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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세우신 교회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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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16:13-20
제목 : “주님이 세우신 교회”

세상에는 많은 조직과 단체들이 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은 두 곳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가정이요, 또 하나는 교회입니다. 가정과 교회만 건강하면 사회도, 국가도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이 병들고,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면 사회도 국가도 다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바로 세우는 기관으로 가정과 교회를 세우셨지만 이 시대의 많은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위험수위를 벌써 넘어섰습니다. 교회마저 초대교회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교회의 본질을 바로 알아서 우리 교회를 건강한 교회로 만들어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있는 교회로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교회의 설립자는 예수님이십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는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설립자는 주님이십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우리교회가 17번 째로 광명영락교회를 개척설립 하지만 이 교회를 세우는 것은 부산영락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세우십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세우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많은 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치 아니하시면 주님의 교회는 세워 질 수가 없습니다.

오늘본문 13절에서 20절을 보면 1인칭 대명사가 6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나를 누구라 하느냐>, 17절에는 <내 아버지>, 18절에는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절에도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 때도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만 솔로몬 자신이 지으려고 해서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전을 지으려고 하는 마음은 다윗이 훨씬 더 강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치 않고 솔로몬에게 허락했기 때문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이라고 말하지만 그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우편 기둥은 <야긴> 이라 불렀고 좌편 기둥은 <보아스> 라고 불렀습니다. <야긴>은 <저가 세우리라>는 뜻이고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누가 세운다고 했습니까? <저가 세우리라>고 했는데 <저>가 누굽니까?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저>가 어떤 분입니까? 보아스 입니다. 능력있는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온 천하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이 <야긴과 보아스>의 뜻입니다.

요즘도 교회당에 들어가면 앞에 기둥이 있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강대상 좌우에 흰 기둥이 크게 세워져 있습니다. 이 기둥은 예루살렘에 서 있던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기둥들을 볼 때마다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능력많으신 그(야긴)가 세우셨구나, 능력많으신 주님(보아스)께서 세우셨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능력많으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주님의 교회, 그분이 세우시고 그분의 뜻이 행사되어지는 교회가 되도록 늘 기도하고 힘쓰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하잘 것 없어 보이는 교회라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목사의 교회도 아니고, 장로님들의 교회도 아니고, 누구의 돈으로 지었다고 해서 누구의 교회도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교회, 우리 주님이 주인되는 교회, 우리 주님이 머리되는 교회, 우리 주님이 소유주가 되는 교회, 바로 그 교회가 우리 교회입니다. 그런데 종종 교회에서 주인노릇을 하려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려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훼방을 놓고 떠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도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내 뜻보다는 주님의 뜻이 행사 되어지길 바라고, 내가 손해보고 내가 마음 아픈 일이 있더라도 내가 한걸음 물러서고 양보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바로 세워지기를 원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성도들을 축복하십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구약시대 때 보면 다수결의 방법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고안해 낸 방법 중에 최고의 방법이 다수결입니다만 그것은 세상적인 방법이고 교회에는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모든 세상사람들이 다 ‘아니요’ 할지라도 주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 주님의 교회의 특성입니다.
가나안을 다녀 온 열 정탐군이 보고를 합니다. ‘그 땅은 이렇고 이렇고 이러합니다.’라고 아주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잘 분석해서 보고를 합니다. 두 사람도 같이 보고를 합니다. 열 사람은 올라가면 안된다고 하고, 두 사람은 올라가면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편 사람의 손을 들어 주셨습니까? 열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만약에 다수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결정했다고 하면, 그래서 올라갔다고 하면 그들은 불과 한 두달 정도에 가나안에 올라와서 정말 복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수결을 따라 결정해서 절망하고 낙심하다가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게 되고, 그렇게 결정했던 사람들은 다 광야에서 죽지 않았습니까?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인간이 전부가 다 옳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결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아가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늘 기도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능력많으신 주님이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와 맞서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보면 <교회를 자기 피로 사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피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을 수 있는 분으로, 피 흘릴 수 있는 분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피흘려 자기 피로, 자기 생명을 주고 교회를 샀습니다.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얼마나 귀한 교회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을 지불하고 세운 이 교회,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귀한 교회입니까? 그래서 교회를 주님의 몸된 교회,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귀한 교회를 핍박하고 문을 닫게 하고 훼방을 하는 나라나 개인이 어떻게 바로 설 수가 있겠습니까?

삼일절을 전후하여서 일본이 교회와 맞섰다가 망하지 않았습니까? 제암리 교회를 위시하여 수많은 교회들이 핍박을 당했습니다. 3.1운동의 본거지가 교회이기 때문에 성도들을 교회 안으로 불러서 문을 잠그고 석유를 뿌리고 교회에 불을 질러서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창검으로 다 찔러 죽이며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1948년 8월 18일에 일본은 함흥에다 기독교의 지도자들을 다 소환해서 몰살시킬 계획까지 세워 놓았습니다. 명단도 이미 다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해방을 3일 늦추셨다면, 그래서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다 세상 떠났다면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와 맞서는 나라들을 하나님은 절대로 세워놓질 않았습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 보세요.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얼마나 교회가 성했던지 우리나라의 교회는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정교하게, 웅장하게 교회들을 지어 놓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 교회들을 다 폐쇄했습니다. 교회를 학교로 사용하고, 형무소로, 관공서로,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병원으로 사용하고 심지어는 풀장으로까지 사용했습니다. 어떤 곳은 하나님은 안계신다는 무신론을 강의하는 강연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70년 만에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남는 것은 가난 밖에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6.25 때에 이북 공산당도 마찬가지였지 않습니까? 얼마나 많은 교회들을 불태우고, 얼마나 많은 성도들을 학살했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와 맞서는 것은 자살입니다.

일전에 어느 건축회사에 일하는 한 직원이 상담을 해 왔습니다. 부산에서 제법 큰 교회인데 교회당을 건축하다가 건축비를 다 지불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돈 쌓아놓고 건축비를 안 주었겠습니까? 무리하게 건축을 하다 보니까 건축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서 지불이 늦어졌는데 건축업자가 건축비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교회 대문에다가 큰 나무를 대고 못질을 해서 교회출입을 막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이 직원이 ‘아, 이 회사는 이제 망하겠구나. 하나님의 교회를 출입하지 못하게 이런 짓을 하는 이 회사에 더 다니다가는 내가 퇴직금도 못받겠구나’ 하는 생각에 바로 사직서를 써 내고 나왔는데 얼마되지 않아서 그 회사가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능력 많으신 우리 주님이 세우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인의식은 가지되 주인노릇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인은 우리 주님이시고 교회의 머리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내 기분대로 교회 섬기려고 하지 마세요. 내 마음에 들면 나 혼자서 교회 다 섬기는 것처럼 날뛰다가 조금 기분 안 좋고, 손해보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아니하면 교회가 안되도록 별 짓을 다 하는 것은 바로 자살행위인 줄 알고, 하나님의 교회는 어떻게 하든지 융성하게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축복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머리로, 소유주로 인정하고 주님이 기뻐하도록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22편에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고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께서 가정에 평안과 형통함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고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힘쓰고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 가정에 평안을 주시고 형통케 하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신부요, 하나님의 피 값으로 주고 산 교회,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잘 되게 축복하는 것은 역사의 증거들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야긴, 능력많으신 주님께서 세우셨다-보아스> 이 사실을 늘 생각하고 교회가 주님의 교회 되도록, 주님께서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인도해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르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의 기초는 바른 신앙고백입니다.

또한 교회는 바른 신앙고백이 있는 곳이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무 기뻐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반석>이 뭡니까? 천주교에서는 이 반석을 <베드로>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인격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이며 로마 카톨릭의 교황은 베드로의 계승자로서, 교황의 지배아래 있는 교회라야만 참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반석과 베드로를 구별합니다. 반석은 원어로는 ‘패트라’이고 베드로는 ‘패트로스’ 인데 ‘패트라’는 큰 바위입니다. 그러나 ‘패트로스’는 반석이 아니라 반석의 일부분이요, 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은 <베드로>라는 인격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뜻이 아니고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고백>위에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베드로라고 하는 인격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한번 가정을 해 봅시다. 그러면 그 교회가 얼마나 흔들리고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볼까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니까 예수님께서 너무 기뻐하셔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내가 네게 천국열쇠를 준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이런 축복을 주겠다>고 칭찬했습니다. 베드로는 요새말로 아마 붕 떴을 거예요.

그런데 조금 후에 예수님께서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잡혀서 십자가에서 못박히는 수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선생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라며 깜짝 놀랐습니다. 성경에 그런 말은 없지만 아마 만약 그런일이 있으면 우리가 나서서라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도록 우리가 막겠습니다 하고 나섰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베드로를 책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지 않도록 하는 세력은 다 사탄의 짓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서 너, 사탄같은 짓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너,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이라고 책망받은 그 베드로 위에다 교회가 세워져 보세요. 그러면 그 교회가 무슨 교회가 되겠습니까?

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실 때에 잠자고 있던 베드로가 눈을 떠 보니까 로마군병들에게 예수님께서 잡혀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잠결에 칼로 로마군병을 쳤는데 말고라는 군병의 귀가 날아갔습니다. 만약에 말고가 재빨리 피하지 않았다면 바로 정통으로 머리가 갈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고의 귀를 붙여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살인미수자 입니다. 잘못하면 살인자가 될뻔 했습니다. 이런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하면 그 교회가 무슨 교회가 되겠습니까?

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살기 위하여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이 베드로 위에다가 교회가 세워졌다면 그 교회가 무슨 교회가 되겠어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어요. 그래서 옛날에 고기잡던 형제들을 다 데리고 갈릴리 바다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이런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지면 그 교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베드로가 오순절 사건을 경험했습니다만 한번은 외식하다가 바울에게 호된 책망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같이 식사를 못했습니다. 이방인과 같이 식사하면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일들을 초월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이미 베드로는 고넬료 사건을 통하여 네 보자기에 쌓여있는 음식의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다 정결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렇지만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이방인과 같이 식사를 하다가 바울이 들어오니까 자기는 안 먹은 것처럼 입을 닦았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베드로를 외식한다고 책망을 했습니다. 이런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지면 그 교회가 무슨 교회가 되겠어요.

그러므로 이 반석은 베드로의 인격이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베드로 자신의 신앙고백 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고백한 그 객관적인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질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서 있습니다. 이 고백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라는 간판을 건다고 주님이 세우신 교회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달았다고 교회가 아닙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무슨무슨 교회라고 간판을 붙인다고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는 교회라야 진정한 교회인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기초입니다. 교회는 자선단체도 아니고, 교회는 도덕을 가르치는 곳도 아니고, 교회는 사회단체도 아니고, 교회는 어떤 운동을 주도하는 운동권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며 바로 우리 자신이 교회인 것입니다.

뉴욕은 빌딩숲으로 뒤덮혀져 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위시해서 지난 번에 무너진 쌍둥이 빌딩 등, 이런 엄청난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까닭은 그 땅의 지반이 탄탄한 반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높이 솟아오르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하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그래야 주님 오실 때까지 견고히 서있는 신앙이 될 수가 있습니다. 유다서 1장 20절에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여러분들의 신앙을 건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 위에 내 인생의 집을 지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신앙과 인생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고백 위에 내 신앙이 서 있습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 위에 내 신앙이 서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자꾸 심방을 오니까, 부모님이 가라고 하니까, 아내가 자꾸 다그치니까 할 수 없어서 교회에 앉아 있습니까? 아니면 사업이나 이권같은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이 장소에 앉아 있습니까? 그렇다면 신앙의 기초를 빨리 바꿔야 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의 기초 위에 서 있어야만 내 신앙도 바로 설 수 있고, 내 인생도 바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신앙이 기초가 되어있는 교회를 통하여서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이런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이런 신앙이 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교회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신앙의 반석 위에 주님이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음부의 권세’를 현대인의 성경에는 ‘지옥의 권세’ 라고 했고, 표준 새 번역에는 ‘죽음의 세력’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능력많으신 주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죽음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지옥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세상의 권세나 사탄의 권세나 죽음의 권세가 하나님의 교회를 둘러싸고 있을지라도 이런 권세가 교회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능력많으신 우리 주님이 세우셨고, 주님이 이 가운데 거하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이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것들도 교회를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중국 선교의 역사는 세계교회에 하나의 충격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 세계의 나라가 복음을 전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던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오면서 선교의 문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중국 선교의 문이 막힐 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낙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국 선교의 문을 다시 열어주셨을 때 중국에 교회가 과연 남아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중국에 간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선교의 길이 막힐 그 당시에 얼마되지 않았던 성도들이 그 공산치하에 있으면서도 오천 만명으로 늘어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시기 때문에 어떤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건재하는 것이 교회의 속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어서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줄 믿습니다.

지난 5월 8일 장길수군 친척 5명이 중국 선양(瀋陽)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했다가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서 강제로 체포될 때 끌려나오지 않으려고 사투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습니까? 우리 나라의 영사관이나 대사관이 미국이나 중국에 있지만 그 대사관은 미국이나 중국의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 있지만 우리나라와 꼭 같습니다. 중국에 있는 일본 영사관도 중국이 아니라 일본입니다. 이 일본 영사관에 일단 들어가면 중국 공안이 거기 들어가서 못 끌어 냅니다. 그런데 공관진입에 성공한 탈북자 이성희씨와 정경숙씨를 강제로 연행했다가 빗발치는 여론을 못 이겨서 다 풀어주어 그들이 비로소 우리나라에 오지 않았습니까?

교회는 이 세상 속에 있지만 하나님의 대사관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어도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죽음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지옥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세요. 대사관에 들어가듯이 예수님 안에 들어오세요. 교회 안에 들어오세요. 그러면 우리를 쫓던 마귀도, 지옥의 권세도, 죽음의 능력도 닭쫓던 개처럼 우리를 쳐다만 볼 뿐, 따라 들어갈 수도 없고, 힘도 쓸 수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들의 권세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과거 구약시대에 그 그림자를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도피성에 들어가면 비록 사람을 오살했다고 할지라도 따라가서 원수를 갚지 못합니다. 도피성에만 들어가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도피성이요, 교회가 우리의 도피성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대사관입니다. 범죄하여서 지옥에 쫓기고, 마귀에게 쫓기고, 죽음에 쫓기는 우리들이지만, 교회에만 들어오면 어떤 세력도 우리를 침입하지 못하고 우리를 간섭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법으로 보호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는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렇게 외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교회의 선언입니다. 사탄을 향해서 명령할 수 있는 권세가 이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는 이런 권세와 생명이 있습니다. 이 권세와 생명을 늘 발휘해서 세상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바로 그 교회라야만 이런 권세가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이 신앙의 기초가 있는 그 교회, 바로 그 교회라야 권세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 예수님은 음부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지옥의 문을 닫을 수 있는, 사탄을 명령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우리 자신 한사람 한사람이 바로 교회입니다. 내 신앙도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워주셨습니다. 가슴 속에 있는 이 신앙의 고백도 내게서 난 것이 아니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신앙의 기초와 이 신앙의 고백으로 우리에게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이런 권세를 한사람 한사람에게 다 허락하여 주신 줄 믿고 이제는 죽음을 향해서 비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탄을 명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옥을 향해서 막아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을 구원하는, 악한 사탄에 매여 있는 이들을 구출해 내어 천국백성 삼을 수 있는 권세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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