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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 (시 50:9-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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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 50:9-15,23
제목 :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

꼭 한 달 전인 6월 14일, 탈북자 원씨 부자는 북경에 있는 한국 총영사관에 들어가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경찰관이 사전 허락도 없이 총영사관 건물 안에까지 들어가서 아버지인 원씨를 강제로 연행해 갔습니다. 홀로 남은 아들 원군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참으로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차려주는 식사 2인분을 삽시간에 먹어치우면서 “어머니는 북한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누나는 연변에서 인신매매범에게 팔려갔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말로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너무 많이 당했습니다.”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남한에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면 먹고 살 수는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너무 잘 먹어서 살을 뺀다고 야단들인데 같은 한반도의 한쪽에서는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니 너무도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같은 한반도에서 한 쪽은 굶어 죽어가고 한쪽에서는 살을 뺀다고 야단인 현실이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6월 한 달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축복하신 한 달이었습니다. 월드컵을 통하여 정치와 경제와 사회에 실망하고 고통하여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던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주고 넘치게 위로해 주셨습니다. 지친 우리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활력을 심어 주셨습니다.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영광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동방의 한 작은 나라에게 어떻게 이런 큰 은혜를 주셨는지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은혜와 축복을 받고 있으면서도 두 가지의 반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도취에 빠져있는 한 부류의 사람. 이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자기도취로 우쭐해 집니다. 자기만족에 취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23절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축복이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인 줄 믿고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감사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 되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1.감사는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왜 감사해야 됩니까? 감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오늘 찬양대에서 찬양한 것처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세금도 내지 않고 우리가 쓰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불신자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모릅니다. 우연히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복되게 살아가면서도 하나님 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나서 누리는 것으로 알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 하나님의 것을 빌려쓰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오라고 하면 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온갖 것을 다 공급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까?
어제 우리는 열 입곱 번째로 개척한 광명영락교회의 설립예배를 드렸습니다. 광명에 갈 때 주일준비 때문에 부득이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옛날 같으면 쉬지 않고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가도 열흘이나 걸릴 거리입니다. 왕복은 20일이나 걸립니다. 이렇게 먼 거리를 아침 10시에 갔다가 일 다 보고 오후 5시에 왔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생각하면 할 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저의 집에는 식탁 앞에 찬송가 489장 후렴 부분 <너의 복을 세어보아라>를 영어로 새긴 목판이 붙어 있습니다. . 그 목판을 보며 저는 때때로 명상에 잠깁니다. 저녁밥을 먹다가도 그 목판을 보며 오늘 하루동안 받은 하나님의 축복을 count해 보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다시 깨닫곤 합니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밥을 먹으러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끼의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북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 환경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도 참 감사합니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가 가장 위험한데, 무사히 이륙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니 참 감사하고, 또 안전하게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리게 되니 감사합니다. 비행기는 기름 힘으로 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지혜를 주셔서 기름을 발견하게 하시고 비행기를 발명하고 잘 활용해서 바쁠 때 이렇게 빠르게 다닐 수 있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이미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런 연료들을 마련해 놓으시고 그것을 잘 활용하며 살도록 계획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과학자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기름이 무엇으로 만들어 졌는가 하면 오래 전 맘모스같은 엄청난 짐승들이 살았는데 지각이 변동될 때 땅에 묻히면서 기름이 짜여져서 매장되어 있는 것이 석유이고, 그 때 묻혀진 나무들은 석탄입니다. 이것을 화석연료라고 하는데 안 믿는 사람들도 이 사실을 이론적으로는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크신 하나님이신지 인류가 퍼내고 퍼내고 쓰고 또 써도 계속해서 올라 올만큼의 엄청난 기름들을 준비해 놓으셨는지, 그 기름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솟아 올랐습니다. 광명으로 갈 때 비가 왔지만 바람은 불지 않아서 비행기가 떴고 좋은 기장(機長)을 만나서 안전하게 편안하게 갈 수 있어서 또한 감사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 부산영락교회가 17번째로 광명영락교회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가면서 계속해서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count해 보세요. blessing을, 받은 은혜를, 축복을 한번 헤아려 보세요. 우리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 같아도, 모든 것이 다 내 곁을 떠나는 것 같아도, 정신을 차리고 헤아려 보고 또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리고 내게 없는 것 보고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 count 해 보면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공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사를 이렇게 생각하면 감사한 것 뿐입니다. 우리는 불평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태어날 때 적신으로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 없었지만 이렇게 우리는 살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에 듣고 경험한 이야기인데요, 사람과 장소를 이야기 하면 다 아는 경우이기 때문에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집이 넓어서 반을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었답니다. 그런데 한 10년 쯤 살더니 아, 이 사람이 자기 집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게 어떻게 너의 집이냐, 지금까지 세를 내며 살지 않았느냐” 고 해도 막무가내로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집이 자기 집이라고 우기더랍니다.
결국에는 소송까지 하게 되었어요. 판사 앞에 가서도 계속 우기는데 판사가 그 이야기를 듣더니 ‘당신은 이 집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 않느냐, 이 여자는 혼자 살아가고 있는데 이집이 없으면 살기가 어렵겠다, 그러니까 법적으로 하면 당연히 당신이 하는 말이 맞지만 당신이 이 여인을 좀 봐 줬으면 좋겠다’고 합의를 해서 오라고, 하도 권유를 해서 그 집의 반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주변에도 그런 예들이 있을 거예요. 소위 점유권을 주장해서 남의 것을 자기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런 사람들이 없지않아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집에 세들어 살던 사람이 좀 오래 살았다고 해서 그 집을 자기 집이라고 우기면 가슴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우리가 그런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하고 있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가 사용하고 있으면 감사하고 감사해야 할텐데 나중에는 그것을 자기 것이라고, 내 것이라고 착각하고 주장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이니까 재판도 하고 또 억지도 부려보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장 내어놓으라면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 아닙니까?

며칠 전 한 퇴역장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퇴역장성이 경제적으로 유족하여 딸을 미국에 유학보냈습니다. 유학하는 동안 여러 가지로 부족함없이 돌봐주고 이제는 결혼도 시켜 미국에서 가정을 이루어 잘 살고 있는데 한번은 물었답니다. “얘야! 너 누구 때문에 그렇게 잘 사는 줄 아느냐?” 그러니까 그 딸의 대답이 “나 때문에 잘 살지요.”하더랍니다. 그 말에 아버지는 화가 났어요. 은혜도 모르는 자식을 갋는 아버지도 좀 그렇습니다만 “그래? 그럼 너 혼자 잘 살아봐, 너하고 나하고는 이제 부모와 자식 간이 아니다!” 그렇게 딱 끊어버리고 이제는 왕래도 않고 도와주지도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아버지의 심정을 살펴보면 “얘야! 누구 때문에 네가 이렇게 잘 사는 줄 아느냐?”고 물었을 때 “예, 아버지 때문이죠. 아버지가 이렇게 키워주고, 미국 보내서 공부시켜 주고 잘 돌봐 주셔서 제가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 딸은 아버지 앞에서 “나 때문에 잘 살지요.”라고 하니까 아버지가 화가 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갚으시지는 않지만 내 힘으로 잘 사는 줄 알고, 내 능력으로 잘 사는 줄 알고, 내 능력으로 건강한 줄 알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섭섭하며 아프겠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생명도, 내 몸도, 내 건강도, 내 가정도, 내 배우자도, 내 자녀도, 내 물질도, 내 시간도, 내 재능도 내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어 놓으라고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내어 놓아야 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것을 오래 사용하다가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런 배은망덕한 사람처럼 되지 말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것인줄로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하며 많이 쓰고 있으면 더 많이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할 것 감사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하나님을 높혀 드리는 그런 성도들 되어서 하나님의 구원을 날마다 경험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감사는 사람의 본분입니다.

다음 우리가 왜 감사해야 되느냐하면, 감사는 인간의 본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나름대로 존재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교회당 안에 있는 피아노, 마이크, 의자 등도 다 존재의 당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가 왜 없겠습니까? 사람은 왜 삽니까? 먹기 위해서 삽니까? 살다보니까 삽니까? 향락을 위해서 삽니까? 돈벌기 위해서 삽니까? 자식 키우기 위해서 삽니까? 도대체 우리는 왜 살고 있습니까? 성경은 한마디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기 위해서 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 42장 21절에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것은,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주신 것은 다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마이크가 마이크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존재는 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해와 달과 별과 자연만물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때 영광을 받으십니까? 우리가 감사할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인간됨의 본분입니다. 왜 인간에게 여러가지 고통이 오느냐하면,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감사를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감사를 하지 않으니까 감사할 줄 알게 하시기 위해 ‘고통’이라는 것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있는 이 마이크가 소리가 나지 않으면 한번 툭툭 쳐 봅니다. 때려도 봅니다. 그래도 안되면 분해해서 뜯어 봅니다. 이게 물건이니까 우리가 한번 쳐보아도 되지만 이게 만약에 사람이라고 하면 감사를 표현해야 될 이 사람이 감사를 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손으로 한번 툭툭 쳐 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기계처럼 한번 뜯어 본다면 해체되는 그 아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감사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인생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복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셔서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사람들로 만들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카네기는 인생은 불행하지 않기 때문에 감사할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볼크 돌이라는 여인은 맹인이었는데 몇 차례의 개안수술 끝에 약한 시력이지만 회복되어 그 가운데서 감사하는 그의 말을 예로 들었습니다. 돌여인은 “나의 작은 부엌 창에서 보면 푸른 하늘이 보인다. 비누 거품에 비치는 무지개 빛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암흑 속에 지내던 긴 세월이 다 가고 이렇게 집안 일을 돌보면서 눈으로 보는 갖가지 아름다운 모든 것은 그치지 않는 감사의 원천이 된다”. 시력을 상실하는 불행을 겪었기에 시력의 소중함을 감사하고 비누거품에 비치는 무지개를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고 볼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비누 방울 속에 떠 있는 무지개를 보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감탄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밝은 시력이 있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에 감사하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불행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은 감사를 모른다는 카네기의 말은 정말 명언 중에 명언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건강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릅니다. 물질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물질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기 전에는 사람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삶입니다. 불행을 겪어야 감사하는 우리인데, 이제는 불행을 겪지 않고서도 감사 할 수 있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험악한 세상 속에서 죽을뻔 했다가 감사하지 말고, 그런 죽을뻔한 어려움도 당하지 않은 것 을 감사하고, 건강 잃었다가 되찾고 감사하지 말고, 건강 잃어버리지 않은 것 자체를 감사하고, 물질 잃어버리고 회복해서 감사하지 말고, 잃어버리지 않은 것 그것 자체를 감사하게 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게 바로 사람의 본분인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참 귀한 감사헌금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이 아프고 난 다음에, 실패하고 난 다음에, 어려움을 당하고 난 다음에 회복하고 감사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주여, 이 달도 건강하게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하고 범사에 감사합니다. 이런 차원높은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서 삶의 목적을 다하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감사는 구원을 가져옵니다.

다음은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그 행위가 뭡니까? 감사입니다.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이 구원은 건강의 구원, 사업의 구원, 생명의 구원 뿐만 아니라 영적인 구원, 모든 총체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를 바로 할 때 하나님은 구원의 은총을 허락해 준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는 감사할 때 구원해 주시는 역사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옥중에서 감사하며 찬송했더니 옥문이 열려서 구원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것이 오천 명에게 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오천 명 앞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들고 하나님 앞에 감사- 축사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오천 명이 먹고 남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왜 내 친구 나사로를 데려갔습니까?> 그렇게 불평하시지 않고 <하나님! 지금까지 나의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하고 먼저 감사를 드리고 <나사로야 나오너라!>했더니 나사로가 살아서 나온 것 아닙니까?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왕 때에 모압과 암몬이 연합군을 형성해서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여호사밧 왕은 근심하며 두려움에 떨면서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힘으로는 이 연합군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애기를 배었지만 해산할 힘이 없는 것처럼 우리나라가 그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하고 기도할 때에 하사엘이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 찬양대를 동원하여서 옷을 입히고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렇게 찬송하면서 나갈 때에 그 뒤를 백성들은 무기들지 말고 나가면서 찬양대가 선창을 하면 그것을 따라서 복창을 하면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와 같은 전쟁의 풍경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찬양대를 조직했습니다. 가운을 입혔습니다. 앞서나가게 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하면 뒤에 따라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화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함이로다>하고 크게 복창하면서 나갔습니다.
이 찬송이 시작될 때 연합군이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끼리 찌르고 칼로 베고하여 여호사밧 왕은 칼 한 번 쓰지 아니하고 대승리를 얻었습니다. 전리품을 거두는데만 3일이 걸렸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전쟁할 때 무엇 때문에 은금패물을 가지고 전쟁에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전리품을 거두는 일이 3일이나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얼마나 찬양을 했던지 <브라가>라고 하는 찬양의 골짜기가 생겨지게 되었습니다.

순탄할 때 감사해 보세요. 내내 감사할 수 있는 은총을 입게 될 것입니다. 어려울 때 감사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환경을 바꿔주실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해 보세요. 이것만이 축복을 유지하는 길이요, 또 축복을 받는 길이 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주(主)되심을 인정하는 신앙고백 입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고 하나님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기회가 되는 것 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말세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배반하고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이 시대가 정말 감사를 모르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사이의 감사를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도 아니하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는 감사의 계절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감사를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무정하고 무심한 세상 속에서도 금년 전반기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헤아려 보면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가정 속에, 우리의 하는 일 속에, 특별히 우리의 신앙 속에 넘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count해 보세요. blessing을, 하나님의 은총을 한번 헤아려 보세요.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불행을 당하고 나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어려움 당하지 않은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할지라도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감사하게 될 때에 그것은 더 큰 감사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감사로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일 것이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2002년도 상반기를 보내고 다음 주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가장 귀한 아들까지 바쳤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너무 감격해서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며 번성케 하리라>고 약속을 주셨고, 두 렙돈을 드린 여인을 보시고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며 예수님은 감격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주되심을 신앙고백을 하고, 사람의 목적을 감당하여, 목적을 다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을 늘 받아 누릴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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