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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의 조건 [눅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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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조건 

<눅 9:23>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을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오늘은 우리 교회에서 세례식을 갖는 주일입니다.
이 세례식은 주님의 분부에 의해서 거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교회는 어디를 가나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고 제자를 삼아 주님의 분부한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오늘 세례를 받은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또 이미 세례를 받은 우리들도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것입니까?
오늘 말씀이 바로 그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에게 있어야 세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는데, 그 중에 첫째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여기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자기 신분을 부인한다는 말이 아니고 자기의 특징을 부인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 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부인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자기(Ego)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 전에는 모든 것을 이 자기(Ego)를 중심으로 살아 왔습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말하고 행동해 왔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기 전의 삶, 또 예수를 믿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참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을 때의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다 자기 중심이 아니었습니까?
좋고 싫은 것도 다 자기 중심이었고, 옳고 그른 것도 다 자기 중심이었으며, 모든 행동이 다 자기를 중심으로 해 왔습니다.
바로 이러한 자기 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부인하고, 그 대신에 누구 중심의 삶을 추구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 중심의 삶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D. L. Moody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다음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에는 내 소원이 축복이었더니 지금은 주님 자신이고,
전에는 내가 감정의 중심이더니 지금은 내가 그의 말씀중심이고,
전에는 내가 쉬지 않고 달라고만 하더니 지금은 쉬지 않고 찬송하며,
전에는 내가 주님을 사용하려 하였더니 지금은 그가 나를 사용하심을 내가 원하게 되었습니다.(박윤선주석 시편 p.896)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부인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이런 고백이 있습니까?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래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만 아직도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라 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무어라고 했습니까?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육체적으로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사는 자신이 날마다 죽는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를 받았다고 다 되었다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례를 받았으면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참 주님의 제자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삽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하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제자가 되는 출발이요 시작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그 다음에는 짊어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라고 했습니다.

여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생기는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잘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런 것도 잘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께서 지라고 하신 십자가는 그런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지신 것과 같은 그런 십자가입니다.

그런 십자가는 죄 없이 지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나 허물이 없이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면 내 죄나 허물 때문이 아닌, 정말 의와 진리를 위한 고난을 당할 각오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지신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 기도하실 때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나의 뜻을 굽히고 하나님께 복종할 때,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 주님의 십자가는 남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막 10장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45절)
오늘 우리들도 남을 섬기기 위해 무슨 일을 할 때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기 위해 내 가진 것을 나눠주는 것, 그것은 정말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피땀 흘려 벌은 돈을 남에게 거저 준다는 것, 그것은 피 없이는 눈물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십자가를 자진해서 지셨습니다.
요 10:18에서 주님은 "이를(주님의 생명을)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억지로 진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참된 예수님의 제자라면 십자가를 불평 없이 원망 없이 지고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예수님을 믿는데 십자가가 너무 무겁게 여겨져서 주님께 늘 불평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꿈을 꾸었는데 주님께서 십자가를 여럿 보여 주시는데 보니까 어떤 것은 금으로 되어 있고 어떤 것은 은으로 되어 있으며 또 어떤 것은 나무로 되어 있더랍니다. 거기다가 그 십자가의 크기가 다 제 각기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에게 맞는 십자가를 고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금으로 된 큰 것을 고르려니까 어찌나 무거운지 도저히 지탱할 수가 없어서 이것저것을 고르다가 그 다음에는 은으로 된 것도 골라보고 했는데 자기에게 맞는 것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래서 너에게 제일 맞는 것을 내가 골라 놓았으니 이것을 지라고 해서 보니 그것이 나무로 된 십자가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나무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나도 금으로 된 것 은으로 된 것을 달라'고 했더니 네가 아직은 그런 십자가는 견디지 못하여 줄 수 없고 앞으로 이 나무 십자가를 잘 짊어지면 나중에는 금 십자가도 주겠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억울해서 한참 울다가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깨닫기를 내가 지금 지고 있는 이 십자가 같은 고난이 나무로 된 십자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너무 괴로워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십자가 같은 고난을 잘 견뎠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다 각각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더 무거운 십자가가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좀 가벼운 십자가가 있습니다.
내 십자가 너무 무겁다고 원망도 마시고 내 십자가 가볍다고 자랑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없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이상 우리에게는 다 각각 맞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경제적인 십자가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의 십자가가 있으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자식이 십자가고 어떤 사람에게는 남편이 혹은 아내가 또 어떤 사람에게는 며느리가 혹은 어떤 사람에게는 시어머니가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그 십자가 묵묵히 짊어지고 주님 따르면 그 십자가가 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나중에는 면류관으로 바뀌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각각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불평 없이 잘 짊어지고 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 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내 몫에 대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라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저 수정같은 길에서 면류관 벗어서  주 예수 앞에 바치며 늘 찬송하겠네
뭇 천사 소리 높여서 늘 찬송할 때에  그 좋은 노래 곡조가 참 아름답도다
그 면류관도 귀하고 부활도 귀하다  저 천사 내려 보내사 날 영접합소서 (찬365)

마지막으로, 주님의 참 제자는 주님을 좇는 자들입니다.

'주님을 좇는다'는 말은 주님께 배운다는 말, 주님을 닮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내 구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면, 먼저는 내 자신을 부인하고, 그 다음에는 나의 십자가를 지고, 그 다음에는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마11:28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로 쉬게 하리라"
그리고는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명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가장 기본적으로 평안의 축복을 주시는데, 그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이 메어 주시는 멍에를 매고 주님께 배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란 배우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은 예수님으로부터 배우기를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이 정말 예수님을 배우며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배우기 위해서 얼마나 성경을 상고합니까?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지 10년 20년 30년이 되었다고 하면서, 과연 내게서 예수님 닮은 것들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고백 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백만으로 우리들의 할 일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우리를 백성으로 삼고 자녀로 삼으실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제자를 삼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제자에게는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을 좇아야 곧, 주님을 배워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닮음으로 참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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