 그런 성도들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믿음은 선물입니다.

어떻게 해서 베드로가 이 복을 받았습니까? 왜 복있는 사람이 되어졌습니까? 이런 고백을 하게 된 것이 베드로 자신이 배워서 얻은 지식이 아닙니다.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를 알게 한 이는 자기 스스로 안 것이 아니고 알게 한 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누가 알게 했다고 했습니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하나님이 베드로에게 알게 하도록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베드로가 이런 고백을 하게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이 고백을 통해서 이런 엄청난 복을 받게 되었으니 주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고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요나 시몬아> 하는 이 말은 <요나의 아들 시몬아> 하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이름 앞에 붙이는 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이름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여러 사람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서도 시몬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사람이고, 야고보가 둘이고 유다가 둘입니다. 이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동네 이름을 붙인다던지 또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서 사람들을 구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요나 할 때 <바>는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바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바요나 시몬은 요나의 아들 시몬이란 말입니다. 이 시몬이란 이름이 본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한 고백을 하는 이 시몬에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 주었습니다. .
우리 성경에 보면 바디매오 라는 거지가 나옵니다. 이름이 바디매오가 아닙니다. 그 <바>는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디매오의 아들>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바디매오는 자기 이름도 없는 그런 사람이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디매오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은 혈육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혈육이 아니다, 내 아버지가 내게 유산주어서 상속해서 얻게된 고백이 아니란 말입니다. 어느 사람이 가르켜 주어서,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게 해 주셔서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철학적으로 찾아보고 과학적으로 탐구해 보아도 인간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해 주셔야 알 수 있습니다. <계시>라는 말은 열어준다, 열어서 보여준다는 뜻으로 커튼을 여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보여 주셔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선물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백했던 그 믿음도 베드로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똑똑해서 터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셔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고 하신 것입니다. 네가 똑똑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 어떻게 그렇게 영특하냐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네게 믿음주셔서 되어졌기 때문에 네가 복이 있도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안 믿는 사람들 보면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왜 안믿느냐고 비난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도 나에게 주신 믿음을 주었다고 하면 그도 나보다도 더 잘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음을 안 주었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복음을 전하다가 다른 사람이 안 받아들이면 그 사람을 비난하지 말고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주신 복음을 저에게 주었다고 하면 저도 믿을 것인데 저에게 복음을 주지 않아서, 믿음을 주지 않아서 저들이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이런 엄청난 믿음을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내게 주신 믿음 주님,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에 보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가장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햇빛을 모든 사람에게 주십니다. 단비와 공기와 같은 자연적인 은총은 누구에게나 꼭 같이 줍니다. 믿는 사람이면 더 많이 주고 안 믿는 사람은 안 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꼭 같이 줍니다. 그런데 이 믿음만은 가장 귀한 선물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주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훈장을 모든 국민에게 주지 않습니다. 선택된 사람에게만 줍니다. 그런데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대통령이 특별한 배려로 훈장을 주었다고 하면 이것은 영광이요 축복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이 믿음의 선물을 우리가 받았다고 하면, 내가 받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정말 복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믿음을 선물로 받아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고백했을 때에 예수님이 이렇게 믿어지는 베드로를 향하여서 <너 참 복받은 사람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있는 자로다.>고 축복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믿어지면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셔서 나에게 이런 믿음의 선물을 허락하여 주셨구나 생각하고 아! 정말 나는 복받은 사람이구나 정말 복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소아시아 지방에서 했을 때에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꼭 같은 장소에서 꼭 같은 시간에 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바울을 핍박하고 쫓아내 버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때에 믿은 줄 아십니까?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구원하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어떤 사람은 수용하고 어떤 사람은 거부하는데 왜 그러느냐 구원받기로 영생얻기로 작정된 사람은 다 믿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내가 A라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 집에 갔는데 정작 받아들여야 될 그 사람은 복음을 안 받아 들이고 옆에서 왔다갔다 하는 다른 사람이 나도 예수님 믿으면 되느냐고 복음을 받아 들이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주시기로 작정된 사람은 옆에서 들어도 복음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올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놓은 자, 예정해 놓은 자에게 믿음의 선물을 주어서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어지는 것이 내가 수용성이 있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드니까 마음이 좀 약해져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머리가 잘 돌아가서, 똑똑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생 얻도록 하나님의 자녀로 점을 찍어 놓으시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이런 환경, 저런 환경,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게 해서 교회로 불러 주시고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어지도록 믿음 주셔서 우리가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어쩌다가 믿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어지는 사람은 가장 복받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복받은 사람입니다. 마음 속에 예수님 믿어지고 말씀이 믿어지면 아! 나는 복받은 사람이구나, 오늘도 주님께서 나를 향해서 아무개야 너 정말 복받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말씀 하시는 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참된 복은 천국에서 누립니다.

이 믿음을 고백하는 자가 복있는 사람인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복이야 말로, 이 신앙고백을 통하여서 받은 복이야말로 영원한 복이고 가장 근본적인 복이고 참 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오복(五福)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래 누리지 못합니다. ‘수(壽)’, 길어야 다른 사람보다도 몇 십년 더 사는 것입니다. ‘부(富)’, 아무리 많은 부를 평생동안 누려 보아도 70-80년 이상 누리지 못합니다. ‘귀(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붉은 꽃도 열흘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긴 권세도 10년 가지 않습니다. 1년 가다가 끝날 때도 있습니다. 20-30년 이상가는 그런 권세가 어디에 있습니까? ‘고종명(考終命)’, 잘 죽는 것이 복이라고 했는데 죽고나면 잘 죽으나 못 죽으나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삶은 우리의 영원한 삶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원부터 영원까지라는 말을 쓰는데 사실 그 말은 안 맞는 말입니다. 영원에는 ‘부터’ ‘까지’가 없습니다. 그저 계속되는 것이 영원입니다.
그런데 그 영원을 마라톤 코스인 42.195km 라고 한번 가정을 해 보십시다. 이 땅에서의 삶은 42.195km에 비하면, 이 땅에서의 70-80년의 삶은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마라톤 선수가 출발점에서 1등으로 출발했다고 해서 그가 승리자입니까? 100m까지 1등으로 나갔다고 해서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 줍니까? 1km까지 앞섰다고 해서 그 사람을 승리자로 인정합니까? 결승점에까지 가서 1등으로 골인해야만 그 사람이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출발점에 불과한 이 세상에서 아무리 오복을 다 누려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승리자가 아닙니다, 행복한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 가야만 진정한 승리자요 행복한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자라고 하면 얼마나 복있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 선물, 그 믿음을 통하여서 온갖 축복을 다 받게 되었으니 하나님은 정말 그런 사람을 복있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 땅에서 범죄했을 때 눈 하나 빼 버리고 눈없이 천국가는 것이 눈 가지고 성한 몸 가지고 지옥가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건강을 잃어버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그게 축복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 때문에 좀 가난하게 살아도 천국에 들어가는 그 사람이 정말로 복있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 때문에 좀 짧게 살아도 천국에서 영생하는 사람이 정말로 복있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오복이 아니라 100복을 누린다고 할지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 복을 누리게 되니까 그런 사람을 향해서 오늘도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복이 있도다.>하셨듯이 그런 믿음을 가진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향해서도 <아무개야 너는 정말로 복이 있다>고 하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복이 있다고 하면 나는 복이 있는 사람인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감격하세요. 기뻐하세요. 행복해 하세요. 자랑하세요. 그래서 오늘 이 복을 정말 날마다 경험하고 누릴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물이기 때문에 이 선물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선물이기 때문에 악한 마귀가 뺏아가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그렇게 두루 다니기도 합니다. 이 선물 잘 간직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 선물은 어떻게 하면 잘 간직하고 키워나가는 것이냐. 마치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이것을 사용해야 돼요. 주님이 주신 믿음을 묻어두고 사용하지 아니하면 그 믿음 나중에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게 주신 이 귀한 선물은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당할 때도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믿음 끄집어 내서 사용하세요. 오늘도 교회 갈까말까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믿음을 사용하고, 또 어려운 일 있을 때 믿음을 사용하여 기도하고, 사용하게 될 때에 그 믿음은 날마다 커지고 소중하게 보관 되어져서,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에 아무개야 너 정말 복이 있다 그 믿음 때문에 너는 이러이런 복을 받게 되었으니 정말 복있다고 주님으로부터 칭찬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장소에 믿는 사람 많이 있지만 그러나 안 믿어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벌써 이 말씀을 몇 주간 생각했기 때문에 배워서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워서 아는 말씀이 아니고 정말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다.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시다, 구원자시다, 예수님은 나의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안 믿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믿어 지느냐, 아직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선물을 안주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에게 믿어지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 믿어지는 분은 “하나님 내게 믿음 없습니다, 내게 믿음 주셔야 되겠습니다. 믿음 주셔야만 베드로 같은 이런 복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다” 하고 믿음달라고 손을 내 미세요. 믿음을 받기 위해서 기도의 손을 내 미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믿어지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은 무엇을 통하여 오느냐 하면 말씀을 통하여 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무디 같은 위대한 부흥사도 그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잘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 믿음 없습니다. 나에게 믿음 주십시요 하고 기도 하는데 그때 그의 마음에는 기도하면 하늘에서 믿음이 툭 떨어져서 자기 가슴 속에 확 안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믿음이 잘 안생겨져요. 어느날 그가 성경 말씀을 읽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을 읽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말씀을 읽고 아! 말씀 읽고 들으면 믿음 생기겠구나, 하고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데, 설교 말씀을 듣는데 빠지질 않았습니다. 어느날 그의 마음 속에 큰 믿음이 들어와 있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선물로 받으려고 하면, 말씀을 가까이 하면 됩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듣는 시간에 빠지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 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가슴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큰 믿음의 선물이 충만하게 될 줄 믿습니다.
믿음은 선물이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에게 줍니다. 선물은 아무에게나 줍니까? 하나님도 우리에게 선물 주실 때 가까운 사람에게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해 보세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혀 보세요. 그러면 주님께서는 큰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우리가 가지고 있을때에 우리 주님은 우리를 바라보시고 “야! 네 믿음 크다. 정말 네가 복있는 사람이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아무개야 네가 정말 복이 있도다...“우릴 향해서 동일한 축복을 허락하여 주실줄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처럼 그렇게 고백하고 베드로가 받았던 그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아무개야 네가 참 복이 있다 왜냐하면 네 속에 참된 신앙의 고백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고백이 네게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야, 그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사람은 정말 복있는 사람이야.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보실 때 한사람 한사람을 향해서 야! 너 참 복이 있다, 너속에 있는 그 믿음 때문에 복이 있다, 너 신앙 그 고백 때문에 복이 있다,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그런 큰 믿음, 바른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이 나의 신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꿔 놓습니다. 이 믿음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이 믿음이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믿음 가지셔서 주님께서 여러분들 바라보실 때에 아무개야, 너 참 복이 있도다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렇게 감탄할수 있는 그렇게 칭찬할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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