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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사람 (마 1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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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마다 위대하게 보는 기준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돈 많은 사람을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공부 많이 한 사람을 위대하게  봅니다.
어떤 사람은 높은 지위나 권세를 가진 사람을 위대하게 보며 또 젊은 사람은 운동선수나 연예인처럼 인기 있는 사람을 위대하게 보기도 합니다.

모르긴 해도 요즈음 우리 국민들의 눈에는 히딩크처럼 위대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 번 우리 나라가 축구 8강에 올랐을 때 보니까 "Hiddink for President"라는 프랭카드까지 있었습니다.
우리 축구선수들도 얼마나 위대하게 보입니까?
비록 지난번 준결승전과 3,4위 전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는 무패를 나타내며 이번 월드컵에서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와 민족이 이처럼 하나된 적이 없었는데 우리 선수들 덕분에 온 국민이 하나되어 서로 기뻐하고 좋아하는 모습은 아마 해방이래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위대하게 보이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호텔에서는 아예 호텔 이름을 히딩크 호텔이라고 바꾸고, 우리 선수들이 머물다가 간 방의 이름을 선수들 이름으로 바꾸었으며 심지어는 그들이 버렸던 쓰레기 같은 것을 기념품으로 삼기까지 하였으니, 그들이 얼마나 위대하게 보이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정말 그들은 우리 국민들의 영웅이요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위대하게 여기시는 사람은 다릅니다.
성경(삼상 16:7)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이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르게 사람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보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 대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 11절에 보면,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를 극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극찬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그렇게 극찬하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어떤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왜 취급하셨겠습니까?

물론 그가 완전한 사람이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도 하나님의 눈에 완전할 수 없습니다.
욥기 25:5에 보면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구더기 같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이라고 완전한 사람은 아닙니다.

실제로 그도 한 때 투옥된 후 예수님께서 진정한 메시아인지 의심을 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앞에 2절에 보면,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물론 그가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근본적으로 의심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는 그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일을 하다가 투옥되어 자신이 사역이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계셔서 답답하여 물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십니다.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음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신 그 일을 지금 하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6절에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에게도 한 때는 실족할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궁굼한 점을 일러주시고 실족하지 말고 믿음을 굳게 지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났을 때,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요한은 그런 사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또 "그러면 너희가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그런 사람은 왕궁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그는 선지자이며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하셨습니다.(9절)
그는 성경에 예언한 대로 바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러 온 자라고 하셨습니다.(10절)
그러다가 마침내 11절에 이르러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고 하시면서, 그를 그렇게 칭찬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를 가리켜 그렇게 큰 자라고 말씀하신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이 시대에 예수님께로부터 위대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칭찬 받을 사람은 어떤 사람?
오늘은 거기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세례 요한에 대하여 기록해  놓은 것을 살펴보면, 그에게 있어서 정말 위대한 것, 세 가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의 삶입니다.

그의 삶은 가난을 택한 매우 청빈한 삶이었는데 그것은 그의 의식주 생활에 잘 나타났습니다.
마 3장에 보면, 그는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약대 털옷을 입었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으며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요즈음은 가죽 털옷 하면 고급 옷에 해당되지만 그 당시 그가 입었던 가죽 털옷은 그런 호화로운 옷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흔히 잡을 수 있는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털을 그냥 자연적으로 만들어 입은 그런 검소한 옷이었습니다.
또 그가 먹은 메뚜기와 석청도 자연에서 나는 것들로 그 당시 가난하게 사는 자들이 할 수 없을 때 구해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 당시 제사장이었습니다.
당시 제사장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들로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사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그런 생활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자원하여 이런 삶을 택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보다 더 주님과 가까이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보면 이 땅에서 사시면서 "여우도 굴이 있고 나르는 새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도다"라고 하실 만큼 청빈한 삶을 살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주님의 삶을 내다보고 그도 그렇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그가 그런 삶을 산 것은 그 당시 고통받는 백성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몇몇 특권층을 빼놓고는 다 어렵게 사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잘 사는 사람, 편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거부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 당시 사람들에게 바른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이 택한 삶의 방식이 검소한 삶의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가죽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으로 음식을 삼으면서 광야에 거한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청빈한 삶이 당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어 많은 사람이 그에게 모여들게 되었고, 마침내 예수님께서도 그를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한 그의 선택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고후 8장 9절에 보면 우리 주님도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들을 위해 가난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셨는데 스스로 이 땅에 오셔서 낮아지시고 가난해지시고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주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님은 바로 이러한 점을 세례요한에게서 발견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스스로 가난의 길과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위대하게 보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중세의 성자로 일컬음을 받는 아시스의 프란시스 같은 사람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주님을 만나고 난 뒤에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어렵고 가난의 길을 선택해 갔습니다. 그가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실제로 몸으로 보여주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프란시스처럼 우리가 가진 전부를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지는 못해도 우리가 누리는 모든 부요한 여건과 환경을 조금이라도 희생하면서
주님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쓸 줄 아는 삶을 살 때에 주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위대하게 평가해 주십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도 이런 사람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람들이 따릅니까?
또 어떤 사람을 하나님이 위대하다고 하십니까?
그 당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을 만큼 검소한 사람, 청빈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국민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요즈음 우리 대통령께서 곤욕을 치르시는데, 그 측근들과 그 아들들이 뇌물을 받았다고 해서.
물론 대통령이 직접 그러신 것은 아닙니다. 또 액수도 예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 이 나라의 통치자는 국민과 함께 하는 지도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청빈하고 검소하게 사는 지도자인 것 같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우리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 목회자들이 과연 성도들과 위화감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안식월을 지내면서, 요즘 우리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 소위 말하는 대형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 외국에 와서 외국에서 어렵게 사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얼마나 실망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고 가신다는 말을 듣고 저 자신에 대해서도 반성해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목회자들이 어느 정도로 살아야 검소하고 청빈하다고 인정을 받을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목회자 지망생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래도 목회자의 삶이 괜찮은 삶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목회자가 되었을 때 어느 여대생들에게 앙케이트 조사를 했는데 결혼 대상자 가운데 목사가,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발사 다음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언젠가 같은 앙케이트에 목사가 결혼 대상 2,3위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참 세상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목사의 위상이 그렇게 높아진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것이 목사의 삶이 편해서, 대우받은 일이어서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저를 비롯하여 오늘 이 시대의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좀더 검소하고 청빈하게 사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세례 요한은 삶이 있었습니다. 청빈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를 위대하게 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청빈함 하나만 가지고 사람이 위대하게 되는 것 아닙니다.
종종 우리는 청빈함 그 자체만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려는 잘못을 범할 때 있습니다.
청빈함만 가지고 평가한다면 거지가 제일 위대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거지를 보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청빈함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도 세례요한에 비하면 청빈한 분 아니셨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 청빈함 한가지만 가지고 평가하여 세례요한보다 못하다고 하여 비판하기까지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금식하는데 왜 예수님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 살았는데 예수님은 왜 그러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인기가 없었는데 왜 예수님은 인기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금욕이나 청빈의 기준으로만 본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위대하게 여기신 것은 그의 청빈한 삶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밖에도 그에게는 위대한 점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는 그의 마음의 자세였습니다.

그는 마음이 정말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만일 청빈한 삶을 살면서 겸손하지 못했다면 주님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삶과 함께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는데, 특별히 그는 겸손했습니다.

마 3:11에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그 당시 한참 인기가 치솟고 있는 세례 요한이 자기 자신을 이렇게 낮추고 뒤에 오시는 분을 높인 것은 그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세례요한은 자기의 신분을 바로 알았고 그 위치를 잘 지키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아를 증거하신 것입니다.

또 요 3장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23)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4)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30)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얼마나 겸손한 자세요, 얼마나 겸손한 말입니까? 세례요한 같이 겸손한 사람이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습니다. 
세례요한은 절대로 인기에 연연하지 않았고 자기가 서야 될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꾸준히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기가 떨어지고 예수님께 사람들이 모일 때에 그는 오히려 그 것으로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기뻐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쇠함으로 주님이 흥하여지는 것을 오히려 좋게 여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것은 엄청난 겸손입니다. 우리가 세례요한과 같은 위치에 있지 않아서 그렇지 세례요한과 같은 위치에 있으면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조금만 존경을 받고 높은 위치에 있으면 교만해지며 자기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위치를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이 왜 욕을 먹습니까?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는 그렇게 존경을 받고 따르던 사람들이었는데 그 후에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려오기를 싫어하고 그 위치에서 자기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교회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번에 한달 정도 쉼의 시간을  가지면서 여러 면으로 저 자신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30년 동안 사역자의 길을 걸어왔는데 우리 주님의 눈과 성도들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존재일 것이며 주님을 위해서 나의 편함과 안락을 온전히 포기했는가를 생각해보면서
3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면서 담임 목사의 위치에서 목회하는 내 마음이 얼마나 높아 있는가를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겸손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의 눈에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까? 자기 위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겸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위대함은 그의 사역에서 나타났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청빈한 생활과 겸손한 마음에서만 아니라 그의 사역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는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보다 나은 자로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하면서 천국복음을 전파한 일입니다.
또 세례를 베푼 일입니다. 회개의 세례를 베푼 일입니다.
상담도 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고 물을 때 그가 일일이 상담해 주었습니다.
사회 정의도 부르짖었습니다. 헤롯을 상대로 바른 말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옥에 갇히기도 하고 결국은 목 베임을 당해 순교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그의 사역인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맡은 사역에 충실한 것입니다.
그런 그의 사역이 위대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세례요한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사역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일도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이 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으며 다시 오실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사역을 했다고 하면 오늘날 우리들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분이 다시 오실 길을 준비하는 그 일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일을 하는 자, 이 사역을 주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 일을 하는 자를 위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저는  재충전의 시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 자녀들도 만났지만 과거에 섬겼던 교회의 성도들도 만나게 되었고 남부럽지 않게 돈벌고 사회적으로 진출한 사람들과 여러 면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정말로 존경스럽고 위대해 보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나는 무엇을 했는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굉장히 잘 사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 마음 가운데 조용히 일러주시는  말씀은 네가 하는 그 일 때문에 귀하게 여겨 주시겠다는 음성이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많은 선교사님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 주님을 증거하는 그 사명을 가지고 주님 오시는 그 길을 예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세례요한처럼 부요하게 살지는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낮은 위치에 처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귀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수천 명 모이는 남서울교회의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습니다만 몇 명 안 되는 적은 교회를 맡아서 평생을 섬기며 사는 사역자들, 오지에 가셔서 알지도 못하는 타민족들을 위해서 자기들의 생명을 바치는 사람들, 평신도로서 자기의 위치를 지키면서 교회에 충성을 다하고 있는 성도들을 보면서 오늘 이 시대에 사람들이 위대하게 보는 기준과 주님이 위대하게 보는 기준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의 기준으로 자신을 보면 우리가 너무나도 작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눈으로 보면 평가는 달라진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 세례요한처럼 위대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가진 것을 다 누리겠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주님과 남을 위해서 나눌 줄 아는 삶을 살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우리의 위치를 지키고 겸손을 잃어버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사명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임을 알고 남이 알든지 모르든지 어 떤 위치에서든지 우리 주님을 증거하고 마음에 천국을 마련해주면서 내 본분을 인식하면서 주님을 증거하고 주의 길을 예비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직업으로 사람들을 많이 평가를 합니다. 어느 직장에 다니며 어떤 위치에서 일하느냐를 가지고 사람들을 평가합니다. 그러다가 그 직장과 그 직위에서 멀어지면 사람들 스스로 왜 그렇게 작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데 어떻게 쓰이는가가 중요한데 우리의 남은 평생을 주님을 위해 쓸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다음 주일에 우리가 새생명 축제 2차 작정을 하게 되는데 이 일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교회적으로 전체가 준비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에도 참여하시고  여러분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든지 간에 우리의 사명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며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삶인 줄 알고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세례요한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위대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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